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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베소서 4:25-27)
최영모 [beryoza]   2020-03-23 오전 1:00:58 1287



분노(에베소서 4:25-27)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러시아에도 빠르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다 함께 잠시 기도합시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회복되며, 수고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인제 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라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분노였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은 화를 낸다는 것이지요. 외국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울증이나 불안을 느끼는 것이 1순위인데, 한국인은 분노였습니다. 그만큼 분노는 우리의 삶에서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개그콘서트, 줄여서 개콘이라고 하는데,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장면을 잠시 본 후에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kUtU0fBni4

(평소에 개콘을 안 보십니까? 개콘은 유치해서 보지 않는다는 분들하고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

자기하고 상관이 없는 말에도 마치 자기에게 하는 줄 알고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화를 내는 모습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여러분은 웃으면서 보지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저 장면들은 사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고, 오해와 편견 때문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사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 일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습니다. 회사에서나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나 심지어 교회에서도 화가 날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친구나 이웃 간에도 인간관계가 엉클어지면서 화를 내지 않고 살기에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화를 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화는 우리의 육체의 건강이나 정신 건강에 매우 좋지 않습니다. 화를 내다가 심장마비나 혈관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화를 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화가 나면 화를 내라고 말합니다. 화가 나는데 억지로 참는 것은 신경증에 걸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야만 우리 안에 있는 감정이 해소되는데, 그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화병에 걸릴 가능성이 아주 크디는 거예요. 그래서 화는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은 감정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들은 화를 내면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자기 정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화를 내면 어떻게 목사가 화를 내지?” 하면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멀리 갈 것 없어요. 우리 교회 1부 러시아 공동체에서도 저에게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건강을 위하여 화를 내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니까 화를 내지 말라는 말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개역 성경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개역성경에서는 화를 분으로 표현하면서, 앞에서도 분이라고 하였고, 뒤에서도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그런데 새번역 성경에서는 앞에서는 화라고 하였고, 뒤에서는 노여움이라고 하였습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앞의 화와 뒤의 화를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요. 러시아어 성경을 찾아보니 러시아어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이나 러시아어 성경은 두 말을 모두 같은 단어로 말하는데, 새번역은 서로 다른 단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어인 헬라어 성경에서도 두 말을 각기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단어가 어떻게 다르냐? 앞에 나오는 화를 내더라도할 때의 화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감정 가운데 하나인 오르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화, 새번역에서는 노여움이라는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화는 증오와 복수심을 의미하는 파로로기스모스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요.

 

성경은 화를 내면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화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허락하신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더라도하고 말합니다. 화나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참으면 병이 된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화도 이런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일에 화가 날 수는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화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으면 증오나 미움, 원한 이런 것으로 발전해가기 때문에 얼른 풀어야 한다고 말하며, 성경에서는 해가 질 때까지 품고 있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뉴스에 온통 코로나 얘기 아니면 국회의원 선거나 미스터트롯 얘기만 하고 있어서 다른 뉴스들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텔에서 근무하는 A는 투숙한 B가 숙박비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A 자신을 모욕하기까지 하니까 매우 화가 났습니다. 이럴 때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A라면 저도 마찬가지로 그 상황에서 화가 났을 거예요.

그런데 A가 화를 바로 풀지 못하고 그대로 갖고 있으니까 그 화는 점차 증오와 복수심으로 발전해갑니다. 그래서 B를 죽이고 그 시신을 토막 내어 한강에다 버렸습니다. 얼마나 증오에 차 있었던지, 체포된 뒤에도 죽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성경에도 화를 그대로 갖고 있다가 살인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입니다(이 가인은 가수 가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고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그 화를 갖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동생을 살해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어요. ‘새가 날아가면서 우리 머리 위에 똥을 쌀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머리 위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화가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고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게 하면 안 됩니다.

