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R. Rodger 박사가 쓴  <The Scribes: A Novel about the Early Church>의 내용 일부를 번역하여 이전 홈페이지에 올렸으나 홈페이지의 개편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이어서 읽고 싶다는 의견이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매주 한 장씩 올리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성서필사에 대한 이해를 재미있게 할 것입니다.  

제1장

    날은 이미 어두워졌으나 저스틴은 기필코 집에 도착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금방 자신이 사는 도시, 온 세상의 중심인 로마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더는 야수와 강도의 습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름의 시원한 밤바람을 얼굴로 느끼며 그는 남은 몇 마일 동안 걸음을 재촉했다.

    몇 달 동안의 긴 여행 끝에 저스틴은 자신의 집과 일터로 돌아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32년 평생을 그는 이렇게 긴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황혼을 지나오는 발걸음은 지쳤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의 주교 엘레우테루스의 부탁으로 북 갈리아의 리옹에 다녀오는 길이다. 로마 교회가 내린 4복음서의 사본을 리옹의 새 주교 이레니우스에게 전해주고 온 것이었다.

    저스틴은 이 사본을 필사한 서기관이었다. 이 일은 반년 이상이 걸렸고, 그는 자신의 휴식 시간도 아끼지 않고 일에만 전념했다. 목수작업대에서 허드렛일을 할 때도 저스틴은 문서를 베끼는 데 열중했다. 그가 옮긴 책은 60년 동안 로마 교회의 소유였고 최초의 원고로 알려져 있었다. 저스틴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에 속해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전통을 물려받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저스틴의 아버지도 같은 일을 하다가 결국 그 대가를 치렀다. 50년 동안 아버지는 로마 교회의 최고 서기관이었으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다락방에 작은 필사실을 두었다. 많은 사람이 거기에 모여 교회나 개인을 위해 성서를 필사했다. 그들 중에는 아버지와 친하였으며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던 위대한 변증가이자 순교자인 저스틴도 있었다(저스틴의 이름은 그에게서 딴 것이다). 그 시대에 그 사람만큼 기독교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데 기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그도 결국 순교자가 되었다.

    서기 179년의 여름 저녁, 집으로 돌아오던 저스틴은 그가 긴 여정 동안 들었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친구들의 순교를 지켜본 리옹의 평범한 기독교도가 했던 소름 끼치는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블란디나를 봤어야 합니다. 그녀는 상상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크리스천이다’라는 신앙 고백을 담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흔셋이신 우리 본디누스 주교님은 또 어땠습니까? 총독이 ‘기독교도들의 신은 누구냐?’라고 묻자, 그는 서슴지 않고 ‘당신이 알 자격이 있다면 언젠가는 알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있었지요… 말투르스와 산투스, 아탈루스… 그들은 블란디나와 함께 짐승들의 먹이로 원형 경기장에 끌려갔습니다. 정말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과 고백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스틴이 평생 잊지 못할 그 날을 생각나게 했다. 열일곱 살 때 그는 아버지가 ‘나는 크리스천이다’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 때문에 자신의 눈앞에서 죽임당하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그 말을 오늘 한 것 같이 다시 저스틴의 귀속에 울리고 있었다. 동시에 아버지가 이름을 따서 자기에게 붙여준 그 위대한 저스틴의 말도 생각났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의 창조자이신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많은 선지자가 인류의 구원자이시며 스승이신 그에 대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힘차게 말을 한 그 순교자의 얼굴에는 빛이 났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저스틴이 어렸을 때 로마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리옹의 새 교주 이레니우스는 갈리아로 가지고 온 4복음서 사본을 받았을 때 기쁨에 겨워 “잘했도다!”라고 외쳤다. 저스틴은 로마에서 자주 듣던 자기 스승의 잊지 못할 말을 떠올렸다: “저스틴, 언제나 읽는 그대로 복음서를 옮기어라. 절대로 더하거나 빼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라. 이것은 이 문서들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네 생각에 본문을 변경하면 진리를 더 잘 변호할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을 받아도 떨쳐 버려라. 복음은 있는 그대로 그리스도를 증거 할 것이다. 우리의 의무는 주님이 영광 속에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를 위하여 복음서를 보존하는 것이다.”
    저스틴은 언덕 마루에 도달하며 그의 집을 어스름하게 볼 수 있었다. 머릿속의 목소리들은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그가 집에 왔을 때는 무슨 일들이 그를 기다릴까? 사람은 언제나 긴 여행 끝에 이 느낌을 가질 것이다. 어떤 일을 제일 급하게 해야 할까? 혹시 누가 병들었거나 죽은 건 아닌지? 혹시 새로운 박해의 위험이 있지는 않은가? 그는 최근 리옹에서 있었던 무서운 탄압에 대해서 들었다. 혹시 로마에서도 아버지 때처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역시 베드로와 바울과 그의 아버지처럼 굳건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저스틴은 단지 그래야 할 경우가 없길 바랄 뿐이었다. 그는 사도 바울이 인용한 시편 44편을 마음속으로 불렀다:

    “우리가 날마다 죽임을 당하며, 잡아먹힐 양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은, 주님 때문입니다.”

