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예배와찬양 > 한인예배/설교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다니엘서 6:1-10)
최영모 [beryoza]   2022-10-02 오후 9:17:36 141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다니엘서 6:1-1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다음 유머에 나오는 두 기도 중에 누구의 기도가 응답 될 것 같습니까? 한 목사님이 숲속에서 호랑이를 만났어요. 목사님은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도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요. 목사님과 호랑이 중에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셨을까요?

정답은 호랑이가 목사님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하나님께서 호랑이의 기도를 들어주신 이유는 무엇을 요구하는 청원기도보다 감사기도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아무리 큰 복을 받았어도 감사하지 않으면 진정한 복이 되지 않습니다.

 

감사에는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누릴 때 하는 감사입니다. 집이 없어서 세를 살고 있다가 자기 집을 가지게 될 때 감사합니다. 배가 매우 고팠는데,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때 감사합니다. 큰 병에 걸렸는데, 낫게 되었을 때 감사합니다. 대우가 좋은 직장에 취직할 때도 감사합니다.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되던 무렵, 3월로 기억합니다. 예배 마치고 식당에서 차를 마시면서 제가 러시아 할머니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그러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더 힘든 시절도 지냈던 사람들이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독일이 900일을 이 도시를 포위하던 때나 전쟁을 겪은 분들에게는 지금 이 상황은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을 감사하고 지금을 행복하게 여기는 거예요.

상대적인 감사도 매우 소중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그러나 상대적인 감사는 그 이유가 사라지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얻었기에 감사한다면 잃었을 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배가 부르기에 감사한다면 배고플 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부유했기에 감사한다면 가난해지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되어 감사하다면 건강을 잃을 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도 감사입니다. 자녀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자녀가 부모의 수고를 알아준 것 같아서 참 기쁩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며, 우리를 자녀로 삼아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은 잘 될 때와 잘되지 않을 때를 모두 의미합니다.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를 모두 의미합니다. 건강할 때와 아플 때를 모두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감사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감사를 하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절대적인 감사를 우리에게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고 많은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은 그때 청년이었는데, 끌려간 포로 가운데 한 명이었어요. 노예로 끌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깊은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은 성실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포로로 끌려갔지만, 다니엘은 총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바벨론이 멸망한 후 페르시아 시대가 되었는데, 다니엘은 페르시아 시대에도 총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페르시아 시대의 일입니다.

왕은 큰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지방 장관 120명을 세우고, 그 지방 장관들을 다스리도록 총리 세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다른 총리나 지방장관들보다 더 지혜롭고 우수하거든요. 그래서 다니엘을 다른 총리들보다 더 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다른 총리들이나 지방장관들이 다니엘을 시기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서 무슨 실수나 허물을 찾아내려고 모든 정보망을 동원했어요. 그러나 국정원이 동원되고 인사청문회까지 다 한다고 하더라도 다니엘의 약점이나 실책을 잡아낼 수 없었어요. 다니엘이 워낙 결백하고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다니엘의 잘못을 잡으려고 했어요.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다리우스 왕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려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이나 인간에게 기도를 올려서는 안된다. 이를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이다.’

그들은 다니엘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렇게 되면 다니엘을 사형에 처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한 다리우스 왕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것 같아서 그 조서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그 조서가 무슨 의미이고, 그러기에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늘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위험이 자기에게 닥쳐오는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이 고국이고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기에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데, 그것은 성경에 근거해서 그렇게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할 때 이렇게 기도해요. 기도는 상당히 길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여기에 두셔서 나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환난을 당할 때도 이곳을 향하여 회개하고 기도하면 용서하여 주십시오.”(대하6)

이 기도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하셨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한 것이 시편에도 나오는데(55:17), 그것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습관이었습니다. 다니엘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기도하던 이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없어졌을 때입니다. 성전이 없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니엘이 기도한 것은 장차 하나님은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성전은 신약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구약에서는 성전이었다면 이제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으면 됩니다.

 

특별히 10절에는 그는 늘 하듯이기도하며 감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했고, 늘 기도했다는 거예요. 감사와 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세 번을 말해보세요. 가장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감사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닿기 전에 무릎이 먼저 닿도록 해보세요. 일어나면 먼저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해보라는 말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습관이 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을 만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습니다그것을 아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두려워한다고 그랬어요. 복음서에는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며 두려워합니다(8, 8).

그런데 마귀들의 세계는 감사가 없습니다. 마귀들은 자꾸 불평하게 만듭니다. 욥기에서 사탄은 하나님과 내기를 해요.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는 욥의 소유를 다 없앱니다. 자녀들과 종들까지 죽게 했어요. 그러면 욥이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라고 사탄은 생각했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1라운드에서 패배한 사탄은 다시 하나님에게 장담합니다. “욥의 몸에 병을 주고 상처를 입힌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그랬어요. 그러나 2라운드에서도 사탄은 패배합니다. 심지어 욥의 아내까지 하나님을 원망하라고 했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요. 불평하는 습관은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고, 감사하는 습관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신학교에서 함께 사역하는 알렉세이 다도치킨 목사님 교회에는 교인의 절반이 농아입니다. 그 목사님을 통하여 농아들의 고통을 몇 번 들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몸이 아파도 통역사 없이는 병원에도 약국에도 가지 못합니다. 관공서도 당연히 가지 못하고요. 길을 갈 때도 자동차 소리를 듣지 못하니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이 많습니까?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합시다.

