제3장

    아침에 내린 비는 이탈리아의 뜨거운 여름 태양으로 이미 말라버렸다. 마르코스와 저스틴은 마을로 출발하는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주교를 방문하고 나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감금되어있는 루푸스를 찾아가 볼 계획이었다. 엘레우테루스 주교가 사는 작은 집에 도착한 그들을 주인은 따뜻한 인사로 환영했다. 주교는 갈리아 지방과 그의 친구 이레니우스, 그리고 끔찍한 박해를 당하고 있던 선교사들의 소식을 매우 듣고 싶었다. 저스틴은 그에게 편지 몇 통을 건네주고 교회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말 대단한 신실함과 담대함을 가지고…”

    바로 그때 문을 지키던 집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신 우리의 손님 데메트리우스와 그의 따님 줄리아나입니다.”

    문이 열리자 약 50대쯤으로 보이는 깔끔한 차림의 남자와 20대 중반의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는 까만 머릿결을 휘날리며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데메트리우스는 앞으로 나서면서 세 명의 로마인들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고 말했다:

    “동방의 형제와 그의 딸을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상인입니다. 로마에는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왔습니다. 저와 제 딸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회 신자이며, 우리의 주교 아그리푸스의 안부를 그의 서신으로 전합니다.”

    “우리와 함께 교제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주교가 말했다.

    데메트리우스는 서기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듣기로는 여기에는 훌륭한 필사실과 능력 있는 서기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능력이 있고 말고요,” 주교는 그들의 높아진 명성에 대하여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기 저스틴은 사실 2세 필사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기에서 최고의 서기로 수년 동안 일을 하시다가 순교하셨지요. 그리고 이쪽은 그의 동료 마르코스입니다.”

    “줄리아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줄리아나는 앞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실 제 딸에게는 부탁이 좀 있습니다. 그녀 또한 서기 일을 배우고 있으며 여기서 당신들의 방식과 기술을 보고 배우고 싶어 합니다.”

    저스틴과 마르코스는 서로 마주 보며 약간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주교는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데메트리우스, 저의 서기들은 당신들을 도우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줄리아나는 가방을 열어 문서를 하나 꺼냈다. 그것은 아름다운 가죽으로 덮인 큰 책이었다. “이것은 제가 가장 아끼는 보물 1호입니다.” 그녀는 깨끗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스무 살 생일 선물로 제 아버지가 주셨지요. 이것은 성 마가의 복음서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최고의 서기가 필사했고, 원문에서 직접 베낀 문서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당신들이 이 문서를 어떻게 필사하는지 관찰하며 새로운 기술과 방식을 배우고자 합니다.”

    “저희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가씨… 어떻게 부르는 것이 나을지…?”

    “그냥 줄리아나로 불러주세요. 크리스천들끼리는 이렇게 불러도 됩니다. 그리고 그쪽은…?”

    “저스틴입니다. 여기는 마르코스이고요. 또 세 번째 서기 루푸스가 있는데 지금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주교는 헛기침하면서 자세를 옮겼다. 그는 루푸스 얘기가 나온 것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며 물었다. “한번 봐도 될까요?”

    줄리아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끈을 풀어 열었다. 그리고는 말씀을 읽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이 책은 그들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독교 문서였다. 저스틴과 마르코스는 입을 벌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헬라어 문자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필체로 쓰여 있었다. 각기 장마다 글은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일반 기독교 서기들이 쓰는 효율적인 필체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저스틴은 이 정도 품질의 책은 비싼 값의 고전들만 존재하였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의 어느 서기에게나 이것은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사랑과 정성이 페이지마다 드러났고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훌륭합니다.” 저스틴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서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필사하는지 보고 싶으시다면 기꺼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저의 작업실로 오실 때 책을 가지고 오십시오.”

    “아니에요, 지금 가져가세요. 당신들이 보관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 필사실로 가겠습니다. 저희가 머무를 마을과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가져가셔서 책에 충분히 익숙해질 기회를 가지세요. 그런 다음 시작해도 좋습니다.”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러나 막대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군요. 저의 생명을 걸고 이 책을 보호하겠습니다. 내일 오전쯤 만납시다.”

    주교가 끼어들었다. “다 결정되었죠? 죄송하지만 자리를 좀 비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스틴이 방금 돌아온 터라 저에게 갈리아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데메트리우스가 대답했다. "다시 한번 저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스틴은 손님들이 대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저스틴은 주교와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기도와 찬송을 하는 것으로 마쳤다. 마르코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끝내 마르코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생각하나?”

    “참으로 아름답군!” 저스틴은 소리치듯이 대답했다.

    “문서가 아름답다는 것인가, 아니면 주인이 아름답다는 것인가?”

    “둘 다. 그런데, 마르코스, 한 가지 걱정이 있네. 아마 마지막으로 동방에서 로마 교회를 방문한 상인을 기억할 것이야. 내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였는데, 흑해의 시노페 항구에서 온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이었지. 그때 그는 교회에 엄청난 돈을 지원해 주면서 자신을 선생으로 위장하고 다녔지. 끝내 그는 위험한 왜곡자로 지목되었네. 그는 구약성서를 완전히 부인하고 신약의 대부분도 믿지 않았어. 정말 하찮은 성서 지식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다녔지. 결국 로마 교회는 그에게 모든 돈을 돌려주고 마르시온을 동방으로 다시 내쫓았지만, 아직도 그 때문에 우리 교회 안에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데메트리우스도 동방에서 온 상인이라는 것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까 마르시온 생각이 내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아주 겸손하고 그의 딸 역시 뽐내기보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태도를 지닌 것 같지만… 뭐,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별생각을 다 하는 것 같네. 네가 한 말 잊게나. ‘나의 길을 내가 지켜서, 내 혀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라는 말도 있듯이…” 저스틴은 시편 39편의 앞부분을 암송하며 말을 끝냈다.

    “사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래도 친구 사이에 이 정도 생각과 두려움은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지금 신경 쓸 것은 이단의 가르침이 아니라 개인적인 잡생각들이지. 안 그런가?”

    “그런 것 같네…”저스틴은 망설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 침묵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