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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에 붙들려 산 사람(마태복음 3:1-12)
최영모 [beryoza]   2023-09-04 오전 12:41:54 56

사명에 붙들려 산 사람(마태복음 3:1-12)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여름 두 달 반 동안 연합으로 예배드리다가 오늘부터 다시 예배를 분리하여 10시에 예배드립니다. 지난 주일, ‘차이 피치’(차 마시기) 시간에 우리 교회에 그날 처음 나온 준서 형제의 말을 들으니 페테르고프에서 교회에 올 때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오는 길이 한 시간 걸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말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 일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먼 거리에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하는 기도를 드리는데, 이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오면서 걸리는 시간을 하나님은 헌신과 충성의 분량으로 받아주실 거라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30분 걸리는 사람은(저 같은 경우겠죠) 30분 헌신한 것이고,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사람은 한 시간 반을 헌신한 것이라는 의미죠. 주일 아침이면 늦잠이라도 자고 싶을 텐데, 그 마음을 억누르고 일찍 일어나 예배에 참여하는 여러분에게 하늘에서 오는 축복이 언제나 넘치기를 바랍니다.

 

연합예배에서 시작했던 마태복음을 계속 이어가려는데, 중간중간에 잠시 쉬고 다시 이어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실 마태복음은 단순한 기독교의 경전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읽어야 할 고전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많은 말들을 불신자들도 종종 인용할 정도인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면 비판하지 마라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외에도 마태복음의 많은 구절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용합니다. 한 책에서 이렇게 많은 인용을 할 정도라면 그 책은 우리가 신앙의 여부를 떠나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요한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그 일을 했다고 하여 이름 앞에 세례라는 단어를 넣어서 세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친척이기도 하고,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광야는 유대인들에게는 종교적인 의미로 많이 다가오는 곳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마치 계룡산이나 태백산 같은 이런 의미일까요? 계룡산은 종교박람회라고 할 정도로 여러 종교가 모인 곳이고, 태백산은 무당들이 목욕재계하고 충만하게 신내림을 받으려고 할 때 잘 가는 곳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도원이나 수도원이 약간 비슷한 의미가 되겠지요.

 

