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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신앙생활 (누가복음 18:1-8)
김우영 [ready4god]   2020-06-07 오후 5:57:20 205

20200607

슬기로운 신앙생활

누가복음 18:1-8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여는 말

2007년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개편되어 교과목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개편 이후 초등학교 1-2학년은 "국어, 수학, 바른 생활(도덕), 슬기로운 생활(사회+과학), 즐거운 생활(체육+음악+미술)"을 배웁니다. 초등교육은 의무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바르고 슬기롭고 즐거운 생활을 이미 다 배우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실생활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른 것을 배우지만 정의롭지 못했고, 슬기롭게 살기를 배웠지만 정작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어렵기만 합니다. 심지어 사회 초년생들은 사회생활 시작부터 어렵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또한 즐거운 생활을 위해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접하고 배웠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한 채 쫓겨 살기 급급했습니다.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봤더니 뉴욕타임스 34주간 1, 전 세계 103개국에서 출간, 대한민국 200만 독자들이 열독한 인생 잠언록, 미국 의회에서 낭독되고 한국 국회에서 인용되는 지침서. 중학생이 읽어야 할 문학서, 대학생 필독서, 명사들의 추천서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어도 도무지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삶의 지혜, 슬기로운 생활은 석, 박사 등 지성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치원의 모래성 같은 기본과 기초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본과 기초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코로나 사태와 우리를 답답하게 할 이유들은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이겨내는 슬기는 책이나 사람의 경험에 있지 않고 바로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음성을 통해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토대가 다져지길 기대하며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텔레비전 드라마를 꾸준히 챙겨보는 성향은 아닌데 눈이 가던 제목이 있었습니다. 소위 슬기로운 시리즈 드라마였습니다. 전편인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프로야구의 슈퍼스타로서, 곧 미국 메이저리그로 갈 줄 알았던 선수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는 범인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린 죄로 교도소에 갇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감빵에는 여러 이유로 갇힌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 드라마는 평범한 삶 속에서 그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또 예상하지 못했던 역경의 상황에서 그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물론 성도들이 빛나기 위해 일부러 고난을 택하거나, 반드시 역경을 헤쳐 나가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더욱 은혜를 사모하고 기대할 수 있다면 누구나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늘 비유의 주인공인 과부는 감빵생활보다 더 답답하고 억울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이런 고난 속에서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먼지 이 비유가 나오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앞선 누가복음 17:11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 나병환자를 만난 후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열 명 중 사마리아인만 돌아와 감사) 이 사건을 주의 깊게 본 바리새인들은 17:20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 라고 묻습니다. 이런 바리새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기적을 보여주는 것처럼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계절을 예상하는 것같이 시기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26절 노아, 28절 롯의 때를 말씀하시며 도적처럼 갑자기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기다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당대 가장 똑똑하다고 여겨지던 바리새인들도 자신이 당할 미래에 대해선 늘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닥쳐올 환경과 미래에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이들에 대해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는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비유로 하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1.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기도하는 삶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연습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먼저 우리는 기도를 연습하고 실천해야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무수한 약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들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통하여 확인되고 우리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막연히 내 안타까움을 아실거야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로봇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인격체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아 33:3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요한15:14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When a man works, the man works. But When the man prays, God works)

우리 인생의 키(Key)는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인정하고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고 일하십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말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안타까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간섭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동역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6-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재판관도 끊임없이 찾아와 애걸하는 여인의 원한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겠느냐? 되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보다 더 귀하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기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간구하는 슬기로운 신앙생활 하시길 축복합니다.

 

2.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낙심하지 않는 삶이다.