 

화를 빨리 풀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마에게 틈을 주며, 그래서 미움이나 원한이라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를 빨리 풀라고 하는 또 하나는 좀 신비스러운 해석인데, 이런 의미도 있다고 그래요. 화를 내더라도 해가 질 때까지 풀라고 하였잖아요. 그럼 해가 진 후에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과 아내가 해가 진 후에 싸우고 화를 낼 수 있잖아요. 직장 상사가 저녁에 전화를 걸어 갑질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해가 질 때까지라고 하면 단순히 얼른 풀라는 의미만 있을까요? 그냥 24시간 안에 풀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해가 지기 전에 풀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라는 말을 잠들기 전까지는 다 풀어야 한다고 해석하는데, 화를 품은 채 잠을 자게 되면 악마에게 틈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동안 악마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그 화에 대한 후유증을 심어놓습니다. 화를 품은 채 잠을 자고 나면 아침에 깰 때도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경험을 하신 적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화가 덜 풀린 것이 아니라 악마가 그 화의 후유증을 잠자는 동안 우리의 무의식 속에 심어놓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성숙한 인격은 고사하고 쉽게 시험에 들고, 쉽게 죄를 짓게 됩니다. 좀 신비스러운 해석이긴 하지만, 어떤 심리학자들은 충분히 그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리고 해결되겠지 하면서 빨리 풀려는 노력은 안 하고 막연히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화를 빨리 풀지 않으면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 안에 그 화로 인한 후유증들이 고스란히 담아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내면의 평화는 누리지 못한 채 우리 역시 늘 다른 사람을 씹고 험담하는 성품과 수준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매우 초라한 인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화를 잘 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대개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자신을 매우 괜찮고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자존감이 낮은 것이라고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 아닙니까? 아니에요. 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빈약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자신은 대단한 사람인데, 현실은 따라 주지 않거든요. 나는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생각하여도 현실은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늘 마음속에는 사소한 일에도 크게 분노하고, 타인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사고를 하며, 자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하여 습관처럼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러니 마음은 평안하겠어요?

우리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버리고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속된 말로 네 꼬락서니를 알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닌데도 지금 이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지간한 일에 요동하지 않기에 마음은 행복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드셨다는 설교를 들었는데, 그 말은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말과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까? 모순되지 않습니다. 걸작품으로 만드셨다는 말은 죄의 노예로 살다가 죽어야 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영원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할 때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감격은 있는지 없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시선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느낀 감정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영원을 사모하기보다는 현실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착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당신 편이 아닐 수도 있어요. 예수님 시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보세요. 하나님은 경건한 자기들을 매우 사랑하고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편이 아니었어요. 그런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편이 아닌, 여러분이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경멸하는 사람의 편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형제에게 화내고 분노하는 사람은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형제에게 욕하는 사람은 재판에 넘겨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어요. 이처럼 분노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주보 처음에도 형제와 화해한 후에 예배를 드리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화해하지 않은 채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찾아오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령에게 의지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해결해보려고 하였지만 잘되지 않거나 여전히 화를 잘 낸다고 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미 악마를 통하여 우리의 무의식에 화가 심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분노에 대해서 설교를 했어요. 예배를 마치고 한 부인이 목사님께 와서 자기는 성질이 좀 급한 편이라고 하면서 말했어요. “목사님, 저는 참기가 힘들어서 쉽게 폭발은 하지만, 그러나 뒤끝은 없습니다. 오래 가지 않고, 금방 잊어버려요.”

목사님이 부인에게 그러셨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 방이면 끝나지요.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런데 한 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다 박살 나거든요.”

 

그러므로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적나라하게 내놓으면서 기도하되, 특별히 금식기도를 하면 내 안에 있는 분노의 뿌리를 뽑을 때 크게 도움이 됩니다. 금식기도를 하다 보면 자신이 별거 아니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화내는 것이 사실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와 함께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분노라는 감정의 포로로 잡혀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감정의 노예가 되면 감정이 나에게 하라 대로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의 주인이 되면 우리는 감정에 지시하고 명령할 수가 있어요. 이 방법은 시편의 시인이 가르쳐준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시인을 향하여 비웃고 조롱하면서 말합니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약을 올리니까 시인은 몹시 낙심되고 괴로웠습니다. 더구나 비웃는 사람들은 갑의 위치에 있기에 시인은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그러다가 시인은 자신이 감정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게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하면서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하니까 낙심하고 괴로운 마음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평안한 마음으로 변하고, 시인은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찬양하게 됩니다(42).

화가 나십니까? 그 화를 여러분이 담당하지 말고 성령님에게 갖고 가서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맡아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어요. 진리란 완전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완전한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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