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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회복을 위하여-에베소교회(요한계시록 2:1-7)
최영모 [beryoza]   2021-03-07 오후 9:26:22 213

대면예배로 드리는 첫날이다. 서로의 얼굴을 직접 본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처음 예배 ,처음 사랑, 그리고 겨울의 웅크림인지 많은 눈이 내리고...


첫사랑의 회복을 위하여-에베소교회(요한계시록 2:1-7)

 

오랜만에 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여러 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집회 해산이 목적이라면 최루탄을 쏘기 마련인데, 총을 쏜다는 것은 살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어두운 역사를 경험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 시간에 더욱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잠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미얀마에서 폭력사태가 멈추고, 평화가 찾아오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기도합시다.

 

누가 저에게 보내주신 영상인데, 먼저 보시겠습니다. <영상>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눈물샘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테스트해 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나던데,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아름답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가 세워진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교회를 좋아하실까 하면서 기도하는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일곱 교회를 살펴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원과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합니다.

교회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건물을 생각하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 나타났던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교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교회를 말한다는 점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보게 될 첫 번째 교회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주님의 모습이 교회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별을 쥐시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1장 마지막 절에 있듯이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심부름꾼이며,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를 의미합니다.

오른손에 일곱별을 쥐셨다는 말은 주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이들을 꼭 붙드신다는 의미입니다. ‘쥔다hold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가볍게 붙드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붙든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오른손으로 쥔다는 말은 아주 힘있게 보호한다는 것이지요.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께서는 교회의 이곳저곳 세밀한 부분까지 역사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목장 모임에서도 함께하시고, 성도끼리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며 선을 행하는 그 자리에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먼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셔요. 책망보다는 칭찬을 먼저 하십니다. 여러분, 목사도 참 연약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사에게 책망만 하시면 목사는 기가 죽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잘못을 지적하시려면 목사님, 이런 것은 좋은 데하면서 먼저 칭찬을 한 다음에 잘못을 말씀해주시면 참 좋겠어요. 그러면 잘못에 대한 지적을 받아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을 쓴 지그 지글러가 이렇게 말했지요. “지구상에서 30억의 인구가 매일 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40억의 인구가 매일 밤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를 아쉬워하며 잠자리에 든다.”그러므로 우리 모두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아끼지 말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이 말씀은 네가 한 일, 즉 너의 수고와 너의 인내를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고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싶어도 참은 것은 또 무엇입니까? 주님은 그런 것을 모두 아시고, ‘잘했다하시며 칭찬하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 에베소교회가 잘한 것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구별하여 내어 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쫓아낼 때 교회 안에는 혼란도 있었을 것이고, 서로 간의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해 전, 이곳에서 사역하는 어떤 선교사가 천국에 자주 다녀온다는 이상한 여자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도 하고, 예수님과 허그도 한다는 등 완전히 미친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와 그 교회 어떤 이들은 그 여자가 쓴 책을 여러 권 구매하여 사람들에게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책 한두 페이지만 읽어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현혹하게 하며, 심지어 거짓된 그 여자를 러시아로 초청까지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나오던 어떤 부부도 그 영향을 받아 그 선교사의 교회로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자들을 구별하여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특히 니골라당이 하는 일을 미워하였는데, 주님께서도 그것을 미워한다고 하셨어요. 니골라당이란 니골라를 따르는 무리를 말합니다. 니골라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집사로 선택합니다. 스데반, 빌립 같은 분들과 함께 일곱 사람의 명단에는 니골라가 나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하여 선택하였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변질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자기의 주장을 따르게 합니다.

지혜에 충만하고 성령에 충만했지만, 그래서 교회에서 그를 선택하고 봉사자로 삼았지만, 이렇게 변질이 되어 교회의 암초가 되기도 하고,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항존직이라는 단어가 여러분에게는 낯설 것입니다. 항존직이란 교회에서 해마다 임명하는 직분이 아니라, 임명받지 않아도 계속 그 직분을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이런 직분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안수집사는 아직 없고, 서리 집사만 있는데, 서리 집사는 해마다 임명을 받아 집사가 되는 직분입니다. 지혜와 성령에 충만하여 귀한 직분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니골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니골라당이 잘못된 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아예 교회 밖으로 나가서 따로 활동하면 구별을 할 수 있는데, 교회 안에 있기에 구별이 잘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그들의 말이 대부분 비슷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악한 자들이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잘 몰라요. 그들은 교회 안에서 예배도 잘 참석하고, 봉사도 하며, 교회가 어려울 때는 물질로도 아낌없이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악한 자들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악하다고 하셨어요. 이유는 그들의 섬김과 봉사와 수고가 자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교만한 자아의 만족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봉사와 섬김은 주님께서 받지도 않으시지만,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니골라당의 선동에 따르지 않았어요.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그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말씀을 잘 공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 디모데, 아볼로, 브리스길라, 사도 요한처럼 쟁쟁한 주의 사역자들이 목회한 교회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동안 매일 5시간씩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일주일에 다섯 시간이 아니에요. 매일 5시간씩 2년 동안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설교를 들었어요. 저는 이 기록을 보고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와 너무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배우고 설교를 들었기에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이단들과 그들이 주장하는 거짓 교리들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 안에 녹아있는 말씀의 깊이는 엄청나서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인들을 선동하고 유혹하는 이들에게 맞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에베소교회도 나무랄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책망하십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모이는 어떤 만찬회가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한 부부를 앞으로 불러내어서 부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습니까?" 그 부인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이번에는 남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자기가 다시 결혼한다면 지금의 아내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싸움이 시작되면서 아내가 말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당신과 다시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당신은 나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를 망신시켰어요. 그러면 도대체 어떤 년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야? 어디 숨겨놓은 년이라도 있나 보지?"

