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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길2(마태복음 16:13-20)
최영모 [beryoza]   2022-09-04 오후 5:06:26 206
베드로의 길2(마태복음 16:13-2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동생 안드레의 소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러나 첫 만남에서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면 예수님의 첫인상이 베드로에게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런데 밤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허탕을 친 그날 아침, 베드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아갔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셨어요. 그 만남에서 베드로 자신의 지식과 상식을 넘어선 일이 벌어졌습니다. 말도 안 되는 예수님의 말이었지만 순종했더니 많은 고기를 잡은 거예요.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장차 무언가 하실 분 같은데, 따라다니다 보면 나도 한자리하게 될 것 같아.’ 그래서 베드로는 가족과 재산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이것이 베드로 신앙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다닌 지 거의 3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예수님은 길을 가던 중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레미야이거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도 합니다.”

제자들이 대답하자 예수님은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나서기를 좋아하는 베드로가 먼저 나섰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새번역 성경은 선생님은으로 번역되어있으며, 개역 개정 성경은 주는으로 번역되어있는데, 원문을 직역하면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며입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에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요나의 아들 시몬! 그대는 복이 있습니다. 그대에게 이것을 드러내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내 아버지, 곧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라고 하시면서 놀라운 축복을 이어서 선언하십니다.

나도 역시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야말로 베드로(바위)입니다. 내가 이 바위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죽음의 문들이 교회를 힘으로 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줄 겁니다. 그대가 무엇이든 땅에서 묶어두면 하늘에서도 묶여 있을 것입니다. 또 그대가 무엇이든 땅에서 풀어두면 하늘에서도 풀려있을 겁니다.”(새한글성경)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의 기분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갑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100점짜리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알려줘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지만, 동시에 베드로의 그런 깨달음은 이 고백 이전에 베드로가 엄청난 일들을 보고 들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어요. 파도는 배 안으로 넘쳐 들어왔습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배 한편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면서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걱정도 안 되세요?”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하품과 기지개를 한 번 하시더니(물론 이런 말은 성경에 없어요), 바람을 꾸짖고 바다를 향하여 소리치셨습니다. “조용히 해라. 입 다물고 있어라.” 어쩌면 잠을 깨운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에서는 지금 힌남노라는 강력한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여 비상사태에 들어갔습니다. 엄청난 집중호우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또 역대급 태풍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매우 긴장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럴 때 누군가가 나서서 태풍아, 잠잠하라!” 하고 명령하니까 올라오던 태풍이 그만 방향을 바꾸어 중국이나 일본으로 향했다고 한다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물론 저는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기를 크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명령을 내리자 자연이 순종한다는 것은 자연의 창조자인 하나님에게나 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러니 베드로는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저런 힘을 가지셨구나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는 등 각종 불치의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은 메시아는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보면서 이분은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그리스도)시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였습니다. 얼마 뒤에는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4천 명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깨닫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는 역사 이래로 지구상에서 살았던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했고, 같이 다닌 동료 제자들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제자들끼리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어요. 바람이 어찌나 심하던지 배는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서 육지에서 더욱 멀어졌습니다. 밤새도록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새벽에 누군가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는 것이었어요.

겁에 질린 제자들은 유령이다.” 소리치면서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가까이 온 유령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나예요, ! 두려워하지 마세요.” 자세히 보니까 예수님입니다.

성격 급한 베드로가 얼른 나서면서 말합니다. “주님, 정말 주님이시면, 저에게 명령해주세요. 물 위를 걸어 주님에게 오라고요.”

예수님이 오라고 명령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을 보자 베드로는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물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었어요. 베드로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세요.”

예수님은 곧바로 손을 뻗어 베드로를 붙잡아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이여! 어쩌자고 의심을 했나요?”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의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그랬을지 몰라요. “가만히 있으면 2등이라도 하는데, 괜히 나서 가지고 쪽팔리고 책망 듣는군.” 그러나 베드로는 그랬을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잠깐이라도 물 위를 걸어본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물 위를 걸은 놈은 나밖에 없을 거야. 물론 예수님은 열외로 쳐야지.”

하여간 이런 경험을 했던 베드로였기에 그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질 죽이기, <Anger Management>)라는 영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데이브는 비행기 안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재판을 받게 되고, 분노를 다스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첫날,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라이델 박사가 처음 온 데이브에게 묻습니다. “자넨 누구인가?”

데이브가 말합니다. “전 애완동물 관련 대기업의 이사입니다.”

그러자 라이델 박사가 말을 막으면서, “난 자네의 직업을 물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네가 누구인가를 물어본 걸세.”

당황한 데이브가 말합니다. “, 전 그냥 괜찮은 남자이고, 시간이 날 때는 테니스 치는 걸 좋아하고요.”

라이델 박사가 다시 말합니다. “자네 취미 말고, 그냥 자네가 누구인지만 말해봐.”

난감해진 데이브가 우물쭈물하면서 말하는 거예요. “전 착하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고요. , 가끔 우유부단할 때도 있지만요.”

다시금 라이델 박사가 말을 가로막으면서 말합니다. “자넨 지금 자네 성격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그저 자네가 누군지 알고 싶네.”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이지만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사생활까지도 많이 알고 있어요. 젊은이들을 보면 똑똑하고 영리합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참 많아요. 영화에 나오는 데이브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과연 누구입니까?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몇 가지 말하는데, 그중의 가장 중요한 하나는 바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말처럼 오해되는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할 때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신학교 시절 전도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는데, 교수님이 이런 과제물을 내주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선교회에서 발행한 4 영리라는 조그만 전도지가 있는데, 학기 동안에 이 전도지 내용으로 자기의 가까운 사람에게 전도하고 그 결과를 학기 말에 보고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때 저의 형님이 예수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님을 목표로 정하고 기도하며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D-day를 정하여 형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형님에게 전도한 적은 있었지만, “, 교회에 나와봐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4 영리를 바탕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전도하기로 한 것입니다.

