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예배와찬양 > 한인예배/설교
    
우리가 부를 노래 (고린도후서 13:11-13)
김우영 [ready4god]   2020-02-09 오후 9:13:27 138

20200209  

우리가 부를 노래

 고린도후서 13:11-13

: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는 말

찬송가 작사자 중에 토마스 헤이스팅스(Thomas Hastings)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너무나 음악을 좋아해서 나중에는 음악교사가 됐습니다.. 그가 가졌던 평생의 소원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음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 찬양하려고 가사를 쓰고 작곡도 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헌신하면서 많은 찬송을 지었는데 600곡 이상의 찬송 가사와 1,000곡이 넘게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이 분의 곡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예배 첫 찬양이었던 빛나고 높은 보좌와’(27) 뿐만 아니라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550)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494) 등이 있습니다.

그는 작곡, 작사한 곡을 오랫동안 성가대에서 함께 나누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에서 성가대에 섰는데 음악적 자질이 그때 많이 향상되었고, 또한 신앙도 많이 성숙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에게 있어서 찬송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찬송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태도를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많은 성도는 없지만, 최고의 찬송을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올리는 찬양은 이 땅의 어떤 음악보다 고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성가대의 헌신예배를 통해 우리가 마땅히 부르고 드려야할 노래는 무엇인지 함께 살피며 언제나 하나님을 기뻐해드릴 수 있는 참 성도의 모습을 갖춰나가길 기대합니다.

 

푸는 말

1. 우리가 부를 노래는 서로 사귐이 있는 노래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거룩. 성결이라는 주제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우리가 거룩한 성도임으로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고하며. “만약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맥주가 있다면 그것을 저 강물에 던져버려야 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은 소리치며. “아멘! 할렐루야!”를 불렀습니다. “만약 우리 손에 세상의 모든 위스키가 있다면 그것도 저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소서.” 여기저기에서 아멘!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습니다. “만약 우리 손에 세상의 모든 참이슬이 있다면, 그것도 저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소서.”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설교와 예배는 정말로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설교 후 헌금 시간에 성가대석에 있던 한 성도가 나와서 헌금찬송을 부르는데 성도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찬양의 첫 구절은 바로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신년을 맞았는데,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의 찬양, 장례에 관한 찬송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성령강림절 말씀은 힘차고 다짐과 결단을 선포하는데, 회중찬양과 성가대의 찬양은 이와 다른 주제라면 전체적인 예배의 분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성령과의 사귐,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사귐은 예배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교회와 교감하고, 교회력을 고려하고, 말씀과 어우러진 찬양을 할 때 설교와 찬양 그리고 예배를 통한 감동과 은혜는 배가 됩니다. 교회와 성도들, 목회자와 성가대. 어느 것 하나 독립적으로 이 예배를 구성해 갈 수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신비 안에서 서로 화합하고 역사를 완성해가듯 우리들 역시 사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교회와 예배를 세워가야 합니다.

13절에 성령의 사귐(교통)은 성령과의 사귐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우리 모두도 함께 사귀는 것의 중요함도 의미합니다. 11-12절에도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성도 안에 사귐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서로 배려하고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예배학자는 예배에는 종합 예술적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성도, 목회자와 성가대, 예배순서 맡은 자들과 회중, 말씀과 봉헌 등 다양한 것들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나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한국기독교에서는 신전통주의와 유교의 경향으로 사제들의 가르침, 설교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으나, 초대교회나 개혁교회를 보면 음악이 갖는 비중이 중요하고 큽니다. 즉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 앞에 더욱 아름답게 드리기 위해선 사제들뿐만 아니라 예배를 함께 세워가는 모든 분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1250분부터 곽병준 집사님과 찬양팀이 찬양을 인도합니다. 준비찬양이라는 말은 저희 교단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찬양팀의 찬양 역시 예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양 이후 멘트도 지금부터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국교회에서 주목할 만한 교회들이 있는데 그중 어떤 교회들은 나는 예배에 목숨을 걸었다.’ 라고 말할 만큼 예배에 큰 비중을 둡니다. 규모가 있는 교회는 다양한 준비와 짜임새 있는 조직을 통해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매주 예배팀이 모이고, 리허설을 하는 등 완성도 있는 예배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그런 수고를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이런 노력을 하느냐 아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도와 교회력 등을 고려하며 찬양곡을 준비하고 예배의 순서를 배열하는 것도 우리가 사귐을 통해 예배를 세워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최상의 예배는 성령하나님과 우리가 더불어 교제하고 사귐을 통해 세워가는 예배입니다. 비록 적은 인원이긴 하지만, 서로 존중하며 배려하여 사귐으로 하나님께 최상의, 최선의 찬양을 올릴 수 있는 귀한 성가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2. 우리가 부를 노래는 하모니를 이루는 노래입니다.

