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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기다리는 이유 (이사야 61:1-3)
김우영 [ready4god]   2022-11-27 오후 7:29:22 122

20221127 - 368 주 예수여 은혜를

 

성탄을 기다리는 이유

 

이사야 61:1-3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여는 말

정철 작가의 머리를 9하라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만남의 광장엔 만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만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 ‘기다리다를 견디지 못하면 만나다도 없다. 만남의 광장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의 광장이다.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간섭을 간절히 기다리는 요즘, 이 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다리는 수고는 하지 않고 그저 만나주기만을 원하는 얄팍한 제 마음이 들킨 듯 뜨끔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은혜와 사랑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것임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첫 탄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올해도 우리 가운데 새롭게 성탄 하실 주님을 또 한 번 새로운 감격으로 체험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땅에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 모든 인류에게 그 은혜가 주어졌지만, 주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만 받게 됩니다. 즉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아무나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 전 4주간의 준비 기간인 이 대림절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중세 때부터 이 대림절 첫 주일에는 이사야 61장을 본문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61장은 선지자 이사야가 주님의 성탄을 중요한 유명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이사야 시대로부터 690년 후 실제 성탄 하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실 중요한 사역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함께 나누며 왜 주님의 성탄을 기다려야 하는지, 올해도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베푸실 은혜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푸는 말

1.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시기 때문에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목적은 바로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상한 마음은 이 땅에 인류가 살았던 모든 시대에 있었습니다. 그 상한 마음을 누군가는 위로하고 서로 보듬으며 살았겠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았고, 마음 상하는 일은 여전히 반복되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잘살고 있고, 건강해 보이지만, 누구나 상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낙담한 한 청년을 심방했는데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소리는 뻔해요. 그런데 점()을 보면 그게 맞든 맞지 않든 당장 답을 주니까 속이라도 후련하네요.’ 답답하고 컬컬한 마음에 치기 어린 답이었지만, 그 마음은 이해됐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신앙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 땅에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천국을 향해 가며 이 땅이 줄 수 없는 귀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귀한 은혜 중 하나가 바로 상한 마음을 싸매주시는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천공같은 똑 부러지는 답은 안주시겠지만, 누구에게도 쏟아내지 못하는 상한 마음을 하나님은 싸매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죽음에 두렵고 무너지는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과 하늘 보좌를 버리며 사랑해주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한 마음을 싸매시고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약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았던 계시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때에도 상한 마음을 싸매셨고,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의 상한 마음을 싸매주십니다.

이사야 1:6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 난 곳과 매 맞은 곳과 또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도 못하고, 싸매지도 못하고, 상처가 가라앉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한 데가 없습니다. 상처 난 곳, 매 맞은 곳,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우리는 멍든 가슴을 안고 살아갑니다. 한국의 모습 같아 보여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 상처는 사람의 말이나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위로와 소망으로만 해결 가능합니다. 성경은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이사야 시대의 일은 바로 오늘 우리의 실상이고 자화상입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코로나라는 엄청난 두려움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1단계가 코로나 블루로 두통, 소화불량, 무력증 불면증의 상태고 2단계로 코로나 레드로 우울한 감정이 폭발하면서 파괴적인 정서가 드러나는 상태입니다. 마지막 3단계로 코로나 블랙은 이 분노를 넘어 절망하는 자포자기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내가 제법 잘 버티고 이겨냈다라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잊게 하시고 견디고 버티며 싸매주신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구원한 것이 백신일까요? 백신을 맞을지라도 우린 혹시라도 재감염될 것인지에 대해 늘 두려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 믿을 때 그 어려움을 이겨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위로할 것은 백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직접 관계된 전쟁의 상황은 아니지만, 이 또한 우리를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겨낼 힘 역시 인간의 지혜와 술수가 아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입니다.

이사야 42:3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갈대는 유프라테스나 나일강 주위뿐만 아니라 요단강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입니다. 흐드러지게 많은 흔하디흔한 잡초에 불과합니다. 원문에 보면 상한 갈대(카네라추즈)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 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반쯤 부러진 잡초일 뿐입니다. 잡초 하나가 반쯤 꺾여 있다고 그 누가 마음 아파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그 잡초라면 어떨까요? 세상 그 누구도 겨우 잡초 하나가 반쯤 꺾여 있다고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코로나, 전쟁 등 피할 수 없는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와 가뜩이나 잡초 같은 삶이 부러졌습니다. 그런데 일어설 힘조차 없는 우리를 주님은 꺾지 않고 싸매주신다고 하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세상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약한 자, 상한 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소외시키고 왕따시키고 배제하고 도태시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는 우리를 어루만져주시고 싸매어 주시면 아무리 깊은 마음에 상처나 아픔도 반드시 치유될 줄 믿습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모두가 꼭 주님을 뵙고,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의 상처가 싸매어져 치료되고 고침 받아 더 밝고 건강한 마음, 더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내길 축복합니다.

