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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1:1-3) - 정균오 목사
김우영 [ready4god]   2020-02-02 오후 9:56:50 323

시냇가에 심은 나무(1:1-3)

 

서론/

시편 13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가 많기 때문에 물이 적습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최고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철에 맞는 열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그 잎이 시들지 않습니다.(사실사철 푸르른 나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하는 일마다 모두 다 형통하게 된다.(1:3) ‘형통은 절대 실패하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고통과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살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고 고통과 고난을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원리입니다.(전도서) 그러면 형통이란 무엇일까요? 형통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이 행복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해피엔딩)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러시아에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편은 어떻게 하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론/

시편은 지혜서(, , , , )에 속합니다. 지혜서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의인과 악인으로 나눕니다.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혜서의 주장입니다.(잠언 예외) 시편은 전체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시편전체의 서론과 같은 시입니다. 시편 1편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에 대해서 가장 원론적인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는 의인의 모습을 말씀하고 4-5절에서는 악인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을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5절에서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결론으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знает)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오늘은 1:1-3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은 복 받는 사람을 될 수 있을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1절은 복 있는 사람은 ‘...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형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3가지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을 가능성이 낮고 최후의 심판의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죄인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악인의 꾀에서 사용된 라는 단어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을 말합니다. 악인의 꾀(совет)는 악인의 생각에서 나온 사상이나 철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생각 속에서 나온 사상 중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10:4)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부인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결과는 불안과 두려움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ходит)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좇는 다는 것은 반복적인 행위를 말합니다.(동사 ходит은 왔다 갔다 반복적인 행위를 나타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반복해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했다 안했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언제나 어느 때나 확고하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사상이며 철학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생각과 마음중심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늘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의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6) 어렵고 힘든 시절을 지날 때도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물길을 내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삶 속에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두려워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대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복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느냐고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의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도 늘 불안하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21:21-22)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11:6)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진짜 복(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죄인은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에 빠진 사람을 말합니다. 죄인은 길(пути)이란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은 삶속에서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 뜻과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그 결과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3:23)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절을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 자신, 인간, 자연만물) 이런 인생은 늘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이런 인생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허무하게 끝나는 것입니다.(5)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стоит)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서 있다는 것은 삶의 방식이 습관화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여 불순종하는 죄에 빠지는 것이 습관화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겸손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입니다. 불순종과 교만과 싸워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죽음의 그림자(불안, 불행, 병과 고통)에서 해방되고 생명으로 변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학생들과 함께 볼고그라드에서 모스크바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책에서 죄를 범하면 벌을 받는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의 죄는 자신이 초인이라는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그 교만이 전당포 노파를 죽어도 죄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그 전당포 노파를 도끼를 죽입니다. 죄를 범한 그는 초인이 되기보다는 정신적인 불안과 분열현상을 경험합니다. 라스꼴리니코프는 죄를 범한 결과 자신과 세상과 단절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라스콜리니코프를 살린 사람은 소냐입니다. 그녀는 라스꼴리니코프를 진실하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말합니다. 광장 4거리로 나가서 대지에 키스하고 사람들에게 내가 전당포 주인을 죽었다고 고백하라. 라스꼴리니꼬프는 광장 4거리에 나가서 대지에 키스를 합니다. 자신을 가장 낮은 자세로 낮춥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전당포 노파를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가장 낮은 자세와 /겸손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죄를 고백하는 그 순간에 그는 새로 태어나는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교만하여 불순종하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겸손하여 순종하는 것은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을 습관화하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운다는 것은 불순종과 교만과 싸우는 것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16:18)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한 마음과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2:5-8) 물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은 장애물과 싸우지 않습니다. 물은 바다로 자신을 다 내어줍니다. 물은 만물을 소생하게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낮추고 자기를 부인(16:24)하여 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열망하며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갈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6:33)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만은 최고로 악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만'교만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에 더해서 남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만한자는 하나님과 사람을 모독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행동과 같습니다.(14:13-14) 오만한 자의 자리(собрании) 삶의 행위가 집단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만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뭉쳐서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를 만듭니다. 오만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뭉쳐서 오만한 행위가 정당화되는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오만한 사람들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은 사회시스템은 구축합니다. 그 결과 세상 전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는 사회형태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사회와 단체는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높여지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행한 것이지요.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сидит) 않습니다. 여기에서 앉는다.’(сидит)는 것은 고착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세상 풍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시대조류를 역류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심장)과 뜻(영혼)과 정성(지성)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랑의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풍성한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십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보다 위대한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인간과 돈이 하나님보가 높을 수 있을까요? 오만이지요. 오만은 멸망과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만은 자신 하나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경외)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런 사람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사람은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러시아 사람도 사랑하시고 고려인도 사랑하시고 한국 사람도 사랑하시고 북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중국 사람도 사랑하십니다.(어제 저녁 택시 기사-중국 사람으로 오해하고 무시함) 무시를 당해야 할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상호 존중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램브란트 작품의 특징: 사람에 대한 관심과 따스함-램브란트를 위대하게 만드는 힘) 아무리 값어치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형식을 통하여 복 있는 사람은 3가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형식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런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2절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2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을 긍정적인 형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는 사람은 두 가지를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좁게는 모세오경을 말하고 넓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에 마음이 쏠려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사랑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묵상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꾸준하게 묵상한다는 것입니다.(19:7-10, 199:97,103) 말씀을 꾸준하게 읽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누구신가?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발견하고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우리의 삶의 변화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신이 우리의 삶의 철학이 되고 삶의 방식이 되고 삶의 행위가 성경적으로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습관이 영성을 형성하고 영성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는 인생을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1:8, 1:3)

 

결론/

인생의 최후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형통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입니다. 49:22절에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12아들을 축복할 때 요셉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열매가 많은 나뭇가지 곧 샘 곁의 열매 많은 나뭇가지다. 그 가지가 담장을 넘었다고 합니다.(49:22) 요셉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전에는 형통이 아니라 불통과 같은 생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습니다.(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성폭력 자는 모함을 받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만났던 술 맡은 관원으로부터 잊혔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33살에 외국에서 오를 수 없는 자리까지 몰라갑니다. 그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최후에 형통한 인생이 되었습니다.(8:28)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살아가십시오./ 겸손하게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아가십시오./하나님과 이웃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십시오./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복으로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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