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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넘어가라 (요한복음 2:13-17)
김우영 [ready4god]   2020-05-24 오후 6:10:48 230

20200524 

익숙함을 넘어가라

요한복음 2:13-17

:16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여는 말

다들 조금은 지친 삶을 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제가 집에 가면 어머니가 늘 끓여주셨던 소고기 뭇국입니다. 사역지를 따라 늘 옮겨 다녔지만, 휴가나 가끔 집에 가면 어머니는 뭇국을 한 솥 끓여놓고 기다리셨습니다. 몇 끼니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데서 뭇국을 먹으면 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저희 어머니의 음식이 맛있다 여기고, 손맛을 최고라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익숙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국에 계실 때 단골식당을 한 둘씩은 두셨을 겁니다. 뷔페에 다양한 음식들이 많아도 늘 손이 가는 음식이 있는걸 보면 맛과 모양에 익숙한 것을 찾는 것은 자연스런 우리들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익숙함은 분명 우리에게 안정감과 평안을 제공합니다. 또 여러 유익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익숙함이 우리에게 늘 유익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익숙함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불안하고 긴장하기 일 수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로 다니고, 한국에서는 줄을 설 때 일정한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는 불가피한 변화를 하게 되며 익숙한 것들과 자주 충돌을 빚고 있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것들이 때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이너스가 될 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익숙함이 갖는 의미를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사건의 배경이 된 성전은 헤롯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새로 지은 것입니다. 먼저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이방인의 뜰이 나옵니다. 그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인의 뜰이 나오고, 그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이스라엘의 뜰과 번제단과 성소가 있던 제사장의 뜰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신 곳은 바로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당시 이방인의 뜰에서는 소와 양과 비둘기 등을 팔고, 돈을 바꾸는 환전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제사를 드릴 때 가축을 가져와서 드려야 했지만, 먼 거리에서 오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이 기른 소나 양 등을 이방인의 뜰에서 돈으로 사서 제물을 드리곤 했습니다. 이 일을 종교지도자들이 매점매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이 성전세와 헌금을 낼 때 외국돈이나 황제의 얼굴이 그려진 로마의 돈으로 헌금하지 말고, 성전에서만 사용되는 세겔로 바꾸어 헌금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에서도 그들은 환전 차액을 가져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습에 역정을 내시고 그들의 판을 다 엎어버리신 것입니다.

:14-16 그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은 네 복음서에 모두 적힐 만큼 큰 의미를 갖습니다. 다른 복음서의 표현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건을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할 때 벌어진 것으로 기록했는데 유독 요한복음에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첫 번째 사역인 가나혼인 잔치의 이적 이후 바로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그 의도를 보여줍니다.

 당시 지방에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이들에게 제물을 가져오는 수고를 덜어주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가축을 팔고 환전해 주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너무도 익숙하게 이런 일들을 했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 아무도 그 일에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그 순간, 예수님은 그 익숙함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말라기 1:8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 만군의 주가 말한다.

말라기와 예수님의 시대는 400년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가축을 팔고 환전을 해준 일은 겨우 한 두 해 성전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제물로 쓰일 줄 알면서도 눈멀고 절고 병든 가축을 팔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백성들도 처음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의 수고를 돈 몇 푼으로 대신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처음 종교지도자들은 선한 마음에 제물로 드릴 가축을 제공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점점 변질되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제물을 정결하게 선별하고 자신을 준비하는 수고를 몇 푼돈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익숙함에 젖어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깨우기 위해 채찍을 드셨습니다. 바로 요한은 이런 익숙함을 깨뜨리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라고 생각하여 본문을 먼저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세례를 받으며, 큰 은혜를 받을 때 고백하던 그 진지함들은 사라지고 조금씩 일상에 타협하고 그것에 익숙하게 지내고 있진 않으신가요? 익숙함은 편한데, 버리고 털어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익숙함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변화되지 않고, 정체되며 익숙해진 삶을 바꿔주십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의 삶에 익숙하던 것들은 사라지고 긴장과 안타까움, 답답함으로 채워져갑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환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익숙함을 넘어서야 합니다. .

에베소서 4:13-15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경지에까지 이르라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신앙의 익숙함에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신앙의 익숙함을 벗어나야 합니다.

