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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걷더라도 (출애굽기 14:5-14)
김우영 [ready4god]   2019-11-24 오후 8:38:38 62

20191124

더디 걷더라도

 출애굽기 14:5-14

:14 주님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

 

여는 말

사람들이 천국에 도착할 때마다 예수님이 보좌에서 일어나 그들을 포옹하며 맞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목사가 도착하자 예수님은 그대로 앉아서 바라보고만 계시더랍니다. 그러자 한 천사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주님을 증언하기 위해 평생을 애쓰며 살아온 목사님이 도착했는데 왜 일어나 맞아 주지 않으시나요?”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저 사람이 내 자리에 앉을까 걱정이 되서 그래.”

오늘은 교회력으로 2019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만, 주님이 주인 되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아등바등하며 분주하게만 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세웠던 다양한 기도의 제목과 다짐도 있었지만, 그것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우리의 걸어온 삶들을 살피며 앞으로 이어갈 긴 인생의 여정에서 보다 바른 길을 걷게 소망해 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의 긴 여정의 시작에 서 있습니다. 어떤 지리학자는 가나안까지 40일이면 도착할 거리라고 하던데 이 길을 40년을 걷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조급함에 이 명제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더디 걷더라도, 더디 가더라도 꼭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출애굽의 여정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확인하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대림의 계절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푸는 말

본문 출애굽기 14장은 11장까지의 열 가지 재앙사건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얼마 되지 않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을 보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지금 홍해 앞에 서 있습니다.

우선 14:2을 보면 믹돌, 비하히롯, 바알스본 우리에게는 너무 생경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후손들은 이 지명을 들으면 우리의 광화문, 종로3, 그리고 넵스키대로 같이 그 지역이 훤히 그려지는 굉장히 익숙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 가운데 벌어지는 실질적인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설 속의 일, 또는 나와 무관한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출애굽의 전 여정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신다는 것을 유념해야합니다. 당시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 더 그 상황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에 열 가지 재앙을 목격했습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서 이집트에 드리운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아마 이 경험은 일평생 지워지지 않을 만큼 강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이토록 엄청난 기억도 다 지워질 만큼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긴 여정이 시작될 무렵 바로와 그 군대가 다시 추격을 해오는 것입니다. 백성들 사이에는 다시 불평과 불만이 이어지고 있을 때의 벌어진 일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우리를 당당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8b 바로가, 주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았다.

8절에 보면 바로가 주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것을 상상해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홉 가지 재앙과 함께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은 다 죽는 상황을 경험했던 그들로는 당연히 하나님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우쭐대며 나갈 법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왠지 우리들의 모습을 닮은 듯해서 씁쓸합니다.

우리가 비록 더디 걷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를 당당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 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잘남이 우리를 당당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요와 기쁨, 감사와 안전, 위로와 평안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교묘하게 가린 채 이 모든 공을 서로서로에게 돌리고 있진 않습니까? 당당하게 걷는 것이 어찌 우리의 재주와 머리에 달려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은혜입니다. 세상 앞에 우쭐하며 자신들이 이 모든 상황의 주인이 된 양 뻐기는 모습은 삼가야 될 줄 압니다.

당당하게 나가고 있는이 부분의 다른 표현으로 관주에 높은 손으로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잘 부르는 CCM 중에 손을 높이 들고에 해당하는 같은 히브리어입니다. (빼야드 라마). 즉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큰 권능을 찬양하며,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들의 힘 되신 주님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앞에 당당하게 나가는 만큼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둔 성공과 자랑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지 못한다면 이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당당함, 우리가 가진 담대함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습니다.

요한15:14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 안에는 당당하고 자랑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우리의 당당함과 자랑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힘과 능력, 물질과 환경 등 어찌 보면 내가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밀히 보면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보호를 받는 가운데 얻었던 성공이며 자신감이고 또한 안정감이었음을 우린 고백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25:29 그러므로 어느 누가 일어나서 장군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생명은 장군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것이지만,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주님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

쫓기던 다윗이 바란 광야에서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만나 하나님의 위로를 받던 대화 내용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싸개, 생명 보자기에 싸여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 몸과 생명을 내가 지킨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삭막해지며, 다른 이들을 경계하며 살아가야하니 얼마나 긴장되며 안타깝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주와 운을 따라 생명을 저울질하며 위태위태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살았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땅을 살아가며 얼마나 호기롭게 사는지 모르겠으나, 그 당당함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의로 지켜지지 않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보증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며 우리를 든든하게 하는지도 다시금 새겨야겠습니다. 이 은혜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야 하고 한 해를 마감할 때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이 감사가 되어야합니다. 이런 고백이 다시 한 해도 풍성하시길 축복합니다.

 

2. 세상을 이길 방법은 하나님께 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긴 여정가운데 우리들이 비록 더디 걷더라도 새겨야 할 것은 바로 세상을 이길 방법은 하니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점점 가까워 오는 이집트의 철병거와 고함에 주눅 들어 있는 백성들을 향해 의연하게 대 외칩니다. 첫째 두려워 말라, 둘째 가만히 서라, 셋째 구원을 보라입니다.

