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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빌립보서 4:21~23)
최영모 [beryoza]   2020-12-20 오후 5:09:14 727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의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성도 간의 만남이 크게 부족한 것이다. 오늘 정천호 장로님의 기도 가운데 "국밥 한그릇과 차 한잔"의 표현이 그래서 더욱 절절이 다가오는가보다.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빌립보서 4:21~23)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주일이며, 오는 금요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크리스마스입니다. 제가 교회를 처음 나간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모두 50여 번 정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어요. 그중에서 올해는 가장 혹독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으로 요즘은 차 안에서 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습니다. 교회당 현관에서는 소피아 선교사님이 해놓으신 하얀 트리를 주시합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볼 때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좀 더 시선을 고정하면서 오래 쳐다보곤 합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도 저와 비슷한 심정일 것 같습니다.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렸고, 심지어는 공산당의 총부리 앞에서도 예배를 멈추지 않았던 한국교회입니다. 그런 우리의 역사인데, 예배를 멈춘다는 것은 많은 성도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줍니다.

 

오늘 우리는 빌립보서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이다 보니 마지막 내용은 문안을 전하면서 축복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계절의 겨울은 낭만이라도 있지만, 신앙의 겨울은 참 가혹한 것 같은 요즘에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생각해봅니다. 금지된 신앙을 전한다는 이유로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겨울의 감옥은 매우 추워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자기가 맡겨둔 외투를 갖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인권이니 뭐니 그런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던 시대입니다.

언제 재판을 받고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바울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이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 기쁨을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문안 인사 속에 그 해답이 보입니다.

 

1. ‘나와 함께 있는 교우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하였어요. 함께 있는 교우들에서 교우는 바울과 동역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동역하는 이들이 있기에 바울은 외롭지 않고 기쁜 거예요. 서로 교제하고 동역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거예요.

북극과 남극 중에 어느 곳이 더 추울 것 같습니까? 흔히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지요. 그래서 남극보다 북극이 더 추울 것 같지만, 사실은 남극이 훨씬 더 춥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까 북극의 최저기온은 67도이고, 남극의 최저기온은 86도입니다. 물론 영하입니다. 남극이 20도나 더 춥습니다.

북극에는 북극곰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디스코드 안에서 수고하는 북극곰(오세윤 형제) 말고요. 남극에는 펭귄이 살고 있습니다. 펭귄에게는 두꺼운 지방과 빼곡한 깃털이 있어요.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펭귄들이 겨울을 견뎌내고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바로 허들링(huddling)이라고 합니다. 매서운 바람을 견뎌내기 위하여 그들은 원형으로 겹겹이 섭니다. 서로 뭉쳐 체온을 나누면서 열의 손실을 막는 것이지요. 밖에 있던 펭귄이 체온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안으로 가고, 안에 있던 펭귄은 밖으로 나와 바람을 막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겨울을 이겨내고, 알을 낳으면서 육아를 합니다.

남극만 추울까요? 우리의 삶도 춥습니다. 코로나의 추위도 대단합니다. 그럴 때 펭귄처럼 우리의 마음도 서로서로 닿게 되면 훨씬 더 쉽게 추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만 믿음의 겨울을 이길 수 있고, 고난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거예요. 고립으로 가는 것은 전혀 지혜롭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동역자들, 함께 하는 형제들과 성도들을 자주 말하는 것도 그들과 어려움을 나누고, 고난을 함께 할 때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하였어요. 그리고 그것이 바울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2.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하였어요. 바로 앞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나 성도라는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에 기쁘고, 성도이기에 행복합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집사, 장로, 목사, 권사 이런 직분을 맡지 않고 있는 이들을 성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도 성도요 장로도 성도요 집사도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성도입니다.

성도란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하여 불러내셨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김우영 목사님의 사모님이 폭탄선언을 하였습니다. 김 목사님이 야동을 자주 본다는 것이었어요. 야동을 보다가 사모님께 들킨 적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옆에 있던 저를 비롯한 다른 선교사들은 그 이후에 이어질 반응으로 눈들이 크리스마스트리 등처럼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이어지는 사모님의 말씀은 김 목사님이 보던 야동은 야구 동영상(야동)이었다고 하여 우리는 크게 웃었습니다. 하여간 그 야동을 보았던 저 야동을 보았던, 성도란 어떤 도덕이나 어떤 윤리보다도 앞서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고,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요즘 가정기도 가이드의 성경 본문은 역대지하입니다. 오늘까지로 다 끝나는 이 책은 유다 왕들의 행적을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선한 왕들이 있고, 악한 왕들이 있어요. 악한 왕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래서 악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선한 왕은 언제나 선하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실수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선하다고 평가해주십니다.

