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예배와찬양 > 한인예배/설교
    
다윗10 -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사무엘기하 7:1-17)
최영모 [beryoza]   2022-05-29 오후 5:55:19 458

10번째로 다윗 시리즈 설교를 모두 마친다. 마칠 때는 생애 마지막 순간을 다루어야 하겠지만, 그의 흔적은 계속 되는 것 같아서 마지막은 미완으로 남겨두고 싶다. 훗날 다시 다윗을 보면 또다른 느낌으로 그는 다가올 것 같다. 영웅이면서도 평범했던 사람!!! 


다윗10 -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사무엘기 하 7:1-17)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 시리즈 설교는 오늘이 10번째이며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저로서는 다윗에 대하여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은 더 깊이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느낌 또한 어쩔 수 없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레닌은 도스토옙스키를 정신병자로 취급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모순에 빠진 발언을 했고, 사상의 일관성이 없으며, 합리적인 통일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횡설수설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운명을 예리한 시선으로 응시한 도스토옙스키에게 인간은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고, 인간의 역사 또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 소설가가 가장 많이 다루는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그중의 한 명은 분명 다윗일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장 미묘하게 얽혀있고, 복잡하고 난해한 인물이 바로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지닌, 그래서 다윗을 말하다 보면 도스토옙스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횡설수설하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를 통하여 다윗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하게 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복잡한 성격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은 다윗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 다윗을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내 마음에 든 사람이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다윗의 어떤 것을 기뻐하셨을까?’ 다윗 설교를 하면서 저 자신에게 계속 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를 좋아하셨을까?’ 골리앗을 이겼기 때문이었을까요?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할 때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하면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사실 생각만 해도 통쾌합니다.

아니면,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해오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기뻐하셨을까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데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믿음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찾아왔기 때문이었을까요?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옷이 흘러내리거나 말거나 신나게 춤을 추었지요. 그 때문에 아내 미갈과 심한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골리앗을 이겼을 때나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을 때나 언약궤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을 때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었습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아주 특별한 반응을 보이신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통일 왕국을 이룬 직후였으니 다윗의 나이 40세 전이었습니다. 다윗의 말에 하나님께서 크게 감격하시는 데, 바로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말할 때였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고 자신의 궁전을 잘 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은 예언자 나단을 불러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삼하7:2) 다윗 자신은 잘 지은 왕궁에 사는 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허름한 천막에 있는 것 때문에 다윗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겠다고 말하자, 예언자 나단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삼하7:3)

예언자 나단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한 것처럼, 목사에게도 기쁜 순간이 있습니다. 신자가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볼 때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몸일 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퍽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190m나 되는 큰 키에 이바노프 미하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인데, 노숙자였어요. 어느 주일 예배에 그는 다른 노숙자와 함께 우리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제대로 씻지 않은 몸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기 때문에 예배 안내위원들의 제지를 받을 정도였어요. 그러자 그는 그다음부터는 안내위원들보다 더 먼저 나와서 뒷자리에 앉아 예배 시간 내내 코를 골면서 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예배 시간에 잠을 안 자는 거예요. 설교 시간에는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설교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옷차림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허름한 옷이지만 깨끗하게 빨아 입고 교회에 나옵니다. 세수도 말끔히 하고요.

어느 주일에 제가 헌금에 관한 설교를 했어요.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바노프가 저와 악수를 하면서 수줍은 표정으로 속삭이듯 말하였습니다. “설교 말씀 듣고 저도 오늘 헌금을 드렸습니다. 처음으로 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그 순간의 감동이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헌금한 돈은 사람의 눈에는 매우 적은 것이겠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절대로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언자 나단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말을 기쁘게 듣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성전을 짓고 싶은 다윗의 소원과는 달리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거절하셨어요. 왜 거절하는지 그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역대지에서도 거절한 이유가 나오지 않아요.

우리에게도 때로는 순수한 동기와 헌신의 마음으로 하려고 한 것인데 거절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 사업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는데도 우리는 거절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을 당한 순간에는 왜 막으시는지 이유를 모르지만, 나중에 보면 막으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선교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과목 중에 선교현장 답사가 있었어요. 방학을 이용하여 몇몇 선교지를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함께 답사하는 과목입니다. 선교사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교현장을 답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요. 그러나 가난한 신학생 형편으로는 부담해야 할 경비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서 미리 현장을 답사하고 싶습니다. 필요한 재정을 채워주세요.”