우리의 긴 여정은 이미 하나님과 함께 떠났던 여정,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나선 여정임을 기억한다면 우린 먼저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익숙한 것들은 쉽게 잊혀지곤 합니다. 부모의 사랑도, 선생님의 배려도, 친구의 우정 등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 때 이런 익숙한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동행입니다. 두려움을 이길 방법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했기에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길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걸 떨치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잠시 잊을 뿐 결코 떨칠 수 없는 것이 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그 실체보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할 때 더 커집니다. 여러분과 한 해 동안 동행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두려움을 이겨내길 바랍니다.

또한 가만히 서라고 명령합니다. 원어로 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굳게 세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원어의 뉘앙스와는 달리 수동적인 의미로 오해를 자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굉장히 능동적인 의미입니다. ‘두려움의 상황을 뚫고 굳게 자신을 세워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라며 떠넘기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넘어지고 자빠지는 와중에도 하나님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굳고, 곧게 자신을 세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독교는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헐값에 나눠주는 자선사업가가 아닙니다. 진리와 복음을 깨닫게 하셨을 때 우리의 반응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만 바라보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얼마나 자신을 세워 하나님 앞에 섰는지 우린 스스로를 살펴야 고칠 수 있고 더 나은 한 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비로소 구원을 보라는 명령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죽음 이후의 천국으로의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이뤄야 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절망의 상황에서의 구원, 절망을 뚫고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이 구원을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길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가나안까지 더디 도착되더라도 하나님은 분명 이것을 알길 원하십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 기억해보십시오. 우리의 한해가 어떻게 그려졌는지는 여러분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빛의 절기를 맞이하며 새롭게 우리의 내일을 설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3. 멈춤의 은혜를 알려주시는 하나님이시다.

:11-12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쉬 붙은 불은 쉬 꺼지 마련입니다. 의욕에 따라 사는 삶은 의욕의 껍데기가 사라지면 그 의욕 또한 쉽게 사그라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은혜와 특별한 경험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된다면 얼마나 위태하겠습니까? 이집트에서의 놀라운 기적을 보며 한껏 고무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속페달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디 걷더라도 멈춤의 은혜, 기다림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40일을 40년간 돌아가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였고, 고생 중에 상고생이었을지라도 그들의 체질과 삶에는 결국 유익이었습니다. 브레이크를 통해 때론 멈추며 기다리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죽 끓듯 하는 백성들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수영할 때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듯 기다림과 멈춤을 통해 유연하게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성급함은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사무엘상 13:12 이러다가는 제가 주님께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레셋 사람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사무엘을 기다렸습니다. 약속한 기일에 도착하지 않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전쟁을 앞둔 백성의 마음이 흩어질 것이 두려워 할 수 없이(부득이하게) 번제를 드렸다고 변명하는 장면입니다. 조급함은 민족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유익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삼상 15:35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씀합니다.

2008년 스타벅스가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자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8년 만에 CEO로 복귀해 구원투수로 나섰습니다. 그가 꺼낸 첫 번째 카드는 멈춤이었습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7천여 개 매장의 문을 잠시 닫는 것! 세 시간 동안 폐장할 경우 600만 달러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했습니다. 임원들의 반대가 많았으나 슐츠는 폐장을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매장마다 최상의 에스프레소를 선사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갖고자 한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바리스타들은 동영상을 통해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법을 다시 익혔습니다. 임원들이 우려한 대로 폐장으로 인해 매출이 줄었을까요?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스타벅스의 고객 만족도는 수직 상승했고2년 후 매출 100억 달러라는 신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대나무는 쭉쭉 자랍니다. 그렇게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비결은 중간 중간에 있는 마디가 성장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나무에 마디가 생기는 이유는 그곳에서 잠시 성장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마디는 성장 대신 영양분을 축적하는 곳입니다. 바로 멈추는 지혜입니다. 마디가 있어야 또 올라가고 그렇기에 마디를 만들기 위해 잠시 쉬면서 또 마디를 만듭니다. 멈추게 만드는 시간, 마디를 만드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기에 대나무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갈 때 가끔씩 말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곤 한답니다.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목표를 향해 바로 가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멈추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은 바로 대나무의 마디를 만들어 주심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멈추고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큰 지혜입니다. 의욕만으로 삶을 이끌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삶의 현장을 돌이켜 보며 그 은혜를 헤아리는 것이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킬 줄 믿습니다. 새로운 절기를 맞으며, 새로운 마디를 만들며, 잠시 멈춤과 기다림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2019년 한해 어떠셨습니까? 많이 바쁘셨습니까? 많은 어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만이 아는 슬픔의 깊은 골도 갖고 계실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디 가더라도 은혜의 길을 걷게 되길 축복합니다. 빠른 것이 다 옳을 순 없습니다.

나의 당당함은 하나님을 잊은 오만함이었는지. 그리고 두려움을 뚫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깊이 바라보는 사색의 시간이 내게 있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한 채 의욕만으로 나의 삶을 꾸려가진 않았는지 잠시 멈추어 더딘 보폭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상처투성이 우리 인생에 빛 되신 예수, 대림의 구주로 다시 찾아오십니다. 교회력 마지막 주일, 면류관을 쓰신 주님을 넘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승리케 하신 왕이신 주님을 기억하여 다시금 새롭게 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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