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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빌립보서 4:2-5)
최영모 [beryoza]   2020-10-18 오후 5:58:00 151

많이 웃고 많이 기뻐하는 것이 체질화 된 사람이 다른 것을 많이 누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복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설교를 준비하였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도 모든 교우들이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빌립보서 4:2-5)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를 읽은 지 4주가 되었네요. 두 주마다 하는데, 중간에 추수 감사 주일이 있었지요. 4주 전 설교의 주제를 혹시 기억하시겠습니까? 기억하시는 분에게는 특별히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한국 가는 비행기가 다시 운항 되었는데, 설교를 기억하시는 분에게는 선물로 한국행 왕복항공권을 담을 수 있는 봉투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유머에도 잘 웃는 분들에게는 삶이 훨씬 잘 풀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크게 임할 것입니다. 집에 가서 혼자 웃지 말고, 여기에서 함께 웃는 것이 좋아요. 잘 웃고 기뻐하는 것 - 이것이 오늘 설교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웃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소일소(一笑一少)라는 말 있지요?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말인데, 현대의학에서도 이 말이 맞는다고 인정합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몸에는 암세포가 하루에 300~400개가 만들어진대요. 그런데 잘 웃지 않는 사람은 600개 정도가 만들어지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900개 정도가 만들어진답니다. 이게 쌓이고 쌓이다가 암에 걸려 죽는 거예요.

우리가 잘 웃고 기뻐하면 암세포를 죽이는 엔도르핀 같은 것들이 몸 안에서 만들어진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암세포가 힘을 못 쓰게 됩니다. 웃는 것도 다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식 웃거나 비웃음 같은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건강을 위하여 하루에 만 보를 걷는 사람도 있는데, 만 보를 걷지 않아도 크게 잘 웃으면 만 보 걷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을 개그맨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개그맨들의 아내는 대개 예쁘다고 그래요. 무슨 의미일까요? 여자들은 잘 웃고 기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잘 생각하세요. 예쁜 여자하고 결혼하고 싶으면 많이 웃어야 합니다. 이미 결혼하신 분들도 많이 웃으면 아내나 남편에게서 점수를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웃기는 사람보다는 웃어주는 사람이 될 때 더 기쁘게 삽니다.

 

성경 가운데 기뻐하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은 어느 책일까요? 빌립보서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책이라고도 말합니다. 2장에서도 기뻐하라고 말하고, 3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4장에서도 또 말합니다. 4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개역 성경에서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에 무릎을 '' 치면서 그러더래요. “맞아. 술이 있어야 기쁨이 오지.” ‘주 안에서의 주자를 술 주()자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주는 술이 아니라 주님을 의미합니다.

지금 빌립보교회에는 분위기가 싸늘해요. 전운이 감도는 상황입니다.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분쟁 때문입니다. 빌립보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여성 파워가 막강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처음부터 여성인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런 교회 안에 두 여성 리더인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심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니 그 파장이 매우 컸습니다. 유오디아 편에 서는 교인들과 순두게(이 이름은 자꾸만 어떤 특정 음식을 생각나게 합니다)의 편에 서는 교인들로 교회가 분열되고 있는 거예요.

 

무슨 이유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지는 모르겠어요. 바울이 두 사람 모두에게 권면하는 것을 보면, 교리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울의 눈으로 보면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갈등을 가질 때 제3 자의 눈으로 보면 시시한 것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에 목숨까지 거는 사람이 있어요. 저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나가지 않을 거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수 믿는 것 포기하겠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목숨을 건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어느 교회 설교 시간에 목사님이 물었어요. “여러분 가운데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드시더래요.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그 할아버지를 쳐다봅니다. 목사님이 할아버지에게 매우 훌륭하십니다. 어떻게 하여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래요. “. 몇 놈 있었는데, 지금은 다 죽었어.” 미운 사람이 없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가족이 있습니다. 하나는 피로 맺어진 육신의 가족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여 믿음으로 맺어진 가족이 있습니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해도 힘든 관계일 때가 많은데, 믿음으로 맺어진 가족은 더욱 힘들 수 있어요.

교회 안에서도 보면 각자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학식이 다르고, 경제력이 다릅니다. 성장한 배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수준이 다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당연히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누구를 좋은 사람이다, 혹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볼 뿐이지,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싫지만,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 부부가 상대방이 나쁘다고 하면서 이혼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내가 이혼한 그 사람과 결혼합니다. 내가 이혼한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도 나쁘게 보고 그 사람과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데, 좋다고 결혼하거든요. 왜 그럴까요? 내 눈에만 나쁘게 보일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내가 나쁘게 보고 미워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육체적으로는 암세포가 늘어나고, 정신적으로는 괴로움이 나를 에워싸게 되며,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제목이 <오스트롭>()이라는 러시아 영화가 있습니다. 정교회의 수도원이 배경이 되는데, 주인공 아나톨리 신부의 기이한 행동을 욥 신부가 자주 못마땅해합니다. 그래서 시비도 걸곤 하는데, 그렇게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욥 신부에게 아나톨리 신부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해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질문으로 또 욥 신부를 화나게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움 때문이었어요. 미움은 이처럼 큰 죄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누구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면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누리지 못합니다. 마음 밭이 강퍅해지면 마치 가뭄에 땅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땅은 비가 와도 잘 스며들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려요.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나쁘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와도 우리의 내면으로 잘 스며들지 않습니다.