그러자 남편이 책상 서랍 속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이 여자하고 결혼할 거요."

"도대체 어떤 년인데?" 하면서 아내가 남편의 손에서 사진을 홱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보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결혼할 무렵의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20년 전 우리가 결혼할 때에, 당신은 나에게 가장 훌륭한 여자였고 아내였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점차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고 하고, 자기만을 아는 이기주의자로 변해갔습니다. 지금과 같은 당신이라면 나는 결혼하지 않았을 거요."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사랑이 식었다고 그러실 것 같아요. 주님을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얼마나 뜨거웠고, 얼마나 간절하였으며, 얼마나 신났습니까? 숨을 쉴 때 마시는 공기조차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받아주는 사람에게 전도지를 건네기도 하였고,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주님을 생각하면 감격하고 감사해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분에게 삶 전체를 다 드리고 싶어서 신학교를 갔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양이 차지 않고 부족하다 싶어서 선교사가 되어 타문화권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변했어요. 조그마한 일을 하고서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칭찬해주기를 바랍니다. 돈에는 민감해지고, 손해를 보는 일은 싫어졌습니다.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흘렀던 눈은 사막처럼 건조해졌습니다. 사랑이 식은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저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식은 것은 하나님에게만이 아니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교회가 버렸다는 처음 사랑은 주님에 대한 사랑도 말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습니다.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필요한 것을 줄 수 없을까 하고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저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가난하던 저에게는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줬어요. 그 일은 지금까지 제가 했던 무식한 행동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일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서 사람에 대한 사랑도 식어갑니다. 지난 주간에는 이제 대면 예배를 드리는구나 하면서 생각하는데, 문득 코로나로 힘든 기간에 여러분에게 개별적으로 안부 전화나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목사로서 많은 부분이 부족함을 절감하며 회개합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에게 그리고 저에게 주님께서는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생각해내라라는 단어는 현재 시제로 쓰이는데, 의미는 계속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뜨거웠고, 옛날에 간절했던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지금도 계속 기억하면서 그렇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다시 돌아서라는 거예요. ‘회개한다’, ‘처음에 하던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말들입니다.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에 충성하던 72명의 신하가 두문동으로 들어가 절개를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두문불출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오게 되죠.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72명 가운데 박익이라는 사람에게 다섯 번이나 판서(장관) 자리를 제안하면서 조정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자 나중에는 좌의정(총리급)까지 제안하면서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익은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충신은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고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심부름으로 박익을 설득하러 온 권근이 당신이 벼슬을 원하지 않으면 자식들만이라도 벼슬을 받으라고 해도 그것마저 거절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였으면 이렇게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손짓한다고 돌아보고, 지위와 명예와 재물이 손짓한다고 고개를 돌리는 것은 충신이 할 일이 아니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에 경고하시면서 회개하지 않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에베소교회는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촛대가 옮겨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경고하십니다. 지금까지 베푸신 복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은 다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내가 못나서 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만, 반대로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훨씬 더 나쁜 생각입니다. 나의 나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놀라운 약속을 주셨는데, 우리가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낙원을 다른 말로는 신천지라고 그래요. 한국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나쁜 짓을 많이 하는 그 신천지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살게 되는 낙원을 말합니다.

그곳에 있는 생명 나무는 성경 처음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성경의 마지막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 나무로 다가갈 수 없도록 길을 막아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생명 나무가 바로 주님 자신이라고 하셨어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되면 우리는 바로 예수님을 먹는 거예요. 성만찬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 복을 우리가 누리는데, 감사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고, 기뻐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슬퍼할 일은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가슴이 뛰는 것 같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전혀 없습니까? 그런 분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뻐하시면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 나무가 되시고, 그 열매가 되셔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내 주여, 나의 전부여그분이 여러분의 모든 것이 되는 복을 꼭 누리시기 바랍니다.

(IP : 188.170.74.165)
  화해의 아이 (고린도후서 5:16-21) (2021-03-14 오후 10:27:44)
  중보기도(디모데전서 2:1) (2021-02-28 오후 4:39:50)
 
김숙영
[zealii]
아멘, 말씀 다시 정독했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2021.03.0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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