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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날 때 (신명기 8:1-10)
김우영 [ready4god]   2020-08-16 오후 4:01:35 119

20200816 -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성령강림절 후 11번째 주일)


광야를 지날 때

신명기 8:1-10

:2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는 말

핀란드와 러시아 북부 지역에 두루 퍼져 사는 사미족에게는 눈()을 일컫는 단어가 무려 200개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툰드라 지역에서 순록과 함께 삶을 이어가는 사미족에게 눈은 바라보고 감상하는 아름다운 꽃송이기보다는 감당하고 극복하며 경외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이 어떻게 쌓이는지, 또 어떻게 얼거나 녹는 것 하나하나가 다 생존과 연결 되는 문제였기에 눈에 대한 단어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단어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일 뿐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중동의 복판에 삶의 터전을 이어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광야를 나타내는 단어가 히브리어 헬라어 합쳐서 7개나 됩니다. (미드바르 네게브아라바찌야에쉬몬, 에레모스, 에레미야) 눈이 많은 곳에 눈에 대한 단어가 많듯이, 광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에게도 같은 현상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시온(Zion)’ 역시 메마른 광야를 의미하는 찌야에서 왔다고 합니다.

광야를 나타내는 단어 중 대표적인 것은 미드바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의 말씀은 다바르라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를 드비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광야, 말씀, 지성소의 어근이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광야나 불모지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Desert버리다.’ 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처럼 헬레니즘 시각에서 본다면 광야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시각(헤브라이즘)으로 본다면 광야는 버려진 곳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불모지와 경건과 거룩을 연습하는 장소가 같을 수 있을까요?

이제는 들으면 슬슬 짜증이 날 정도인 코로나 펜데믹. 한국에서는 관측 이래 가장 긴 장마(52), 또 이런 상황을 통해 발생한 불편하고 속상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우린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광야는 단순히 물이 마르고 생명이 살수 없는 메마른 곳이 아닌 우리의 기대와 소망들이 꺾여버린 곳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버려진 장소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한편, 나의 기대와 소망은 마른 풀처럼 흩날린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보게 되는 곳, 하나님과 우리의 속사람이 정직하게 일대일로 만나야 하는 곳, 당장은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봐야 하는 곳. 그곳 역시 광야입니다.

(메시지성경) :2 하나님께서 지난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하신 모든 여정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여러분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시험하신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한지, 여러분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아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광야는 우리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비정한 장소일 수 있습니다. 극한까지 몰아붙이면 쥐가 고양이를 물 듯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마음이 여린 분들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일들도 서슴지 않습니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교회도 광야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하지만, 잠시 빗줄기를 피해 처마로 숨는 것처럼 이 위기와 광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분명 우리는 나의 광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고민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이제 주신 말씀을 통해 광야의 의미를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신명기는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모세가 행한 세 번의 고별설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설교에는 40년 광야의 의미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1. 광야는 순종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1 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아서 번성할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들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에 합격된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은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순종은 내가 상대적으로 비굴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예처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타성에 의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성도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과 번성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뒤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거듭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를 요구하시기 전에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타당한 이유 없으면 죽음도 불사르는 정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그 역사를 만드시고 이끄시는 분입니다. 이해될 때만 순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2b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에게 나타나셔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시며 그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 달아보십니다.

 

6: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사랑받을 때 사랑하고, 사랑할 이유가 있을 때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가 좋을 때 순종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이유와 동의를 구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워 우리와 같이 되셨기에 교제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와 대등하기에 이해와 동의를 요구하시고 또 우리가 거부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광야에서 원망만 하지 마시고 참된 순종을 연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마귀는 자기의 권위와 이익을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대복종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벳새다 언덕에 오천 명이 모였습니다. 해가 지고 식사를 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제자들은 그들을 어떻게 먹일지 난처하여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이들을 다 먹일 수 있습니까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삶을 뒤로한 채 예수의 제자가 된 이들에게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입니다.

