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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쌓아두지 마라 (창세기 16:1-6)
김우영 [ready4god]   2022-10-16 오후 5:39:45 156

20221016 -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분노를 쌓아두지 마라

 

창세기 16:1-6

:6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여는 말

드라마나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갈등입니다. 평이한 삶을 묘사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다큐입니다. 다큐는 단조로워 가끔 졸립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볼 재미와 함께 긴장시키는 묘한 매력 덕에 시리즈 하나를 한 번에 볼 정도입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를 이끄는 남자들의 갈등은 많지 않습니다. 반면, 여성들의 긴장과 갈등이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히 큽니다. 개인적인 견해인데 남자는 겨우 먼지로 지음 받은 단순한 존재지만, 여자는 장인의 본차이나처럼 하나님께서 아주 섬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도 보면 많은 갈등이 나옵니다. 그 중에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한 가족의 갈등이 나와 있는데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어쩌면 한 편의 막장 드라마처럼 여러 갈등이 얽혀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현재 우리 안에 있는 분노가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푸는 말

누구나 살아가며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태어나자마자 병실에 누운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등장인물인 아브람과 사래, 그리고 하갈은 우리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성정(性情)을 지닌 사람입니다. ,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1. 사라의 분노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1절을 보면 앞으로 전개될 갈등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등을 이끌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사래와 하갈입니다. 우선 사래는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아내입니다. 아브람은 원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했던 이라크와 쿠웨이트 접경인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현재 시리아 북부지역인 하란으로 옮겨와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사래를 아내로 맞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가나안에 정착했는데 마침 기근이 들어서 사래는 아브람과 더불어 다시 이집트 땅으로 먹을 것을 찾아 옮겨갔습니다.

사래는 매우 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12:11) 그런데 그의 미모에 이집트의 바로는 사래의 매력에 빠져 탐을 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인 아브람은 오히려 누이라고 속여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겨우 이집트에서 벗어나왔지만, 사래의 마음에는 점점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진 않지만, 사라의 마음을 한번 상상해 봤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하란에서 잘 살고 있던 자신을 꾀어 전혀 알지 못하던 가나안으로 데리고 갑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자고 해서 비옥한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기근으로 모든 식물이 타 들어가는 저주의 땅을 보며 사라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후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피해 갔는데 남편이란 자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누이라 속이고 외간남자에게 넘겨질 뻔 했습니다. 만약 우리라면 참을 수 있었을까요? 이것만으로 넘치는 이혼사유입니다. 하지만 사래는 더 큰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꾹 참았습니다. 사래가 화를 내지 못해서 참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래의 마음은 점점 더 병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래에게 더욱 큰 염려가 있었으니 1절에 기록된 대로 자식까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래의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세 번이나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12장에 보면 하란에 있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람의 나이는 75, 사라는 65세였습니다.(물론 지금의 생체학적 나이와는 조금 차이가 나겠지만, 자녀를 낳기엔 조금 늦은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13장에 보면 아브람이 조카 롯과 헤어져 헤브론으로 옮길 때 자손을 먼지와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3:16) 그리고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은 이후 상속자를 물으시는데 자신은 자식이 없어 상속자가 없다고 하니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태어날 아들이 상속자가 되며 하늘의 별처럼 많이 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그것을 믿으니 하나님이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6)

성경에는 이 때 사래가 등장하진 않지만, 사래 역시 아브람과 함께 약속을 듣고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의 원하던 때에 응답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10년이 지나 16장을 시작하면서까지 그 섭섭함과 갈등의 뿌리는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변변찮고, 하나님의 약속도 바로 응답이 되지 않고, 잊었는지 모른 채 한 것인지, 대답없는 하나님을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를 살펴보십시오. 함께 있는 배우자도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한 결정이니 내가 안고 가겠다.’며 화를 참았지만, 하나님의 침묵만큼은 너무 가혹하고 참기 어려워하지 않았습니까?

사래가 처음부터 분노가 많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브람과 함께 하나님을 믿고 쫓았기에 긴 기간 남편과 함께 있었고 또 이집트까지 다녀올 정도로 순종적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긴 여정 가운데 분노를 계속 쌓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중에 처음부터 강퍅하고 심술궂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쌓여진 분노를 해소하지 않고 차곡차곡 저축해 놓았기 때문에 결국 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래의 이런 분노 위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그녀는 더욱 큰 상실감과 자격지심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하갈의 분노

