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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길(빌립보서 4:6~7, 창세기 47:7~10)
최영모 [beryoza]   2020-11-08 오후 4:15:28 27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길(빌립보서 4:6~7, 창세기 47:7~1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여성 박지선 씨가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스스로 생명을 끊었습니다.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고,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던 연예인이었기에 그녀의 사망 소식은 우리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하면서도 스스로 생명을 끊어야 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고통이 그녀에게도 있었구나 하고 짐작하게 됩니다.

개그맨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이 많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마구 먹는 연출을 해야 하는 장면을 보면 웃음도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청자들이 웃을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이 망가지고 고통받는 것은 상관없다는 자세가 제가 보기에는 대단해 보입니다. 설교할 때도 제가 좀 망가지면 여러분이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렇게라도 하여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은데도 잘 되지를 않아요. 그러니 개그맨들이 얼마나 대단해 보입니까?

개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찰리 채플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연기한 천재였지만, 그의 연기 뒤에는 비극과도 같은 삶이 있었습니다. 삶이 순탄치 않았고, 고난이 늘 함께 있었지요. 가까이서 본 인생은 비극이라는 말을 그래서 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고통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그의 삶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하였던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야곱도 선두 그룹에 속할 것입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나긴 하였지만, 동생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축복을 받고 싶은 나머지 아버지와 형을 속이면서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그는 집에서 도망가야 했고, 외삼촌에게 가서 양 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멀쩡한 집과 가족을 놔두고 친척 집에서 양 치는 일을 하면서 머슴살이하는 자기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을까요?

마침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됩니다. 보수 없이 7년 동안 일을 해주면 딸을 아내로 주겠다는 외삼촌과의 약속을 믿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고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뜨니 옆에 누워있는 신부는 자기가 사랑하는 둘째 딸이 아니라 언니인 첫째 딸이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겠습니까? 외삼촌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기 결혼을 당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외삼촌에게 따지고 대들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시 7년을 더 일한 후,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행복하였지만, 그러나 그 행복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두 번째 아들을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일찍 떠나보낼 때 느끼는 상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런가 하면 야곱은 또한 자신의 딸이 성폭행당한 것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딸 디나가 세겜성을 구경하러 놀러 나갔다가(요즘으로 치면 시골 처녀가 도시 구경을 나간 셈이겠지요) 그만 세겜 통치자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였습니다. 디나의 오빠들은 작전을 세워 세겜성의 남자들을 다 죽임으로 동생의 복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야곱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딸은 성폭행을 당하였지요. 아들들은 대형사고를 쳤지요. 결국은 겨우 자리 잡고 살려는 삶의 터전을 두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듯이 떠나야만 했습니다.

 

열두 아들 가운데 유난히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어느 날 짐승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죽었다고 거짓으로 꾸민 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대로 믿었지요. 보통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도 너무 약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은 이들의 고통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야곱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13년 동안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인생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부모님이 특정한 아들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긴 세월 마음 앓이를 하면서 사는 형제들을 보았습니다. 사기 결혼에 속아서 그 집안이 풍비박산 난 집도 보았습니다.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나서 우울증으로 심하게 고통 하는 이도 보았습니다. 어린 자녀를 잃고 나서 평생을 아픔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도 보았습니다.

야곱이 겪은 일 가운데, 하나 정도만 겪어도 우리는 평생 그 고통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야곱은 걱정과 근심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실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었고, 그 아들 덕분에 야곱은 이집트의 왕 파라오 앞에 서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와 가족들을 다 모셔오게 하였고, 요셉은 파라오 왕에게 아버지를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야곱이 파라오 왕을 만나자 그를 축복합니다. 그 당시 이집트의 왕은 백성들이 모두 신이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신과 같이 여기던 그런 왕을 야곱이 축복하는 거예요. 축복이란 복을 빌어준다는 의미인데,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산다고 믿기에 왕에게도 거침없이 축복합니다. 그러니까 파라오 왕을 축복한다는 것은 야곱이 나는 너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야.”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파라오 왕으로서는 기가 막힙니다. 왕인 자기 자신을 다들 신으로 떠받들고 있기에 그 누구도 왕인 자기의 축복을 받으려고 하지 자기에게 축복한다고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데 처음 만난 시골뜨기 영감이 와서 자기를 축복하는 거예요.

파라오 왕이 기가 막혀서인지, 아니면 야곱이 가소로웠는지 야곱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는가?” 불리하면 나이를 들고나오는 어느 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정서를 파라옹 왕에게서도 봅니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 야곱이 대답합니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130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에 비하면 130년은 별로 많지도 않은 나이죠. 그러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파라오 왕이 깜짝 놀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이집트 사람은 제일 오래 산 사람이 110년 정도인데, 야곱은 훨씬 정정해 보이는데도 13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나이도 조상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하니 왕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더구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고 하는데, 얼굴의 표정은 여유가 있어 보이고 평안하게 보입니다. 왕이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야곱은 왕의 기를 완전히 죽여놓습니다. 다시금 그에게 축복하고 나오는 거예요.

