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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10-17)
김우영 [ready4god]   2020-08-30 오후 4:06:30 105

20200830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성령강림절 후 13번째 주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10-17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14a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는 말

삶에는 여러 위기가 있습니다. 먼저 발달적 위기는 인생의 주기에 따라 오는데, 사춘기, 갱년기, 황혼기 등과 같이 신체의 큰 변화에 따라 오는 것입니다. 또 우발적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오는 사고나 질병 같은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위기들을 연구해서 받는 피해와 손실을 줄이고자 애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평탄하게 살아가던 사람에게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주고, 생각과 삶을 새롭게 맞이하는 계기도 갖게 합니다.

신앙에도 위기가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와 모임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차별과 핍박을 받고 심지어 죽임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는 교회를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으로 흩어지게 했고, 위기 가운데 복음의 능력을 회복한 교회는 전 세계를 향한 선교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의 교회는 지금 위기입니다. 교회의 권위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미안합니다. 그저 미인하고 미안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그곳에 머무시고 가르쳐 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잊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할 수 있는 말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만약 위기를 방치한다면 위해한 상황이 오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위기에 대처한다면 새로운 변화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는 기회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랜 기간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회는 코로나의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좌우로 갈려 대치하고 싸우는데 그 정점에 일부 교회가 서 있습니다. 뉴스에는 연일 교회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방역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합니다. 사회에 본이 되기는커녕 그 잘못 역시 상대방 때문이라며 매섭게 쏘아붙이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아무도 대신 처리해줄 수 없습니다. 멀리 본국의 일이라고 나 몰라라 뒷짐 질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의 일이며 우리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설교나 의견을 낼 때 자기 목소리 보다는 최대한 성경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지만, 목회자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준은 목회자가 아닙니다. 기준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바른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고 기도할 때 스스로 바른 답을 낼 수 있습니다. 이념이 신앙 위에 있으면 위기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 앞에 놓인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본문은 67년 경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2차 투옥된 이후 영적아들로 삼았던 디모데에게 썼던 것으로 68년 순교를 당한 바울의 마지막 편지이기도 합니다. 당시 로마의 영향권 아래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핍박 정책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핍박당하는 교회와 디모데를 향한 글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 (개역개정)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4절은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졌기에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물라고 하는 것일까요?

:12-1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은 힘과 경제의 논리에 지배당합니다. 더 많이 갖기 위해, 군림하기 위해 더욱 악해져 가는 이런 위기의 상황일수록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바울의 당부입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는 로마에 대항하는 두 파가 있었습니다. 한 파는 에세네파로써 속세를 떠나 황야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선과 악의 최종 대결을 기다렸던 무리입니다. 다른 무리는 성경에 열심당[Zealots]이라고 나오는 사람들로 무력을 통해 로마에 항거했던 이들로 일제침략시기 김원봉의 의열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롯 유다도 열심당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과 달리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외부로부터 얻기보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자기 안에서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폭군 네로(재위 54~68)의 정책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와 모임은커녕,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위축된 교회의 모습을 보면 지금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목숨을 잃는 일만 없을 뿐, 그리스도인들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금요일 총영사관저에서 받은 질문 ,‘목사님은 사랑제일교회와 관련은 없으시죠?’ 아무리 유머라고 해도 마음이 아팠다) 이런 시기,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몇몇 지도자의 의견이 아닙니다. 대놓고 투쟁하는 것도, 교회를 떠나버리는 것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위기를 맞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답은 세상의 지혜가 아닌 오직 주의 말씀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위기에서 명확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1. 배우라

배우다 (만다노:μανφανω)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어떤 것에 향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깊이 듣고 어떤 뜻이 있는지 살펴 알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알려준 지식을 호기심이나 두려운 마음에 누가 그랬는데식으로 말하고 듣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라는 말은 소위 팩트체크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이 언제 나셨고, 제자가 몇 명이고, 무엇을 드셨는지 확인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왜 죽으셨는지, 왜 부활하셨는지까지 확인하며 그 마음이 닿는 곳을 헤아리라는 의미입니다.

위기는 두려움을 만들고 그 두려움을 먹이삼아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자기만 넘어지지 않고 또 다른 사람도 넘어지게 만듭니다.