4 영리란 4가지의 영적 원리라는 뜻으로 이런 의미입니다. 1 원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2 원리는 사람은 죄에 빠져있어서 하나님의 계획을 모릅니다. 3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4 원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목욕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목욕재계까지 하고 형님에게 전도하는데, 그만 도중에 논쟁이 붙었습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저도 논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반박을 하는데, 제가 말한 논리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죄에 대한 개념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형님은 거짓말한 적이 한 번도 없느냐, 남을 미워한 적이 한 번도 없느냐, 이런 식으로 반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논쟁에서 이겨도 전도는 실패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교회에 나갈 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라는 식이 되어버립니다.

학기 말이 되어 모든 학생이 자기가 전도한 결과를 성공이었다고 보고하는데, 저 혼자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보고했습니다. 저의 보고를 듣던 교수님은 그때야 비로소 죄인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우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충고해주었어요.

성경이 말하는 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죄와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가 여러 개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하마르티아(Hamartia)’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성경을 번역할 때 이 하마르티아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심하다가 우리 말에서 라는 말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라는 단어는 사실 불교 용어입니다. ‘라는 단어 외에도 여러 용어를 우리는 불교에서 가져왔어요. 그리고 그렇게 가져온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이해시켰던 것입니다. 어떤 내용은 잘 전달이 되었지만, 또 다른 어떤 것들은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도 있어요.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번역할 때 정확한 단어를 찾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우리 교회 러시아 공동체의 초창기 때 교회에서 권사 임명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권사라는 단어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맞는 말이 없어요. 러시아 교회는 권사 제도도 없는 데다 성경에도 권사라는 용어가 나오지를 않는 거예요. 애써 비슷한 말을 하나 찾아내었는데 그 말대로 하면 권사는 팔짱 끼고 뒤에 앉아서 잔소리나 하는 직분으로 오해될 수 있었습니다. 맞는 용어가 없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어쩔 수 없이 러시아 공동체에서는 지금까지 권사 임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는 단어를 불교에서 가져오긴 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와는 사실 차이가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창세기의 에덴동산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선악과) 하나를 두셨습니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사람은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며, 하나님에게 속해있는 것이 최고로 좋은 것이구나하는 것을 늘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이 와서 저 열매를 먹으면 너희는 하나님처럼 되는 거야하고 유혹하자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하와는 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라 옆에서 멍청하게 서 있던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주고 먹게 했어요.

선악과 사건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가 아닙니다. 먹지 말라는 것을 먹었다고 해서, 말 한번 듣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을 영원한 저주 가운데 내버리시는 그런 잔인한 하나님은 아닙니다.

뱀이 유혹한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독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채 나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나 그런 가치관으로 산다는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예요.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그의 후손은 그래서 모두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분의 상태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8:44a) 인간은 사탄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에게 너희는 사탄인 나를 섬겨라그렇게 유혹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너는 너 자신을 섬기라라고 유혹합니다. ‘어차피 너 자신이 네 인생의 주인이 되면 하나님과는 자동으로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야.’ 그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되면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를 말하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멀어진 관계가 다시 좁혀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는 이처럼 놀라운 진리가 담겨있고, 놀라운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고백 없이도 교회에 다닐 수 있습니다. 헌금도 할 수 있고,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가정도 재산도 버리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선교사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는 아직 신앙의 마이너스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확실히 고백할 때 비로소 신앙의 제로(0) 지점에 서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플러스는 아닙니다.

플러스가 아닌 이유를 오늘 읽은 본문 다음에 나오는 내용에서 잠깐 엿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당신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수난을 겪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곁으로 끌어당기면서 책망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주님! 이 일이 절대로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투는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게 왜 그따위 소리를 하세요?” 하는 식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고맙다. 베드로야.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너뿐이구나.”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반대로 몸을 돌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뒤로 사라져라, 사탄아! 너는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다. 네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에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새한글성경)

직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얼마나 크게 칭찬하셨습니까? 그런데 고생하지 말라고, 십자가를 피하라고 말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십니다.

베드로의 신앙 두 번째 단계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그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폭풍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고백은 했지만, 예수님이 수난을 말씀하시자 아직 수난에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가족, 친척, 재물까지 버릴 수는 있었지만, 아직 자기의 자아(에고)는 버리지 못했어요. 장차 오게 될 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영광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있었어요. 그러나 속으로의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는 누구입니까? 아니, 그 전에 여러분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아십니까? ‘교회에서 죄인이라고 하니까 죄인인가보다하는 그런 것 말고 정말 여러분의 정체성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신다면 그다음에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누구입니까? 자녀보다도 덜 소중하고, 애인보다도 덜 소중하고. 물질 앞에서도 별 볼 일 없는 그런 존재로 예수님을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전염병 앞에서는 예배고 뭐고 내동댕이칠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그런 분입니까? 때로는 괜찮지만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악세사리에 불과합니까? 여러분의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도로 양보하여 이분을 믿고 따라가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야하는 정도는 되십니까?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에 담겨있는 놀라운 의미가 여러분의 삶과 인격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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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의 길3(요한복음21:15-19) (2022-09-11 오후 7:54:06)
  베드로의 길1(누가복음 5:1-11) (2022-08-28 오후 8: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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