세계의 많은 환경,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코로나 사태는 전혀 없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다만 조금 일찍 찾아온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런 현상 속에 변화는 당연한 것입니다. 익숙한 것을 계속 고수한다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도태될 뿐입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코로나19 이전의 교회와 이후에 교회는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제까지 익숙하던 삶을 넘어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1. 익숙한 교회를 넘어가라

우리들은 교회라는 울타리에 너무 익숙합니다. 한 주에 한번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앙의 모든 책임이 면했다고 생각했던 익숙함은 변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 안에는 예수님의 부활과 증언을 공유했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마가복음 16:15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당시 주님의 승천과 주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제자들과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의 후배들에게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존경과 자긍심은 갖고 있었으나 흩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 초대교회의 권위자, 현장의 목격자로 살고 있었으나 변화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들의 익숙함은 로마를 통해 예루살렘 공동체가 파괴되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유럽과 아시아로 모두 흩어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탈린스카야에 있는 교회에서 한 주에 한 번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종교인의 삶을 넘어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어떤 존재를 믿는 종교인이 아니라 그 존재를 믿고 쫓아야 하는 신앙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라고 배웠지만 그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어려운 시기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지 다시 기억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조금은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는 우리의 교회는 먼저 개인의 자리에서, 가정의 자리에서 새로워져야하고 튼튼해져야 합니다. 교회건물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각종 바이러스에 속수무책,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다만 사라지길 기다려야 하는 무기력한 상황도 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익숙하던 예배의 자리만 아쉬워하며 이 시기가 지나가면 다시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 하겠다는 느슨한 다짐만을 반복해야 할까요?

여러분 교회는 사람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20세기 초 부터 세계 교회는 모이는 교회를 지향해 왔습니다. 응집된 교회의 힘은 사회복지와 선교로 넓어져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흩어지는 교회의 중요성도 간과하면 안된다고 많은 신학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우리도 맞추어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더욱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모두 익숙했던 교회를 넘어 흩어진 교회로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2. 익숙한 개인주의를 넘어가라

우리는 다원화되고 다양성이 보장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에 매몰되었던 개인들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 때는 너무도 익숙했던 전체기합이 만약 지금 벌어진다면 1시간도 안되어 각종 SNS에 글이 올라가고, 학원폭력 등으로 처벌될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선 개인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키보드 워리어들이 불현듯 나타나 득달같이 쏘아붙이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등 자녀와 가족에 매이지 않고 여유로운 인생을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등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런 개인주의가 조금은 주춤하고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이익을 우선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이태원발 전파자의 일탈을 보며 많은 이들은 모두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학습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풍조와 세태는 몇몇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실로 엄청납니다. 그런데 이런 풍조들이 코로나의 사태로 조금은 각성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공동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로 바뀐 것 역시 익숙함이 깨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개인의 신앙도 존중되고 배려 받아야 하지만, 공동체의 신앙생활과 함께 섬겨야 하는 문제도 고민하며 같이 나눠져야 할 줄 압니다.

에베소서 2:21-22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우리들은 함께 세워져가는 사람들입니다. 익숙해진 개개인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귀한 공동체로 바로 서길 축복합니다.

 

3, 익숙한 신앙생활을 넘어가라

변화는 교회, 그리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제는 굳어버린 신앙생활에도 요구됩니다. 몇 주 온라인 예배를 드리다보니 이 또한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껍데기를 바꿔 생기는 신선함은 몇 주면 끝납니다.

신앙생활에 진지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목회자를 통한 일방적인 설교가 과연 얼마나 큰 유익과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능력 있는 것은 들은 말씀을 실천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말을 유창하게 하고, 논리정연하고 해박한 지식으로 전하는 것이 우리를 바꿀 순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공급받는 은혜가 아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와 사귐을 통해 신앙은 견고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안일하고 게을러있던 우리의 신앙을 휘저어 새롭게 변화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젠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개인적인 신앙생활로 이어져야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며, 하나님과 직접 기도로 대화하는 자녀들입니다. 언제까지 어려운 시기를 핑계 삼아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지연시켜야 하겠습니까? 물론 어려운 시기지만, 우리들의 삶의 예배도 풍성해지고 진정으로 드려야합니다.

 예레미야 29:23 내 말은 맹렬하게 타는 불이다. 바위를 부수는 망치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단단히 굳은 익숙함을 부숴버리십니다. 자녀에게 매를 아끼는 부모는 없습니다. 견고한 진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우리의 익숙함을 깨버리고 주께 다시 서야합니다.

 마가복음 2:22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 이유는 가죽부대가 낡고 헐어서가 아니라 딱딱해져서 포도주가 발효될 때 부대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익숙한 신앙생활이 딱딱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열정으로 부드러워지고 풍성해지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열정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지속성(持續性)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길 원하시는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의 큰 열심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 말씀과 은혜 가운데 무릎 꿇을 때 우리의 신앙의 체질도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부활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하게 들리기 시작해 감동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부활과 영생의 약속을 받았지만, 아직 최종 골인지점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곳에서 느슨해져버린 익숙함에서 벗어나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부활의 감격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바꿔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온라인 예배지만, 이 자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다해 지키고 얻어낸 복된 시간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주저앉히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주님께 칭찬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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