하갈 또한 할 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가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부터 함께 했던 사래의 여종이었습니다.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하갈은 이집트에서부터 10년 간 아브람의 가정과 어려움을 함께 했고, 긴 시간 미운 정, 고운 정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습니다. 하갈은 자신의 주인인 사래의 명령으로 아브람과 동침하여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그런데 사래는 오히려 하갈을 학대했습니다. :6b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어릴 때 이 말씀을 읽을 땐 하갈이 아주 못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깔보다는 단어는 원어의 의미로는 가볍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개정에는 멸시하다라고 나오는데 우리말로 우습게 여겼다는 의미일겁니다. 그런데 하갈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갈이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바로 사래를 멸시했을까요? 비록 사래의 명이었지만, 아이를 잉태한 하갈도 기쁘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잉태하는 기쁨을 알지는 못하지만, 생명이 주는 신비는 어떤 기쁨보다 클 것입니다. 동거동락하며 고생했던 하갈이 나눴던 정을 무시한 채 임신했다는 것만으로 사래를 무시했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녀도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갈의 그 웃음이 사래가 보기엔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우린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시험을 죽 쒔는데, 옆에서 시험 100점 맞았다고 자랑하고 막 웃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시험 잘 봤다고 떡볶이를 사주는데 그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물론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겠죠^^) 왠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고, 시험 망친 나를 조롱하는 느낌을 받진 않았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사래의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보니 하갈의 웃음과 기쁨이 자신을 조롱하며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오해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래의 입장에서 화를 낼 때도 있었고, 하갈의 입장에서 어의없는 경우를 당할 때도 많습니다. 조금 크게 이야기하면 화낸다고, 작게 이야기 하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도,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의 뜻을 해석하고 오해하며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보통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하고 지냈습니까? 세상에 너 뿐이냐 하며 관계를 정리하거나, 혹은 다시 꾹 참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면 이슬람과 기독교(이스마엘과 이삭)의 대립처럼 엄청난 결과를 만듭니다.


3. 갈등의 해결

분노의 상황을 해결하는 사람은 같이 흥분하는 사람이 아니라, 차분하게 그 상황을 살피는 중재자가 있을 때 비로소 해결됩니다. 우리의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온도를 낮추고 그 분노의 자국을 쫓다 보면 문제의 뿌리를 발견해 고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사래의 원망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단순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해 놓으시고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셨다고 오해하며 섭섭함을 키워갔던 것입니다. 더 이상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궁리를 하기 시작하며 갈등이 생겼고, 드디어 사래는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래의 분노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는데서 시작됐습니다. 우리 삶에 시련 중 상당수는 우리가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내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약속도 우리의 필요시기를 기준으로 선정해 버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성경이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활자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삼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억울함만 간직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만 키울 분입니다. 65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90세에 아이를 얻기까지 무려 25년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엔 무척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기엔 이것 또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후 17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이 할례를 받은 후 이름을 아브라함 즉, 존귀한 아버지에서 많은 사람의 아버지로 바꿔주시고, 사래는 사라는 나의 공주라는 이름에서 모든 이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고단한 훈련의 기간 분노를 계속 쌓아두기만 했던 사라는 이후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한 그 순간에도 한 번 더 폭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왜냐면 사라는 127세에 죽고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는데, 보통 남성의 수명보다 여성이 긴 것을 생각하면 사라가 속칭 화병을 잘 다스리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라가 만약 자신의 분노를 건강하게 하나님께 내놓고 풀어갔다면 이와는 다른 결말을 보지 않았을까요? 물론 가정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분노를 해소하지 못할 때 겪는 피해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면 우리에겐 보다 선한 미래가 다가올 줄 믿습니다.

 2) 하나님께 쏟아놓으라

성경에 보면 화내지 말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이지만, 더디 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더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판단의 기준을 바꾸면 됩니다. 내가 기준이 되면 버럭 격한 말이 쏟아놓을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 혹 내게 주신 말씀에 잇대어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그 분노를 더디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몽골의 절대자 징기스칸은 매사냥을 즐기고 항상 자신의 어깨에 앉아있는 매를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바위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려고 할 때 매가 갑자기 날아와 잔을 엎질렀습니다. 물을 마시려고만 하면 계속 물을 엎질렀습니다. 그래서 매우 화가 나던 차에 세 번째로 물을 마시려는데 매가 또 물을 엎질렀습니다. 참지 못한 징기스칸은 칼로 매를 죽였습니다. 이제는 흐르던 물줄기마저 끊겨 바위 위로 올라가 보니 물속에 큰 독사 한 마리가 내장이 터져 죽어있었습니다. 매가 징기스칸을 살리려고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징기스칸은 슬퍼하며 매를 금 동상으로 만들어 한쪽 날개에 "분개하여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라고 썼고, 다른 쪽 날개에는 "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벗은 벗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분노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면 결국 후회 밖에 남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기분에 따라 우리의 삶의 태도가 정해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세상의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를 화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며 분노가 죄로 치닫지 않도록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우리의 상한 마음을 주님께 쏟아 분노로부터 멀어지게 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누구나 욱하는 상황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누구는 화를 내며 기분을 표출하고 누군가는 그 상황을 여유롭게 넘깁니다. 어디에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화를 내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 순간 잠시 하나님의 마음과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이제까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며, 늘 최선의 것을 준비해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분노를 조금은 더디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드로후서 3:9a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은 분명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며,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분노하며 우리의 마음만 키워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잠시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가 더딘 것은 아닌지 의심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때에 최선의 것을 주셨던 우리의 아버지 십니다. 말씀 이후에 부를 찬송은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452)입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분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우리를 휘감고 있는 분노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노를 쌓지 마시고 주께 던질 수 있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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