성경은 세례 요한이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어떤 사람들은 털코트는 비싼데 그런 옷을 입었군하는 거예요. 그러나 요한의 옷은 낙타 가죽옷이 아니라 낙타 털 옷입니다. 털 옷은 입기에 거칠고 불편합니다. 옷이 이렇게 부풀어 오르니까 가죽띠로 허리를 둘렀습니다. 그 당시에는 천으로 된 띠는 부자들이, 그리고 가죽띠는 가난한 사람들이 했다고 그래요. 지금과는 다르지요? 먹는 음식은 메뚜기와 야생 꿀이었는데, 메뚜기는 사막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곤충입니다. 야생 꿀은 진짜 꿀이 아니라 종려나무 열매가 돌 틈새로 떨어져서 생긴 그런 것입니다.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메뚜기와 야생 꿀이 주식이었다는 것은 건강식이 아니라 매우 검소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회개라는 단어를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회개하세요!”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십니까? 아마도 이런 생각 아닐까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내가 거짓말을 했나?, 주일 예배에 빠졌나?, 최 목사의 뒷담화를 깠는데 눈치챈 건가?’ 하는 등 이런저런 추측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하신 회개하라는 말은 조금 달라요. 목표가 저기 있으니 이렇게 가던 길을 바꾸어 저리로 가라 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을 오늘날 우리말로 한다면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요? 왜 바꾸어야 할까요?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를 경험하고 하늘나라를 소유하려면 지금 사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표현되고 있죠. 영어로는 sky(небо)heaven(небеса)으로 말합니다. 하늘나라라고 말하는 하늘은 구름이 있고, 새가 날아다니고, 비가 오는 그런 하늘(sky)가 아니라, 신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의 하늘(heaven)을 말합니다. 우리 이런 말 하지요. “네가 한 짓은 하늘이 다 알아.” 이 하늘은 sky가 아니라 heaven을 말합니다. “하늘이 노했다.” 할 때도 sky가 아니라 heaven을 말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나라라는 말은 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 신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따르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하늘나라가 이미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삶의 방향을 바꾸세요. 하나님의 다스림이 바로 옆에 와있습니다.’ 하는 말입니다. ‘회개하세요. 죽어서 천국에 가야죠그런 뜻이 아닙니다.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며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부근 사람들이 다 요한에게 나와서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나왔다고 하는 것은 좀 과장된 표현 같긴 한데, 하여간 많은 사람이 나온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구약 성경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 이후 400년간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서는 끝나면서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4:5)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 없이 침묵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책에서는 말라기서에서 한 장만 넘기면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이 나오지만, 역사에서는 400년이라는 기간이 지난 후입니다. 400년이라는 침묵의 긴 터널을 지나고 나니 요한이라는 예언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은 저 사람이야말로 말라기서에서 말한 예언자 엘리야가 돌아온 것이다하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나와서 회개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죄인의 대명사라고 여기는 세금징수원들, 그리고 몸을 파는 여자들이 요한에게 나와서 세례를 받습니다. 군인들도 나와서 세례를 받습니다. 심지어는 콧대 높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까지도 나와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제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인기스타가 되었어요. 방송에도 자주 나오지만, 유튜브에서도 인기가 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세례를 주는 것은 너희의 옛 삶을 바꾸어 천국의 삶을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오셔서 너희 안에 천국의 삶을, 너희 안에 불을, 너희 안에 성령을 발화시켜 너희를 완전히 바꾸어놓으실 것이다. 그분께 비하면 나는 잔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메시지 성경 마 3:11)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약한 자로 말하려고 하지 않아요. 서울의 어떤 헬스장에서는 문신이 있다면 긴 옷을 입어주세요,’라는 공지문을 붙였답니다. 작고 귀여운 문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겁을 주는 문신을 말하는데, 그걸 건달 문신이라고 한 대요. 그런 문신을 하면 자기가 잘난 사람이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교만해지는 거예요. 일이 잘 풀리거나 인기가 많아질 때도 교만해지기 쉬워요. 그러나 그렇게 교만하여 높이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만 툭 떨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잘나갈 때 늘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말아야지 생각해도 사탄은 늘 우리의 본성을 자극하면서 높아지라고, 잘난 체하라고 유혹합니다. 교만하지 않으려고 매일 다짐하고 기도해도 겸손하기가 어려운데, 기도하지 않으면서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은 크게 착각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교만의 자리에 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어요. 인기가 대단했지만, 예수님이 주인공이고, 자기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만한 자격도 없다고 했어요. 그 시대에 신발은 누가 들고 다니는지 아세요. 노예가 들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나는 예수님의 노예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초절정 인기남인 세례 요한이 교만하지 않고 난 그분의 노예만도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잊어버리면 쉽게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보통 사명과 소명을 혼동하기 쉬운데,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생명을 걸고 따르겠다고 하면서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명이란 소명 받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따라갈까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흔히 이 질문을 하면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로 반문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해야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일해야 할까로 묻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하고 젊은이들이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수입도 어느 정도 되어 남에게 베풀 정도가 된다면 그것은 큰 복입니다.

만일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분들이 지금 하는 일이 별로 맘에 안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는데.’ 하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여기고 그 일에 성실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어떻게 일하는지에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슨 일을 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대신 어떻게 일하라는 말은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빵 굽는 일을 하고 싶으면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회사원이 되고 싶으면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이며, 장사하고 싶으면 그 일을 하면 됩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가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 일을 그만두는 것이 최선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도 그냥 웨이터 일을 계속해도 됩니다.

대신에 빵 만드는 일을 하든지, 회사원이 되든지, 장사하든지,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하든지 그 일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고 다듬어져 가며 훈련되어 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관심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하는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니까 좋은 성적이 나오고 선생님이나 사람들이 칭찬합니다. 그럴 때 교만하지 않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는 거예요.’ 하면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성실하게 일하니까 사람들이 당신은 참 성실하군요.’ 하고 칭찬합니다. 그럴 때 우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성실한 거예요.’ 하고 말하면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고전 10:31)

무슨 일을 하든지 - 공부하든지, 장사하든지, 회사에 다니든지, 빵을 굽든지, 심지어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까지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때 여러분은 세례 요한처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하는 모든 일이 누구를 가리키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일하시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바르게 이해했기에 교만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그는 교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15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라고 했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드러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며, “, 대단하다. 큰 인물이야.” 하면서 칭찬해주시는 것입니다.

제 방의 벽시계가 언젠가부터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배터리의 문제인가 하고 새것으로 바꾸어도 여전히 느려요. 생각해보니 20년도 넘게 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계의 사명이 다 끝난 것으로 여기고는 내다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다면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명을 수행하지 않으면 쓸모없지만, 사명을 잘 감당해가는 이들에게 신앙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사명이 끝날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죽지 않도록 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오래 살까 하면서 궁리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까 하고 궁리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삶이겠지요.

 

사명을 영어로 miss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동시에 선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명과 선교가 한 단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명이 곧 선교이고, 선교가 곧 사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사야.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면서 살 거야하고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환한 미소가 햇살처럼 반짝거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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