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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벳에돔을 기억하며 (사무엘하 6:1-11)
김우영 [ready4god]   2020-01-19 오후 9:15:58 189

20200119

오벳에돔을 기억하며

 사무엘하 6:1-11

:11 그래서 주님의 궤가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 때에 주님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여는 말

어느 아내가 줄 담배를 피우는 남편의 건강에 대해 늘 염려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별 노력을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달 온 신문에 담배에 대한 특집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습니다. 아내는 기회다 싶어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신문에 담배가 암의 원인이라고 크게 기사가 났어요.” 그 때 남편은 눈을 천천히 껌뻑이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사인펜 좀 가져 와. 뭐 좀 써 붙여야겠군.”. “금연이라고 쓰려구요?”. “아니, 신문 사절

 어떤 상황에 대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일 순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 똑같은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줄 알며 반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제직을 임명하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성장과 기능을 돕고 주신 사명을 더욱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성직매매라고 하며 비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제 주위를 보면 이것 때문에 교회와 멀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만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공동체일 뿐입니다.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교회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는 더욱 많아져야 합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교회의 직을 맡는 이들의 주를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종의 분담금처럼 변질되는 모습을 보며 불쾌하며 속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마음과 정신에는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교회는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지만 다시 제직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더욱 잘 감당하고자 오늘 남녀 선교회도 조직하려 합니다. 오늘은 교회 안에서 사람을 세우는 일이 갖는 의미를 살피며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람에 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는 말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법궤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법궤 안에는 세 가지의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해 주셨는데, 그 만나를 넣은 항아리가 법궤 안에 있었습니다. 또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직접 세워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판이 있습니다. ,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성물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이끌 때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런 중요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사무엘상 6장에 보면 우여곡절 끝에 법궤가 이스라엘의 기럇여아림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약 70년이 지나는 동안에 어느 누구 하나 법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되어 잊혀진 이 법궤를 찾아와 다시 성전에 모셔다 두려 했었습니다.

다윗 왕은 신하들과 법궤를 옮겨오는 일에 대해 협의하고 거국적인 행사로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정병 3만 명을 모아 법궤를 호위하게 했고, 전국에서 최고의 악사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을 모아 찬양대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데리고 약 40년 동안 법궤가 머물러 있는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윗 왕이 참석한 가운데 법궤를 성막으로 옮기는 대대적인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의 무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고, 노래하며,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며 축제는 점점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축제의 현장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수레를 몰고 가던 소들이 거칠게 뛰어 수레 위에 있던 법궤가 떨어질 듯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소를 몰고 가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손을 펴서 흔들리는 법궤를 붙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웃사가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6-7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뛰어서 궤가 떨어지려고 하였으므로, 웃사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궤를 꼭 붙들었는데, 주 하나님이 웃사에게 진노하셔서 거기에서 그를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

 그 순간 모든 악기 연주는 중단되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던 왕과 백성들도 그만 할 말을 잃고 황망한 일 앞에 놀라 멈춰 섰습니다. 축제 중에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슨 징조인지 몰라 서로 수근 거릴 뿐이었습니다.

 민수기 4:15 진 이동을 앞두고, 이렇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물건들과 그 물건에 딸린 모든 기구를 다 싸 놓으면, 비로소 고핫 자손이 와서 그것들을 둘러메고 간다. 이 때에 거룩한 물건들이 그들의 몸에 닿았다가는 죽는다. 이처럼 회막의 거룩한 물건들을 옮기는 일은 바로 고핫 자손이 맡는다

 원래 법궤는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들이 친히 어깨에 메고 법궤를 운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수레에 싣고 법궤를 운반했으니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9-10 그 날 다윗은 이 일 때문에 주님이 무서워서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실어 가게 하였다

다윗은 일단 두려운 나머지 고핫 자손인 오벳에돔 집으로 서둘러서 법궤를 옮겼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바로 웃사와 오벳에돔입니다. 한 사람은 법궤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한 사람은 법궤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1. 웃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6-7절에 나온 대로 그는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오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는데 그때 갑자기 소들이 뛰어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하나님의 법궤를 꼭 붙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웃사는 당연히 칭찬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여 웃사를 치시고 웃사는 궤 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레위인으로 제사장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귀함을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을 것입니다. 다만 고핫 자손이 아니기에 성물에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궤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생각하고 법궤에 손을 댔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죽게 했습니다. 어찌 보면 불합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조금 전 읽었던 민4:15에 보면 하나님은 법궤를 이동시킬 때 반드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기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비나답과 그의 아들 웃사와 아히요는 좋은 수레를 만들고 소로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또한 법궤에 몸이 닿지 않게 하라고 하셨는데 웃사는 순간 자신의 판단으로 흔들리는 법궤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판단 그리고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을 우선시 했습니다. 더 효율적이고 이성적이며 편리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사무엘상 15:22b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이 시간도 우리들에게 선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시대가 변하면 말씀도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겠지만, 그 말씀 안의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순종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합리적, 효율적보다 순종이 우선입니다.

