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예배와찬양 > 한인예배/설교
    
화해의 아이 (고린도후서 5:16-21)
김우영 [ready4god]   2021-03-14 오후 10:27:44 255

20210314 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화해의 아이

 

고린도후서 5:16-21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여는 말

지난 8일부터 시작된 마슬레니짜 축제(Масленица)(3.8-14)가 오늘까지 끝나고 내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마슬레니짜는 춥고 긴 겨울의 마지막을 알리는 축제로써 풍요의 신에게 살아 있는 사람을 바쳤던 슬라브 민족의 민간신앙에서 비롯되었지만 17세기 이후부터 산 사람 대신 여자 옷을 입힌 짚으로 만든 인형을 불태우는 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추운 겨울과 죽음을 없앤다는 의미가 담긴 이 의식은 카톨릭 교회의 카니발과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여 금식이 시작되는 사순절을 앞두고 기름지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준비해 먹고 봄을 맞이하는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주중에 교회 집사님들이 마슬레니짜 음식인 블린을 만들어주셔서 이 기간을 뜻 깊게 보냈습니다. 아직도 한 겨울인 듯하지만, 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분이 좋습니다.

 교회에는 여러 절기를 구분해서 지키는데 그 기준은 부활절입니다.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뜬 후 처음 맞는 주일을 부활절로 정했습니다. 부활절을 음력으로 계산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70년 동안 바빌론에 포로생활을 하던 중 음력을 사용하던 바빌론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달의 운행과 부활절을 연관 짓는 것은 소생하는 생명, 빛으로 가득한 시간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여러 절기가 결정이 되는데 사순절은 부활절 전에 주일을 뺀 40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 한국을 비롯한 서방 전통의 교회들은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을 기준으로 수요일(Ash Wendnesday)에 시작하는데, 정교회 문화권에서는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을 기준으로 수요일이 아닌 월요일(Clean Monday) 즉 내일부터 사순절이 시작합니다.

사순절을 시작할 때에 재를 머리에 뿌리며 죄를 참회하는 의식으로 시작하든 화해와 정결의 월요일로 시작하든 관점이 다를 뿐 두 가지 전통 모두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저는 특별히 정결이라는 단어를 화해라는 단어와 연관 지어 사순절을 바라봤습니다.

나와 하나님, 나와 이웃사이의 막힌 담과 허물을 해소시키며 그 분 안으로 더욱 거룩하고 정결하게 서는 것이 바로 사순절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 주신 말씀을 통해 사순절과 화해의 의미를 살펴보고 어떤 모습으로 이 절기를 보내야 할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화해의 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돈 리차드슨(Don Richardson, 1935-)은 인도네시아 서부 뉴기니아(New Guinea)의 사위 (Sawi) 부족에게 복음을 전했던 캐나다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사역할 당시 네덜란드령 뉴기니아의 종족 안에는 배반의 문화와 식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외부의 친구를 사귀고 잘 대접하여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신뢰가 쌓일 때 그를 죽이고 먹는 문화였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이런 문화가 도저히 계몽이 되지 않자 그는 돌아가기로 결심하는데, 그때 배반과 다툼, 식인을 멈추게 할 전통이 그들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화해의 아이였습니다. 화해의 아이란 두 부족 간의 충돌이 있을 때에 서로의 부족 가운데 있는 어린아이를 화해의 상징으로 교환을 하는 것입니다. 이 교환을 통해 그들은 서로 화해를 하게 되며 이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화해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교환한 아이를 지극히 보살펴야 하는 의무를 나눠가졌습니다.

리차드슨 선교사는 이 화해의 아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줬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서 이 땅에 화해의 아이로 오신 분임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가르치자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는 화해의 아이를 지극히 보살필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신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리차드슨 선교사는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줬고 그 부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문명과는 거리를 둔 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당신을 알만한 은혜의 파편을 두었다는 것이 리차드슨에게는 큰 은혜가 되었고, 이 책은 선교사들과 선교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식인의 풍습이 남아있거나,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를 사귀지만 온전한 신뢰를 쌓기는커녕 서로를 이용하고 배반하며 반목하는 사람은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진정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들었어도 변하기를 싫어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선 친구를 배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무정하고 고집스런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한국에서 불거지는 L.H공사의 일을 보면 가장 신뢰해야 하는 공기업이 오히려 시민을 비웃듯 배반하고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식인보다 더한 나쁜 일입니다.