 

바울은 지금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싸움을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이 표현에는 두 사람 다 마찬가지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서로가 자기가 옳다고 하지만, 바울이 보기에는 아닌 거예요. 아마도 바울은 왜 그렇게 두 사람 모두 답답하고 한심합니까?’ 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세요하고는 두 사람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점을 말합니다.

공통점이 뭐냐 하면 첫째, 그들은 바울을 도와 힘써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둘째,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피를 흘리면서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차이점이 많을지라도, 공통점 또한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과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참여하고, 구원 얻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는 안 들어도 관용을 베풀자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의 관용은 특히 중요합니다. 프랑스의 한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 시간에 이슬람의 무하마드를 풍자하는 만평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어요. 수업을 들었던 한 여학생과 그 아버지가 페이스북에 교사의 신원과 학교 주소를 올렸어요. 한 이슬람 청년이 그것을 보고는 교사를 잔인하게 살해하였어요.

어느 종교든지 극단주의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이슬람만이 아닙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예요. 한국교회 안에도 극단으로 치우치면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극좌도 위험하지만, 극우도 위험합니다. 그들에게는 종교에서 요구되는 관용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범위로 관용을 베풀어야 할까요? 성경은 모든 사람이라고 하였어요. 나와 친한 사람에게는 베풀고 친하지 않은 사람은 제외하고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에게는 베풀고 다른 교회 사람은 제외하고가 아닙니다. 신자들에게는 베풀고 불신자들은 제외하고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하였어요.

 

그렇게까지 관용을 베풀어야 할까요? 미운 사람, 싫은 사람에게도 해야 하나요? 망하고 싶으면 하지 마세요. 초라한 인생으로 살다가 생을 마치고 싶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 싶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면, 그리고 성공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관용을 베푸는 여러 경우가 있지만, 가장 흔한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어떤 유튜브에서 보니까 밥값을 잘 내는 사람과 밥값을 낼 때마다 뒤로 빠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성공할까요?’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A씨는 지인들과 식사할 때 자기가 먼저 밥값을 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이 거의 그 사람에게서 밥을 얻어먹었어요. 때로 어떤 사람은 A의 그런 면을 이용하여 비싼 것을 시켜먹기도 합니다. 그런 A를 보면서 그의 아내와 가족들은 속이 탈 때도 있어요. 바보짓을 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B씨는 아예 밥값을 낼 생각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적게 낼 궁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인색한 사람이 밥값을 내지 않고 모은 돈은 그 사람이 성공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밥값을 잘 내는 사람은 자기가 밥값을 잘 내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밥값을 잘 안 내는 사람은 자기가 밥값을 안 내는 사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찍혀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A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을까요, B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을까요? 사람들은 A를 도와주고 싶을까요, B를 도와주고 싶을까요? B보다는 A가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거예요.

우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고 할 때 우리는 당연히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합니다. 낭비하는 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사람들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관용을 베풀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시간적인 차원과 공간적인 차원에서 모두 적용됩니다. 시간적인 의미로는 우리는 곧 오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가 베푼 관용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공간적인 의미로는 우리가 관용을 베풀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밥값을 자기가 내거나 남들이 알도록 관용을 베풀거나 하면 주님께서 기쁨을 더욱 많이 주십니다. 원래 사람은 기뻐하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여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매우 기뻐하며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하면서 외칩니다. 그런데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자 기쁨이 떠나갑니다. 기쁨 대신에 슬픔과 우울과 절망이 찾아오게 만든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기뻐하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책임전가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기쁨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 처음 하신 기적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 행하셨던 기적이 무엇입니까?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어요. 잔치를 즐겁게 할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의 흥은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좋은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 경우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를 술 주()자를 써도 되겠어요. 하지만 그 술도 주님이 주신 것이니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계속 우리를 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에서도 기쁨과 행복은 얼마든지 올 수 있다고 우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익산에 사는 13살 된 초등학생이 혼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습니다. 신문에는 자세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고 속이 상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13살 된 어린이는 혼자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없으니까 그 어린이는 언니의 신분증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탔습니다. 키도 크고 하니까 사람들이 언니인 줄로 알았어요. 제주도에 가서 방황하다가 결국 4일 만에 구조되었습니다. 나를 간섭하고 나를 참견하는 부모님을 떠나면 나는 기쁘고 행복할 거야 생각하지만, 결과는 수고와 고생입니다. 너를 간섭하고 너를 참견하는 하나님을 떠나면 너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행복할 거야 하고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여기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간섭을 받아도 집에 있는 것이 기쁨입니다. 간섭을 받아도 주님 안에 있는 것이 기쁨입니다.

오늘 특송 <엠마오 마을로>의 가사처럼 어떠한 슬픔과 공포에 잠겨있어도 예수님을 만나면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이제 우리 자막을 보면서 빌 4:4을 다함께 읽겠어요.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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