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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8 – 왕비 열전(역대지상 3:1-9)
최영모 [beryoza]   2022-05-15 오후 5:43:10 303
다윗8 왕비 열전(역대지상 3:1-9)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파란만장한 생애에서 여성에 관한 스캔들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여성에게 보이는 집착은 매우 강렬했으며, 때로 그것은 증오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연구하는 학자 가운데는 심지어 그를 피에 굶주린 섹스광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역대지상 3장에는 다윗의 아내들과 자녀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섯 아내의 이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후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녀를 낳은 아내만 이름이 나오고, 첫 번째 아내 미갈처럼 자녀가 없는 아내의 이름은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아내는 최소한 일곱 명 이상은 있었다는 말이지요.

여러 아내 가운데 우리가 다 볼 필요는 없고, 성경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세 사람, 미갈과 아비가일과 밧세바만 기억하시면 될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이미 말씀드렸어요.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지방 부자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곤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나발이라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다윗을 모욕하면서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했지요. 그리고 며칠 후에 죽었는데, 다윗은 그 사람의 아내 아비가일을 데려다가 자기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다윗의 첫째 아내는 사울 왕의 딸 미갈이었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후 다윗은 사울 왕과 가까운 위치에 있게 됩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하여 심한 질투를 느끼던 차에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지요.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말이 성경에 꼭 한 번 나오는데, 바로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더라는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 재능이 탁월한 남자들을 여자들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오빠 부대라는 말은 있지만 누나 부대라는 말은 없는 것만 보아도 확실하지요. 다윗은 음악 재능이 뛰어난 데다 꽃미남이니 미갈이 반할 만도 했겠어요. 고대시대에 여러 사람에게 소문이 날 정도로 여자가 사랑을 겉으로 드러냈다는 것은 그 여자의 성격이 매우 활달하고 거침이 없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갈은 아버지 사울 앞에서 다윗을 적극적으로 변호할 정도로 자기 주관이 분명한 여자였고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자객들을 보낼 때는 기지를 발휘하여 다윗을 구해줄 정도로 지혜와 용기가 있는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에게 미갈은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죠. 아버지의 원수를 그토록 사랑한 것을 보면 미갈은 다윗을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던 것 같습니다.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는데, 다윗도 미갈을 사랑했을까요? 다윗은 미갈을 그다지 사랑한 것 같지 않아요. 아니면 처음에는 사랑했지만, 곧 사랑이 식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고요. 사랑의 유효 기간이 18개월, 길면 3년이라고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억지로 사랑합니까?” 하고 다윗이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글쎄요. 그렇게 말하는 다윗에게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라떼는 말이야.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결혼했어도 평생을 사랑하면서 살았어.”

아침 묵상 말씀에서도 말했지요. ‘누구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을 발견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한다는 비밀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아서라고 하는 다윗의 말은 허허로운 변명으로 들립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면서 다윗과 미갈은 이산가족이 되고 맙니다. 자기 딸이 청상과부로 사는 것이 보기 싫었을까요? 아니면 딸이 다윗만 생각하고 사는 것이 못마땅해서일까요? 사울은 미갈을 발디엘의 아내로 줍니다. 어떤 곳에서는 이름이 발디라고 나오는데, 이런 차이는 러시아에서 세르게이를 세료자라고도 하고, 에카체리나를 카챠라고도 부른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재혼한 두 사람의 부부 금실은 다행스럽게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미갈도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난 것 같고요. 남은 생을 그렇게 살았더라면 미갈의 젊은 시절 상처도 잘 아물어졌으며 행복하게 삶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강물은 미갈이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울은 전쟁터에서 죽었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오라버니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지만, 실권은 군사령관 아브넬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어요. 아브넬은 남왕국 유다의 왕인 다윗에게 가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갖다 바치겠다고 했어요. 그때 다윗은 한 가지 조건을 말하는데, 첫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헤어진 지 15년도 더 지났고, 이미 지금은 다른 남자하고 잘살고 있는데 말이지요.