    양에 대한 구절은 그의 양치기 친구 마르코스가 생각나게 했다. 그는 남는 시간에는 원고 필사를 도왔다. 저스틴은 마르코스가 보고 싶었다. 비록 어리고 작업하는 데 서투르지만 마르코스는 주님과 교회에 대한 성실함이 남다르고 정확하였다.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 찬 루푸스도 보고 싶었다. 가끔은 성급한 행동을 하였지만, 원문을 고치고 크게 혼이 난 후로 절대로 고의적으로 말씀을 변형하지 않았다. 진실한 신앙을 지키려는 그의 열망은 그러나 대단했고 오히려 때로는 위험할 정도였다. 이 세 명의 친구들은 많은 일을 했고(저스틴이 혼자서 거의 모든 일을 하였지만), 저스틴은 그들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더 모으고 싶었다. 과연 그들이 이 작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을까? 아직 로마 교회의 책들을 압수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안전했다. 필사실은 시내가 아니라 시골 마을에 있었기에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몇 달 동안 고생하여 필사한 성서 사본들이 압수당하고 파괴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 충격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스틴은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여는 순간, 저스틴에게는 여행자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겪는 그 이상한 느낌이 왔다. 집은 낯이 익었지만 동시에 낯선 곳으로 느껴졌다. 모든 가구와 물건들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문과 바닥은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유난히 소리를 많이 내는 것 같았다. 냄새도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몇 달 동안 그는 꽃과 나무들이 내는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지내온 탓에 밀폐된 실내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신기했다. 아마 며칠만 지나면 그에게 익숙한 자연의 냄새가 다시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하나님께 안전한 여행을 하게 해주신 데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현관문 밑에는 마르코스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 저스틴은 불을 켜고 읽기 시작했다: “마르코스가 저스틴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하네. 여기로 최대한 빨리 와 보기를 바라오. 별다른 소식은 없으나 루푸스가 잡혀갔네. 새로운 작업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주교님이 우리를 보시길 원하네. 은혜와 평안이 충만하기를.”

    ‘루푸스가 잡혀갔다고? 그의 넘쳐나는 열정이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아마 높은 사람에게 조심하지 못하고 말을 잘못해서 잡혀간 것이 분명했다. 제발 이것이 새로운 박해의 시작이 아니기를!’ 저스틴은 너무 피곤해서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언덕 너머에 있는 마르코스의 집으로 달려갔다.

    “내 형제여, 진심으로 환영하네!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마르코스는 외쳤다. “안전하게 돌아와서 너무 좋네! 나는 자네의 여정에 대하여 듣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일단은 내 편지에 관해 설명해 주겠네.”

    “빨리해보게.” 저스틴은 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들은 마르코스의 탁자 앞에 앉아 포도주를 나누었다.

    “지난주 시장에서 루푸스와 발렌시아의 영지주의자(靈知主義者)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네. 그들은 에온과 플레로마 등에 대하여 말한 것 같던데 나는 잘 모르겠네. 어쨌든 나는 소란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가 보았지. 루푸스가 어떤 사람인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그는 절대로 그따위 가르침을 용납할 수 없었지. 끝내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네. 루푸스는 폭력을 쓰지도 않고 내가 보기에 욕도 하지 않았던 것 같던데 소문에 의하면 그가 난리를 일으킨 주범으로 몰렸지. 결국 그는 난리를 일으킨 죄로 잡혀갔고 연금되었네. 아마 얼마간 거기 있을 걸세. 마지막으로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네. 그 집의 누군가가 기독교인이라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 아마 그는 한 달 이내로 풀려날 것 같네.”

    “그들은 루푸스가 서기관이라는 것을 아는가?”

    “내 생각에는 그를 붙들어주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 또한 심문도 아직 받지 않았고. 그러나 주의해야 하긴 하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해야 하지. 내일 아마 볼 수 있겠지만 먼저 주교님께 가봐야 하네.”

    “그래, 그것에 대해서 좀 말해보게.” 저스틴은 기대감에 부풀려 있었다.

    마르코스는 하품을 했다. 그도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주교님은 자네를 매우 보고싶어 하시네. 자네가 갈리아에서 이레니우스와 함께한 시간과 자네의 여정에 대해서 듣길 원하시네. 그 이야기들은 나에게도 나중에 들려주게나. 하지만 먼저 그는 우리에게 주실 새로운 작업이 있네. 동방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여기 로마에 중요한 볼일이 있어 온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들었네. 그의 딸도 함께 왔는데, 그녀는 아주 훌륭한 마가복음서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네. 그녀가 사본을 원하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 부탁할 모양이네. 아마 맞을 걸세. 주교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지. 사실 나는 주교님을 대신하여 자네의 안부를 묻던 집사님에게서 이것을 들었네. 나는 자네가 도착하는 대로 말해주겠다고 하였지.”

“    음,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문서를 필사하고 싶다는 것이군.” 저스틴은 대답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데? 알렉산드리아는 전 세계의 서기관들이 모이는 곳인데. 이것 때문에 로마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주교님의 지시를 따라 일을 시작할걸세. 포도주 한 잔만 더 마시고 가봐야겠네. 나는 지금 겨우 움직일 정도로 피곤하다네.”

    “내일 오전쯤에 주교님을 뵈러 갈 계획이네. 그래서 오늘 최대한 푹 자도록 노력해 보게. 하여간 자네가 안전하게 다시 돌아온 것을 보게 돼서 주님께 너무 감사하네. 여정은 힘들었는가?”

    저스틴은 잠시 멍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말했다:

    “나는 사도들의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자주 떠올렸네. 이번에도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문서들을 지켜주셨네.”

    저스틴은 낯익은 마을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집에 도착한 그는 머리가 베개에 닿기도 전에 이미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