6: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상황을 해결 못해서 제자들에게 물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온 무리를 먹일 이백 데나리온(하루 일당(10만원)*200:2천만 원)이 아니라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는 경영의 결과가 아닌 순종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광야를 만날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피할 방법을 찾지만, 우리는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광야는 버려진 변방이 아닌 우리를 내려놓고 주의 음성을 듣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더욱 간절히 지성소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광야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2. 광야는 겸손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성도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가 성도입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만한 자는 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50:31 나 만군의 주, 주의 말이다. 너 오만한 자야, 내가 너를 치겠다. 너의 날 곧 네가 벌을 받을 때가 왔다.

벧전 5:5b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광야는 교만하지 않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장소입니다. 작은 칭찬과 인정에도 우리의 존재감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갑니다. 그래서 더욱 겸손도 훈련해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모두 불가능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무언가 해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그 한 자락의 기대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을 경건한 삶으로, 순종과 감사의 삶으로, 그리고 교만을 겸손으로 바꾸고 낮추시기 위해서 우리를 광야로 보내십니다.

 

:2a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지나왔던 시간들을 기억해보십시오. 할 수 있다고 어깨에 힘주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머리를 들면 들수록 고난의 시간을 길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40년의 긴 광야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교만은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아는 것이고,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아는 것입니다.

 

8:12-14 당신들이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지라도, / 또 당신들의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당신들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사람은 뭔가 잘되고 형통하고 풍부할 때, 하나님을 너무 쉽게 잊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지금도 초막절에 야외에 텐트를 치고 비박을 억척스럽게 하는 것은 출애굽 때의 은혜를 기억하고 결코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다짐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만하기 때문에 겸손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겸손하고 신실하게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겸손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겸손도 훈련하지 않으면 무뎌집니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늘 겸손히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3. 광야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곳, 목축도 할 수 없는 곳, 그리고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2015년 러시아에 처음 와서 드는 생각은 막막함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결정에 불과 반 년 만에 오게 되어 더욱 암담했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 10개중 9개가 사라지고, 라음이도 아파 결국 뇌수술하게 되고, 저 역시 무릎인대 수술을 받는 등 한국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선물상자처럼 한 번에 마주했습니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거야 라고 기대했던 마지막 한 조각의 자존감마저도 모두 버리고 그저 주님만 보게 하셨습니다. 물론 앞으로 경험할 모든 것을 다 앞당겨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일을 마주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더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두 다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겠지만, 적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8:16 광야에서는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당신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이것이 다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당신들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개정개역)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저는 이 마침내라는 단어가 정말 좋습니다. 결과를 알고 보는 드라마처럼 싱겁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떨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도 마침내 복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4 지난 사십 년 동안, 당신들의 몸에 걸친 옷이 해어진 일이 없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습니다.

광야의 한복판에 있을 땐 단 한 순간도 더 살지 못할 것 같아 보였지만, 하나님은 쏟아지는 원망과 의심의 순간에도 우리를 입히셨고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신실하십니다.

:3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먹는 것으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려주시고자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말씀이고 주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나의 소망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백 위에 복을 더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광야는 우리로 답답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하다가 눈이 열리게 하시며 눈이 열려 십자가를 보게 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인생의 질병도, 인생의 모든 문제도 쓴물이 단물이 되듯 바꿔주십니다.

 

닫는 말

우리들은 광야 같은 시간을 피하며 살 순 없습니다. 하지만, 광야를 건널지라도 이겨낼 내성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순종, 하나님께 겸손, 그리고 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얻게 됩니다. 도무지 언제 그칠지 모르는 코로나와 장마 같은 지난한 광야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길 축복합니다.

 

29:11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8:7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데리고 가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희망이 있는 땅이며 좋은 땅입니다.

 

광야에서 들려오는 세미하지만 선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주님 외에 아무것도 나의 소망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공간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 오히려 기뻐하시며, 하나님과의 사귐이 더욱 견고해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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