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예배와찬양 > 한인예배/설교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출애굽기 33:1-6)
김우영 [ready4god]   2022-07-24 오후 5:13:35 125

20220724 438 - 내 영혼이 은총입어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출애굽기 33:1-6

32:26 모세는 진 어귀에 서서 외쳤다. 누구든지 주님의 편에 설 사람은 나에게로 나아오십시오. 그러자 레위의 자손이 모두 그에게로 모였다.

33:4 백성이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장식품을 몸에 걸치지 않았다

 

여는 말

라음이가 저에게 자전거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비가 내린 뒤라 길이 조금 미끄러웠던 목요일 저녁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데 보도블록 경계에 차가 세워져 있어 조금 비스듬히 올라가려는데 그만 미끄러져 좀 다쳤습니다. 벌써 두 번 째다보니 넘어진 것도 아프고 힘들지만, 많이 민망했습니다. 주변에서 헬멧과 보호구를 사서 착용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좀 더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서 상황에 맞는 장비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주 정도 교회 타일 교체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주에는 마칠 것 같은데 두 주간 작업을 한 다닐라 집사와 그 동료는 일하기 전후 항상 옷을 갈아입었던 것입니다. 옷이 더워져 지는 것도 있지만 작업을 하는데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옷을 입고 있다 할지라도 수영장에서는 옷을 벗어야 합니다. 신승훈 집사가 카누를 탈 때나 제가 자전거를 탈 때는 상황에 맞는 장비와 복장을 챙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흥이 필요한 시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수적인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면 부흥은 단지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도 갖춰야할 자세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부흥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푸는 말

부흥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서만 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을 통해서도 부흥의 모델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이 쫓아오는 절체정명의 순간보다 더 아찔한 상황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32장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32장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증거판 즉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민족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가 없는 사이 이스라엘 민족은 금송아지를 녹여 만들고 자신들의 신이라고 부르며 흥청거리며 뛰놀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셨습니다.

32:9-10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조바심입니다.

32:1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은 잘 참지 못합니다. 밥을 안치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처럼 자신의 필요에 눈이 멀고 그 기준에 모든 것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조바심으로 스스로 신을 결정해 버리고 맙니다.

32:4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32:8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

이런 불신앙의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를 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해주신 약속을 근거로 간구하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14) 이후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보니 진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흐트러진 백성들이 보였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시내산에서 가지고 온 돌판을 깨뜨려 버립니다. 이후 모세는 하나님 편에 설 자를 찾았고, 이에 응답한 레위의 자손을 통해 우상 숭배했던 삼천 명 가량을 죽여버립니다.(32:26-28)

부흥은 정결한 그릇에 담긴 물과 같습니다. 그릇을 닦지 않고 물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은 금, 은 그릇이 아니라 비록 나무와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정결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딤후 2:20-21)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도 이런 일들을 반복해왔습니다. 모양은 다를 지라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말씀의 자리에 철학을 두고, 조바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두렵지만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과연 이런 참혹한 어둠과 어려움을 앞에 두고 우린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습니까? 위기의 순간이지만 하나님은 다시 살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나는 누구 편인가 생각하라.

위기의 순간 우리는 내가 누구의 편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깨달음이 없는 한 부흥은 일어날 가망이 없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들었던 상황을 직접 봤고, 돌판을 깨면서까지 그들의 죄를 호되고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 가운데 이렇게 선언합니다.

32:26 모세는 진 어귀에 서서 외쳤다. "누구든지 주님의 편에 설 사람은 나에게로 나아오십시오." 그러자 레위의 자손이 모두 그에게로 모였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린 분명히 주님의 편과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과 연()으로 극복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갈리게 됩니다. 물론 아직 그 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전도하는 등 애써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회색지내나 양다리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함께 찬양한 것처럼 오직 주님만 나의 맘의 갈급함을 채우시고, 내게 생명 주신다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선 내가 누구의 편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지 기준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어디서 태어날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 죽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얼굴로 태어날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얼굴로 죽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곧 죽음의 선택이 삶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2. 회개하라.

