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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야고보서 5:13-18)
최영모 [beryoza]   2019-12-01 오후 9:28:10 76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야고보서 5:13-18)


대림절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매우 밀접한 주제들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가 있습니다.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병들거나, 주위 사람이 병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난이 오거나 병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에는 비교적 익숙합니다. 그러나 즐거울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일은 매우 서투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고난이 오고 병이 들 때보다, 배부르고 등 따뜻할 때가 더 많은데, 우리는 자칫하면 그런 실수를 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 말씀은 고난을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고, 즐거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며, 병든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 고난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고난을 받을 때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하면 고난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면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고난이 오면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 이 고난을 없애 주세요.” 그러나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고난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세요. 그리고 고난을 이길 힘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 고난은 더는 고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당하기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기에, 이제 우리에게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이길 수 있는지 가르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고난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얼른 이해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욥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고난받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찾아와서, “, 너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거야. 네가 죄가 없다면 왜 이런 고난을 받겠니? 그러니 어서 회개해.” 하였어요. 그러나 욥은 자신은 죄가 없는데, 무슨 죄를 회개하라는 말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었어요.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할 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의 말에 반박하면서,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그러다가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항변할 자격조차 없음을 깨닫는 거예요. 죄가 없는 자신이 왜 이러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죄가 없다고 하여 고난을 받지 말라는 법 또한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렇잖아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난을 겪는 때가 있잖아요.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뒤차가 와서 들이받기도 하고, 지진이 일어나 억울하게 당하기도 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어요. 이렇게 죄가 있건 없건, 잘못했건 하지 않았건, 고난은 우리의 일상에 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러면 왜 고난을 받는지, 나에게 찾아온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겸손해집니다.

고난은 물론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요.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는 나환자들을 보면서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어요. 나병 환자들은 신체의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것이 바로 나병의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고통을 느끼는 신경이 마비되는 거예요. 그래서 뜨거운 물에 손을 넣어도 뜨겁지 않습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그러나 손은 심한 화상을 입는 거지요. 우리 눈은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자동으로 깜박거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나병은 갑갑함을 느끼는 세포가 죽어버렸기에 눈을 깜박거리지 않아도 갑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님이 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필립 얀시는 고통을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게 되면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고난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그 고난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알게 됩니다.

 

2.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이 말씀은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러시아어로 일이 잘 될 때 하는 말 있지요. 슬라바 보구(Слава Бог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찬송하는 것이나, 일이 잘 될 때 슬라바 보구(하나님께 영광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고난받을 때 기도하는 것은 소중합니다. 고난받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즐거울 때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종종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 중에는 고난이나 힘든 일이 닥칠 때 기도를 부탁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 엄마가 큰 병으로 진단을 받았는데, 기도해주세요.” “제가 어떤 회사의 입사 시험을 보는데 기도해주세요.” 대충 그런 일들인데, 그렇게 기도를 부탁해오는 일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나누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면 참 반갑습니다.

한국에 돌아간 집사님이 자기 아이의 돌이라고 하여 특별 헌금을 우리 교회에 보냈어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 교회를 기억해주는 그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면 우리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부부도 기쁜 절기에 기억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요. 첫 월급을 받았다고 하면서 감사헌금을 보내주는 사람도 마음의 훈훈함을 전해줍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의 전통이 된 것 같은데, 어디 다녀오면 과자를 사 와서 주일 식사 후에 함께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여행 중에 우리 교회 공동체를 생각하였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쁠 때 교회를 생각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기억하는 일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왕이 자기의 궁전을 멋있게 짓고 나니 매우 행복했어요. 백향목으로 지어진 궁전에 들어가 보니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 순간 그는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집, 좋은 궁전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초라한 천막 속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잘 짓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왕의 그런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언제 내 집 지어달라고 했느냐? 하지만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결심을 하니 내가 너와 너의 자손을 영원히 복 주겠다.”

