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옥시린쿠스의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은 언제나 줄리아나의 영혼까지 새롭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시원한 적은 없었다. 별장 정원에 앉아서 그녀는 지난해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버지 데메트리우스와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힘든 시간을 뒤로하고 시골로 내려와 몇 주 동안 쉬고 있었다. 아버지는 파이움 지역의 토지 문서와 자신이 운영하던 운송업 때문에 여간 골치 아팠던 게 아니었다. 농사는 잘되지 않았고 정부의 세금 정책으로 한 해 내내 문제가 많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으나 왠지 옛날보다 더 일이 많아진 것 같았다.

    줄리아나의 문제는 헤르마스 때문이었다. 만난 지 첫해에는 좋은 친구로 지냈으나 점점 그는 줄리아나를 구속하기 시작했고, 끝도 없는 소유욕 때문에 둘의 관계를 기독교의 윤리 이상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녀는 거절했고, 거기서 갈등이 생긴 것이다. 드디어 이른 봄 어느 날, 그는 클로에라는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말했다. 줄리아나는 이제 버림받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촌이자 좋은 친구인 아피온과 상담을 해왔다. 그들은 같은 집에서 자라 지금까지 마음을 나누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피온마저 영적인 방황 속에 있었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줄리아나는 매우 외로웠다.

    그녀는 옥시린쿠스의 정원에 앉아 자신의 24년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녀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살아왔다. 이 부유한 알렉산드리아 상인의 외동딸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성공과 밝은 미래는 그녀의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을 뜻했다. 웬만한 이집트 여인은 이렇게 살지 못했다. 그녀는 중매로 일찍 결혼하여 고통받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고 심지어 낙태까지 해야 하는 이들도 허다했다. 그러나 기독교 가정은 줄리아나를 이런 공포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로마 시민권자이자 저명한 가문 출신의 어머니는 사랑을 쏟아주며 교양 있는 교육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줄리아나는 기독교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고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녀의 삼촌은 주교였으며,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정교사와 심지어 두 명의 몸종 로다와 야고보까지 붙여주었다. 그녀는 그리스와 로마의 위대한 작가들에 대해 배우며, 여행도 많이 하였다.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멀리 출장을 갈 때는 그녀도 자주 따라갔다. 이렇게 그녀는 제국의 많은 교회와 학교들을 보았다. 어딜 가든 그녀의 미모, 지성 또는 재산 때문에 남자들은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줄리아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였다.

    그런 부귀영화도 줄리아나를 비극으로부터 보호해 주진 못하였다. 그녀는 열 살 때 온 나라를 휩쓸고 인구의 3분의 1과 심지어 황제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 전염병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큰 상처를 받은 그녀는 열일곱 살 때 눈앞에서 펼쳐진 로마 병사들의 무자비한 학살을 지켜보았다. 그때 그녀마저 생명의 위협을 몇 번 받았다. 시위대를 진압하는 살육이 끝났을 때 그녀는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겁니까?”

    일 년 후 그녀는 또 하나의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집에 강도가 들어 물건을 훔치고 집안의 여자들을 범하였다. 줄리아나의 종 야고보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이 끔찍한 사건은 평생 씻지 못할 치욕으로 남을 뻔했다.

    그런데도 줄리아나의 삶은 희망과 기쁨으로 넘치는 삶이었다. 스무 살 생일 때 그녀의 아버지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바로 오직 그녀만을 위한 아름답게 필사된 마가복음서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최고로 꼽히는 기독교인 서기가 수고해 준 것이다. 그는 이집트 교회 서기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 다른 호메르, 소포클레스, 플라톤, 데모스테네스 등 최고의 고전들과 어깨를 겨룰 만한 세련된 필체의 기독교 문서를 만드는데 관심이 많았다. “최고의 책은 최고의 취급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었다. 줄리아나는 여러 서기를 만나면서 이 비전을 나누었고 자신도 친구들과 문서들을 통해 신앙을 나누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바로 그 시간 정원에서 손에 쥐고 있던 마가복음서는 어느 다른 사본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급 문서였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녀는 이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책을 거의 외우고 다닐 정도로 많이 읽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그녀는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말씀을 떠올렸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줄리아나!”

    아버지가 그녀를 부르셨다. “얘야, 알렉산드리아에서 소식이 들어왔다. 로마의 고객들이 나를 이번 여름에 좀 봤으면 하는구나. 우리는 2주 후에 출발하여 거기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올 것이다. 나랑 같이 가자꾸나.”

    “아버지, 저는 아버지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네요.” 그녀는 불만에 찬 어조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네가…” 그는 잠깐 멈추었다. 이 상황에서 헤르마스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은 그녀의 기분을 더 나쁘게만 할 것이었다.

    “… 로마 교회를 한번 방문하고,” 그는 말을 바꾸었다, “그들의 문서들을 보면서 네 것도 보여줄 기회가 되지 않겠니?”

데메트리우스는 다행히 긍정적인 주제로 말을 바꾸었다. 더 말을 하면 이상할까 봐 잠시 기다렸다.

    “알았어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별생각이 필요 없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그녀는 로마와 그들의 서기 작업 방식 등에 대하여 의문과 궁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의 서기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도 언젠가는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들을 필사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 서기들의 방식을 배우고 동시에 훌륭한 알렉산드리아 서기 작업을 자랑할 생각을 하니 그녀의 머리는 이미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정말로 저에게도 기술을 가르쳐 줄까요?” 그녀는 물었다.

    “한번 해보지.” 그녀의 아버지는 대답했다. “우리 주교님들을 통해 연락해볼 테니까 어렵지는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