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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품 옷을 입읍시다(로마서 13:11-14)
최영모 [beryoza]   2020-01-28 오전 3:02:11 163

최고의 명품 옷을 입읍시다(로마서 13:11-14)

 

중국의 우한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로 인하여 그 지역과 주변 지역은 매우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이름을 붙인, 우한 폐렴 환자가 한국에서도 발생하여 명절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고요. 오늘 아침까지 우한 폐렴으로 사망한 사람도 60여 명에 이르고, 확진자는 2000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혜롭게 대처하여 더 퍼지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보호가 있도록 이 시간 우리 모두 소리 내지 않고 잠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설날이기에 저는 오늘 한복을 입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는 의식주, 옷과 음식과 집입니다. 사람들이 옷에 대하여 가지는 느낌 역시 음식과 집처럼 매우 다양합니다. 좋은 옷,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고 하지요. 소위 말하는 명품 옷을 입으려는 욕구 또한 많은 사람이 갖습니다.

어떤 옷을 명품이라고 하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구찌, 샤넬, 루이뷔통, 버버리, 디오르 등 여러분의 옷장에 이미 대여섯 벌씩은 걸려있는 그런 브랜드가 명품이라고 나오더군요. 갑자기 여러분의 표정들이 왜 그러십니까? 집에서 허드렛일을 할 때 가볍게 걸치는 옷들 아닌가요? 집 앞에 있는 가게에 잠시 나갈 때도 쉽게 걸쳐 입고 나가는 브랜드잖아요.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절약하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절약하려고 애를 써요.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내의 그런 노력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 부인이 백화점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였습니다. 명품인지라 가격이 상당히 높았지만, 부인은 그 옷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내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이 옷을 사지 않았겠어요.” 남편이 말합니다. “당신이 평소에 자주 하던 대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러지 그랬어요.”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지 않았겠어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랬더니 잠시 후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뒤에서 봐도 그 옷은 너무나 아름답소그러잖아요.”

 

명품이란 많은 사람에게 그 품질과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명품은 그 옷을 입는 사람에게 종종 자부심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부러움을 주기도 합니다.

명품이 좋긴 하지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명품 중의 명품, 최고로 좋은 명품 옷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이 처음으로 옷을 입게 된 이유가 나와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세기 2장 마지막 절은 아담과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하였어요. 그런데 3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담과 아내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지하신 것이었어요.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지요. 그런데 먹고 나니까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벌거벗은 것이 부끄럽지 않았는데, 죄를 짓고 나니 부끄러웠어요. 순수한 에로티시즘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순수함이 빠지고 죄가 개입되는 순간 에로티시즘은 아름답지 않게 됩니다. 벌거벗은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자 아담과 아내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뜨면 나뭇잎은 마르고 시들어버립니다.

여러분, 죄 중에서 제일 큰 죄가 무슨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위선이라고 말하고 싶은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오늘 질문의 정답은 들킨 죄입니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그냥 넘어갈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은 죄를 짓고 숨어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동물을 죽여 가죽을 벗기고,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기 위하여 가죽옷을 입히려면 동물이 먼저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려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것을 미리 보여주는 계시였고, 신학적인 용어로는 예표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구원을 얻는 사람을 가리켜 갈라디아서에서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3:27). 무화과나무 잎으로는 인간의 죄와 수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라는 옷으로만 수치를 가릴 수 있었고 죄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옷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옷을 입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오늘 성경 본문은 아우구스티누스를 회심으로 이끈 말씀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양아치가 따로 없을 정도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철학과 다른 종교에 심취하였어요. 그러다가 밀라노로 가서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면서 다른 종교와 철학, 그리고 기독교 사이에서 심한 정신적 번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집어서 읽으라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그는 뭐라도 집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집 안으로 들어와 눈에 띄는 책을 집어서 펼쳤어요.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로마서 1313절이었습니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13:13-14)

이 말씀을 읽는 순간 그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로의 개종을 결심하고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교육을 받은 후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의미는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며 산다는 말입니다.

 

떤 사람이 군복을 입고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군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경찰복을 입고 있으면 경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흰 가운을 입고 있으면 의사나 간호사라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말은 누가 보더라도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구나하는 것을 드러내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명품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매직을 칠해서 브랜드를 지워버린다거나, 아예 상표를 떼 내어 버린다면 그 사람은 명품의 가치를 모르거나 아니면 명품을 입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명품 옷을 입었으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잖아요. 명품에 맞도록 가슴을 펴고 싶은 것처럼, 명품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면 언제고 어디에서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야 정상입니다.