성가대는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높은 소리, 낮은 소리, 중간소리.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심지어는 성가대의 공공의 적 혹은 극적인 효과라 여겨지는 삑싸리까지 이 모든 다른 영역의 음이 하나로 모아져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 것이 성가대입니다. 우리는 다 각각 다른 소리를 내지만, 다른 소리를 낸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다 똑같은 소리를 낼 때 우리는 아쉽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쩌면 찬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서도 역시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노래하고 찬양할 때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와 성장 배경이 다른 사람, 나와 사는 정도가 다른 사람, 나와 문제 인식이 다르고, 문제 해결의 방법이 다른 사람,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이 천국을 노래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요즘 한국을 보면 깊이 있는 배려없이 나와 다르고 처지가 다른 이들을 향해 선을 긋고 매도하고 대치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정치권의 구태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겁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선봉에 세우고 뒤에 숨는 비겁한 이들. 기레기, 검새, 빨갱이 등 이런 단어들처럼 서로를 혐오하고 다름에 대해 극한으로 대치하는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도 많이 보여 속상합니다. 나와 다름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모습은 먼저 교회 안에서 회개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 일치 운동에 앞장섰던 사제 한스 큉은 교회의 4가지 본질을 거룩성, 통일성, 보편성, 사도성 이라고 했습니다. 죄성 가운데 있는 거룩성, 다양성 중의 통일성, 개체성 중의 보편성과 사도성입니다. 이 중 통일성을 보면, 이 말을 획일성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통일성은 다르지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획일성은 무엇이든 똑같아야 한다는 것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교회는 다름을 인정하는 곳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고 하모니를 이루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배학자 로버트 웨버는 오늘날 새롭게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만의 선입견을 버리고, 다른 교단과, 다른 교회와, 다른 예배와 교류하는 교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교회들은 자신들의 예배 전통을 지키면서도, 타교단의 전통을 도입하여 호흡을 맞추고, 역사적 전통 속에 있는 예배 요소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려는 시도. 그것이 로버트 웨버가 관찰한 현대 교회와 현대 예배의 흐름입니다.

사랑하는 성가대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아름다운 하모니를 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음정의 하모니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귐과 나눔에 있어서도 하모니를 이루고 이끌어가는 귀한 성가대, 그리고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3. 우리가 부를 노래는 천국을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신약에 보면 다양한 노래가 나옵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하늘의 모습에는 거의 대부분 성가대가 그려져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가 유일하게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찬양입니다.

사제의 말씀도, 기도도, 성경공부와 헌금, 봉사도 다 그치겠지만, 유일하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천사와 함께 부르는 찬양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성가대 여러분은 참된 천국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천국을 연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날, 저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곳에서는 저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토록 만나기 원했던 주님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가신 수많은 보고 싶은 얼굴을 볼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분명 볼 수 있을 줄 압니다. 천국에 먼저 가 계신 장모님과 친지들 그리고 먼저 간 친구까지 그리던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천국. 그리고 이 세상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 된 세상의 모든 성도들도 만날 것입니다. 이 천국을 노래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부를 노래입니다.

: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편지 끝에 자신이 함께 교제하던 많은 이름을 나열합니다. 고린도후서에는 형제자매라고 나오지만, 부부의 이름, 자매, 남매, 어머니와 아들 등 다양한 이름이 그의 다른 편지들에 적혀 있습니다. 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오늘 자신이 여기까지 복음을 전하며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수고와 사랑,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에는 현란한 기술과 음색의 빼어남이 아닌 하나님과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천국을 소망하며 경주하는 우리의 열정도 담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바울처럼 함께 믿음의 고백을 했던 성도들의 찬양을 가지고 가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되는 신조어중에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뜻하는 신조어로 '있어보인다''Ability(능력)'를 합친 단어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찬양은 남들에게 단순히 있어 보이려고 부르는 찬양이 아니라 부족한 중에도, 가난한 중에도, 슬픔 중에도 천국을 보여주는 진정한 있어빌리티가 되어야 합니다.

 

닫는 말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을 접합니다. 차에서 늘 듣기도 하고 휴대폰에 음원을 넣어 어느 때나 늘 가지고 듣습니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과 영혼에 유익을 주는 음악에 메시지와 은혜를 담아 드리는 귀한 찬양을 더욱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쳐주시는 성가대 여러분도 입술의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먼저 하나님 앞에 삶의 귀한 찬양을 드리고 서게 된다면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되고 사모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를 삶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많은 영광과 감사를 올릴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P : 188.187.120.155)
  기뻐하고 감사하는 기도(데살로니가 전서 5:16~18) (2020-02-16 오후 9:21:28)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1:1-3) - 정균오 목사 (2020-02-02 오후 9:56:50)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82     분노(에베소서 4:25-27)     최영모     2020.03.23     51  
  381     슬픔이 기쁨에게 (요한복음 15:9-12)     김우영     2020.03.15     94  
  380     사랑이 뭐길래 (골로새서 4:7-9) : 1부 러시아 오세준 목사     김우영     2020.02.27     78  
  379     기뻐하고 감사하는 기도(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최영모     2020.02.16     196  
      우리가 부를 노래 (고린도후서 13:11-13)     김우영     2020.02.09     139  
  377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1:1-3) - 정균오 목사     김우영     2020.02.02     130  
  376     최고의 명품 옷을 입읍시다(로마서 13:11-14)     최영모     2020.01.28     249  
  375     오벳에돔을 기억하며 (사무엘하 6:1-11)     김우영     2020.01.19     189  
  374     위선, 우리가 선택한 가면(요한 일서 1:7~10)     최영모     2020.01.12     219  
  373     그리스도를 닮아가라 (에베소서 4:13-15)     김우영     2020.01.05     213  
  372     인생을 결산하는 그날(히브리서 9:27)     최영모     2019.12.29     267  
  371     하나님께는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누가복음 2:8-14)     최영모     2019.12.26     419  
  370     우리의 임마누엘 (이사야 7:1-14)     김우영     2019.12.22     344  
  369     우리 모두 별이 되어(마태복음 2:1-12)     최영모     2019.12.15     354  
  368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야고보서 5:19-20)     최영모     2019.12.08     324  
  367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야고보서 5:13-18)     최영모     2019.12.01     320  
  366     더디 걷더라도 (출애굽기 14:5-14)     김우영     2019.11.24     287  
  365     저녁노을이 더 아름답다(전도서 12:3-5)     최영모     2019.11.24     367  
  364     서원과 맹세(야고보서 5:12)     최영모     2019.11.17     306  
  363     인내-믿음의 증거(야고보서 5:7-11)     최영모     2019.11.10     690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