우리는 이 비유를 읽으며 단순히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것으로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비유의 방점이 기도하라보다 낙심하지 말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기도할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에 동반되는 낙심의 상황도 연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성령의 열매와 연결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오래 참고, 버티고, 인내하는 것, 낙심하지 않는 것. 이것은 단지 성품과 성격이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즉 연습과 실천을 통해 훈련되는 것입니다. 한 번에 모든 훈련을 마칠 수 없습니다. 처음 은혜를 받아 기도를 하고, 열심히 해보려 하지만, 순간 다가오는 낙심의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너무 쉽게 지치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한번 기도할 때 모든 것이 다 주어지고 응답된다면 이미 이 지구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을 마쳐야 슬기로운 신앙생활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목사가 기도하면 모든 것이 바로 다 이루어집니까? 이렇게 아셨다면 무당에게 가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목사도 낙담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도합니다. 이것이 은혜요 능력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이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령한 무당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7-8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8절 후반부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런 믿음을 찾아볼 수 없다는 부정적 의미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재림의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조차 거부하게 되고, 나아가 17장의 노아의 때와 롯의 때가 기억될 만큼 악해져 간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님의 한탄이 표현된 것입니다.

 세상은 이토록 우리의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막아섭니다. 넘어지게 하고 낙담하게 합니다. 예수님 때도 이랬는데 하물며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더욱 심해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위해선 기도하는 것, 그리고 낙심하지 않는 인내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우리는 우리 감각으로 확인 된 것만 보며 살았습니다. 본 것만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말씀보다 내 손에 쥔 한줌 돈이 더 귀해 보이고, 강력하다 생각하며 살아오진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에 바리시인들은 그 기적이 의미하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오히려 그 기적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냐고만 물었던 것입니다. 봐야 믿는 세상, 언제 오느냐 보채는 심보는 이 세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신앙생활 할 때에 보이지 않으면 낙담합니다. 나아가 분노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순간순간 다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주술이요 미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막연해 보이지만, 우리의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기도와 함께 고난을 뚫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믿음이 한 뼘이라도 더 자라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3.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기대하는 삶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오늘만 사는 삶이 아니라 내일을 소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라.’ 이렇게만 말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 낙심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지 말해줘야 합니다. 이런 답은 오직 성경에서만 그 이유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8a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고 견디며 잃어버렸다 생각한 권리들을 찾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36:6(개역한글)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하나님은 굽어진 것을 펴시는 분이시며, 정의롭지 못한 것을 공정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가난하고 억울한 자를 그냥 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고 오래 참아 결국 이 하나님을 만나는 삶입니다.

비록 이런 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심스러운 어려운 여건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주님이 다시 오시는 심판의 날, 재림의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순환적인 인생이 아닙니다. 영원한 나라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직선적인 역사관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는 역사관입니다. 때로 겪는 낙심의 상황을 넘어 기도하며 기대할 때 우리에게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시편 10:14 주님께서는 학대하는 자의 포악함과 학대받는 자의 억울함을 살피시고 손수 갚아 주려 하시니 가련한 사람이 주님께 의지합니다. 주님께서는 일찍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갚아주시는 분. 신원해주시는 분입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는 것처럼 상황을 정의롭고 선하게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갚는 것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갚으시면 은혜입니다. 우리에겐 분명 그 날이 있습니다.

너무 지쳐서 기다리는 것이 괴로울 수 있겠지만, 우리 삶을 송두리째 포기할 순 없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까지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함께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슬기로운 신앙생활 할 수 있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기본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 우리의 결단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그 순간까지 매워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거듭 실패하는 순간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여전히 주를 소망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실패의 파편들을 하나씩 은혜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빈 공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고난도 유익이며 은혜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같은 상황을 겪고 있진 않습니다. 그럭저럭 견디는 분들도 있고, 보다 더 어렵고 힘들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나눠지고, 함께 기도하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슬기로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함께 지어져 가는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글로 배우고 상상하는 하나님 나라를 넘어 삶으로 배워가는 슬기로운 신앙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서툴러도 좋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연습해야 합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또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힘들어하고, 무엇보다 러시아도 녹록치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함께 견디며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저도 낙심하지 않고 완주하겠습니다. 주 앞에 서는 날까지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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