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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길4(사도행전 5:27-33, 40-42)
최영모 [beryoza]   2022-09-18 오후 5:51:19 145

베드로가 걸어간 신앙의 길을 4주간 살펴보았다. 성숙에 대한 소망을 기대하면서, 나는 지금 어느 선상에서 있는지 생각하면서. 


베드로의 길4(사도행전 5:27-33, 40-42)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직업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 보면 나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이렇게 출발한 것이 베드로 신앙의 첫 번째 계단입니다.

그리고 그는 3년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함께 다녔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으로 보면 3년이라는 시간 중의 2/3 정도를 예수님은 제자 훈련에 사용하셨어요.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도 보았습니다. 불치의 병자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바다에서는 풍랑이 잔잔해집니다.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진심으로 합니다. 이 지점이 베드로 신앙의 두 번째 계단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수난의 자리까지는 가지 못합니다. 다 버렸다고 하지만 사실 자기의 에고를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체포되고 끌려가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입니다.

위험 앞에서 그의 신앙이나 그의 인격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제자 훈련도 받았고, 전도자로서의 실습도 했습니다. 두 사람씩 파송을 받아 전도할 때는 예수님의 이름을 대니까 귀신도 항복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속 사람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러기에 급한 순간에서는 부인했고, 배신했던 것입니다.

편안할 때 품위 있게 행동하는 사람도 위급할 때는 품위고 뭐고 싹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래 모습입니다. 누가 그런다고 비난할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 사람을 잘 몰랐던 것뿐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내가 나를 부정해야만 예수님을 긍정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내가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전의 직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까지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회복시키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께서 인정해주심에 달린 것이지 자기의 결심에 달린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이 지점이 베드로 신앙의 세 번째 계단이었습니다.

 

사도행전으로 가서 베드로는 다시 결심합니다. 그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너는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20명 정도의 신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하자고 제안합니다. 왜 그런 제안을 할까요? 주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다시 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았기에 새롭게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오순절 성령의 오심은 사도행전 2장이고, 베드로가 신도들 앞에서 다른 제자를 뽑자고 제안한 것은 그 전인 사도행전 1장입니다.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 이미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따르기로 다시 결심하고 행동에 나섰습니다.

능력을 받아야 주의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건이나 환경이 허락하여야 주의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평생 하지 못합니다.

 

다시 일하겠다고 맛디아를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 선출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베드로의 행동을 보면 혹시나가 역시나로 될 가능성도 큽니다. 수많은 결심을 했던 베드로입니다. 모두 배신해도 자기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베드로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심한 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랬기에 그가 결심했다고 해도 쉽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경험하지 않습니까? 굳게 결심한다고 하여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마음먹었다고 해서 사랑해지지 않습니다. 정직하려고 다짐했지만,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전 앞입니다. 아마도 여기로 말한다면 사람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넵스키대로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곳에서 베드로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그렇게 외치는 거예요. 당연히 체포되었고 갇혔는데,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 정도 되면 다른 기회를 보면서 피할 수도 있으련만 베드로는 다시 가서 또 외칩니다. 그리고 또 잡혀 왔어요. 대제사장과 그의 일행이 사도들을 법정에 세우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그것을 어기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서 신문합니다.

그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높이시어 자기 오른쪽에 앉히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십니다.”(5:29-32)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는데, 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뭐가 됩니까?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들이 되잖아요. 그러니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지요.

 

다행히 가말리엘이라는 존경받는 랍비의 중재로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한 것으로 끝나고 풀려났어요.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였고, 모조리 도망친 제자들이었는데, 이렇게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마디로 새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변했을까요? 도대체 두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동안에서 오순절이 있었고, 그날 성령이 오심으로 베드로와 제자들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나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과 행하신 일들 하나하나가 새롭게 이해되고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나 부활하신 사건은 엄청난 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가 그렇게 나타난 거예요. 하지만 내가 이것을 믿어야만 십자가와 부활은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것을 믿어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게 오시면 세상이 달라져 보입니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세상에 궁극적인 관심을 둘 만한 그런 곳은 또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성령이 나를 사로잡게 되면 세상의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나 지식자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여러분, 부자들이 부럽습니까? 권력자들이 두렵습니까? 지식자들 앞에서 주눅이 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성령에 이끌려서 사는 삶은 아닙니다.