부흥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결한 그룻이 되기 위해 회개해야 합니다.

:4a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한 지적에 마음에 찔림을 받아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후회와 회개는 다릅니다. 후회는 결과에 대한 미련이요 회개는 동기에 대한 자각입니다. 또한 후회는 원인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지만, 회개는 원인이 바뀜으로 반복을 멈출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이들은 그날 삼천 명쯤 죽었습니다. (32:28) 그런데 사태는 이것으로 멈추지 않고 더욱 심각해져갑니다.

33:3a 너희는 이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통회하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겨울 시베리아의 눈밭에 풀어놓으며 살려 줄 테니 잘 살아봐 이런 뉘앙스로 들립니다. (살려는 드릴께...)

우리 삶에도 이런 일이 넘쳐납니다. 자유를 얻고, 명예와 돈을 얻었는데 왠지 마음이 서늘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성공하고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기준이 흔들리면 모든 것은 엇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는 회개했던 그들처럼 통회해야 합니다. 인생이 잘 풀리면 하나님은 까맣게 잊고 자신의 금송아지를 만드는 세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난 주 길갈의 돌들은 부흥의 무더기라고 배웠습니다. 왜 돌들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1) 사실이다. 2) 하나님의 능력이 크시다. 3) 하나님을 섬겨라.

흔적(기준)을 잃으면 하나님은 거짓이 되고 능력이 없고, 그 하나님을 섬길 필요도 없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많이 얻은 것처럼 보이나 모두 잃게 됩니다.

시편 106:14-15에는 출애굽기 32-33장의 상황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었고 사막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것을 주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점점 더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적게 얻어도 하나님 편에 선 것이 행복입니다. 질문해보십시오. ‘나는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통회해야 합니다. 후회가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시편 42: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다윗은 축복을 찾아 헐떡이며 헤매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찾아 헤매며 헐떡였습니다. 만약 마음에 부담과 찔림이 있다면 누구든지 주님의 편에 설 사람은 나에게로 나아오십시오.’ 외치는 모세의 부르짖음에 반응해야 합니다.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24:15)외치던 여호수아의 호소에도 반응해야 합니다. 회개는 두렵고 민망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서게 합니다.

 

3. 장식품을 떼어내라.

32:2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이집트에서 노예처럼 살던 이들이 어떻게 금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12:35에 보면 맨 몸으로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 사람에게서 은과 금을 빼앗아 나왔던 것입니다. 주석에 보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와 함께 값비싼 선물을 한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은 금욕을 주장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쓸 것과 입을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입니다. 소위 메이커가 좋고 멋스러워 보이는 것 다 압니다. 비록 소용은 크게 없을 지라도 자녀가 기뻐한다면 하나쯤 사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마음인 것처럼 하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장식품을 떼어 버리라고 합니다.

:5b 이제 너희는 너희 몸에서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제 결정하겠다.

그 금붙이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내돈 내산, 내 맘대로 쓰겠다고 하시겠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던 장식품을 떼라는 것은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통곡하며 아무도 장식품을 몸에 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서슬 퍼런 외침에 주님의 편에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회개는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실천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금붙이와 장식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탐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본질은 장식품을 떼어 버리는 것입니다. 흡연, 음주는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거리가 있게 만드는 것, 하나님이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놓지 못한 우리의 헛된 욕망이 죄입니다. 장식품을 떼는 것은 첫 단계입니다. 이것이 이뤄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부흥은 보이기 시작합니다.