요즘도 가끔 매스컴에 보도되던데, 자녀를 버리고 간 후 소식조차 없던 생모가 10, 20년 만에 나타나서 자녀의 보험금이나 퇴직금을 요구한다고 하잖아요. 치사하고 고약한 일인데, 미갈을 돌려달라고 하는 다윗은 그들보다 더 치사하고 더 고약한 것 같습니다.

첫 아내를 못 잊어서 그랬다면 그나마 순정파 남자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이후에 나오는 상황을 보면 다윗의 속셈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사울 왕의 사위라는 정치적인 명분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왕족이라는 신분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나와 연을 맺은 여자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라는 오기 같은 것도 조금은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미갈 부부는 군사령관 아브넬의 전갈을 받는데, 미갈을 다윗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청천벽력같은 말이지만 왕의 권력이 절대적인 시대였던 때라 항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항의하게 되면 남편 발디엘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지니까 미갈은 어쩔 수 없이 복종했을지, 아니면 자신을 찾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있어서 순순히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똑똑한 여인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내가 떠나던 날, 다르게 보면 끌려가던 날, 남편 발디엘은 강제로 이별하는 것이 너무나 슬프기에 울면서 아내를 따라갔습니다. 측은한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브넬은 발디엘이 바후림까지 따라오자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하지요(남편이 울면서 아내를 따라가는 이런 내용을 영화로 만들면 함께 울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그들이 살고 있던 갈림에서 바후림까지는 대략 6km입니다. 그것을 보면 그들 부부의 사랑은 매우 깊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갈은 억지로 다윗의 여러 아내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언약궤, 하나님의 궤)가 있었어요.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은 모두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놓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징이라도 좋으니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모세의 형 아론이 사용했던 지팡이, 그리고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 큰 나무상자 안에 넣어두고는 그것을 하나님의 법궤라고 하였어요.

언젠가 그 법궤를 전쟁 중에 블레셋에게 빼앗겼는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다시 찾아오게 되었어요. 법궤를 옮겨오는 날, 다윗은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데, 잃었다가 다시 찾아오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다윗은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 추었다.’(삼하6:14)

마침 미갈이 창문으로 그 장면을 보았어요. 다윗이 궁전으로 들어오자 사울의 딸미갈이 마중을 나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삼하6:20)

미갈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럽게 말했을까요? 아니었을 거예요. 날카롭게, 그리고 힐난조로 말했을 거예요. 발디엘과 알콩달콩 잘살고 있는 가정을 파괴하면서 자기를 억지로 데려다 놓았어요. 와서 보니 아내와 후궁들이 여럿 있고, 자기에게는 관심도 애정도 없는 거예요. 이러려고 나를 불렀단 말인가?’ 미갈은 자괴감을 넘어서서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떠나오던 날 마차 옆에서 울면서 따라오던 남편 발디엘은 자꾸만 생각나고요. 다윗의 사랑 따위는 개뿔 같은 소리에 불과했던 터라 미갈의 말이 곱게 나가겠어요? 더구나 젊은 시절부터 할 말은 하는 에너지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인 미갈이니 말입니다.

좀 특이한 것은 성경은 이 장면에서 미갈을 사울의 딸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미 다윗의 아내가 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사울의 딸이라고 말하는 성경기록자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무늬만 부부이고, 형식만 왕비이기에 그렇게 한 것일까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미갈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일까요?

