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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산하는 그날(히브리서 9:27)
최영모 [beryoza]   2019-12-29 오후 8:56:00 209

인생을 결산하는 그날(히브리서 9:27)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1224, 그러니까 지난 화요일 밤은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교회가 성탄전야축하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MBC에서 방영된 PD수첩의 제목은 믿음을 배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는데, 내용은 세 곳 대형교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 교회 모두 담임 목회자의 돈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면서, 그 결과는 아버지가 담임목사직을 자녀에게 물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스컴의 영향은 매우 큽니다. 한 번 이렇게 방송으로 보도되면 당사자인 교회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고요. 세 교회 가운데 두 교회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판정을 내린 교회였습니다. 이단은 저렇게 당해도 마땅하다는 생각 이전에 일반인들의 눈에는 모두 같은 교회로 비칠 것인데, 상관이 없는 다른 교회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겠구나 하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무조건 교회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그런 방송은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방송에 등장하는 교회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있을까, 믿는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결산하는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믿는다면 그러한 행동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스컴의 보도가 정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날 방송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19803, 프랑스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한 지성인이 폐수종이라는 병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이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는 등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서 돌보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합니다. 아내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남편에게 그의 병명을 말하지도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 소리치고 발악하며,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던 이 사람이 바로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마지막은 죽음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조국 독일이 히틀러에 의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부를 중단한 채 급히 독일로 돌아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전쟁과 히틀러를 반대하다가 체포되었고 감옥에 수감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한 영국 장교의 유고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영국 장교는 그 목사님과 함께 같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194548일 주일 아침, 주일 예배도 마치기 전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독일군인 둘이 찾아와서 그 목사님에게 우리를 따라오라고 그러더랍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거기에 모인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 함께 있던 영국 군인이 말하기를 목사님 이것이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내 생명의 시작입니다. 감옥 생활은 끝났습니다. 내 자유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생은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형장으로 나갔습니다. 그 목사님에게서 느껴지는 놀라운 평안과 기쁨은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에게 큰 인상과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본 훼퍼 목사님입니다.

죽음 앞에서 보는 장 폴 사르트르와 본 훼퍼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죽음을 앞에 두고서 왜 이렇게 서로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입니다. 2단계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3단계는 죽음 후에 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1단계 인생은 2단계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지금 이 세상의 현실을 생각하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2단계에서는 3단계의 삶을 모릅니다. 그저 희미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후에 분명히 3단계는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을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자기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삽니다. 실감하지 못하니까 죽음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50세만 넘으면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기도하고 준비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반박할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수 있느냐 하고요. 그러나 그 심판은 신자들에게는 상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6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어요.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치사하지요. 수준이 높아지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지요.” 그러면서 저에게 확인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목사님? 상을 받겠다고 예수 믿는다는 것은 좀 유치하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상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상을 받으려는 마음을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단지 우리가 기대하는 상과 하나님이 주시려는 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상은 내 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가서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갖고 가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상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갈 때 우리는 많은 것을 갖고 가지 못하고, 단지 세 가지를 갖고 가게 됩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 갈 때는 구원받은 나의 영혼을 갖고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8:3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드리신 기도 역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 하면서 영혼에 대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걸었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전 15:19)하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가게 될 영원한 세계가 있기에 행복하다는 거예요. 사도 베드로는 믿음의 결과는 영혼이 구원받는 것”(벧전 1:9)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한 영국인이 귀화를 하여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업차 쿠바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쿠바에 시민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데모를 진압하면서 이 사람에게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워 체포하였습니다. 재판에 회부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이 사람은 미국과 영국 영사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은 무죄이며 억울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두 나라의 영사들은 사건을 검토한 후에 스페인 장군에게 가서 말했어요. “당신들이 사형을 선고한 이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장군은 그 말을 일축하면서, “그는 우리 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아 유죄임이 드러나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죽어야 합니다.”하고 맞섰습니다. 150년 전이었기에 그 당시에는 통신수단이 빈약하여 그 영사들은 자기네 정부에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땅을 파고 그 안에 관을 놓고는 그 위에 젊은이를 앉혔습니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제 곧 발포하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영국과 미국 영사가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말에서 내리자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을 꺼내 젊은이의 몸을 둘렀고, 미국 영사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그 젊은이의 몸에 휘감았어요. 그리고 스페인 장교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용기가 있거든 저 두 나라의 국기에 총을 쏴 보십시오.” 그들은 감히 그 국기들 위에 총을 쏠 수 없었습니다. 그 국기들 뒤에는 두 나라의 거대한 정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남자가 살아날 수 있게 된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깃발이 우리 몸을 두른다면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짓밟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는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영생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산으로 받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2. 하나님께 갈 때는 내가 전도한 사람을 갖고 갑니다. 내가 죽을 때 전도한 사람도 함께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가도록 했다는 것이요, 그 일로 천국에서 받는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예수님을 대신하여 전도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의 관점에서 보면 전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동시에 전도해야만 능력 있는 신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생겨야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다 보면 능력이 생깁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튼튼하고 강해집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 커뮤니티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였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나는 지금까지 균형 잡힌 교회라고 생각을 했다. 건강한 신앙생활이 어떤 신앙일까? 나는 지금까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 건강한 신앙생활은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목적에 맞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교회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데 자신의 목적과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여기에서 교회라는 말 대신에 신자라는 말로 바꾸어도 의미는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자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신자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데 자신의 목적과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가서 나는 죽어가는 영혼을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하고 왔습니다하면 얼마나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입니까? 성서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난다고 하였어요(12:3). 저는 여러분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천국에서는 여러분의 영적인 자녀들과 함께 많은 복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별처럼 빛나는 상을 하나님으로부터 꼭 받으시게 되길 바랍니다.

3. 하나님께 갈 때는 내가 남에게 베푼 사랑을 갖고 갑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호화로운 의복과 맛있는 음식을 누리며 살지만, 그 집 앞에 있던 나사로는 온몸에 상처가 난 채 비참하게 삽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죽음이 찾아온 이후에는 완전히 역전이 됩니다. 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하였어요. 예수님의 여러 비유 가운데 실제로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나사로 한 사람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일하게 이름이 등장한 사람이 바로 거지라는 사실은 무언가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부유한 신자들과 가난한 신자들이 서로 거래를 하였습니다. 부유한 신자들은 가난한 신자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대신 가난한 신자들은 부유한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주었지요.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장례식에서 기도할 때 나사로가 죽은 사람을 압니다하고 기도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베드로가 천국 문으로 안내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나사로가 안내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주님과 가난한 자들을 일치시키기도 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은 일부의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묻습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그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 상은 창세 때부터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차지하는 것을 누가복음에서는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어요(19). 가난한 사람에게 한 것인데,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한 사람에게는 나라를 다스리는 상을 주신다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과 주님을 일치하십니다.

리처드 리키(Richard Leaky)라는 동물학자가 오랫동안 아프리카의 케냐에 살면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원숭이를 연구하였어요. 연구하면서 보니 원숭이와 사람이 비슷한 게 참 많았어요. 그러나 사람과 완전히 다른 점도 있었는데,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원숭이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사람들의 세계에서만 약한 자를 너그럽게 대하고, 없는 자와 나누어 쓴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동물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동물이 되지 않고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준 사랑과 여러분이 전도한 다른 사람의 영혼만을 하나님께 선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여러분 생의 마지막 날은 하나님께 상을 받는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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