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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길1(누가복음 5:1-11)
최영모 [beryoza]   2022-08-28 오후 8:25:12 102
베드로의 길1(누가복음 5:1-11)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교회의 성직자인 아버지와 왕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윌리엄 쿠퍼는 몸이 허약한 데다 성격마저 소심하여 사회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그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고, 법률을 공부하긴 했지만 심한 우울증과 대중 앞에 설 때 느끼는 공포증으로 법정에는 한 번도 서보지 못했습니다. 허약한 체질이었기에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심한 우울증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육체가 힘들고 정신도 힘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영적으로도 무력해졌습니다. ‘나는 너무 못났어. 하나님은 이런 나를 구원해주지 않으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심한 좌절감에 사로잡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네 번이나 정신병원 신세도 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성경을 읽으면서 가까이했어요.

33살이 되던 해,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거듭나고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자 그의 삶은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영적으로 새로워지자 육체와 정신도 차츰 건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찬송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찬송가 258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라는 찬송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가 중의 하나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떤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경의 수많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기둥 같은 두 사람을 말하라고 한다면 베드로와 바울을 들 수 있어요. 바울이 신중하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베드로는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대조되는 성격이었지요. 베드로는 급한 성격에다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이었기에 실수도 많이 했어요. 그런 성격이기에 어쩌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부터 4주 동안에 걸쳐 베드로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4주로 정한 것은 베드로의 신앙 단계가 크게 보면 4단계로 발전되어가기 때문입니다. 4단계 중에서 오늘은 첫 번째 단계입니다.

 

누가복음 5장은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하고 시작합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호수 혹은 디베랴 호수라고 하는데, 워낙 큰 호수라 때로는 바다라고도 불렀습니다.

때는 아침이었고, 예수님은 호숫가에 계시는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마침 호숫가에는 배 두 척이 있었고, 밤새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은 그물을 씻으면서 하던 일을 끝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든 사람들을 보시면서, 두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육지에서 조금 떼어놓으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배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장면이 궁금합니다. 마이크도 없던 시절에 그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요? 오랫동안 저는 이 장면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는데, 언젠가 이스라엘에 가게 되었고, 게네사렛 호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과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고(해풍), 밤에는 반대로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육풍)이 분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지금 이때는 해풍이 부는 시간이니 바다에서 육지 쪽을 향하여 말하면 그 소리는 바람을 타고 상당히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다 공기가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곳에서는 훨씬 더 멀리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이크 없이 야외에서 군중들에게 설교하거나 연설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기를 마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곳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베드로는 , 이게 뭐지?” 했을 것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에 베드로가 순종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베드로는 평생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지금 자기에게 명령하는 사람은 비록 랍비(선생)라고는 하지만 목수 출신에다 그물 한 번 던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고기를 잡는 가장 좋은 시간은 밤인데, 지금은 아침이거든요. 가장 좋은 시간에도 피라미 새끼 한 마리를 잡지 못했는데, 잡히지 않는 시간에 그물을 내리고 잡으라고 하거든요. 깊은 곳에는 물고기들이 없다는 것은 어부 초보자도 아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일을 끝내려고 이미 그물까지 다 씻었고, 더구나 밤새도록 일하여 지쳐 있습니다. 그런데 가능성 제로인 일을 다시 하라는 것입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에는 심층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상식과 관념, 그리고 경험에 익숙한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사실은 틀린 것일 때도 많습니다. 내가 가진 경험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인 상식이나 관념이 맞지 않을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매우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무식한 사람이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내세우면서 고집을 피울 때입니다. 자신은 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강조합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가 되지 않아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라는 책은 이메일이 잘못 간 바람에 두 사람이 대화하면서 서로의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되어간다는 내용인데, 그 책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여자인 에미가 남자인 레오에게 자기 친구 미아를 소개하면서 이런 얘기를 해요.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채식주의자라는 거예요. 하지만 옆에서 누가 이건 두부야하고 말해주기만 하면 고기도 먹어요.”(186) 그것을 에미는 미아의 단점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미아의 그런 점이 좋습니다. 때로는 나와 생각이 달라도 수용해주는 그런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 편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려고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거나 숨기면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용성을 크게 키우라는 말입니다.

그 방면에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재주도 그다지 없는 데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연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보면 생각을 뛰어넘는 발상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수용성이 큰 사람입니다. 자기 울타리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은 때로는 관념이나 관습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교사로 나오기 전 한국에서 사역할 때 청년들과 함께 괌과 사이판에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저는 그 교회의 찬양팀을 보며 매우 놀랐습니다. 찬양팀 멤버들이 50대와 60대 나이의 성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찬양팀은 젊은이들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저에게 그 모습은 큰 충격이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나이 또래의 집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당신들도 찬양팀을 구성하여 예배 때 부르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한 것이 30년이 훨씬 지났는데 그런 찬양팀이 만들어졌다는 연락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찬양팀은 젊은이들이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이었는데, 어느 교회 장로님이 흥분하면서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 아무개 장로님은 예배 시간에 기도문을 써서 기도하는데, 이게 될 말입니까?” 그러면서 자신은 기도문을 미리 쓴 후에 그것을 외워서 기도한다고 그래요. 그러나 기도문을 써서 기도하던, 다 외워서 기도하던, 쓰지 않고 그냥 기도하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자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느냐입니다.

