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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한 분노 (민수기 20:6-13)
김우영 [ready4god]   2022-11-13 오후 8:05:52 121

20221113 - 251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하나님을 위한 분노

 

민수기 20:6-13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여는 말

스티브 도나휴가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막을 건너다보면 어느 날 또는 어떤 단계에서 어떤 특정한 규칙이 다른 규칙들보다 더 중요해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첫 번째 규칙은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이다.”

많은 탐험가들의 말에 의하면 사막에서 지도는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강한 모래 폭풍이 한번 불면 모든 지형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지도보다는 나침반이 우선입니다. 이 세상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와 전쟁 같은 고난의 폭풍이 한 번 불고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선 세워놓은 모든 계획과 삶의 내비게이션은 허망해져 버립니다. 이때 우리의 삶에는 심혈을 기울여 세워놓은 계획들보다 변하지 않는 나침반 같은 진리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맹신하고 배를 이끄는 무모한 선장보다는 비록 초짜일지라도 변하지 않는 북극성을 보며 인생의 배를 묵묵히 저어야 하는 단순함이 더 필요합니다.

저는 분노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요즘 우리는 자신들의 계획과 상관없이 우리를 격동 시키는 환경에 쉽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가야 할까요? 지금 우리는 사람의 경험과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해석하고 그 말씀에 잇대어 살아가야 하는 지혜와 열심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오늘은 모세를 통해 우리는 세상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며, 거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씀을 살피며 은혜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푸는 말

모세에 대한 유명한 평가가 있습니다. 12:3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 (개정)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가 금수저로 자라며 이집트의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은 동의하지만, 혈기를 부리며 사람까지 죽인 모세에 대해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평가가 맞는 것일까요? 살인은 저지른 후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를 떠돌며 남의 양을 대신 키워주며 험하게 지내던 모세, 이드로를 만나 그의 사위가 되었지만, 사람을 죽였던 그의 혈기까지 누그러졌을까요? (제 경우를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이가 들며 겁이 좀 많이 졌지만, 혈기는 여전합니다.)

출애굽기 3-4장을 보면 하나님은 거룩한 산 호렙으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명령을 세 번이나 거절합니다. 만약 저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면 겁에 질려서라도 거절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이 맞다고 여기는 것에선 굽힘 없어 당당하게 말하며, 할 수 없다고 세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1)바로가 자신과 그 말을 믿어줄리 없다고 합니다.(4:1) 2)자기는 말재주가 없어서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4:10) 3)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란다며 거절했습니다.(4:13) 이렇게까지 거절할 정도로 모세는 자기 의견이 뚜렸했습니다. 물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골목 대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하나님의 명령 앞에 싫다고 말할 정도면 그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모세는 고집도 많고 마음 가운데 분노를 한 가득 안고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20:1에 첫째 달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집트를 탈출한지 40년이 되던 해의 첫째 달을 의미합니다. 40년간 사막을 돌아다녔지만, 물이 없다는 것은 사막생활에 적응해가던 그들에게도 여전히 힘겹고 어려워 투덜거리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20:5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소?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되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

여전히 불평하던 백성들도 그리고, 이런 불평을 40년간 들었을 모세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지팡이를 잡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바위에게 명령하면 바위 밖으로 물이 흘러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8) 그런데 이후 모세의 답에는 분노와 답답함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10(공동) 모세는 아론과 함께 그 바위 앞에 회중을 불러 모아놓고 외쳤다. "반역자들아, 들어라. 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주랴?"

끊임없는 불평과 요청에 모세가 분노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분노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모세와 아론에게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본문을 읽으며 어리석은 백성을 향한 모세의 분노가 과연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신뢰하지 못한 것일까? 하나님은 과연 공정하신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당연히 화낼 만 한 일인데 하나님은 왜 그 분노를 받아주지 않으셨을까요?

모세는 이전에 본문에 나오는 분노보다 더 큰 분노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설교한 본문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부추겨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신이라고 하며 절을 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모세는 금송아지를 돌며 춤을 추는 그들을 보고 화를 내며 하나님께 받은 두 돌판을 던져 깨버렸습니다. 이 일로 결국 이스라엘 백성 중 삼천 명 정도가 죽었습니다.(32:28)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에 대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이 상황에 대해선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온유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당연히 화낼 수 있는 상황에서 구제불능처럼 보인 백성을 보며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낸 것이 훨씬 잘한 일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약속한 땅에도 못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이처럼 우리 주변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 때가 바로 경험과 지혜를 녹여 만든 지도가 아닌 나침반이 필요한 때입니다.

