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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심(빌립보서 4:10-20)
최영모 [beryoza]   2020-12-06 오후 5:24:46 168

오늘도 디스코드를 통하여 드리는 예배. 설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고들 한다. 러시아어 청년예배와 겹쳐지는 시간으로 인한 인터넷 사정인지, 아니면 나의 노트북 상태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맥이 빠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심(빌립보서 4:10-20)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당에 오시게 되면 두 번째 촛불이 켜진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분들에게 대림절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에게 버림을 당한 개를 유기견이라고 하지요.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던 한 마리의 유기견이 어떤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는 버림받은 개를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리고 가서 키웁니다. 얼마 후에 그 남자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지요.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트레이디라고 하는 것처럼, 그 개는 퍼스트 펫이 됩니다. 그 개가 만난 남자가 바로 이번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입니다. 유기견이었지만 주인을 잘 만나게 되니 퍼스트 펫이 된 것처럼, 죄인인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신분이 변합니다. 만남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생을 살다 보면 짧게 스친 만남도 있고, 오랜 시간의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의 만남이라고 하더라고 길게 이어지는 만남이 있고, 반대로 오랜 시간의 만남이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냥 그렇고 그런 만남도 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만남은 짧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고린도에서는 1년 반이나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서 머문 기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나 고린도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런데도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아름다운 동역의 관계로 계속하여 만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선교사이고, 빌립보교회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선교사인 저에게는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관계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선교사를 돕고 후원하는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심정이 잘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선교사의 심정으로 본문 말씀에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저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절기 때마다 EMS를 보내주시는 교회가 있어요. 규모가 크지 않은 지방에 있는 교회인데, 그런 방법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참 고맙게 여겨집니다. 이곳에서 잠시 신앙생활을 하셨던 집사님 부부는 해마다 연말이면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오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동안 우리 교회에서 일만 원 선교 후원하기 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가족 수대로 일만 원씩 후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는 만남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곳 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정성껏 선교비를 보내주시는 분들과도 동역의 관계로 만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을 떠나실 때 우리에게 당부하신 말씀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명령을 대위임(Great Commission)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시는 분들하고의 만남이나 교제는 선교사인 저에게 큰 기쁨이자 은총입니다.

바울이 선교비를 받으면서 기쁘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 충분히 공감합니다. 빌립보교회가 전달한 선교비를 받으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좀 더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제가 메시지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메시지 성경은 일상에서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성경입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기쁩니다.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한 것은, 여러분이 다시 나에게 큰 관심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거나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선교비를 받고 나서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말은 당연하지요.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하는 말을 들으면 이상해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정말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하고,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적은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합니다.”

선교비를 받으면서 기쁘다고 하더니, 곧바로 나는 바라는 것이 없어요, 나는 어떤 형편이든지 만족합니다하고 말합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선교사가 후원자에게 이런 말을 하면 후원자는 어떤 기분일까요? ‘왜 이래? 후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아냐?’ 이럴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말을 보세요. 더욱 가관입니다.

 

나는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많이 가졌거나 빈손이거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후원자가 보기에는 싹수없는 말로 들리지 않을까요? ‘없어도 행복하다고? 그럼 없이 행복하게 사역하세요. 우린 뭐 돈이 넘쳐나서 후원하고 있는 줄 아는가 보네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바울이 이어서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완전히 사람 헷갈리게 합니다.

내 말은 여러분이 나를 많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나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내가 고난당할 때 여러분이 나와 함께 해준 것은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협력하고 도움을 준 교회는 여러분밖에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여러분은 나에게 두 번이나 도와주었습니다.”

