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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신 자는 인도하신다 (창세기 45:1-8)
김우영 [ready4god]   2022-10-23 오후 5:38:28 170

20221023 - 375 나는 갈 길 모르니 

 

부르신 자는 인도하신다

 

창세기 45:1-8

:5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여는 말

저는 고3이던 91년 생일에 세례문답을 받고 다음날인 47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가족 중 첫 번째 예수를 믿고 받은 세례였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아버지이자 목사님은 저에게 말씀(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을 하나 주시면서 요셉과 같이 무성하게 자라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집에 어려움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연단하시는 과정이었을 것이라 좋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겠지만, 3, 대학교 1학년 올라갈 즈음,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참 방황하던 때 청년부에서 같이 신앙 생활하던 이관주(?)라는 형이 제게 책을 한권 선물했습니다. 그 책 제목은 오늘 설교 제목인 부르신 자는 인도하신다였습니다. 그 책을 받으면서 밥이나 한 끼 사지 무슨 책이야하는 투정이 들 정도로 그땐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이사를 할 동안 꼭 챙겼습니다. 이상하게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그 책의 제목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세례문답을 하며 받았던 그 말씀이 떠오르며 목사님이 그냥 하신 말씀일까?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실까? 하나님은 내 인생을 인도하실까?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실까? 이런 내 꼴을 보고도 왜 가만히 계시는 걸까? 이런 질문하며 어설픈 청년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요즘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 책 제목과 요셉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요셉처럼 한과 사연이 많고, 응어리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요셉을 그때 목사님은 왜 닮아가라고 하셨을까?

다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순간엔 바보 천치같이 당하고만 사는 게 하나님의 뜻인가? 무기력하게 당하는게 바른 삶인가 의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있진 않습니까? 때로 마주하는 분노의 상황에서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셉과 같이 살아가라고 말씀하실까요? 과연 그의 삶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본문을 살피며 은혜 나눠보고자 합니다.

 

푸는 말

요셉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요셉의 어머니 라헬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요셉에 관한 이야기는 37장부터 시작입니다. 37:3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이스라엘 즉 야곱이 늘그막에 낳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늦둥이를 낳아보진 않았지만, 무척 예쁘다고 합니다. 외삼촌 라반의 딸 중 둘째 라헬을 더 사랑해서 무려 14년간 종처럼 일하고 얻었던 아내에게, 늘그막 아이를 얻었으니 얼마나 예뻤겠습니까? 그런데 과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야곱의 편애는 요셉의 형제들에게 질투심을 갖게 했습니다. 화려한 옷, 채색 옷이 뭘 말하겠습니까? 형들에게는 시장표 나이스를 신기고, 요셉에게만 나이키를 신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막내 동생이 네 살 터울인데 아버지가 무척 예뻐해서 질투났던 것을 생각하면 요셉 형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심지어 꿈을 꿨는데 하늘의 해와 별들이 자신에게 절한다고 하고,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했다고 하니 부글부글 끓던 형들의 마음에 기름을 부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미움을 차곡차곡 쌓게 되며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요셉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넷째 형 유다의 만류로 죽이지는 않고 구덩이에 빠뜨렸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이후 미디안 상인들은 요셉을 이집트의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이것으로 그의 불행은 그치지 않았지만, 보디발은 성실하던 요셉을 보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39:2a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하나님은 요셉의 일이 잘 풀리도록 그를 돌보셨지만, 여전히 그는 노예였습니다. 보디발의 신뢰를 얻었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요청을 거부한 죄로 요셉은 감옥에 오랜 시간 갇혀 지내게 됐습니다. 바로의 술 맡은 간수장을 도왔지만, 여전히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41:1a 그로부터 만 이 년이 지나서 그로부터는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다시 관직에 복귀하고 나서입니다. 감옥을 나간 뒤 무려 두 해나 그는 입을 싹 닦고 있었습니다. 은혜를 베풀었지만, 까맣게 잊었던 그 사람에 대한 분노는 오죽했을까요? 저라면 제 명을 다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엔 요셉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요셉이 진짜 화를 내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진짜 바보천치였을 겁니다. 분노는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죠. 화내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했을까요?