미갈은 춤을 춘 그 자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체가 드러나도록 춤을 춘 것을 말하는데, 다윗은 미갈의 말을 살짝 비틀어 주제를 춤으로 돌려버립니다. 춤이 왜 나쁘냐는 식으로 말하는 데, 미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소.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님께서는, 그대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이 있는데도, 그들을 마다하시고, 나를 뽑으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 주셨소. 그러니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그래도 그대가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삼하6:21-22)

 

여러분, 부부 사이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 몇 있는데, 친정이나 시댁을 비하하는 말이 그중 하나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가 아내에게 친정과 관련해서 무슨 말을 했더니 발끈하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에 그런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던 아내였는데, 친정에 대한 불편한 얘기는 참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은데, 제가 놀랐던 기억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사실이라기보다는 조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말도 있잖아요. 신혼부부가 감자를 삶아서 먹게 되었어요. 신부가 감자와 설탕을 내 왔습니다. 남편이 그것을 보고는 감자를 어떻게 설탕에 찍어 먹어? 소금을 가져와.” 그랬어요. 아내가 누가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어? 설탕에 찍어 먹어야지.” 그런 거예요. 남편이 우리 집안은 조상 대대로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었어.” 그러니까, 여자가 당신 집안은 조상 대대로 웃기는 집안이네.” 해버린 거예요. 이렇게 되니 남편이 거칠게 받아칩니다. “그러는 당신 친정은 그 모양 그 꼴이야?” 싸움이 커지면서 결국은 이혼을 했답니다.

지금 다윗이 미갈에게 하는 말은 당신 친정은 하나님이 심판하신 거야. 하나님이 버리시고 나를 택한 거라고.”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미갈에게 모멸과 치욕을 주는 말입니까?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기록자는 이런 일 때문에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삼하6:23) 하면서, 마치 미갈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 같은 늬앙스로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다윗이 그 이후로 미갈과 동침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이전부터, 그러니까 발디엘에게서 데려온 이후로 다윗은 미갈과 전혀 동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영악합니까? 만일 미갈이 자식을 낳는다면 다윗 후계자 서열로 다른 자녀들보다 훨씬 더 유리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사울의 후손이 다시 왕이 되잖아요. 가뜩이나 다윗은 사울의 후손을 구실만 있으면 없애버리려고 하는 마당에 미갈을 통하여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춤추던 다윗을 비난하던 미갈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2009년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미갈의 전체적인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이 부분만 잘라서 보았어요. 성경을 비롯한 종교 경전은 행간에 숨겨진 의미가 많기에 그것을 잘 찾아내야 하는데, 미갈이 다윗에게 받았을 고통이나 재혼한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아픔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갈이 잘못했다고 설교했어요.

13년이 지난 지금, 그때 설교를 들었던 분들에게 제가 잘못 설교했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미갈이었더라도 다윗에 대한 감정은 불편했을 것이고, 그러나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그런 미갈을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다윗 시리즈 설교를 통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윗을 신성하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람이고, 아주 약간 잘못하긴 했지만 철저하게 회개한, 거의 완벽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버렸으면 좋겠어요.

미갈은 다윗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입니다.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라고 보낸 자객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다윗을 피하게 했어요. 친정아버지에게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자기편을 들어준 아내입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라는 말도 있지만, 다윗은 미갈 때문에 살아난 것 하나만 해도 평생 고맙게 여길만하잖아요. 그러나 다윗은 왕의 자리를 향해서 가는데 걸리적거린다면 그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13:22) 맞습니다. 제가 다윗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은 다윗을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마음에 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 또한 얼마든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든다라는 말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다윗 같은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데, 하물며 나의 걸작품인 너희야말로 내가 얼마나 좋아하겠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여간 비운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은 미갈을 그분의 품에 꼭 안아주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내와 생이별을 할 때 울면서 따라간 남편 발디엘의 이름 뜻도 심상치 않습니다. 발디엘은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은 발디엘도 구원하시고 위로해주셨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왕비 밧세바로 넘어가겠습니다. 미갈의 사건 이후 시간이 좀 더 흘렀고 계절은 봄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때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삼하11:2)