한두 해 전에 한국디자인협회가 이곳에서 전시회를 하였습니다. 전시회를 하기 얼마 전에 디자인협회 회장으로부터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전시회가 끝나고 나면 전시회 작품을 우리 교회에 기증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 그런 선물을 주십니까?” 그랬더니 자기는 교회의 권사라고 밝히면서, 선교를 위하여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정하기 전에 먼저 10개 정도의 작품을 고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끝난 뒤에 선택한 그 작품들을 우리 교회에 주겠다고 하였어요. 가서 보니 40여 개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거예요. 그중에서 10개를 골라 번호를 말해주니까 그 작품들을 모두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적당한 시간에 벽에 걸려고 지금 교회에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권사임을 밝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권사로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하나님은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께서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다.”(3:17)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우리는 말해도 주님은 아니다. 너는 가난하고 벌거벗었다라고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를 안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믿었어요. 그런데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만 자랑하였지, 언제 어디에서나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일은 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벌거벗었다고 주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어느 회사의 직원 송년 모임에서 사장이 부장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김 부장, 나는 당신이 맘에 들어. 당신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우리보고 교회 다니자고 말하지도 않고, 교회에 다니는 티도 전혀 내지 않고 하니 참 좋다.” 그런데 김 부장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전도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김 부장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성가대 가운이나 목사 가운은 예배 시간에만 입습니다. 집으로 입고 가지는 않아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성가대 가운이나 목사 가운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 어느 부흥회에서 들었던 얘기가 기억납니다. 시골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치자 어느 장로님 부인이 이불을 갖고 교회로 왔답니다. 그러면서 그랬대요. “우리 장로님은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집에서는 개망나니입니다. 그래서 나는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서만 살겠어요.”

오늘 본문에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자,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 행동하는 것처럼 하자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말은 모두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누가 보든지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보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최고의 명품 옷을 걸치고 사는 사람입니다.

 

3.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대령에서 장군이 되면 달라지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 옷도 달라지고, 차의 번호판에도 별을 달게 되며, 대통령에게 직접 칼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권총도 달라지고, 죽은 후에 묻히는 국립묘지의 면적도 달라집니다. 크게는 40여 가지 적게는 200여 가지가 달라진다고 그래요. 많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명품 옷을 입을 때도 달라지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 대표적인 특권 여섯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해야 할 일, 깨닫는 일을 인도해 주십니다. 세상을 나 홀로 살라고 하면 참 힘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를 인도하신다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면 우리는 천사의 보호를 받는 특권이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모든 천사는 구원받을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셨다고 말합니다(1:14). 아버지가 대통령이면 그 자녀와 손자들까지 경호원이 지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품 옷을 입게 되면 경호원인 천사가 우리를 섬기면서 지켜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면 사탄을 이기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다라고 하셨습니다(10:19).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말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죽이고 싶어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명품 옷을 입게 되면 기도의 응답을 받는 특권이 생깁니다. 기도란 사람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그런데도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나뭇잎 옷 대신 가죽옷을 입힌 것은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타잔>이라는 영화를 보면, 팬티만 입은 타잔이 ~~”하면서 이 나무 저 나무로 돌아다녀요. 밀림 속에 있을 때 그것은 멋있어요. 그러나 타잔이 팬티만 입고 사람들이 많은 도시로 나오게 되면 구경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때는 제대로 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가죽옷은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아담과 하와를 보호해주는 옷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면 세상에서 우리는 잘 살아가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왕궁에서 혼인 잔치가 열렸습니다, 왕의 아들이 혼인하는 것입니다. 왕은 사람들을 초청하였어요. 초청받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일하러 간다고 하면서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해야 한다고 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청하러 온 사람을 모욕하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자 왕은 결국 아무나 데려오라고 하면서, 그러나 하나의 조건은 혼인 예복을 입은 사람만 잔치 자리에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혼인 예복도 각자가 집에서 준비해오는 것이 아니라 왕궁에서 미리 준비해둔 것입니다. 단지 와서 입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을 때 우리는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이며,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어려울 것 하나 없습니다.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구찌, 샤넬, 루이뷔통, 버버리, 디오르 같은 옷들은 물론 명품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명품은 예수 그리스도로 입는 옷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명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최고의 명품은 나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가슴에서 진정으로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명품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인생이 최고의 명품을 걸친 채 찬란하게 펼쳐지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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