왕들의 역사에서 보는 또 하나의 사실은 선한 왕에게서 선한 아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악한 아들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악한 왕에게서 악한 아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선한 아들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선하다고 해서 아들이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악하다고 해서 아들이 반드시 악한 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원은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목적과 사명을 알았기에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20:24)라고 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명을 갖고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 목적과 이 사명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이런 질문을 늘 하나님께 던지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깨닫게 하실 것이며, 여러분의 길을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3.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문안합니다하였습니다.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성도들이 있었고, 그들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문안을 전합니다. 바울은 그들 때문에 기쁩니다.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로마 황제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왕궁에서 사는 사람도 있지만, 황제의 측근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요.

우리 시대에도 경험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가족이니 친척이니 하면서 어떤 이득을 얻는 이들을 보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의 기억입니다만, 대통령 비서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수시로 선물들이 잔뜩 들어오는 것이었어요. 대통령 비서도 아니고, 비서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만 해도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의미겠지요.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사람들은 이제 바울을 통하여 복음 전하는 길은 막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자이기에 왕궁 안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일반 잡범들과는 달라요.

베드로 바울 요새 안에는 황제가 통치하던 제정 러시아 시절에 사용하던 감옥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는다고 아무나 그 감옥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정치범들이나 귀족들이 그 감옥에 갇힙니다. 도스토옙스키나 막심 고리키, 그리고 레닌의 형 같은 정치범들이 그 감옥에 갇힌 기록이 있습니다. 사기꾼이나 소매치기 같은 이런 잡범들은 그런 감옥에 가지 못합니다. 감옥이라고 다 같은 감옥이 아닙니다.

바울도 왕궁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문이 납니다. 로마의 시민권자요 대단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 식민지 유대 나라의 신흥 종교에 빠져 메시아를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그러면서 왕궁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바울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바울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은 간단하게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이라고 썼지만, 황제의 측근 중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선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모든 영혼은 동일하게 귀합니다. 황제는 귀하고, 노예는 시시하고 그렇지 않아요. 부자는 귀하고 가난한 자는 천하고 그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귀합니다. 그러나 선교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또 제 얘기를 하여 죄송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사병으로 복무하였지만, 장교처럼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제가 한 중대(200)에서 교육생들의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런 위치에 있으면서 제가 교회에 나가니까 많은 교육생이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심지어 새벽기도회에도 몇십 명씩 데리고 나갔습니다. 군대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아침 6시에 점호를 하면서 인원을 점검하는 데, 몇십 명이 그 시간에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명만 안 보여도 부대가 온통 뒤집힙니다. 도저히 쉽지 않은 것이지만 우리는 미리 허락을 받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보니까 그들 중에는 신학교에 간 사람들도 있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힘을 가진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선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영향력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믿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전도하기에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일터나 조직에서 어떤 권한이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권한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섬기는 일에 사용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권한이나 특권을 주신 것은 갑질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목에 힘주면서 뇌물이나 선물을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이고, 전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권한을 잘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큰 권한을 주십니다,

 

바울은 황제의 측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도 기뻐합니다. 250년이 지난 뒤에는 로마의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고(313), 그로부터 80년도 되지 않아 기독교는 마침내 로마를 정복합니다(392). 로마의 국교가 되었어요. 그 사실을 바울이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감옥 안에서 춤이라도 추었을 것입니다.

 

몸은 감옥에 있어도 마음과 영혼은 하늘의 은혜를 누리기에 바울은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하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처음 시작할 때도 은혜로 시작하고, 마칠 때도 은혜로 마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마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 또한 한 해를 시작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하고,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올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마치기를 축복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그분만이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풍요하게 만드실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삭막하게 여겨지는 성탄절이지만,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처럼,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도 감사합니다. 이 일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궁핍함도 감사합니다. 이 일로 주님께 더 많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긴장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일로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IP : 93.185.3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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