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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마누엘 (이사야 7:1-14)
김우영 [ready4god]   2019-12-22 오후 10:04:21 343
20191222

우리의 임마누엘

이사야 7:1-14

: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는 말

오늘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대림절 4번째 주일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때가 되면 분위기에 맞춰 선물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릴 적 동네에 법륜사라는 절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성탄카드도 제게 보냈었고 또 그곳에서 자주 놀았는데 성탄엔 크리스마스 장식이 붙어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예전 면목동에서 사역할 때 동네에 있던 불당 앞엔 축성탄이라는 플래카드가 붙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성탄은 믿은 사람들의 축제를 넘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는 절기가 된 듯합니다.

어떤 통계에 보니 성탄시즌에 사람들이 쇼핑에 사용하는 금액이 세계적으로 무려 500조원 정도라고 하는데 이 돈이면 전 세계의 모든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지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산타클로스가 중국에 산다는 루머와 함께 아이들은 루돌프와 산타, 선물이라는 세 단어를 흠씬 들으며 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퍼집니다. 성탄절에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았다로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며 예수님이 빠진 성탄절을 비판한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선배들을 성탄절을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파스칼은 성탄절은 인간을 설득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카드가 도착한 날이다라고 말했으며, A.W 토저는 하나님의 겸손과 인간의 존귀함이 만나는 날이 성탄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임마누엘, 그들의 크리스마스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는 임마누엘의 메시지가 그들의 귀에는 또 하나의 소음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들은 그들과 다른 메시지로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말씀을 함께 나누며 우리의 임마누엘 예수의 의미를 확인하며 성탄의 기쁨을 되새기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푸는 말

1. 임마누엘의 배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 야훼이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당신의 이름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이름을 4가지 문자(הוהי, YHWH)로 썼는데 거룩하다 하여 발음하지 않고 그냥 주라는 뜻의 아도나이라고 읽었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엘샤다이. 엘로힘 등등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름과 내가 어떤 관계에 있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데 바로 예수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는 말대로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메시아=그리스도) 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이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오늘 구약본문의 임마누엘입니다. 예수, 임마누엘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입니다.

이제 임마누엘의 배경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유다왕 아하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가 통치하는 기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시리아(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왕 베가가 연합군을 이뤄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숫적 열세에 있고 전쟁도 경험이 없으며 믿음이 없는 유다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2 시리아 군대가 에브라임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다윗 왕실에 전해 지자,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

이사야와 같은 시기의 기록인 역대하 28장에 보면 이때 아하스왕은 성전의 보물과 국고의 보물을 모두 모아서 자신을 포위한 시리아(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보내고 그가 섬기는 우상의 신전을 모방하여 예루살렘에 세우고 그곳에 제사와 예물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아하스의 죄를 책망하며 외국의 군대를 의지하지 말고 우상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명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예언하였습니다.

:13-14 그 때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들으십시오. 다윗 왕실은 백성의 인내를 시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이제 하나님의 인내까지 시험해야 하겠습니까? /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단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는 낭만적 상상에 나오는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부정될 수 있는 긴박함 속에서 찾게 되는 이름입니다. 여러분의 한 해는 어땠습니까? 매일 평안과 감사의 연속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의 일상이 답답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치열한 현장을 이겨내고 우리는 다시 한 해의 끝에 서 있습니다. 살다보니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더욱 치열하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주변은 당시 시리아(아람)와 이집트와 같은 열강의 압박, 피를 나눴지만 대치하고 있는 북이스라엘과 같은 북한, 그리고 경제, 사회를 보면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좁고 어둔 긴 터널,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불안한 미래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청년들의 답답함으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습니다. 어떤 세대에 그치지 않고 모두 다 느끼는 절망 같은 상황입니다. 모든 것을 불사를 정도로 커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4 그를 만나서, 그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일러라.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일러라

