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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절망 (고린도후서 1:8-11)
김우영 [ready4god]   2020-07-19 오후 4:09:51 183



20200719 -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성령강림절 후 7번째 주일)

 

정직한 절망


고린도후서 1:8-11

:10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 또 앞으로도 건져 주시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여는 말

지난 3월 23, 사순절 기간 중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가정예배로 전환했고 이후 5월 첫째 주 부터는 온라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색하고 속상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예배를 이어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부터 교회당에서 예배를 다시 드리게 되니 정말 감사합니다. 예배의 중요성과 함께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요 특권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 소중함도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 익숙해져 가는 것처럼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무뎌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렸던 시간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뿌옇게 혼탁해진 물을 깨끗하게 바꾸고자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모두 소용없습니다. 무엇을 하는 순간 더 혼탁해 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약품을 넣고 휘휘 젓는 것이 답이 아니라 이런 경우, 기다림이 답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이고,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개정개역)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3: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길이 끝나갈 때 우린 세 가지를 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길을 찾던지 아니면 되돌아가던지,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춰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고 탁할 땐 잠시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답답하다고 몸부림 치다보면 상황이 안 좋아지거나 더욱 미궁에 빠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리는 것이 열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쫓기며 살던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은혜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세상은 우연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에게만 들려주시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코로나의 위기 앞에 교회와 개인 모두 여러모로 어렵겠지만, 세상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전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내딛는다면 우리의 헛헛한 빈 마음을 하늘의 위로와 만족으로 메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를 읽으며 위기를 당했던 바울이 이 절망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견뎌 냈는지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교회에 닥친 여러 문제를 보며 도 차례 편지를 보냈습니다. 큰 어려움을 겪는 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면서 바울은 자신도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잘 이겨냈으니 자신을 보며 여러분도 위로를 받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이겨내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8-9(현대인의 성경) 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에 대해서 여러분이 모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고생을 겪었으며 마침내 살 희망마저 버렸습니다. / 우리 마음에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 절망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이 절망하는 것은 고난의 무게보다 두려움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두려움의 무게를 이길 순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주는 유익과 의미를 깨달아가며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절망을 희망의 시작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이 주는 두려움에 그만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고() 박원순 서울 시장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희망제작소, 아름다운재단이 시작했을 때부터 참여도 하고 정말 좋게 봤었습니다, 정치인으로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겠지만, 그저 절망이 절망으로 마감되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한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았는데, 마침내 아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투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도저히 못 가겠습니다.” “아들아! 힘을 내거라. 머지않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다시금 길을 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사막 한가운데 무덤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걸 보자 아들은 절망 가운데 주저앉았습니다. “보세요, 아버지! 이 사람도 우리처럼 가다가 죽은 거예요. 가다 죽으나 여기서 앉아 죽으나 마찬가지예요.”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아들아,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동네가 멀지 않았다는 증거란다. 힘을 내거라.” 결국 아버지 말씀대로 마을이 나타났고, 거기서 쉬게 됐습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절망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막에서 무덤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무덤을 통해 희망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믿는 사람에게 사막같은 절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신자가 되면 절망의 원인을 없애 주겠다고 담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배우고, 멍에도 지며, 심지어 자기 십자가도 지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의 어려움과 수고는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저주였습니다. 절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수고해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저주 안에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전도서 3:13(개정개역)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절망은 피할 수 없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선물입니다. 모두 어렵게 코로나의 위기를 견뎌오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은혜요 선물임을 깨닫게 되길 축복합니다.


2. 정직한 절망을 경험하라.

 길이 끝나면 박노해

길이 끝나면 거기 /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 새 봄이 걸어 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시인의 고백처럼 막혀 보이는 길 끝에서 늘 새로운 길을 만났었습니다. 완벽한 실패처럼 부서져 내린 순간에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됐고 새로운 힘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절망을 경험한 사람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8 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에 대해서 여러분이 모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고생을 겪었으며 마침내 살 희망마저 버렸습니다.

바울은 정직한 절망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단지 고난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그의 고난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전도 중에 돌에 맞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 행 14장에 보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바울을 고을 밖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행 23:12-13에 보면 바울을 잡아 죽이기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무려 마흔 명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상황이 온다면 두려움에 어떻게 했을까 아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몸,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막에서 무덤만 본 것이 아니라 마을을 본 듯 다시 살 소망을 얻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직한 절망이 없이 온전한 은혜는 없습니다. 아직 할 만하다 생각되십니까? 아직 일할 수 있는 건강도 있고, 살아갈 방편도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정직한 절망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일하고 내가 벌어서 살 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정직한 절망이 아닌 상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장식품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신 중에 하나의 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단지 나에게 힘을 주는 여러 도움 중에 하나라면, 우리가 갖는 희망은 신기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9 (현대인의 성경) 우리 마음에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절망입니다.

 

갈라디아서 2:20(개정개역)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세상은 우리에게 바보 같고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혜요,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 정직한 절망, 그리고 확실한 희망이 확인되기를 축복합니다.


3. 정직한 절망에 약속이 있다.

인류를 죽게 하는 것은 에이즈, , 메르스, 코로나와 같은 질병이나 전쟁 같은 폭력만이 아닙니다. 진정 인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바와 같이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때로 사탄은 인류를 파멸시키기 위해 바이러스나 전쟁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궁극적인 것은 이런 것을 통해 두려움을 만들고 결국 인류를 절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움에 떨지 마시고, 정직한 절망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정직한 절망 안에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항체 즉 하나님의 약속의 DNA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 다시 찬양하련다.

시편 기자는 절망의 상황에서 다시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할 것을 다짐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망선고 같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도, 지금도, 나아가 미래에도 신실하게 자신을 건저주실 것이라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 앞으로도 건져 주시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타협하다 보니 믿었던 구석들은 무너져 내리기 일쑤고 점점 하나님과 거리만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두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나아가 앞으로도 건져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안 계십니다. 한때 좋았던 신앙의 황금기를 흘러간 드라마 기억해내듯 하지 마십시오. 지금 다시 새롭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정직한 절망으로 하나님께 나갈 때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탐스럽게 보인 붉은 대추 한 알에도 상상 못할 크기의 절망과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둥글게 여물어가는 모습 안에도 우리가 상상 못할 절망의 날들이 고스란히 젖어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며 만들어진 영적 DNA. 이런 귀한 은혜가 하나씩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입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자취를 보면 붉은 대추 한 알 안에 담긴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을 보며 단순히 성취된 열매를 보고 감탄하기보다 이들이 걸어온 절망과 희망의 역사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다음 세대에게도 이 삶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앞의 절망을 정직하게 맞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 항체를 구비하여 정직한 절망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얻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닫는 말

최근 몇몇 나라에서 코로나 백신의 임상실험이 성공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물론 기쁘고 기대도 되지만, 이것이 영원한 도움과 희망이 될까요?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가 생경했듯 앞으로 처음 듣는 바이러스들도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마다 백신연구만이 살 길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완전한 도움은 하나님입니다.

정직한 절망을 통해 만나게 되는 완전한 소망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얼굴을 서로 보며 만나는 이 기쁨도 곧 무뎌집니다. 승진의 기쁨도, 일상의 행복도, 그리고 코로나 극복의 기쁨도 곧 무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마저 무뎌지면 안 됩니다. 어려움과 절망의 순간에서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기보다 먼저 하나님만이 도움이며 유일한 희망임을 고백하는 정직한 절망을 결단하시고 맞이하십시오. 이를 통해 주시는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 매일 확인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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