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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빌립보서 1:12-26)
최영모 [beryoza]   2020-06-28 오후 5:55:17 213


6월의 마지막 주일이며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는 주일이다. 7월부터는 예배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여전히 두주 가량 더 늦어질 것 같다. 하지만 7월 중순에는 레스토랑이나 극장이 문을 연다고 하니 그때는 진짜로 교회도 온라인 예배를 마칠 것 같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빌립보서 1:12-26)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아가씨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의 옆에 자리가 나자 근처에 있던 뚱뚱한 아줌마가 잽싸게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자리가 좁으니까 몸을 좌우로 막 움직였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 아줌마는 앞에 서 있던 자기 친구의 커다란 짐까지 자기 무릎에 놓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어요? 아가씨는 하던 독서도 방해를 받고, 아줌마의 무릎에 있던 짐이 자기 앞에까지 놓이게 되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줌마도 자신이 너무했다고 생각했던지 멋쩍게 웃으면서 고치지는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 미안하다고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매우 여유 있는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괜찮아요.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거든요.” 곧 내리게 되어 그 자리를 떠나게 되면 잠깐의 불편은 불편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을 지하철을 타고 가는 여행이라고 비유해보면 어떨까요? 인생이라는 지하철에서 곧 내리게 된다면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여유가 있을 것이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다른 사람에게도 더 많이 관대해질 것입니다. 짜증 날 일도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내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일에도 우리는 힘들어하고 불평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잠시 사는 것이고, 한없이 긴 세월을 천국에서 산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사는 시간에 비하면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곧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데, 이런 생각으로 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빌립보서 1:21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때로 어떤 성경 구절은 암송해두면 매우 유익합니다. 빌립보서 1:21도 암송하면 참 좋은 말씀입니다. 암송에 대해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머리가 돌이라서 암송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에다 새길 때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일단 한 번 새겨놓으면 머리가 돌이기 때문에 단단하게 새겨집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고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인생관이자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하늘나라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흔히 노인들이 말하는 3대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어요. 진심이었습니다. 단지 육신을 갖고 이 세상에서 더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며 주님을 곧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복에 생사를 걸 정도로 집착하지 않아요. 그런 인생관을 갖고 살았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평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감옥 안이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잠시 제약을 받는 것도 답답해하는 데,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이야 얼마나 더 힘들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기뻐하며 평안을 누립니다. 감옥이라는 환경이 그의 내면에 있는 평화를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면의 평화를 잃지 않으니까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감옥에 있어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갇혔다는 소문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소문이 나면서 친위대 사람들이 관심을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접촉이 되면서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거예요.

환경이 만들어져야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먼저 마음을 먹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 믿음을 주세요. 그러면 내가 충성하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충성하면 믿음을 주십니다. 자유의 몸이어야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감옥이건 수용소건 어떤 환경도 기회가 됩니다.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고 보니 보이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나자 두 부류의 반응이 나타났어요. 한 부류는 바울을 존경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바울 사도께서 감옥에 있으니 우리가 대신 열심히 전도하자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바울을 시기하고 적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열심히 전도하고 인기가 있으니까 바울을 시기하고 싫어했어요. 우리 주변에서도 보게 됩니다. 누가 사업을 잘하면 어떻게 잘하는지 한 수 가르쳐 주세요하지 않고, “그 사람 뭔가 문제가 많아하면서 깎아내리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사도 바울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말을 들으니 앗싸~” 하면서 자기들이 전도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열심히 전도하러 다닙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바울은 고약한 놈들, 믿음의 형제끼리 그럴 수가 있어?” 이러지 않았어요. 그들을 통해서도 예수가 전해지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바울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내면의 평화를 누리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주님을 곧 만나게 된다는 종말론적 신앙 때문에 더욱 가능할 수 있었고요.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 사람이 좀 힘들게 하더라도 곧 내리게 되면 참을 수 있고, 여유와 평화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가 길어지자 사람들이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영화 제작을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봉쇄되면서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27층 자기 집에서 뛰어내리며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질의 지배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살지만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물질의 지배를 받지만 동시에 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목사이다 보니 많은 사람의 장례식에 가보았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회상하는 시간이면 가족이나 친지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시간이 별로 없지만, 러시아에서는 거의 반드시 합니다. 고인을 기억하는 그 자리에서 고인이 재산이 많다거나, 몸매가 아름다웠다거나, 그가 매우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거나 이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인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얼마나 따뜻한 사랑을 주었는지, 얼마나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었는지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남들이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런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첫 번째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잃어버리면 우리 역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곧 하나님 앞에 간다는 종말론적 신앙을 놓치게 되면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이 없습니다. C. S 루이스가 한 말입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하늘을 목표로 삼고 삽시다. 그러면 이 상황도 넉넉하게 이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땅도 덤으로 얻는 복까지 누리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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