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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세 반응(마태복음 2:1~12)
최영모 [beryoza]   2023-08-20 오후 8:20:49 96

예수님에 대한 세 반응(마태복음 2:1~12)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이 신약성경 제일 처음에 나오는 이유는 경전으로 수집할 때 첫째로 나와도 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예수도 유대인이고, 제자들도 대부분 유대인이기 때문에 특별히 유대교와 자신들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예수는 메시아라고 믿으면서 모임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도 그들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패거리들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차츰 유대교와 나누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기독교가 생기기 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그렇게 오래전에 기록된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할까요? 핸드폰도 2~3년만 지나면 낡은 것이라고 하는데, 2천 년 전의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읽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은 여전히 마태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과 또 하나는 세계 인구 1/3이 기독교인들인데, 그들이 믿는 기독교의 경전 처음에 나오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태복음을 잘 읽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여러분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약혼자인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요셉은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21)

예수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을 우리가 들으면 예수님 때문에 내가 용서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세기 유대인들은 다르게 그 말을 듣습니다. 예수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왕이 된다는 말로 듣습니다. 그런 이해를 하면서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세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1. 동방박사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이들을 동방박사라고 하는 이유는 동쪽에서 온 천문학연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온 것으로 추측합니다. 지금도 이란의 우르미아에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세웠다고 하는 동방박사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1,500년 전부터 전해오는,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한 통치 지팡이가 이스라엘에서 일어설 것이다.”(24:17)라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별이 나타나자 왕의 탄생을 확신하고 그 별을 따라서 유대 나라까지 먼 여행을 한 것입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될까 궁금하여 제가 지도에서 찾아보니 약 1,500km였어요. 당시에는 도로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고 길에서 만나는 강도들도 많아서 지금의 1,500km보다 훨씬 더 멀고 험한 길을 여행했을 것입니다. 왕을 경배할 수 있다는 마음,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귀한 선물들을 예수님에게 드립니다.

 

2. 헤롯왕이 보인 반응입니다.

유대 나라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은 왕이 태어났으니 당연히 왕궁으로 가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왕궁으로 가서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왕궁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떤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헤롯 왕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하면서 자기도 가서 아기에게 경배하겠다고 박사들을 따로 만나 말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아기를 죽이려고 그랬던 거예요.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이 자기에게 말하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것을 알고는 베들레헴의 어린 아기들을 죽인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렘브란트의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그림입니다(첨부화일 참조). 이 그림을 먼저 대각선으로 그어놓고 보면 두 장면이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여기에는 두 왕이 나오는데, 한 왕은 세상 나라의 왕 헤롯이고, 한 왕은 이제 막 태어난 하늘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언뜻 보면 헤롯 왕이 크게 보이지만, 그러나 빛은 아기 예수님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진정한 왕은 헤롯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의미지요.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은 무릎을 꿇고 예수님 옆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다고 자부하는 대제사장이나 종교학자들은 헤롯왕의 옆에 있습니다. 헤롯왕은 예수님을 보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너희들은 누구 편에 설 거냐, 세상의 왕인 나의 편에 서겠느냐, 아니면 아무런 힘도 없는 아기의 편에 서겠느냐?’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동방박사는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아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반응은 동방박사들이나 헤롯왕만이 아니라 또한 부류의 반응이 있습니다.

3. 대제사장, 종교학자들, 예루살렘 시민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헤롯이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는 놀라서 대제사장과 종교학자들에게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냐?”고 물었어요. 그들은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 미가가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들은 성경을 대단히 잘 알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메시아를 찾아온 것을 보면서도 대제사장이나 종교학자들은 메시아를 보려고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거리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불과 8km입니다. 메시아를 보겠다고 그 먼 거리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을 보면서 우리도 메시아를 보러 가자했다면 삶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믿음은 없었던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시골의 한 마을에 나이트클럽이 문을 열었어요. 그러자 마을의 많은 사람이 걱정합니다. 평화로운 마을에 나이트클럽이 생기면 젊은이들이 일은 하지 않고 술 마시고 놀기만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성스러운 교인들은 하나님, 이 나이트클럽을 불태워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마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벼락이 치면서 이 나이트클럽이 불에 타버렸어요. 나이트클럽의 주인은 교인들이 기도한 사실을 알고 교회가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면서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우리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도 때문에 나이트클럽이 불에 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하면서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재판관이 양쪽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죄를 지었든 간에 나이트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 데,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군요. 내가 보기에는 나이트클럽 주인의 믿음이 훨씬 훌륭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에 드리는 예배에 우리의 정성을 좀 더 담아봅시다.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만을 향한다는 마음으로 핸드폰도 꺼 놓고 예배의 순서 하나하나에 집중해 봅시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만 존중하고, 나를 경멸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삼상2:30)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에 설교할 때마다  저에게는 강단에 서는 맛이라고 할까요, 설교하면서 그 어떤 삶의 힘을 얻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편이다하고 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설교를 들으며 여러분이 변하지 않아도 계속 설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편이라고 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허락된 지금의 환경과 시간 안에는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 한가지는 나는 하나님 편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헤롯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그저 악세사리처럼 여긴 대제사장이나 종교학자나 예루살렘 시민도 아니라, 메시아를 만나려고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편이다라는 고백과 선포가 여러분의 삶 전반에 흘러넘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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