 

2. 자유를 주시기 때문에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사람이 앗수르의 전쟁 포로로 잡혀가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로부터 690년이 지나 실제 주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는 로마 식민지로 온갖 수탈과 억압을 다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메시아가 오시면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신다는 이 메시지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됐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종도 아니고 노예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내가 정말 자유인인가, 더 이상 그 어떤 것의 종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선뜻 대답할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중 과연 몇이나 돈으로부터, 명예로부터, 권력으로부터, 탐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중 과연 몇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온갖 걱정과 염려로부터, 악습으로부터, 옛사람으로부터, 옛 습성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또 지금, 이 순간 우리 중에도 질병에 포로가 되어 고통 중에 계신 분들 여전히 있습니다.

문제를 아이가 혼자 고민하면 아이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의논하면 그것은 아버지의 문제가 됩니다. 무엇에 매여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에 스스로 매여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자유롭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면 그 문제를 주께 가지고 나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개역한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어릴 적 교회 부흥회 오신 목사님의 설교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염려를 잠시 맡기고 이자 붙어 찾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맡겨 버려라!’ 맡기기만 할 뿐 도로 찾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문제가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위해 오신 주님께 기도하면 더 이상 우리의 문제가 되지 않고 주님이 해결하실 문제가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탄생하신 주님을 기억하여 우리 삶에 참된 자유를 만끽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3, 위로해 주시기 때문에

:2-3a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슬픈 존재입니다. 다들 기쁨 속에서, 보람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못합니다. 늘 눈물이고 한숨이죠. 정말 단 하루도, 단 한순간도 근심 없이, 슬픔 없이,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흔히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는 왜 나에게?” 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이 임할 때는 왜 나에게?”라는 감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우리의 성품이 우리를 위로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왜 이런 나에게?’라고 질문할 수 있다면 슬픔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이 시간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이 여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말씀처럼 기쁨의 관을 씌게 될 것이고, 괴로운 마음에 찬송이 가득한 감동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한국에 부쩍 늘어난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특수청소부 즉 유품정리사입니다. 2020년 통계를 보니 우울감과 자기 비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의 수가 추정치로만 만이 천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2018, 19년에 비해 두 배가 늘어난 수치이고, 2~30대가 상대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극단적 선택하는 이들도 많이 지지만,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고독사하는 수도 많아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우리는 그런 극단적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옆에 있어도 때로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증오하며 대화마저 잘라버리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으려 하면 할수록 우린 더 고독하고 거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로해 주고 품어줄 수 있을까요? 바로 여러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오시면 나의 그 모든 슬픔을 위로하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괴로운 마음이 찬송으로 채워진다고 말씀합니다.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만나면 누구나 근심 대신 찬송을 하고, 슬픔 대신 기쁨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부끄럽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5: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개정)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탄에 은총을 베푸시면 우리도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고 분명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전쟁으로 고통받고 아파한 만큼 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슬퍼한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런 중에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놓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 성숙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귀한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며칠 전 일 때문에 시내에 나갔는데 넵스키에 장식이 멋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상황 때문인지 기쁘고 좋은데 마구 좋아하지 못하는 제 마음을 보게 됐습니다. 추위 속에서도 즐거워 보이는 인파들, 화려한 장식들을 보며 이 계절은 변함없이 다시 오는데 다만 변한 것은 이 장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視線)이구나.’라는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변함없이 성실하게 흐르는데 다만 변한 것이라곤 우리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하루빨리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와 일상이 회복되길 소망하게 됐습니다.

만약 이 땅에 코로나도 전쟁도 없다면 행복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문제를 다룰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무지개를 보고 싶다면 비바람을 견딜 준비를 해야 하듯, 어려움과 두려움에 위축되지 마시고 우리 안에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한 마음을 싸매주시고, 자유를 주시며,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확인하는 복된 대림절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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