미얀마의 사태를 다들 들어 알고 계실 겁니다.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시민을 대상으로 폭력과 살인을 일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청년부 사역을 하며 미얀마 선교를 같이 다녔던 팻승이라는 미얀마 전도사와 양곤에서 선교하고 있는 후배 목사님을 통해 그곳 상황을 자세히 듣게 됐습니다. 선교사님의 집으로부터 불과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해 수십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2,500년 미얀마 불교의 상징인 쉐다곤 등 사원이 가득한 양곤이었지만, 순박했던 미얀마 시민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리고 아팠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다녔던 그 거리에 총성이 울리고 주검이 널렸을 생각을 하니 식인문화가 있던 그들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는 이처럼 대립하고 이용하고 배반하는 문화가 넘쳐납니다. 나의 이익은 절대 양보하지 못하고, 나의 명예와 위신이 도전 받는 것도 싫어하고, 용서하기보다 용서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대적 식인의 풍습이 우리 안에 가득합니다.

화해의 아이로 오신 예수님마저 십자가로 몰아세우던 그 무정함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나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 이 일은 결코 포기할 순 없습니다.

특별히 사순절을 시작하며 우리 안의 죄성과 무정함이 더 번지지 않도록 정결하게 되길 다짐하며 결단해야 합니다. 여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는 하루일 수도 있겠지만, 절기와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의 삶을 정돈하고 바로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 생각대로 삶을 움직이다보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부활의 증인이 되기에 앞서 먼저 우리를 준비시키는 귀한 기간이 됩니다.

 

1. 화해의 아이를 만나라

우리의 일그러진 삶 가운데는 바로 화해의 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지나갔다.’의 원어적 의미는 잠시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이젠 지나가 버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즉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우리가 행하던 옛 습관과 행동들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친구의 것을 빼앗고 이용하며 교묘하게 나의 것을 주장했던 나쁜 행동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여전히 그런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화해되시는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깊어져가는 성화의 삶을 통해 그것 역시 끊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Clean Monday로 시작해야 합니다. 거룩과 경건은 내 안에 채울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해소될 때 완성돼 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내가 재, 즉 먼지임을 고백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 예수님이 더 귀한 분은 없다고 고백할 때 완성됩니다.

:16b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육신의 잣대는 세상의 방식, 인간의 기준을 의미합니다. 내가 상상한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내가 느낀 것이 전부인양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옛사람의 모습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육신의 잣대가 아니라 성령의 잣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화해하자다투고 나서 쉽게 화해를 선언하듯 할 수 없습니다. 화해의 주도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나님과 화해할 순 없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지만, 아무 때나 하나님과 화해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잣대와 성령의 잣대의 차이입니다.

 이사야 55:6-7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만나고 싶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만날 수 있다로 들립니다.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 때 이렇게 판단됩니다. 하지만 7절을 보면 단서가 있습니다. 자신이 걷던 길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돌아올 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59:1-2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2:14(개정)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죄악으로 벌어진 틈을 매울 능력이나 힘이 우리에겐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속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화해는 우리가 필요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막힌 담을 허무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신 화해의 예수님이 서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 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 낭만닥터 김사부 2 대사 중...

세상의 사람들도 이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갖습니다. 의사로서의 삶도 그렇겠지만,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살아가는 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열심히 살아간 다해도 천국에 대한 낭만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도, 그 분이 보이신 사랑의 흔적과 삶의 여유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이유되시는 화해의 주님을 묵상하십시오. 화해의 아이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비워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묵상하고, 우리 삶의 방향과 가치를 다시 세워나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2. 화해의 아이가 되라

사순절 기간 화해의 아이가 되신 주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 또한 화해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8b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경험을 한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주십니다.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며 꽤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해소되지 못한 관계가 계속 마음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설교자도 역시 사람입니다. 말한 대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의 뜻을 확인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말씀이기에 설교를 준비할 뿐입니다. 답은 알고 있지만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아 꽤나 어렵게 설교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보게 됐습니다.

 보통 우리는 먼저 사과하면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고 싶지 않고, 자존심 상하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다툼이 있고, 대립할 때 보면 당시에는 죽자 살자 덤비던 문제였음에도 해소가 된 후 그것을 보면 굉장히 사소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에 휘말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작은 것에 내가 목숨을 걸고 있었구나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습니다. 마음에 불일 듯 끓어오르게 하는 것으로 인해 받는 상처와 손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됩니다.