 

나는 없어도 행복하다고 말하고는 빌립보교회가 자신을 도와준 모든 것을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도와준 것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듣는 쪽에서는 뭐야? 조금 전에는 없어도 행복하다면서. 꼬리를 내리는 거야, 뭐야?’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자신이 고난당할 때 빌립보교회가 했던 일을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친구는 운동을 함께 하는 친구입니까? 음식을 함께 나누는 친구입니까? 그가 하나를 주면 나도 하나를 주는, 소위 give and take의 친구입니까? 그러나 이런 친구 말고요. 고난을 나누는 친구, 내가 고난을 겪을 때 고난의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친구라고 한다면 얼마나 소중한 친구입니까? 바울은 지금 빌립보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헌금을 바라지 않습니다. 선교비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요? 고마우면 고맙다고 하고 끝내지 왜 선교비 없어도 충분하고, EMS를 보내주지 않아도 만족하다고 자꾸만 말합니까? 바울은 왜 이렇게 우왕좌왕, 갈팡질팡, 허둥지둥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 가운데 디다케라는 문서가 있습니다. 그 문서에 보면 교회 지도자들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두 종류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울처럼 떠돌아다니는 순례지도자들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요한과 디모데처럼 한곳에 머물며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떠돌아다니는 지도자들에 대하여 디다케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그들이 한곳에 오래 머물려고 하면 거짓 지도자로 생각하고, 또한 떠날 때 돈이나 무엇을 요구하면 거짓 지도자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돈이나 무슨 대가를 요구하면 가짜라는 거에요.

전도자와 돈에 대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지요? 만일 선교비를 받아서 기쁘다고만 하면, 사람들은 저거 거짓 사역자 아냐?’ 하고 의심할 것입니다. 반대로 선교비를 받고 시큰둥하면 후원해준 교회가 시험에 들 수도 있어요. 돈에 대한 초대교회의 그런 분위기를 알게 되면 바울이 빌립보교회에서 돈을 받으면서, 왔다갔다 하는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짓 사역자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십니까? 저는 두 가지로 판단합니다. 하나는 기도해준 대가로 혹은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사역자는 가짜로 봅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데, 꽤 명성이 알려진 설교자로서, 그 사람을 한 번 초청하려면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내야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는 아니지만, 최근에 매스컴에 오르내린 어느 종교인을 한 회사에서 초청하면서, 300만 원을 강사료라고 하니까 그쪽에서 적다고 연락이 왔답니다. 그래서 500만 원을 드렸다고 해요.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건 모두 가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 하나 거짓 사역자의 기준은, 자기 자신은 마치 하나님에 대하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는 평생을 고민하고 씨름해도 사람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이것을 반지름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반지름이 크면 클수록 반대편의 반지름도 커집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모르는 부분도 더 많아지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입을 다물어요. 그런데 조금 아는 사람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떠듭니다.

선교사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종종 봅니다. 선교사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러시아 선교, 이렇게 해야 한다하고 떠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오래된 사람은 러시아 선교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하여간 왔다 갔다 하는 바울의 심정을 아시겠지요? 선교비를 받는 것은 기쁘지만, 그렇다고 하여 기쁘다는 표현만 노골적으로 하지 못하는 그 심정을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선교사의 그런 심정을 후원자나 후원교회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교회당을 건축할 때, 하나님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돈을 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는 거예요. 건축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관심을 가지며 물어보면 혹시 좀 도와주려나 하고 자세하게 설명도 해보았는데, 그냥 듣고만 가버립니다. 그럴 때는 좀 서운하기도 했어요. 도와주면 기쁘지만, 노골적으로 내색하지 못하는 그 심정이 마치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빌립보서 4:13의 말씀이 좋아서 암송하였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 믿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구절도 아닙니다.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선교비로, 기도로, EMS로 참여하는 이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20:21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헬라어로 비교급을 쓸 때 같은 내용을 비교하는 단어와 다른 내용을 비교하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요한복음 20:21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같은 내용을 비교하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의미냐 하면,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순종하여 이 땅에 온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은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께서 맡기신 대위임에 순종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19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위임에 순종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되고, 그렇게 참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풍성함으로 채워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 되는 말씀이며,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도 선교하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선교지에 있는 교회라고 하여 그저 도움만 받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보다 더 어려운 교회를 돕고, 타 문화권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를 돕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잘 모르는 선교사라 하더라도 우리 교회를 방문하면 붙들어서 말씀을 전하게 하고, 식사라도 대접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그렇게라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도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오시는 그분을 어떻게 맞이할까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고, 선교사를 후원하기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칭찬받을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그렇게 참여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채워질 것이라고 빌립보서는 약속합니다. 이 약속이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루어지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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