 

마태복음 4: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그분의 제자이며 세상의 어부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여 별처럼 밝게 빛날(12:3b) 사람을 낚는 어부여야 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인도하기는커녕 그저 사람만 낚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이것은 인도가 아니라 선동입니다. 잘못 이끄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잘 배우지 못한 우리의 책임도 큽니다. 잘 배워야 합니다.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사회의 현상과 뉴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게 아니라 그 지식이 마음에 어떻게 향하고 있는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뱀처럼 지혜로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 어려운 시기애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보려 노력하고 진실을 쫓는 마음과 자세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온전히 분별하고 배우는 분들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위기를 이겨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확신하라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 (개역개정)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저는 이 본문을 여러 번 읽으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가 성경을 잘못 읽고 있었습니다. 읽기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읽지만 정작 이해할 때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이렇게 읽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보통 우리는 물건을 하나 구매할 때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비교해보고 가장 저렴하고 기능과 만족도가 높은 것을 찾습니다. 마음의 만족을 위해 확실한 물건을 찾도록 노력합니다. 눈으로 보고 비교하고 만져서 분명하게 검증된 확실한 물건을 구매합니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한 스펙, 누가 봐도 검증된 사람.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 정도의 외모. 번듯한 직장. 등등 확실한 사실. 검증된 사람을 택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세상은 우리의 감각에 검증되고 확실히 만족시키는 것을 찾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어라 우릴 가르치십니까? 확실한 일이 아니라 확신한 일 이라고 가르칩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고대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에 대한 상은 우리가 믿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진열대에서 누구나 확인하고 살 수 있는 사과나 빵이 아닙니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믿으면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가 믿음으로 본 것을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선배들은 박해 중에서도 목숨을 걸고 예배와 말씀을 지켰던 것입니다.

위기로 인해 생긴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이 만든 의심의 덩어리를 확신하고 진실이라 믿는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옳은 것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영원이 옳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확실한 것만 찾는 것은 무모합니다. 그래서 대화하고 양보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고린도전서 8: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우상에게 올린 고기를 먹어야 하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이 여린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게 조심 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혹 그 일로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나에게는 당연히 옳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일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이요, 우리가 믿는 진리입니다.

 

마태복음 15: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먹는 것이 우릴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는 그 말로 서로 시험에 들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말로 증오를 쌓아 올리는 시대에 있습니다. 혹여 내가 분명 옳다 할지라도 그 일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짐이 되고 시험이 된다면 기꺼이 손해보고 뒤로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말씀하십니다. 첫째 계명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지키는 것처럼 둘째 계명도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지키는 바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누르는 것은 신앙이 아닌 이념에 물든 모습밖에 안됩니다. 내 의견이 아니면 모두 거짓이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확실한 일을 쫓다보면 오히려 자신의 실수에 발목이 걸려 넘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우고 확신한 일, 굳게 믿는 그 진리 위에 서십시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이익에 마음을 쏟지 마시고 확신한 일에 온전히 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머리 둘 달린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하나 둘로 봐야 하나? 하는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답을 현명한 랍비에게 가서 묻기로 했습니다. 랍비는 이렇게 답했습니다.“한 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떨어드렸을 때 두 얼굴이 함께 운다면 하나이고, 한 쪽이 뜨거워하는데 한쪽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둘이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답입니다. 내가 아픈 곳까지가 나입니다.

마태복음 5:4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어느 한쪽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교회는 어느 편을 들고 죽자 싸우는 곳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고 슬퍼해주고, 감싸 안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념이 아닌 신앙으로 하나 되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 살펴야 합니다. 내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 전체를 살필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온갖 혐오와 날선 긴장이 고조되는 한국사회, 아직 위기를 기회로 바꾸지 못한 한국교회, 그리고 코로나의 위기에 놓인 우리의 삶, 이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선하게 바꿔주시길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작은 기도가 모여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우고 확신한 것에 굳게 서십시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신앙, 주 앞에 서는 날 믿음으로 행한 것을 실제로 보게 되는 신앙으로 살아내십시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 듣고 존경받는 이 시대의 참 그리스도인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P : 188.187.1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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