2002년이었나 2003년이었나 높은 뜻 숭의교회 초창기 때 우리 교회 연주자들과 헤리티지와 함께 호주 청년집회를 갔었다. 한 천 명 쯤 들어가는 어느 대학 강당을 빌려서 하는 집회였는데 그 날 따라 설교를 앞두고 많이 떨렸다. 수 만 명 앞에서도 설교를 했었고 천 명 정도 앞에서는 수도 없이 많이 설교를 했어서 그날 설교를 앞두고 떨리는 것이 참 신기했었다. 그 날 난 그 집회가 좋을 것을 직감하였다. 떨리면 기도가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떨리지 않을 때, 자신감이 있을 때 오히려 집회는 더 쉽지 않고 힘들 때가 많았다. 기도가 간절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 간증은 김동호 목사님의 페이스복에 올라온 간증입니다.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목사님의 간증이 큰 도전이 됐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음대 다니던 시절 예술의 전당에서 오델로라는 작품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코러스였지만, 나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안경을 쓰지 못해 급하게 렌즈를 맞춰 공연했는데,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던지 중간에 렌즈를 분실하기도 했습니다. 5일을 공연을 하는데 제일 떨렸지만, 첫날 공연이 가장 좋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는 경험이 쌓이니 편해지긴 했지만, 실수가 생기고 대충 넘기는 저를 봤습니다.

발가벗겨진 것처럼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할 땐 하나님만 보입니다. 하지만 장식품이 하나씩 붙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지위와 익숙함에 가려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닫는 말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의 대부분을 보면 대개 힘과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타락은 힘이 많을 때 더욱 많이 발생합니다. 많이 갖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넘쳐납니다. 불편하고 안타깝지만, 주님에 편에 서는 이들은 그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 전진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 우린 1)내가 누구의 편인지 확인하고 2) 타협했던 마음을 회개하며 3) 포장됐던 삶의 장식품을 떼어내 선명하게 주님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단하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복된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IP : 58.228.111.250)
  나의 회막 안으로 (출애굽기 33:7-11) (2022-07-31 오후 5:16:47)
  이 돌들의 뜻이 무엇인지 묻거든 (여호수아 4:19-24) (2022-07-17 오후 5:42:41)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22     상황을 넘어선 믿음(누가복음 (17:11-19)     최영모     2022.09.25     17  
  121     베드로의 길4(사도행전 5:27-33, 40-42)     최영모     2022.09.18     33  
  120     베드로의 길3(요한복음21:15-19)     최영모     2022.09.11     60  
  119     베드로의 길2(마태복음 16:13-20)     최영모     2022.09.04     97  
  118     베드로의 길1(누가복음 5:1-11)     최영모     2022.08.28     102  
  117     이분은 누구신가? (이사야 63:1-6)     김우영     2022.08.21     81  
  116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출애굽기 33:18-23)     김우영     2022.08.14     788  
  115     내 이름 아시는 당신께 (출애굽기 33:12-17)     김우영     2022.08.07     814  
  114     나의 회막 안으로 (출애굽기 33:7-11)     김우영     2022.07.31     117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출애굽기 33:1-6)     김우영     2022.07.24     126  
  112     이 돌들의 뜻이 무엇인지 묻거든 (여호수아 4:19-24)     김우영     2022.07.17     144  
  111     몸을 내밀면서 (빌립보서 3:12-14)     김우영     2022.07.10     171  
  110     우리가 바라는 것 (고린도전서 15:12-19)     김우영     2022.07.03     186  
  109     메워진 우물을 파라 2 (창세기 26:17-18)     김우영     2022.06.26     910  
  108     메워진 우물을 파라 1 (창세기 26:17-18)     김우영     2022.06.19     303  
  107     부흥이 필요합니다 (마가복음 9:14-29)     김우영     2022.06.12     341  
  106     여러분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17:40-45)-이정진 선교사     김우영     2022.06.12     146  
  105     다윗10 -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사무엘기하 7:1-17)     최영모     2022.05.29     363  
  104     다윗9 - 아버지의 계절(사무엘기하 15:30)     최영모     2022.05.22     228  
  103     다윗8 – 왕비 열전(역대지상 3:1-9)     최영모     2022.05.15     236  

    01 02 03 04 05 06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