 :19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할 때 어떤 죄과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화해의 말씀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냥 품어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는 화해는 이런 것이었음에도 제 안에는 해소되지 못한 노여움과 섭섭함이 가득한 것을 보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이렇게 화해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대해여 이렇게 화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의 끝자락,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은 조그마한 말에도 쉽게 상처입고, 손 내밀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1 4:11(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누가복음 7:41-43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 둘이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돈놀이꾼은 둘에게 빚을 없애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 시몬이 대답하였다. "더 많이 빚을 없애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판단이 옳다."

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은 크게 봐주길 원하면서도, 사랑받은 만큼 사랑할 수 없던 저를 보며 많이 회개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힘들었지만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사순절을 맞으며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얽혀있는 관계를 위해 미안함을 전하고 화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밝히는 것은 이 결심을 반드시 지키기 위함입니다.

이미 용서받았던 것은 기억하지 못한 채 나의 유익과 감정, 그리고 무시당하고 가볍게 여겨졌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에 묶였던 저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길 구할 뿐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마음의 무거운 문제로 답답함이 있으시다면 나의 죄에 침묵하시고 그대로 받아주시며, 나아가 스스로 자기 몸을 찢어 용서해주신 화해의 아이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화해의 아이가 되어 그 사랑을 보일 수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 꿈 희망 공감 연인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제가 참 좋아하는 시로 책상 앞에 붙여놓고 늘 보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몸으로 절망의 끝에서 새롭게 생명을 일구셨습니다. 스스로 화해의 아이가 되어 우리에게 오셨고, 그 생명을 산산이 쪼깨어 주셔서 또 다른 생명을 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주하셨던 죽음과 무시, 공포와 허무의 끝자락이 새로운 시작이 된 것처럼, 우리가 마주한 막힘의 담도 새로운 시작을 향한 정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내가 끝이며, 시작이고 정면입니다.

Clean Monday로 시작하는 사순절, 화해의 아이로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우리 또한 화해의 사람으로 바로 서게 되길 축복합니다.

 

(IP : 188.187.1.244)
  참된 부자 - 서머나교회(요한계시록 2:7-11) (2021-03-21 오후 10:39:13)
  첫사랑의 회복을 위하여-에베소교회(요한계시록 2:1-7) (2021-03-07 오후 9:26:22)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17     그리스도인과 질병2(누가복음 11:5~13)     최영모     2021.06.20     13  
  116     그리스도인과 질병1(시편 103:3-5)     최영모     2021.06.06     47  
  115     돌밭도 괜찮아 (마가복음 4:13-20)     김우영     2021.05.23     169  
  114     주님의 이름을 굳게 붙잡은 버가모 교회(요한계시록 2:12-17)     최영모     2021.05.16     169  
  113     아름다운 가정 (에베소서 6:1-4)     김우영     2021.05.09     110  
  112     세 번째 생일(고린도전서 15:20-23)     최영모     2021.05.02     115  
  111     쉬운 십자가는 없다 (마가복음 15:21-27)     김우영     2021.04.25     158  
  110     무명지(無名指) 사랑 (마가복음 15:40-41)     김우영     2021.04.18     145  
  109     고난과 수고 (마가복음 8:31-38)     김우영     2021.04.11     137  
  108     십자가의 목격자 - 베드로 (누가복음 22:54-62)     김우영     2021.04.04     149  
  107     십자가의 목격자 - 바라바 (마가복음 15:6-15)     김우영     2021.03.28     179  
  106     참된 부자 - 서머나교회(요한계시록 2:7-11)     최영모     2021.03.21     214  
      화해의 아이 (고린도후서 5:16-21)     김우영     2021.03.14     256  
  104     첫사랑의 회복을 위하여-에베소교회(요한계시록 2:1-7) [1]     최영모     2021.03.07     214  
  103     중보기도(디모데전서 2:1)     최영모     2021.02.28     237  
  102     이슬처럼 (호세아 14:1-8)     김우영     2021.02.21     261  
  101     절제와 회복 (고린도전서 9:24-27)     김우영     2021.02.14     252  
  100     그리스도인, 두려움에 맞선 자 (여호수아 1:1-9)     김우영     2021.02.07     214  
  99     그리스도인, 세상을 이긴 자 (요한1서 5:1-5)     김우영     2021.01.31     232  
  9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 (히브리서 11:4)     김우영     2021.01.24     233  

    01 02 03 04 05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