미래가 불안합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불안합니까? 코로나 팬데믹이 불안합니까?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이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이라고 여겨집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나의 삶을 과연 성령이 주도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믿어져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부활에 대한 의미도 달라집니다. 부활은 놀라운 사실이지만, 성령이 오시기 전에 그 부활은 베드로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베드로는 어부라는 직업으로 돌아가려고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시자 베드로에게 부활이 새롭게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곧 자기의 부활로 믿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믿어지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영광스럽게 부활하는구나하고 확실하게 믿어지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장로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거예요.

 

또 하나, 성령이 오시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식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로마서 8:16은 말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시켜준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믿음이 따라와야 가치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자녀의 마음에 그 사랑이 믿어져야만 그것이 귀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지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거나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때로 상대방이 그것을 믿지 못하면 사랑의 효과는 없습니다.

 

성령 받는 것을 신비주의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 신비로운 일이지만, 그러나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육신적인 생각은 다 없어지고 어떤 초월적인 존재로 된다는 생각은 불교에서 온 사상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을 받으면 자기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몽롱한 정신상태가 된다는 생각은 샤머니즘에서 온 사상입니다. 오히려 성령을 받으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뚜렷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지요.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9:27) 성령을 받아도 여전히 자신의 몸을 쳐서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 베드로가 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1. 증언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전하게 되는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 천명이나 주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령을 경험한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게 됩니다. 보니까 예수를 모르고 있어요. 성령 받은 사람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가 딱하다고 여겨지기에 그는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대화 중에도 예수님에 대한 말을 많이 하고 싶어집니다. 하다못해 핸드폰 하나만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어도 옆 사람에게 이것은 뭐고 저것은 뭐다라고 말하고 싶어지잖아요.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싶어집니다.

 

2. 성령을 받으면 연약한 자의 아픔이 다가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고 있어요. 그들이 성전으로 가는 목적은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3:6) 하면서 그 사람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으면 언어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역사의 장에 참여하게 됩니다.

 

3. 성령 받은 사람은 고난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고난이나 죽음은 저주요 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도 결국은 죽음이 무서워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들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보니 사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려울 뿐입니다. 사도행전 5:41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 나왔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겪게 되니 그 자격을 가지게 된 것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그렇게 많이 순교한 줄 아십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당연히 순교해야 한다. 그리고 순교하는 것이 바로 제자라는 증거다이렇게 그들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주일 예배의 의미는 우리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서 힘을 얻어 주간에는 순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일 예배의 의미였습니다.

선교사들은 본국에 가면 선교보고를 합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겪는 매우 힘든 얘기들만을 합니다. 때로는 과장하면서까지 하는 거예요. 같은 선교사이지만, 저는 그렇게 하는 선교사들하고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5:41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힘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으니 그것이 기쁘고 감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 선교사보고는 당신 아니어도 선교는 되니까 힘들어 죽겠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성령 받은 자의 선교보고는 마땅히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 신앙의 마지막 4번째 계단은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손해 보고 멸시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참 의미를 깨달았기에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14-16)

그리고 베드로 자신도 마지막에는 로마에서 아내와 함께 순교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 주께 기억함을 받을 자여하면서 아내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는데, 내가 어찌 그대로 지겠느냐? 나는 거꾸로 지겠다라고 자청하여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습니다.

카라바조가 그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어요(그림). 손과 발에는 이미 못이 박혀있고 극심한 고통 때문에 손을 오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몸을 지탱해줄 받침대는 보이지 않기에 베드로는 오랜 시간 고통을 받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빛은 베드로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얼음판 위를 달리다 보면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때 사탄은 흐뭇해하면서 박수를 합니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우리 옷은 얼음판에 얼어붙습니다. 그러나 일어나서 씨익 웃고 다시 달려보세요. 또 넘어지겠지요. 다시 또 일어나 달려보세요. 몇 차례 반복하면 사탄은 우리를 포기하고,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말했어요.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죄밖에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으며,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100명 중에 여러분이 들어가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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