다윗이 신하에게 알아보니 그 여인은 지금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야 장군의 아내였습니다.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이지만, 다윗의 사전에는 금지된 욕망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어쩌다 별 다섯 개짜리 고급 호텔에 가서 자면 기분이 좋습니다. 침대가 좋고 시설이 좋아서 그럴까요? 친구에게 그 얘길 하면서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물었더니 친구가 그러더군요. 호텔은 다른 사람의 것이고 어쩌다 가는 것이니 기분이 좋은 것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맞는 것 같습니다. 자기 집에다 호텔처럼 똑같은 침대와 시설을 갖추었다고 해서 늘 잠이 잘 오거나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 다윗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이고, 어쩌다 보는 모습이니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미갈에게 대한 태도도 그렇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높은 자리와 권력을 선하지 않은 목적에 쓸 때도 많았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왕의 힘으로 밧세바를 불러와서 동침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간통의 가장 난처한 증거가 나타났어요. 여자가 임신한 것입니다.

식해 먹은 고양이 속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마시는 식혜가 아니라 생선으로 만든 식해인데, 고양이가 식해를 훔쳐먹고는 그것이 탄로 날까 봐 조마조마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그것이 탄로 날까 봐 당황하고 걱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통한 여자가 임신했으니 지금 다윗이 식해 먹은 고양이 속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기와 속임수라면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지닌 다윗 아닙니까? 그는 밧세바의 태중에 있는 아이를 우리야의 아이로 바꾸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야를 급히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간의 안부와 싸움터의 근황을 물은 뒤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가서 목욕하고 하룻밤 푹 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완전범죄를 꿈꿀 수 있는데, 그러나 왕궁을 나선 우리야는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 앞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도 다윗 자기처럼 넘치는 성욕을 억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착각했습니다.

우리야가 집으로 가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한편으로 당황하고 한편으로 화가 난 채 너는 고단한 여정에서 이제 막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집에 가지 않았느냐?”(삼하10:10, 메시지 성경)고 물었습니다.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했어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삼하11:11)

우리야의 말은 마치 성서 기록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로 들립니다. 최고 통치자가 부하 장군에게 충고 같은 설교를 듣고 있는 처량한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불신자의 충고를 듣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목적한 계획에 착오가 생겼지만, 다윗은 원래의 계획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너무나도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날에는 잔치를 열고서 다윗은 계속 우리야에게 술을 권했습니다. 흠뻑 취하면 우리야는 유혹에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에도 우리야는 집으로 가지 않았고, 다윗은 또 한 번 착각했던 것입니다.

안절부절못하면서 밤을 지새운 다윗은 이방 나라의 왕들처럼 간접 살인을 감행합니다. 군사령관 요압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요압까지 공범으로 만들었고, 너무나 충직했던 우리야는 전사하고 맙니다. 그리고 추모하는 기간이 끝나자 다윗은 바로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꼬장꼬장한 노인 예언자 나단을 시켜 다윗에게 가서 이 일을 책망하게 하셨어요.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삼하12:7b-9a)

나단 예언자가 책망하는 중에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주었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는 이 말을 탈무드는 다윗의 아내인 아히노암이 본래 사울의 아내이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도 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어쩌면 다윗이 후궁으로 삼은 여인들 가운데 있을 것 같습니다.

예언자의 책망을 들을 때 다윗이 보인 반응은 그가 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던가를 보여줍니다. 사울은 제사장들을 학살했지만, 다윗은 자기를 꾸짖는 나단을 죽이지 않고,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시편 51편은 바로 다윗이 회개한 유명한 시편이지요.

 

절대권력을 가진 자리가 위험한 것은 자신이 잘못할 때 그것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적을 받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에 위험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멈출 때는 죄를 지을 때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을 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시편 51편의 내용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가지 말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찟겨진 심령입니다.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 내 입술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내 입술로 전파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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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내 이름 아시는 당신께 (출애굽기 33:12-17)     김우영     2022.08.07     1405  
  114     나의 회막 안으로 (출애굽기 33:7-11)     김우영     2022.07.31     210  
  113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출애굽기 33:1-6)     김우영     2022.07.24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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