고전 1:21b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순교자의 피, 선교사들의 헌신과 포기, 성도들의 사랑과 수고, 그리고 열심을 왜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 부를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전도해야만 확장되고 완전해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부족하셔서 우리가 헌금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비효율과 비합리하고 비생산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미련한 것을 우직스럽게 지켜나가는 성도들의 순종을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세상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다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결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하나님은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누구나 빼어나고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뛰어난 사람은 찾지 않지만,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은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이렇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2. 다음은 오벳에돔입니다.

법궤를 옮기는 중 웃사의 죽음으로 인해 다윗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고통과 위기가 닥쳤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일을 중지시켰습니다. 이후 다윗은 법궤를 오벳에돔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오벧에돔이 어떤 사람이기에 다윗은 그런 위기 속에서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시게 했을까요? 대충 결정했을까요? 다윗이 법궤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하들에게 물어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벳에돔입니다..

 대상 15:18 그들 말고, 두 번째 서열에 속한 그들의 친족들은,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벳에돔과 여이엘이다.

두 번째 서열은 레위의 둘째 아들인 고핫 자손을 이야기 합니다.(46:1) 앞서 읽었던 민수기 4:15에서 거룩한 물건은 고핫 자손이 맡는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은 결국 그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오벳에돔이 레위인 중 고핫 자손이고 성전 문지기였다고 스쳐지나가듯 그에 대해 기록합니다. 분명 그는 이스라엘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종교적으로도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성전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였지만 성전 안에서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과 성전의 창고를 관리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과 성실함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았기에 이를 들은 다윗이 그를 믿고 법궤를 맡겼다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웃사가 법궤를 옮기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후 그 법궤를 여러분의 집으로 모시고 가자고 하면 허락하겠습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벳에돔은 그 법궤를 자신의 집으로 모십니다. 성경은 왜 오벳에돔이었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궤적을 보면 우린 그 이유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실했고,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비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맡은 직책은 비록 성전 문지기일지라도 그의 믿음의 크기는 제사장도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오벳에돔이 복을 받은 비결입니다.

:11 그래서 주님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 때에 주님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아비나답은 자신의 집에 하나님의 법궤를 40년 동안 모시고 있어도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벳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있는 3개월 동안에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비나답과 그 가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던 시간을 폄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여 우리 안에 그 사랑과 섬김이 타성에 젖지는 않았는지, 첫사랑과 첫 감격을 놓치고 있진 않았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오벳에돔을 보며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 이 교회에서 찾으시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목사, 선교사, 장로, 권사, 집사로 포장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할지라도 비범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성실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의 삶이 오벳에돔과 같이 성실하여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대로 살기에 설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삶이기에 말씀을 준비하며 회개하고 또한 마땅히 그렇게 살기를 노력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삶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추장은 나이 어린 손자에게 이 싸움은 나이 어린손자의 마음속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그건 두 늑대 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소망, 사랑, 인내,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야,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김용택 시인의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것이다에 나오는 글입니다. 괴물에게 먹이는 주는 사람이 있고, 천사에게 성찬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방법보다는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 우선되며, 순종보다는 효율과 편리를 우선하는 웃사처럼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우직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땅을 살아가길 노력하는 성실한 오벳에돔과 같은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느 편에 먹이를 주시렵니까?

 교회제직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책임과 수고는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쉽게 뒤로 물러 설 수 없는 우리교회의 형편에서는 더욱 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미련스럽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완성하고 계시며 또한 기뻐하고 계십니다.

오늘 예배 이후 남녀 선교회를 구성하고, 앞으로 제직세미나도 있습니다. 한 해의 사역과 부서별 토의와 교제를 통해 교회를 교회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함께 동참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오벳에돔을 기억하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은 잘하는 몇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과 성실로 무장된 주님의 사람들을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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