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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빌립보서 4:8~9)
최영모 [beryoza]   2020-11-22 오후 9:14:12 162

오늘부터 주일예배를 1월 15일까지 온라인예배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일이 어제 갑작스럽게 정해지는 바람에  설교 내용을 많이 축소하여야 했다. 아무래도 온라인 설교는 인터넷 사정도 그렇고 하여 짧은 것이 좋을 것 같아서다. 아래 내용은 미리 준비된 설교의 텍스트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빌립보서 4:8~9)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며, 교회력으로는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일부터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관, 그 사람의 가치관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미래도, 그 사람의 운명도 정해지게 되고요.

우리 교회는 장로교회이지만, 교단 가운데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이 감리교회를 시작한 분이 요한 웨슬레입니다. 성결교회도 요한 웨슬레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교단입니다. 영국식 발음으로는 요한 웨슬레, 미국식 발음으로는 존 웨슬리라고 하지요.

요한 웨슬레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할아버지도 목사였으며, 증조할아버지 또한 목사였습니다. 이렇듯 뿌리 깊은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웨슬레는 하나님의 계명만 잘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며,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돌보고, 매우 경건한 생활을 하며, 선행을 힘써 실천하였습니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웨슬레는 영국성공회에서 성직자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추천으로 그는 아메리카에 있는 인디언들에게 선교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대였습니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자 웨슬레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이대로 죽으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배에 모라비안 교도들 2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모라비안은 가톨릭교회의 교황이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다가 핍박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선교에 크게 힘을 쏟는 교단입니다. 심한 풍랑 앞에서도 모라비안 교도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으로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웨슬레는 그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웨슬레는 인디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사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기쁨도 없었고 평안도 없었습니다. 사역은 피곤하였고, 보람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레는 구원에 대한 확신도 약한 데다 신앙의 나태함을 느끼면서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런던 시내의 한 거리를 지나가는데, 조그마한 교회에서 집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가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마침 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었는데, 그 순간 웨슬레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말씀에서 강력한 죄 용서에 대한 확신을 느꼈습니다.

이 체험을 하고 나서 웨슬레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이전과는 다르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성공회에서는 웨슬레가 모든 교구에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못 하게 되자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하면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야외에서 전도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감리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웨슬레를 위하여 세워진 기념비가 있는데, 그 기념비에는 웨슬레가 한 세 마디 말이 적혀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은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해 나가신다라는 말이며, 마지막 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입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팔을 높이 들고 승리의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라고 외쳤답니다.

웨슬레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많고 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고백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것 때문에 기뻐하며 감격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오늘의 성경 본문을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8~9)

9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앞에 그리하면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그 의미는 어떻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함께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자세가 두 개의 동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각하십시오라는 동사와 실천하십시오라는 동사입니다.

 

먼저 나오는 동사는 생각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핀란드의 헬싱키를 관광하는 사람이 꼭 가는 관광 명소가 있습니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 교회가 자리 잡고 있어서 암석 교회라고도 합니다. 세계 100대 아름다운 교회당 리스트에도 들어갈 정도로 멋지게 지어진 교회당입니다.

이 교회당 건축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핀란드 교회가 헬싱키 시장에게 시내 중심부에 교회당을 건축할 땅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시장은 난색을 보이면서, 중심부에서 줄 수 있는 땅은 암석과 돌덩어리가 박힌 땅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암석을 파내고 건물을 짓자니 건축비가 천문학적으로 많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땅에다 교회당을 건축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여러 건축 설계사들이 그 땅을 보면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여기에는 도저히 교회당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티모와 투오모 두 형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 아름다운 교회당을 지을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설계 공모작을 내었고, 그것이 당선되어 그토록 멋진 교회당이 지어진 것입니다.

불리한 환경을 보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가치 있는 일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져 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부터 열어보고, 급하게 밥을 먹고, 어디로 끌려가는 사람들처럼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고, 회사에서도 생각 없이 일합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생기면 회사 탓, 환경 탓,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사람을 통해서는 아무런 역사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하와가 유혹에 넘어간 것을 보면 하와가 생각하지 않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와가 하는 말을 보면 그녀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진지함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하와는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변경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유혹에 쉽게 넘어갔어요.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스코트 팩은 하와의 이런 모습을 분석하면서 교만이나 불순종이나 미움이나 이런 것들은 원죄가 아니라, 원죄가 낳은 결과일 뿐이다. 원죄는 바로 생각을 게을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삶도 아름답습니다. 진리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삶도 진실합니다. 의로운 것을 생각하며 살면 그 삶은 의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생각하십시오라고 하였어요. 생각에 게으름을 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본문에서는 생각해야 할 몇 가지를 나열합니다. 그러면서 그것들 앞에 무엇이든지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어떤 상황이든지, 혹은 누구를 만나든지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그랬지만, 여기서는 아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말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하거나, 회사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가족 사이의 관계가 어려우나, 학업이 마음대로 잘 안되거나, 끊임없이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거나 상관없이 우리가 따라야 할 윤리요 실천해야 할 덕목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나오는, ‘무엇이든지 참된 것에서 참된 것이란 진실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다음 경건한 것은 천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옳은 것이란 일반 사람들의 상식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결한 것이란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것, 명예스러운 것,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굳이 성경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양심 또한 이런 것들이 옳다고 동의할 것입니다.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덕목들은 바울 당시에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하던 것들입니다. 이미 지식인들이 일반 대중에게 여러분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교훈이요 윤리였어요.