8월부터는 성찬 위원을 부부가 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찬 위원은 장로님만이, 혹은 남자들만이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진다면 그런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몇 년 전이었어요. 한국에서 어떤 장로님이 방문하여 우리 교회 러시아어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인도자가 장로인 것을 보면서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장로는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아닌데

이처럼 우리는 여러 면에서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여기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배 인도를 장로님이 하면 , 저렇게도 하는구나.’ 하면 됩니다. 성찬 위원을 부부가 하면 저렇게 하니까 새롭구나.’ 하면 됩니다. 기도문을 써서 하면 횡설수설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니까 좋구나.’ 하면 되고요. 줏대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라 유연성을 기르고 그것을 자기 안에서 내면화하여 확장하게 되면 깊은 데로 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잘 순종하게 됩니다. 자신의 상식과 지식과 관념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깊은 곳으로 갈 줄 아는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 자신의 지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했기에 순종할까요? 전혀 아닐 거예요. 예수님께서 모여든 무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같은 배 안에서 직접 들으면서 베드로의 마음이 움직였던 거예요. 그러면서 믿음이 생기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에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10:17) 말씀을 들어야만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멀리하면서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면 크게 착각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씀을 읽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날이 한 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며, 계속 그렇게 하면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우리의 귀를 너무 크게 열어놓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잘 들리지 않아요.

앞서 말씀드렸던 윌리엄 쿠퍼를 보세요. 공포 속에서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하고, 정신병원을 드나들었지만 그런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놓아버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연약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느꼈던 것입니다.

흔히 성경을 영혼의 양식이라고 그래요. 육체를 위한 양식은 한 끼만 굶어도 힘들잖아요. 마찬가지로 영혼을 위한 양식도 굶고 산다면 우리의 영혼은 피폐하게 됩니다.

한때 제공하다가 잠시 중단했던 가정 기도 가이드를 이번 주간부터 다시 단톡방에 올릴 것입니다. 그것을 자료로 삼아 개인 QT를 하거나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어요. 그물에 잡힌 고기가 너무나 많았기에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두 배에 나누어 실었는데, 얼마나 고기가 많았던지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어요.

어쩌면 예수님은 깊은 곳에는 고기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기를 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순종하는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순종하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그래요. 예수님이 구주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오다 보니 예수님이 이해되고, 예수님을 믿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잡힌 고기를 보면서 베드로의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누가복음의 기록자는 시몬의 이름을 시몬 베드로라고 부릅니다. 앞에서는 베드로의 이름을 계속 시몬이라고만 했습니다. “예수는 시몬의 배에 오르셨다”, “예수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라고 하셨다.” 이렇게 시몬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에 자연인 시몬은 새로운 존재인 베드로가 됩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게 되면 이전에 내가 가진 것들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좋아했던 노래가, 즐기던 취미가 시들어지기도 합니다. 고린도 후서 5:17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어요.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것입니다.

 

강한 경험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을 잘 보세요.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첫 만남은 아닙니다. 이전에 동생 안드레의 소개로 만난 적이 있었어요.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안드레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어요.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하고 말하는 거예요. 안드레는 자기 스승이 하시는 말씀이 정말인가 하여 다른 제자인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이분이야말로 정말 메시아다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즉시 자기 형 베드로에게 가서 !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어. 형도 가서 만나봐하고선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첫 만남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굉장한 호감을 느끼며 새로운 이름도 주셨지만, 무슨 이유인지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그다지 끌리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미남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동생 안드레와는 달리 베드로는 별다른 느낌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지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53:2) 우리가 사진이나 영화에서 보는 예수님은 대단한 미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양을 거쳐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모습이고, 실제의 예수님은 중동계 유대인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저는 예수님이 여러분과 비교하여 더 잘 생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기 얼굴에 자신감을 가지면서 너무 뜯어고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의 첫 만남에서 특별한 감정이 없었던 베드로처럼 우리는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등록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의 교인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느낌이나 의미 없이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교회를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저 한 분의 선생님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주님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는 예수님을 만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삶의 가장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의 방향도 예수님에게 맞추고, 중요한 결정도 예수님에게 두고 살아보세요. 삶이 참 행복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기에 불편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하나님을 삶의 가장 첫 자리에 두고 살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고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좋아요.

 

또 하나 베드로가 한 말은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한없는 죄인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다 죽고, 그 많던 재산은 다 사라지고, 몸에는 심한 병까지 들었던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위로하려고 왔는데 너무나 처참한 몰골의 욥을 보면서 그들은 욥에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실 것이라고 충고했어요. 그러자 욥은 자신은 하나님께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그 문제로 계속 논쟁하였는데, 하나님은 욥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친구들이 틀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중에 욥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42:5-6)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두려움의 감정도 함께 따라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물론 이 두려움은 공포의 감정이 아니라 경외심을 말합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기에 두려운 것이고, 전능하신 분이기에 두려운 것이며, 그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왜소하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두 배 가득 고기가 잡혔다는 기쁨보다는 더 크게 압도하는 어떤 두려움을 느꼈어요. 우리도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어떤 문제로 기도하는데, 기도가 응답 되는 것을 볼 때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기쁨을 압도하는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잖아요. 기도 응답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워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아라. 지금까지 너는 물고기를 낚았지만,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우뚝 선 제자가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는 이곳도 성 베드로의 도시라고 이름을 짓고 그에게 바친 도시가 될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라고 할 때 배와 가득 잡은 물고기와 가족이겠지만, 나중에 보면 채 버려두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하여간 그는 예수님을 만날 때 무엇인가를 결단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 어떤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타문화권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나의 일터에서 선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야지하는 결단도 좋지 않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겠다는 결단은 믿음의 길을 나설 때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결단을 하고 순례자의 여정을 갈 때 하나님은 여러분과 동행하시면서 삶의 기쁨을 여러분에게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베드로는 자기의 관념과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을 때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선생이 아닌 주님으로 인정하며, 자신의 무엇인가를 내버려 두고 주님과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에게 임한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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