야곱의 축복을 파라오 왕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야곱의 그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기근이 심해지고 이집트는 물론 그 주변 나라들까지 모두 죽겠다고 아우성일 때 파라오 왕은 돈과 가축과 땅을 그야말로 싹싹 쓸어모으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스스로 와서 왕의 노예가 됩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선포하는 축복을 절대로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한 방법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도 매일 축복의 기도를 해주세요. 자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어주는 여러분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인생을 보면 절망적인 상황들이 무수하게 많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가까스로 넘어서면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고난은 야곱의 생애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또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서 보듯이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기다리면서 그 사람을 다듬어 가십니다.

야곱이 인생 말년에 파라오 왕 앞에서 평안한 모습으로 왕을 축복할 수 있는 확신, 자신감,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더라는 깨달음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며, 미래 역시 함께 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걱정, 무슨 염려, 무슨 두려움이 있겠어요?

 

야곱이 깨달았던 하나님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신 그들을 굳게 세워주십니다. 굳게 세워주신 뒤에는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며,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영광스럽게 완성하게 해주십니다”(8:30).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8:31)

야곱이 그의 생애를 통하여 이 진리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파라오 왕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 떨거나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사람들이 신이라고 여기는 파라오 왕을 축복하는 거예요. 고난이 많았던 생애였지만, 마지막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생을 살아가다 보면 고통의 구덩이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구덩이는 쉽게 빠져나올 정도이지만, 또 어떤 구덩이는 매우 깊어서 쉽게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 구덩이에 빠지면 우리의 생각은 거기로 쏠리고,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 걱정과 염려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판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서커스장에서 보면 그 큰 코끼리가 조그마한 줄에 묶여서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코끼리를 훈련하는 처음에는 단단한 쇠사슬로 묶어놓습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아무리 힘을 써도 저 줄은 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후에는 보통 평범한 줄로 묶어도 코끼리는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염려가 그렇습니다. 염려에 사로잡히게 되면 헤어나올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판단력이 상실되면서 비참해지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통하여 끝까지 그를 붙들어주셨던 하나님께 나가는 방법이 염려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바로 기도입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 기도하라고 합니다. 염려할 것인가 아니면 기도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가 합니다. 염려한다는 말은 마음이 나누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염려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사라지는 거예요. 한마디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예요. 염려하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말입니다.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친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염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인간의 구조 속에서 염려는 혼의 작용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혼이 영을 바라보고 영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며, 육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니까 염려와 걱정이 그 사람을 사로잡는 거예요.

시편의 시인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원수들이 시인을 대적할 때 그는 매우 낙심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자 자기에게 찾아온 낙심과 괴로움의 정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외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하나님을 기다려라.”(43:5) 시인은 걱정하는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찾아올 때 우리 역시 시인처럼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좋습니다. “염려야, 나는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염려야 내게서 떠나가라이렇게 명령해보세요. 걱정과 염려는 정체가 드러나면 힘을 쓰지 못하고 도망갑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걱정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6:34) 내일 걱정은 내일에나 하자가 아닙니다. 주어가 내일입니다. 즉 내일 걱정은 무생물 주어인 내일이 한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가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게 되고, 그러면 염려는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러시아에서 살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자조 섞인 말이긴 한데,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되는 일도 없다는 쪽을 생각하지 않고, 안되는 일도 없다 쪽을 생각합니다. 안되는 일도 없는데, 왜 걱정하고 염려합니까? 전혀 그럴 필요 없는 것이지요. 염려에 사로잡히다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도 미래도 희망도 상실하고 맙니다.

염려 대신 기도와 간구로 하라고 했는데, 기도는 무엇이고 간구는 무엇일까요? 기도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회개하고 간구하는 것이라면, 간구는 우리의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큰 범위를 말하고 간구는 기도의 일부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하였더니 그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그러면 너희의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평화를 주신다고 하셨어요. 기도하면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여기에서는 기도하고 간구하였더니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평화가 가득 찬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무엇을 간구하여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업의 번창을 위하여 목사님도 기도하고, 교인들도 기도하였습니다.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게 되자 그 사람은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고기가 몹시 먹고 싶었어요. 모세를 원망하면서 이집트에서는 고기도 먹고 생선도 먹었는데, 왜 우리를 고생시키느냐고 항의합니다. 고기를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많은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그것도 모자라 그다음 날도 정신없이 메추라기를 모았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면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을 부립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면서 큰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간구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변질시키면서 오히려 영혼이 피폐해질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여 무엇인가를 얻었다고 할 때도 우리는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회나 체육대회를 할 때 줄다리기를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제자리에 굳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조금이라도 뒤로 가야 합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제자리에 버티고 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끌려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뒤로 가는 것처럼 염려가 우리를 끌어당길 때 기도하는 것은 곧 뒤로 당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염려가 오면 바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염려는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주님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같이 있으면 두려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염려는 언제나 우리 옆에 있습니다. 저에게도 염려는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오는 염려도 있고, 여러분 중에 누가 아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염려가 됩니다. 예배를 쉬면 쉬는 대로 염려가 있고, 드리면 드리는 대로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최고의 염려는 제 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너는 내가 기대한 사람이 아니었구나하시지 않을까 하는 염려입니다. 하지만 그 염려마저도 이제는 기도로 바꾸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염려가 오면 도리어 기도하면서 주님의 평화를 내면 가득히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빌립보서 본문을 읽는 것으로 우리의 기도를 대신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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