 

그러면 사도 바울은 왜 일반 사람들이 가르치던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을까요? 사회에서 옳다고 제시하는 것들을 왜 여기에서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윤리를 실천함으로써 본을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신자로 살지 말고 일터에서나 학교에서도 불신자들이 볼 때 역시 그리스도인들은 남다른 도덕성을 갖고 있구나 하고 느끼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들과 차이 나는 것이 고작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초라한 모습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닷물은 짭니다. 그렇다고 그 안에서 사는 물고기도 짠가요? 아닙니다. 짠 물에서 살아가도 짜지 않은 물고기처럼 세상에서 살아도 세상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찰에 몰래 들어가서 불상을 파괴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염병이 퍼지는데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집회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 정도로만 살아내도 하나님은 잘한다고 하실 거예요. 그러면서 진지하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히브리서의 표현처럼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서 살면(3:1)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깨닫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하십시오라는 동사에 이어 두 번째 나오는 동사는 실천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실천해야 하나요?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들입니다. 배운다는 말은 생각을 통하여, 이성을 통하여 내가 알아가는 것입니다. 받는다는 것은 가슴으로, 그리고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를 통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배웠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배웠고,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디(D.L.Moody)에게 물었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의심이 생기고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무디는 대답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성경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전도를 하든지, 아니면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주세요.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봉사하고 전도하십시오, 그 후에 다시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되고 깨달아질 것입니다.”

성경이 이해되지 않을 때 기도하십시오, 혹은 지도자에게 물어보십시오 하지 않고 나가서 봉사하고 전도하면 이해된다는 말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이 침체되는 사람들을 보면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성으로는 이해했어요. 그러나 거기까지만입니다. 받는 것으로만 그치는 사람이 있어요. 마음으로는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듣고 나면 그뿐,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체험도 했어요. 그러나 체험을 자랑하기만 하지, 그 체험을 남을 섬기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선불교의 수행자인 혜민 스님이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 건물주로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는 집도 남산이 전경에 보이는 삼청동의 좋은 집이었고요. 저는 스님들은 모두 절에서 사는 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그 스님은 평소에 무소유를 강조하였던가 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무소유가 아닌 풀(full)소유였다는 것 때문에 조롱과 비난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행동과 삶으로 실천되지 않은 다른 종교인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사를 읽으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제 마음 한구석에도 소유에 대한 욕망이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도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설교한 대로 살지 못하고, 설교한 대로 행하지 못하는 고민이 늘 있습니다. 바울처럼 여러분에게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대로 실천하라고 하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설교를 중단하고 자신의 정진에 힘쓰면서 살고 싶은 소원도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에 오늘도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이 말씀은 나 자신도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고민을 멈추어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관심에서 이미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말씀이 생활화되고, 말씀이 인격화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한국에서 고등부 사역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3이면 입시 준비 때문에 매우 신경을 많이 쓰는 시기입니다. 그때 부모님들의 고민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3 자녀가 딱하게 보여서 공부하다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게임을 하라고 하고 한대요. 그런데 게임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딱 그치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하고 한참을 게임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가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모이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소그룹 모임도 사라졌습니다. 예배를 쉬는 것에는 매우 빠르게 적응을 하는데, 다시 시작할 때는 잘 적응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마치 게임을 하다가 다시 공부할 시간에 얼른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과 같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500년마다 한 번씩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500년이 되었을 때는 교회가 중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던 때였습니다. 1000년이 되었을 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1500년이 되었을 때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2000년이 될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집니다. 저는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에 획기적인 변화와 함께 교회 안에서도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신앙의 시간과 장소는 주일, 그리고 교회당이 중심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보내는 삶의 현장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끼며, 저는 여러분을 황량한 광야로 내보내는 심정입니다. 그 이유는 거룩을 사모하며 경건을 연습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절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구조 속에서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주님을 따르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하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하며, 훨씬 더 우리의 선함을 드러내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터넷 뉴스를 읽다가 한 대목에서 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30대 남성의 집에 하늘에서 작은 축구공만 한 운석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운석이 매우 오래된 것이었고, 값도 대단히 비쌌습니다. 그 남성은 횡재한 것이지요. 제가 미소를 지었던 것은 횡재한 그 남성이 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운석을 팔아 번 돈의 일부를 보육원에 주고, 마을에 교회당을 짓겠다고 하였어요. 그것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서는 우연을 가장하여 그 집에 운석을 떨어뜨리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선한 일을 먼저 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것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 참 멋있지 않습니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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