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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굽어 있는 삶(빌립보서 1:27-30)
최영모 [beryoza]   2020-07-12 오후 5:49:56 232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당에서 모여 대면예배로 드리려고 한다.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의 마지막 설교다. 나와 다투는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고 하는 사도바울의 음성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절핟다는 것을 깨닫는다.


적당히 굽어 있는 삶(빌립보서 1:27-3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고 하여 복음도 감옥에 갇혔거나, 바울이 행동에 제한을 받는다고 하여 복음이 전해지는 것에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빌립보서 1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조승희 형제께서 한 달에 무려 12kg의 체중을 줄인 것에 대하여 말씀해주셨는데, 우리는 매우 놀랐습니다. 비결이나 원리는 간단하였습니다. 몸에 필요한 것을 먹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적게 먹느냐 많이 먹느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여 실천하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건강해집니다. 영적인 건강에 해롭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많이 먹거나, 반대로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것은 조금만 먹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병들게 됩니다.

육체의 건강은 눈에도 보이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그나마 신경을 쓰지만, 영혼의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통증도 느끼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신경을 잘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건강은 육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 사실을 마태복음은 눈이 죄를 짓게 하고 손이 죄를 짓게 하여 지옥에 가게 된다면 차라리 눈을 빼버리고 손을 잘라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영혼이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말은 영혼이 건강하게 생활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영혼이 건강할까요?

성경을 꾸준히 읽고, 기도와 전도에도 힘쓰면 건강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건강한 영혼을 어떻게 말하느냐 하면 다른 사람과 한마음이 된다는 것으로 말합니다. 성경과 기도와 전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윤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을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한마음이 되는 것, 그것이 복음에 합당하며 건강한 영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내 생각, 내 주관, 내 신념을 모두 포기하라는 소극적인 말이 아닙니다. 때로는 적당히 굽으면서 다른 사람을 끌어안으라는 것입니다. 러시아 땅은 주로 평지이다 보니 도로도 대부분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편입니다. 확 트여서 좋은 점도 있지만, 변화가 없으니까 조금 달리다 보면 지루하기 쉬워요. 그런데 한국은 산이 있고, 계곡이 있어서 길이 자주 굽어집니다.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변화가 있으니까 지루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강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도 적당히 굽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지 일직선으로 뻗어만 있으면 재미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사람도 너무 꼿꼿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좀 굽어지기도 하고 고개도 숙이고 해야만 사람 냄새가 납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다. 단지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고, 잘못하면 나쁜 사람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다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우리는 나 자신을 낮추고 굽어지는 일이 더 쉬울 거예요.

 

나이가 드니까 눈이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것은 잘 보이지 않아 다인이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눈이 나빠지니까 좋은 점도 있어요. 다른 사람 얼굴의 주름도 덜 보이고, 세수했는지 안 했는지, 머리를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얄밉게 구는 사람이 아직도 눈에 보이긴 해요. 그래서 목사님은 뒤끝이 있군요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한마음이 되어야 할 다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나에게 얄밉게 구는 그 사람을 말합니다. 나하고 싸운 사람, 나를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한 개인의 영성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두는 것은 빌립보 교회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는 등 중요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 간에는 다툼이 있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싸움이 꽤 심했던가 봐요.

저도 어느 선교사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잘못은 그쪽에서 훨씬 더 많이 한 것 같아서 그를 상대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다툼에서 파생된 불순물들이 저의 무의식 속에 자리를 굳게 잡고서 종종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그것들은 저의 영적인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거예요. 결국, 제가 먼저 그에게 사과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영혼에는 놀라운 평화의 물결이 다가왔습니다. 다툼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개인의 신앙은 성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구와 다투었는데 여러분의 마음이 괴롭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화목을 원하시는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입니다. 28절에서는 그것을 구원의 징조라고 하였습니다. 적대적인 사람을 끌어안았는데, 성경은 그것이 승리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누구와 다투었는데도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다면 영혼에 병이 든 상태가 아닌지 심각하게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대적의 상태로 가는 것을 성경은 멸망의 징조라고 하였어요. 싸움에서 이긴 것 같아도 실제로는 패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끌어안으려고 하면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손해를 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29절에서는 그것을 고난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누리는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손해 보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그럴 때 여러분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는다고 하면 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렇지 않아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나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숨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숨기는 사람치고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적당히 사는 일에 익숙하지 마십시오. 어디에서나 예수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 싸움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모양이야?’ 하고 비난받을 일이 두려워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은 움츠러들지 마시고,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내가 이 모양이라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서 감추지 말라고 하면서, 30절에서 바울은 여러분도 나와 같이 그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예수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역할 가운데 하나를 저는 하나님께서 키질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키가 무엇인지 아세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습니다. 키에 곡식을 담아 까부르면 껍질이나 가벼운 것은 앞쪽으로 쏠리거나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알곡만 키질하는 사람 쪽으로 모여집니다. 그러면서 알곡과 껍질을 쉽게 나눌 수가 있는 거예요.

코로나바이러스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면서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보셨을 것입니다. 키질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알곡인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는 껍질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조금 굽어져서 나와 다투고 나를 대적하는 사람을 끌어 안아주고 한마음이 되어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영혼이 건강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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