그 왕이 바로 역사상 가장 멋진 인생을 살았던 다윗입니다. 다윗은 정치가로서 탁월했습니다. 나이 33세에 남쪽 유다 지파의 왕으로 즉위합니다. 조그마한 지파의 왕이 되어서는 다른 11 지파를 정복하고 7년 만에 통일왕국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는데도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를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많은 정치가가 그를 정치가 중의 정치가라고 인정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하프를 연주할 때는 머리가 혼란스러운 사람도 정신이 맑아질 정도로 명연주자였습니다. 음악 치료법에 대해서는 비교적 현대에 와서 얘기하게 되었지만, 다윗은 이미 훌륭한 음악 치료자였습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흔히 감성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고 오는 모든 문학가가 다윗의 시편 같은 시 하나를 쓰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고백하는 시를 1백 편 넘게 남긴 사람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역사상 가장 잘 생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는 아들 압살롬이 있었습니다. 영어 표현 중에 남자가 매우 잘생기면 압살롬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아들은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우정을 나누던 친구 요나단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우정을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마태복음이 시작되는 첫 말이 우리 성서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나오지만, 원어 성서에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다윗의 이름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나옵니다.

한 사람이 이처럼 많은 것을 누리며 산 사람은 역사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이 누린 그 어느 것 하나만 가져도 우리는 가슴을 펴고 행복하다고 할 만한데, 다윗은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다윗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자기 궁전을 짓고 즐거운 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할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즐거운 시간이 있습니까? 그 시간에 꼭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십시오.

 

3. 병이 들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오늘 본문은 병든 사람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장로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을 먼저 부르라고 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12:26) 이런 의미입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프면 온 가족이 다 괴롭습니다. 그 이유는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다른 부분도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한 교인이 아프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아픈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병든 사람은 먼저 교회의 대표에게 말하고, 그러면 교회의 대표는 그 아픔을 모든 교인과 나누며 기도하고, 치료를 돕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한 형제의 가족이 아파서 힘들 때 김우영 목사님과 소피아 선교사님 두 분이 차 운전을 하며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바로 공동체의 정신을 나누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김우영 목사님이나 소피아 선교사님에게 말씀하시면 주보나 가정기도 가이드에 실으면서 공동체가 함께 기도해주도록 하는 데, 이런 것이 모두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들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하였어요. 이 기름은 올리브 기름인데, 올리브 기름은 식용과 치유용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기름은 치유를 위한 것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발라주면 몸이 회복되는 그런 기름을 말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성서에 나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가진 것은 다 빼앗겨버렸습니다.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이 이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데,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주면서 치료합니다. 성서에는 이렇게 상처가 나면 기름을 바르는데,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오늘날 상황으로 표현하면 병든 사람은 약을 사용하여 치료하라는 의미입니다.

기름을 바르라는 이 말씀을 오해하는 이들이 있어요. 기름을 영적으로만 해석합니다. 그래서 기름은 곧 성령이기에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도로 낫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말씀을 문자대로만 해석하여 환자에게 기름을 붓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것을 정교회나 가톨릭교회에서는 종유성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말씀은 약을 사용하거나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르면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기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병이 찾아올 때 본인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지만, 대개는 본인의 잘못일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을 많이 먹다가 배탈이 났어요. 그럴 때 하나님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하고 기도하지 말고, 탐식의 욕심을 부렸던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기도 모습은 서로 함께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청년 시절에 같은 교회 안에 둘이 자주 만나 서로 기도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에게 양복이 필요한데, 둘 다 가난하다 보니 양복이 없었어요. 그래서 서로 이런 약속을 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가 더 잘 응답 된다고 하니까, 너는 나에게 양복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는 너에게 양복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렇게 기도하던 며칠 후에 여전도회 회장이 저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시장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양복을 하나 사주는 것입니다. 제가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은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신 것일까, 아니면 저 형제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일까 하는 것이었어요.

하여간 중요한 것은 서로 기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긴급한 일을 만날 때, 그 시간이 밤이든 낮이든 여러분이 연락하여 기도해달라고 할 사람이 있어야 해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으로 본문 중의 일부를 다시 읽고 말씀을 마칩니다.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분이 몹시 좋습니까? 찬양하십시오. 아픈 데가 있습니까?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하고, 기름을 발라달라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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