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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내밀면서 (빌립보서 3:12-14)
김우영 [ready4god]   2022-07-10 오후 5:41:23 268

20220710 - 449 예수 따라가며 


몸을 내밀면서

 

빌립보서 3:12-14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여는 말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잉어입니다. 이 물고기의 특징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분명 동일한 어종인데 5cm에서 120cm 까지 자그마치 24배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작은 어항에 넣어 두면 어항에서 살 수 있는 크기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 두면 그에 맞는 크기까지 자라게 되고, 강물에 방류하면 사람 크기만큼 자라는 물고기입니다.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크기가 달리지듯 사람도 환경에 비례해 능력이 달라지는 현상을 코이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생도 코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크기의 어항에서 살아갑니다. 어항의 크기가 삶의 크기가 되고, 삶의 크기는 존재의 크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어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어항의 크기는 우주보다도 큽니다. 자신의 한계를 자신이 정하는 사람과 자신의 한계를 창조주 하나님의 품으로 정하는 사람의 삶의 크기는 분명 다릅니다. 내가 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만큼만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만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며 스스로 무언가 심기일전하며 재기를 꿈꾸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흥의 은혜를 먼저 누리고자 하는 사람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망의 크기를 하나님의 꿈의 부피만큼 커지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흥이라는 큰 주제 아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블레셋인들이 가득 매운 우물을 한참 파다보니 드디어 우리가 캐내어야 할 보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는 파내야 합니다. 길어내야 마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푸는 말

현대교회에 부족한 것은 실천입니다. 머리로는 많이 고민하고 학문적 열매를 거두긴 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영적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복음은 유대사람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미칠 만큼 큰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가 불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가로막는다(카테콘돈)는 단어는 단순히 막는 것을 넘어 ~을 하지 못하게 억제한다.’ 는 의미입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정체는 바로 사탄입니다. 불의의 도구로 사용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그 길에서 멀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부푼 꿈이 있었지만, 현재 로마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괴롭고 답답한 삶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줄기차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할 정도로 큰 기쁨이 그를 사로잡고 있고, 또 이 기쁨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와 아테네 등을 돌며 많은 학자들과 토론할 만큼 학식이 풍부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지식을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거듭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더욱 중요합니다.

불의한 자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막고 입으로만 떠들게 만듭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롬1:21처럼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의한 자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눈감게 만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지만 그 뜻이 허망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아는 자와 복음으로 살아내는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만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막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이 허망해지는 사람은 넘쳐납니다.

언제부터인지 현대 교회에서는 체험의 요소를 부정적, 그리고 경박, 초급적 요소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못 먹고 못사는 시기, 하나님께서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이셨지만, 지금은 고상해져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반문합니다. 산 기도를 다니고, 나무를 뽑고, 철야를 하고, 금식을 하고, 새벽예배를 하고, 셀모임을 하는 등 다양한 체험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야? 하고 되묻습니다. 물론 그것을 하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무엇을 통해 대체할 수도 없는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생각을 하게 하는 블레셋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입니다.

산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과 긴밀히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유별나게 철야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풀어낼 시간을 갖고 있는가?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게 예배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 앞에 정성스럽게 내 삶을 드리는 시간을 과연 있는가?

우리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허망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흥은 머리로는 꿈꾸게 되고, 먼 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12-13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했기 때문에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주의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의 길은 이미 열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주의 재림의 날까지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미아직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까지 모두 세 단계가 필요합니다. 의화(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갖고자 해서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감격을 가진 사람들은 영화로운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 의롭게 살려 애써야 합니다. 성화(聖化)는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아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얻는데 우린 아무런 수고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성화의 삶에는 우리의 수고와 결단, 그리고 불이익과 손해도 뒤따른다는 것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우리는 영화로운 단계, 즉 부흥의 단계로 나가기 위해 두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1. 잊어버려야 합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계속 뒤를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주에서 지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 넘어질 수 있습니다. 멸망당하던 소돔에 미련을 두고 뒤들 돌아본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19)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어릴 적 동생들과 이불을 싸매고 본적이 있는데, 주인공에게 신령이 나타나 꼭 뒤를 보지 말라고 하는데 주인공은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다봅니다. 그래서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뒤를 바라보면 이처럼 문제가 생깁니다. 죄와 잘못을 기억하게 하며, 실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음(8:12)을 기억하시고 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못한 것, 잘못된 일도 잊어야 하지만, 우리가 자랑할 만한 것, 아끼는 것도 잊어야 합니다. 이 정도는 할 만한데 하며 버텨왔던 우리의 경험과 지식들도 하나님의 은혜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지식도 배설물()로 여겼던 바울을 기억하십시오.