하나님은 채워주셨을까요, 아닐까요? 등록 마감일까지 돈을 주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갔을까요, 못 갔을까요? 못 갔어요. ‘하나님은 내 기도에 잘 응답해주셨는데, 왜 막으실까? 하나님은 내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그 무렵에 이런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영락교회 해외선교부에서 전임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선교지를 알아야 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여러 선교지를 돌아보게 해줬어요. 그런데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보니까 신학교 시절 선교현장 답사를 가던 코스와 거의 비슷한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신학교 때 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대로 선교현장을 보도록 해주신 거예요. 그리고 신학생으로 갔더라면 20여 명이 단체로 가야 했는데, 후원교회 사역자로 혼자 가니까 선교사님들이 대접도 잘해주시는 거예요. 더구나 내 돈은 하나도 들지 않고 가니까 기분도 좋잖아요.

물론 이 경우는 기도 응답을 막으셨다기보다는 뒤로 미루셨다고 해야 정확하지만, 보류든 거절이든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생각이 맞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겠지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막으셨을까? 말년에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부탁하면서, 자기가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신 이유를 말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쟁을 많이 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거예요(대상22:7,8).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린 손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건축은 할 수 없다고 해도 건축을 위한 준비는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재료를 다 준비했던 거예요. 백성들에게 다윗이 한 말입니다. “이 성전은 그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집입니다. 나는 내 하나님을 위해 이 집을 짓고자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금과 은, 청동, , 재목, 각양각색의 보석과 건축용 석재 등 필요한 모든 자재를 산더미처럼 준비해두었습니다.”(메시지 성경 대상29:1b,2) 다윗이 다 준비해두었기에 솔로몬은 쉽게 건축을 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천국에서는 솔로몬보다는 다윗이 성전 건축의 영광을 누렸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것을 막으시긴 했지만, 하나님은 몹시 기뻐하시며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이집트에서 올라온 이후로 초라한 장막에 거주하였지만, 이스라엘의 어떤 지도자에게도 집을 지어주지 않는다고 책망하지 않았다.”(삼하7:6,7)

그러면서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에게 했던 것보다 더 큰 약속을 다윗에게 하십니다. “나는 이제 너의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삼하7:9b-11)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네가 내 집을 짓겠다고? 아니다. 오히려 내가 너의 집을 지어주겠다하시는 하나님은 지금 몹시 들뜨고 감격하며 흥분하신 모습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가 너를 위해 과거에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고, 현재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장황한 설명까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동사가 23개가 나오는데, 주어는 모두 하나님입니다. 주절주절 나열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아지는 분 같습니다.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삼하7:10)

이스라엘 민족은 이 말씀을 굳게 믿었어요. 그래서 바빌로니아에 사로잡혀 가서도 자기네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가 잘못했기에 하나님은 잠시 이방 땅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야. 우리는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이런 믿음을 가졌고 실제로 70년 만에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후 500년이 지난 뒤에는 다시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2,000년이나 되었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어요. 방랑의 기간이 다 차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정해진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말이 2,000년이지 이런 기적이 인류의 역사에서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 가운데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이 있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삼하7:16)

이 약속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왕조가 튼튼하게 오래 간다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의 왕이 되시고, 그 나라는 영원히 이어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로마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입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4b,5)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천국의 영광을 보는데, 예수님께서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22:16b)라고 하십니다. 천국에서도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라고 하셨는데, 다윗의 왕위가 천국까지 영원히 이어져 가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이 정말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윗의 인생이 영원히 빛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릴까 말까 하면서 한 주간 내내 갈등했습니다. 하나님과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데다 자칫하면 기복주의 신앙을 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면서 이 일을 드러내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에서 기복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기복을 기대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기에 혹시라도 저의 자랑처럼 들린다면 용서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청년 시절에 다니던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때 교회당 건축 헌금을 하게 되었는데, 백수이다 보니 돈이 없었어요. 나중에 드리겠다는 작정 헌금을 하는데, 봉투에 쓰면서 제 옆에 앉아있는 목사님의 처남이 쓴 것을 슬쩍 보았어요. 그도 대학생이니 돈은 없어서 작정 헌금을 하는데, 저보다 액수를 더 많이 썼어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내가 너에게 질소냐?’ 하면서 다시 액수를 확 올려 썼습니다. 워낙 돈이 없던 시절이라 그 교회를 떠난 뒤에도 수년이 지나고 나서야 갚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나온 뒤로도 어느 교회당을 건축한다고 하면 저로서는 힘껏 드렸습니다. 저하고 전혀 연고지가 없는 교회라도 건축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주저하지 않고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이 움직이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어요. 보통은 선교사라고 하면 후원을 받는 편에 있잖아요. 그러나 건축 헌금에 있어서만큼은 반대였습니다. 한때는 몇 교회나 했을까 하고 세어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순수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이 큰 교회당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건물이 주는 편리함, 유익함을 크게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이유가 아무런 사심 없이 교회당 건축 헌금을 드려왔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설교하면서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을 오늘 처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누리게 될 상급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주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을 성령의 음성으로 들으시라고 부탁하려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하여 마음껏 하나님께 헌신할 때, 누리는 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헌신한다면 그것은 뇌물이겠지만,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 봉사와 헌신을 기억하시고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오늘 본문에 이어서 다윗의 감사기도가 나옵니다. 비록 성전 건축은 막으셨지만,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들은 다윗은 성막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 꿇어앉아 기도합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두 손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강렬한 축복 앞에서 다윗은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은 채, 그만 꿇어앉아 버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도록 못을 박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과 이 종의 집안에 약속하여 주신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삼하7:25)