 

1.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라

요셉만큼 실패와 좌절을 많이 겪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형들에게서, 보디발, 그리고 술 맡은 관리 등등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순간을 보내며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4:26-27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화는 죄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화를 낼 수 있지만, 모두 다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나는 것은 죄를 많이 지을 수 있는 상태일 수는 있지만, 모든 화가 죄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도 화가 많이 났을 겁니다. 당연히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 화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도록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자신의 화를 통해 악한 일을 도모하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화나는 일을 계속 묵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여러분 외로운 늑대라는 말을 아시나요? 전문 테러 단체 조직원이 아닌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이르는 말인데 이들은 특정 조직이나 이념이 아니라 정부나 사회에 대한 개인적 반감을 이유로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얼마 전 98일 저녁 6시쯤 독일 바이에른주 안스바흐 기차역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흉기를 휘둘러 행인 2명이 다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분노를 해소하지 못해 생긴 일입니다. 이런 류의 범죄를 외로운 늑대형 테러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화를 다스리지 못해 사탄에게 틈을 주고 결국 죄에 이르는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요셉처럼 우리도 화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게 되면 우리는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혜롭게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2. 현실을 수용하라

성경은 요셉의 마음상태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분명 요셉은 분노가 죄로 치닫지 않도록 붙들 수 있는 영적 실력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어떻게 화를 쌓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을 노여운 상황을 묵상하는 대신 현실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개그우면 이국주 식탐송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비면 두 그릇이네’ ‘라면에 김치가 없어도 먹지요 등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라면을 먹는데 김치가 없으면 좌절합니다. 쉽게 분노할 상황이 아닌데도 금새 끓어오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김치가 없어 화를 내지만, 현실을 수용하고 눈앞에 라면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린 화가 죄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기쁨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싸울 때 동기보다 태도 때문에 다툼이 더 크게 번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상한 마음으로 다투기 시작하지만, 한참 싸우고 나서는 왜 싸웠는지 모르고, 높아진 말투, 무시하는 표정과 몸짓에 더 크게 화가 납니다. 분노를 자가발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현실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요셉도 물론 화가 나는 상황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셉이 이 상황에서 화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수용해 화가 죄로 변하는 것을 막았다고 생각합니다. 분노하는 대신 이집트에서 배우기로 작정하지 않았을까요? 아버지의 집과 다른 환경입니다. 이집트의 현실을 인정하고 언어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들의 관습과 문화를 익혀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보디발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했는지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자신의 재산을 요셉에게 맡긴 것입니다.

이후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서 무려 두 해가 넘도록 있었지만, 요셉은 그 안에서 한탄하고 원망하기보다 현실을 수용해서 그 곳에 온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갔습니다.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상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요셉은 그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나 분별하며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의 분노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41:51 요셉은 하나님이 나의 온갖 고난과 아버지 집 생각을 다 잊어버리게 하셨다 하면서 맏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다.

요셉은 총리가 되고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의 사이에서 므낫세(잊다)라는 아들을 낳으며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고향에 대한 원망을 잊게 하셨다.’ 라고 고백합니다. 고난과 형들의 악행에 치를 떨면서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심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분노하게 하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다시 은혜 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생과 고난을 부흥과 극복의 은혜로 받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우리의 분노를 죄가 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4-5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요셉은 화를 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정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상황에 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으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이곳에 보내셨다고 고백하며 분노를 저주로 갚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일처리 하는 사람이 냉혈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뜨거운 마음을 갖되 화가 죄로 치닫지 않게 하고,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도록 변하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만 가능합니다. 이런 귀한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길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라

:5b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총리가 된 요셉은 충분히 우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가장 힘든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떠올렸던 요셉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경험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요셉은 화를 못내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연단된 사람입니다.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배운 사람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삶을 살려면 끊임없이 말씀에 자신을 비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이미 배우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지식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지식과 돈이 우리를 편리하게 할 수 있어도 평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특별한 달란트, 지식, 경험이 우리를 우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구원 얻게 하며 환란 중에도 일어설 용기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식이 없으면 불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삶에 유익은 끼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르신 자는 인도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힘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을 때 이 책을 던져 놓고 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집에서 쫓겨나가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 나를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로, 그리고 남들과 다른 출발선이 아닌 맨 밑바닥부터 올라오게 한다는 섭섭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모든 것을 깨달은 상태는 아니지만, 부르신 자는 인도하신다는 말에 동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조금 더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성공의 길로, 행복의 길로, 기쁨과 안전의 길로 인도해주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공만, 행복만, 기쁨과 안전하게만 이끄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것만 주셔야 한다고 믿는다면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리는 겻입니다. 저는 하나님이라는 자판기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모두의 아버지 십니다.

 

닫는 말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분노를 용서로 바꿉니다. 우리가 어느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실패에서도, 불행에서도, 슬픔과 낙담의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줄 믿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든지 분노를 갖고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건드리면 화가 툭하고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요셉처럼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면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요셉과 같을 순 없겠지만, 나름 힘겹게 살아갑니다. 여러분, 화가 죄로 변하지 않도록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현실을 배우고 이겨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섭리를 인정하십시오. 분노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분노는 더 집요하게 나를 좇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분노보다 더 중요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면 내 분노는 점점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부르신 이를 기억하여 그 은혜 가운데 거하십시오. 우리들은 주님이 부르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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