3: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여기에서 오물, 배설물()은 더럽다는 의미도 있지만, 소화되고 나면 없어질 것이라는 뜻도 됩니다. 즉 바울은 지식은 한계가 있고 곧 사라질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가장 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랑도 잘남도 잊어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잊으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지식을 버리고 광야로 간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해서 여러 학자들과 토론하며 기독교를 알렸습니다. 다만, 그것을 활용할 뿐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11:26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재물을 하찮게 여기고 버린 것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재물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룬 삶의 기업, 명예, 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보다 더 크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결코 없습니다. 잊어야 살 수 있습니다.

 

2. 몸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흥의 은혜를 맞이하기 위해선 몸을 내밀어 앞을 향해야 합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이 구절의 모든 번역을 찾아봤는데 새번역이 가장 좋았습니다. 다른 번역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간단하게 적혀있습니다. 앞을 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몸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반응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말씀 전에 주님 말씀하시면이라는 찬양을 함께 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생각이 가야할 곳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전인격이 함께 가야하는 곳입니다. 은혜에 몸을 내밀 수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개인적인 간증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성경을 읽는 일입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억지로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최목사님께서 한국에 가시며 아침 QT를 올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진 않지만, 나름 성경도 읽고 경건생활을 하는데 매일 아침 어떤 패턴에 묶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글을 장황하게 적긴 쉬운데 짧게 정리하는 일 역시 부담스러웠습니다. 눈으로 읽고 기도하면 되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불평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옮기면서 저부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알지만, 실천하며 얻게 되는 큰 유익이었습니다.

, 예배 시작에 함께 찬양하는데, 20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고 있습니다. 찬양 리더는 오래했지만, 간만에 바은 기타가 영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10명 남짓 모이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찬양을 해야하지라고 난감하고 고민됐습니다. 하지만, 시작하고 나니 준비하며 먼저 위로를 받고 가사도 깊게 묵상하게 됐습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섬긴다고만 생각했는데, 먼저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예배를 드리게 되며 누리는 기쁨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한 것 외에 또 다른 은혜가 있었습니다. 아침 QT를 읽고 아멘 하며 반응해주시고, 찬양과 말씀을 통한 은혜를 마음에 담는 것뿐만 아니라, 표현하고 피드백하는 것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됐습니다. 물론 이런 관심과 격려를 받고자 예배와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격려하고 사랑을 실천해주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더욱 견고하게 서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저 역시 목사이기 전에 그리스도인이요 예배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아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몸을 내밀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를 말하고, 마음의 묵상을 소리 높여 찬양했던 다윗처럼 살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표점을 향해 힘을 더 낼 수 있습니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이라고 합니다. 옆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어깨동무하고 소리 내어 울기도, 함께 밥을 먹기도 하는 것,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고, 힘을 내어 기도하는 공동체요 친구인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함께 몸을 내밀어 봅시다.


닫는 말

빌립보서 3: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나는 달려갈 뿐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죄로부터 멀어지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몸을 내밀며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매일 다짐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을 알지만, 영화롭게도 못하고 결국 불의의 도구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나보다 크신 분일뿐만 아니라 우주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십니다. 우리는 내가 보는 만큼, 아는 만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이끄시는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코이라는 물고기처럼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몸을 내밀어보십시오. 살아내십시오. 이끄신 대로 나아가고 멈춰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은혜 베푸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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