 

1. 하나님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

누구를 위하여 분노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분노의 동기를 보십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윗을 잘 압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옵니다.

삼상 17:8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전선을 마주 보고 고함을 질렀다. "너희는 어쩌자고 나와서 전열을 갖추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고, 너희는 사울의 종들이 아니냐? 너희는 내 앞에 나설 만한 사람을 하나 뽑아서 나에게 보내어라.

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놀라서 떨기만 하였다.

17:16 그 블레셋 사람은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나아와서, 계속 싸움을 걸어 왔고, 그런 지가 벌써 사십 일이나 되었다.

17: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다윗은 화를 내며 혈기를 부리는 격한 사람이 아니라 수금타며 노래 부를 만큼 감성이 뛰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러 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보며 분노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에 군말하지 않고 전쟁터까지 순종하며 오긴 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솜털같은 마음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때문에 분노했던 것입니다.

구약의 다윗만큼 신약의 바울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의 성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 바울이 있었습니다.

7:58-60, 8:1a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피를 보는 일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바뀐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우상이 가득한 아테네 광장에서 그리스 사람들과 격하게 토론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죽임도 서슴지 않았던 바울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자신이 믿는 것, 즉 하나님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분노해야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는 쉽게 분노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게 일컬어지고, 하나님의 가치와 우리의 필요가 부딪힐 때 철저하게 눈감는 비겁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울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하나님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입니다.

 

2. 마땅히 분노할 때가 있다.

분노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중요한 건축자재입니다. 예수님도 분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성전 뜰에서 돈을 바꿔 거짓된 제물을 파는 상인들의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장소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장사하는 이들에게 분노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위해 분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건물이 없어서도, 사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분노하지 않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개독교라는 말이 너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처음 들을 땐 충격이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지나갈 정도로 무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교회를 멸시하는 것에 너무 침묵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청년시기에 기독인구가 천만 명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반토막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내 유익을 위해서만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유익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하게 되면 판을 엎고 악을 쓰며 대들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훼손될 때는 너무도 태평하고 남의 일 보는 것같이 고요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우린 분노해야 합니다.

이곳 러시아에서도 우린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 말씀에 집중하는 것, 기도와 QT로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이 방해될 때 우린 분노해야 합니다. 화를 마구 내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마음을 갖고 돌이키려는 거룩한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침묵하게 되면 우리 역시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면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26살 전도사때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인도네시아에 가려고 했지만, 교회 사정으로 속초로 다녀오게 됐습니다. 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소풍하듯 다녀온 후 영등포에서 대전으로 기차를 타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중년의 남자가 제 아내를 보고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때 시쳇말로 꼭지가 돌았습니다. 그 아저씨한테 사납게 대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가씨가 아니라 남편이 있는 사람이라고 거침없이 대들었습니다. 한참 실랑이를 하며 기차에 탔는데 공교롭게 같은 칸에 타고 또 대전에 같이 내리게 되어 1시간 남짓 되는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면 분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가, 사람이, 자녀가, 성도가 괴로울 때 내 마음이 편하다면 우리가 구경꾼임을 증명할 뿐입니다. 분노해야 할 때 마땅히 분노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 때문에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을 지금 이 시대에도 찾고 계십니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앞에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혹 나의 혈기와 분노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한 부담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안에 넘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온유란 단어는 원어로 프라우스(praus)’인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분별, 2)통제 3)복종입니다. 화를 낼 수 있지만, 분별하고, 화를 다스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분별된 분노, 하나님의 뜻에 통제된 분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분노 역시 온유라고 생각됩니다. 나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먼저 분별하고 통제되며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용하시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될 줄 믿습니다.

이후 함께 부를 찬송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허물을 덮고 그 보혈은 지금도 우리의 죄를 위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랬듯이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을 위한 분노가 되길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분노가 사라지기를 기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분노가 바뀌기를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흐르는 그 피에 우리가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분노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크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다른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분노해야 합니다. 나의 지도가 맞지 않다고 분노하지 마시고 나침반을 통해 우리의 나아갈 바를 확인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과 같은 한결같은 보폭으로 평생 걷게 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P : 121.143.11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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