 

주 하나님, 내가 누구이며 또 내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나를 이러한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습니까?”(삼하7:18b)

다윗이 목동으로 보낸 베들레헴과 왕이 되는 예루살렘과의 거리는 공간으로는 불과 10km도 채 안 되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 데는 무려 2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 긴 시간을 수많은 위험과 추격과 전쟁 중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꼭 붙들어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양을 치는 목동의 자리에서 이제는 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고, 하나님을 위한 집을 하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너의 집을 짓겠다고 하십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을 잘 아시니, 이 다윗이 주님께 무슨 말씀을 더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주님께 무슨 말씀을 더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가 아니라 “‘다윗이 주님께 무슨 말씀을 더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기도합니다. 기도 중에 나오는 다윗이라는 이 단어가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이나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먹고 싶어요하지 않고 영모가 먹고 싶어요하면서, ‘라는 단어 대신 자기 이름을 씁니다. ‘내가 사라졌다대신 영모가 사라졌다한다는 거예요. <영모가 사라졌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 하고 궁금하시면 보여드릴 테니 저에게 오세요. ‘저에게 오세요가 아니라 영모에게 오세요.’

여러분도 홀로 기도하실 때 때때로 라든가 라는 말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기도해보세요. 하나님과 친밀감이 훨씬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그렇게 사랑하여주십니까?” 대신에 하나님, 영모를 그렇게 사랑하여주십니까?” 하면 느낌이 확연히 달라요. 지금 다윗은 그런 마음이 되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성령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에 여러분이 조금은 더 민감해지시면 좋겠어요. 그리하여 그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면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힘을 주시기에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다윗은 양 떼를 몰고 다니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어떤 모양, 어떤 형편에 있었든지 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고, 그래서 지금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다윗은 세상의 적과 원수들에게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영적인 원수 마귀에게서까지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영광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영원한 영광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깨닫는 자에게는 다윗이 누리는 영광 이상의 영광이 됩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다윗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더 잘 알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저와 여러분을 지키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 앞에서 오늘을 기뻐하고 늘 감사하면서 세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IP : 188.187.120.155)
  여러분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17:40-45)-이정진 선교사 (2022-06-12 오후 5:41:56)
  다윗9 - 아버지의 계절(사무엘기하 15:30) (2022-05-22 오후 5:35:19)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2     예수의 초상화(마태복음 16:13-16)     최영모     2022.12.04     13  
  131     성탄을 기다리는 이유 (이사야 61:1-3)     김우영     2022.11.27     36  
  130     인생 설교(사무엘상 17:45-47)_안양 대영교회 한성도 목사     김우영     2022.11.20     45  
  129     하나님을 위한 분노 (민수기 20:6-13)     김우영     2022.11.13     61  
  128     성경 암송이 주는 유익(신명기 6:4-9)     최영모     2022.11.07     50  
  127     길을 바꾼 사람들 (사무엘하 12:7-15)     김우영     2022.10.30     82  
  126     부르신 자는 인도하신다 (창세기 45:1-8)     김우영     2022.10.23     109  
  125     분노를 쌓아두지 마라 (창세기 16:1-6)     김우영     2022.10.16     103  
  124     어쩌히여 네가 화를 내느냐 (창세기 4:1-7)     김우영     2022.10.09     110  
  123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다니엘서 6:1-10)     최영모     2022.10.02     101  
  122     상황을 넘어선 믿음(누가복음 (17:11-19)     최영모     2022.09.25     147  
  121     베드로의 길4(사도행전 5:27-33, 40-42)     최영모     2022.09.18     145  
  120     베드로의 길3(요한복음21:15-19)     최영모     2022.09.11     173  
  119     베드로의 길2(마태복음 16:13-20)     최영모     2022.09.04     206  
  118     베드로의 길1(누가복음 5:1-11)     최영모     2022.08.28     199  
  117     이분은 누구신가? (이사야 63:1-6)     김우영     2022.08.21     178  
  116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출애굽기 33:18-23)     김우영     2022.08.14     1368  
  115     내 이름 아시는 당신께 (출애굽기 33:12-17)     김우영     2022.08.07     1403  
  114     나의 회막 안으로 (출애굽기 33:7-11)     김우영     2022.07.31     210  
  113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출애굽기 33:1-6)     김우영     2022.07.24     210  

    01 02 03 04 05 06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