우리의 눈에는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불처럼 강하고 커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타다만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다고 하십니다. 7절에는 절대로 그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세상에 누가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9절에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이렇게 거듭 말씀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굳게 서다는 말은 원어로 아만으로 아멘의 어원입니다. 입으로만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 될 줄 믿고 굳게 서는 것이 바로 아멘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이사야을 통해 임마누엘의 은혜가 선포됐던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주실 징조 즉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그저 들뜬 마음으로 성탄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들은 그들의 임마누엘이 아닌 나의, 우리의 임마누엘이 갖는 참된 의미를 확인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임마누엘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하면 나도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고백 위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대하 28:20-21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이 오기는 왔으나, 아하스를 돕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쳐서 곤경에 빠뜨렸다. / 아하스가 주님의 성전과 자기의 왕궁과 대신들의 집에서 보물을 꺼내어 앗시리아의 왕에게 바쳤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역대하를 보면 아하스는 어쩌면 세상 이치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집트와의 긴장관계 속에서 시리아를 선택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외교나 정책,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택의 많은 상황이 다 좋게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운으로 맡기거나, 러시아의 말처럼 Это жизнь 할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 밖에 있는 이들이 하는 말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상상은 할 수 있지만 말씀처럼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합니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넘어짐도 은혜요, 자빠짐도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우리에게 늘 플러스만 되는 삶을 약속하진 않습니다. 우리의 결단과 헌신, 때론 손해 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택하여 굳게 서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위로의 이름입니다. God With Us. 함께 할 때 우리에게 유익하고 유리하며 손해 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이 되어야 한다.’는 어린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신다는 그 말씀에 위로와 방향을 얻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축복합니다.

 

2. 임마누엘의 삶

:11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4: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렇게 해서 이적을 보여 주면, 주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난 것을 믿을 것이다. 이 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역사하셨듯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말씀해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너의 임마누엘이 아니라 나의,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어야 합니다. 11절에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너의 하나님에게 라고 말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십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막연하고 거리감이 있으시다면 이번 성탄절을 통해 우리의 임마누엘, 나의 임마누엘로 바꿔어지길 축복합니다. 우리들은 남들이 공부하고 알아냈던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오늘 세례식을 받는 두 청년이 있습니다. 함께 세례문답을 위한 공부를 하며 한결같이 나눴습니다. 우리가 배운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으로 하나님을 알 수는 있지만,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많은 분들이 2020년 제직으로 임명 받으십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제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의 임마누엘 되심을 고백하는 그 기초 위에 주를 위해 우리를 드리는 결단이 바로 헌신이고, 제직임명은 그 헌신을 기반으로 교회 안에서 함께 직()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각자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모임을 만들 수도 있고 해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세상의 모임과 분명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누리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이 땅에 다시 이런 고백을 불러 세우는 귀한 사명을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잘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세우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많이 가진 자를 선택하여 세우는 분도 아닙니다.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우리를 세우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선택하시는 분이시며 임마누엘의 고백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한국교회와 달리 이곳은 매우 열약합니다. 숫자도 적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임마누엘의 고백이 있음을 믿습니다. 제직의 사명은 단지 순번에 따라 기도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잘못한다고 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임마누엘의 고백으로 순종하며 감당할 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아직 제직은 아니지만, 우린 다양한 방법으로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갑니다. 성가대, 찬양팀, 방송 등등 그리고 함께 함으로도 이 교회는 든든히 서가게 될 줄 믿습니다.

 

닫는 말

단텐의 신곡에 보면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묻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의 말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을 만날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차오르게 될 줄 믿습니다. 당장 눈앞엔 그 기쁨이 허황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고백으로 서는 이들에게 반드시 기쁨의 날을 주십니다.

오늘 세례 받는 분들과 또한 다시 한 해 제직으로 임명받는 분들, 그리고 함께 예배의 자리에 선 우리 모두 임마누엘의 고백 위에 바로 서서 그들의 임마누엘이 아닌 우리의 임마누엘을 고백하고 보여주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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