한국에 갔을 때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러시아에서 이발할 때의 불편함을 불평했습니다. 머리숱을 솎아 주지 않아서 머리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자, 그 말을 듣던 선배 목사님이 그러는 거예요. “내가 최 목사 같으면 매 주일 감사헌금을 하겠네.” 그래서 그 목사님 머리를 보니까 상당히 숱이 적었어요.

기도하는 것도 감사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 여자 집사님이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여야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고 감사의 기도를 해야 응답이 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여집사님은 생각했어요. ‘나도 남편 때문에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집사님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남편이 거의 매일 술 마시고 밤늦게야 집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술에 너무 취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도 벗기 전에 그만 쓰러져버리는 거예요. 그런 남편을 침대로 끌고 가는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만 생각하면 화가 나고 속이 상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하면서 하나님, 왜 저런 남자와 결혼하게 했습니까?” 하고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곤 했어요.

그날도 술에 취해 쓰러져 자는 남편 옆에서 기도하려는데,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면서 뭘 감사해야 할까 하는데,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하였습니다. ‘그래, 지금 술에 취해 코를 골면서 자고 있지만, 그런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지하면서 감사합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도 길거리에서 쓰러지지 않고 집까지 찾아와주니 그것이 감사합니다.’ ‘토요일에는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와서 일요일이면 늦게까지 자면서 집을 봐주니 내가 편하게 교회에 다녀올 수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도하니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남편이 목이 말라 잠을 깼는데, 눈을 뜨고 보니 아내가 웃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남편이 뭐가 그리 좋아서 웃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집사님이 지혜롭게 대답해요. “당신 같은 남자하고 사는 것이 행복하고 기뻐서 웃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에 남편이 감격하면서 약속합니다. “나도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갈게.”

남편을 위해 10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는데 단 한 번 감사의 기도로 응답이 되고 여집사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6살과 4살짜리 자녀와 남편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 영국의 여류 극작가 샬롯 키틀리(Charlotte Kitley)가 있습니다. 그녀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는데, 그 후 암세포가 간과 폐로 전이되어 종양 제거술 2, 방사선 치료 25, 화학요법 치료 39회 등 암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이겨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이렇게도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되지 않네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깨우고 이 닦으라고 소리 지르는 나날들이··· 모두가 행복이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 봤습니다. 기본적인 의학 요법은 물론이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어요. 심지어 한방을 찾아가 침도 맞아 봤지만 모두가 아니더라고요.

제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제 아이들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답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저는 남편 곁에서 잠이 깬 이른 아침의 기쁨과 행복을 잃게 되겠지요. 남편은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혼자 슬퍼할 테고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이제 이를 누가 해줄까요? 아들이 가지고 놀던 레고의 한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를 저만 아는데, 그건 이제 누가 찾아 줄까요?

의사로부터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더 되는 보너스를 얻은 덕분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가슴에 품고 떠나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이의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들이지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 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여러분, 감사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복부 비만, 늘어나는 허리둘레, 흰 머리카락, 늘어나는 주름살과 나이 들어감 이 모든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불평하는 것은 대부분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모든 것이 좋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그 아버지가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IP : 188.187.120.155)
  어쩌히여 네가 화를 내느냐 (창세기 4:1-7) (2022-10-09 오후 5:42:37)
  상황을 넘어선 믿음(누가복음 (17:11-19) (2022-09-25 오후 6:05:01)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9     주님이 기뻐하시는 나팔절 (레위기 23:23-25)     김우영     2023.01.22     20  
  138     힘이 되어주는 사람 (벧전 3:8-12)     김우영     2023.01.15     52  
  137     성경통독과 내비게이션(창1:1, 계22:21)-이중목 목사     김우영     2023.01.08     31  
  136     복 있는 사람 (시편 1:!-6) - 신년 한,러 연합예배     김우영     2023.01.01     239  
  135     설렘과 기쁨의 성탄 (마태복음 2:1-12) -성탄, 한러연합예배     김우영     2022.12.25     189  
  134     엣날과 같이 회복시켜 놓겠다 (예레미야 33:1-11)     김우영     2022.12.18     103  
  133     사르밧 과부의 기다림(열왕기상 17:8-24)     김우영     2022.12.11     142  
  132     예수의 초상화(마태복음 16:13-16)     최영모     2022.12.04     119  
  131     성탄을 기다리는 이유 (이사야 61:1-3)     김우영     2022.11.27     122  
  130     인생 설교(사무엘상 17:45-47)_안양 대영교회 한성도 목사     김우영     2022.11.20     99  
  129     하나님을 위한 분노 (민수기 20:6-13)     김우영     2022.11.13     122  
  128     성경 암송이 주는 유익(신명기 6:4-9)     최영모     2022.11.07     98  
  127     길을 바꾼 사람들 (사무엘하 12:7-15)     김우영     2022.10.30     136  
  126     부르신 자는 인도하신다 (창세기 45:1-8)     김우영     2022.10.23     170  
  125     분노를 쌓아두지 마라 (창세기 16:1-6)     김우영     2022.10.16     157  
  124     어쩌히여 네가 화를 내느냐 (창세기 4:1-7)     김우영     2022.10.09     162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다니엘서 6:1-10)     최영모     2022.10.02     142  
  122     상황을 넘어선 믿음(누가복음 (17:11-19)     최영모     2022.09.25     185  
  121     베드로의 길4(사도행전 5:27-33, 40-42)     최영모     2022.09.18     185  
  120     베드로의 길3(요한복음21:15-19)     최영모     2022.09.11     209  

    01 02 03 04 05 06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