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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아니라 섬김을(야고보서 5:1-6)
최영모 [beryoza]   2019-10-20 오후 8:43:43 211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야고보서 5:1-6)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아빠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성경 얘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아빠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부자와 나사로 중 누가 되고 싶니?” 딸이 대답했어요. “살았을 때는 부자가 되고 싶고, 죽어서는 나사로가 되고 싶어요.” 여기에서 물어본 아빠는 바로 저였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부자들이여 들으십시오하면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부자입니까, 아닙니까? 우리는 얼마의 돈이 있어야만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취업포털 회사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40억은 있어야만 부자라고 할 수가 있답니다. 그런데 평생 직장생활을 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은 10억도 안된대요. 그러면 평생 월급을 모아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40억이 있다고 해봐요. 그렇더라도 100억이나 200억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40억 가지고는 부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것입니다. 부자라는 생각은커녕 난 왜 이렇게 가난할까?’ 할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이 10억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을 부자라고 할 것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이 집을 가진 사람을 부자로 보는 것과 같지요. 무슨 말일까요? 사람들이 평가하는 부자의 객관적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가 있어야만 부자다라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1억이 있어도 부자일 수 있고, 100억이 있어도 부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자들이여 들으십시오하는 말씀은 단지 돈을 기준으로만 하는 부자는 아닙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재능을 가졌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부자이고,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권력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사람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부자입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갑의 위치에서 갑질하는 사람이 부자이고,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힘을 자랑하는 사람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부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에서 부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돈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 권력, , 건강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 말씀의 본디 의미에 좀 더 다가가게 됩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첫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 생각할 것은, 성경은 부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까요? 성경은 때로는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대개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획득하였거나, 부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멀어지게 할 수 있기에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매우 예리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의 회심이 필요하다. 가슴의 회심, 정신의 회심, 그리고 돈지갑의 회심이다.” 많은 이들이 세 가지 가운데 돈지갑의 회심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을 내어주는 것은 우리를 억누르는 어두운 세력들에 대하여 승리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이런 것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나 욥은 매우 큰 부자였습니다. 잠언에서는 부자를 찬양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은 매우 자주 돈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진하며,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부유한 여인들이 자신의 사역을 지원하도록 허락하셨으며, 때로는 부자들과 식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부자라고 하여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하여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시각입니다.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는 영화 <기생충>에서도 부자이기에 악한 것이 아니고, 가난하기에 선하게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나 재능이나 권력이나 힘이나 건강이나 이런 것들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취하였다고 하면 그것은 어떤 경우라도 매우 부정적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밭에서 일한 일꾼들에게 정당한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채는 식으로 하여 부자가 되는 것을 야고보는 비판하고 있는데,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일꾼들을 오늘날의 의미로 본다면 비정규직이나 시간 강사의 고단함과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어쩌면 설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 자살한 한 연예인에게 퍼부어댄 악플도 정당한 품삯을 주지 않은 부자의 죄와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천년의 질문>이라는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독일 신문사 특파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지금 한국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혀 규제가 안 되는 재벌들의 횡포인데, 재벌들의 온갖 횡포가 계속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고 있고, 직접 당하기도 하면서도 왜 국민들이 대대적인 불매운동 한 번 벌이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조정래, <천년의 질문> 3, 192)

부당하게 취한 이득을 오늘 성경은 썩고, 좀먹었으며, 녹이 슬었고, 불과 같이 우리의 살을 불태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정당하지 않게 이득을 취하는 것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인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부(, 재능, 권력, ) 이런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쌓아 둔 재물은 썩고, 옷들은 좀이 먹었다고 하였어요. (, 재능, 권력, ) 이런 것들을 선한 일에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할 때 썩었다는 것이지요.

감리교회를 세운 요한 웨슬레가 돈에 대해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하니까, 듣고 있던 한 구두쇠가 설교 참 잘한다. 당연히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였어요. 그다음에 이어서 웨슬레가 가능하면 번 돈을 많이 저축하여야 합니다하니까, 그 구두쇠가 진짜 설교 잘하네. 저렇게 설교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하면서 감탄하였어요. 마지막으로 웨슬레가 그렇게 벌어서 저축한 돈은 선한 일을 위하여 남김없이 써야 합니다.” 하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탄하던 그 구두쇠가 이렇게 말하면서 나가더랍니다. “오늘 설교 완전히 죽 썼구먼.”

돈을 모으기만 하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죽으면 나무가 된다고 그래요. 무슨 나무가 되는지 아세요? 은행나무랍니다(썰렁한 유머라 할지라도 웃어주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하여간 선한 일에 돈을 쓴다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그리고 돈을 모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입니다.

 

진라면을 만드는 오뚜기 회사가 있습니다. 오뚜기는 기업을 매우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선행을 솔선수범하여 소비자들에게 큰 칭찬을 받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오뚜기 회사를 창업한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2세가 상속받았는데, 그렇게 되면 50%의 세금을 내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많은 회사가 탈법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꾀를 부리는 거예요. 수조 원의 재산을 변칙으로 상속받고 겨우 16억을 세금으로 낸 S그룹이 그 한 예입니다. 그러나 오뚜기 회사는 3,500억 원의 상속 중에 1,500억 원을 상속세로 그대로 냈고. 당연한 일이면서도 이것이 많은 사람에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상속세만이 아닙니다. 오뚜기는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로 유명합니다. 창업주인 명예회장께서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고 하여,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전체 직원 3,000여 명이 모두 정규직이라는 거예요.

그 외에도 장애인에게 일감을 주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후원은 5,000명이 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장애인 단체를 돕는 일에도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맛이 있건 없건 간에 오직 오뚜기 회사 음식만 사 먹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회사의 제품을 많이 팔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게에서 아무 회사 것이나 덥석 집어 들지 말고 기왕이면 오뚜기 회사 것을 고르세요. 그런 마음으로 하면 여러분도 선한 일에 동참하는 셈이 됩니다. (이런 설교를 동영상으로 찍어 오뚜기 회사에 보내면 혹시 홍보료 같은 거 안 보내줍니까?) 나쁜 부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까 하는 생각만 합니다. 그러나 착한 부자는 돈을 어떻게 써야 다른 사람에게 유익할까를 많이 생각합니다.

 

셋째로 생각할 것은 부(, 재능, 권력, ) 이런 것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묘사는 부당한 대우를 당한 사람들이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지 않은 품삯이, 비인격적인 품삯이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의 날에 일어날 일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부자에게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면서 심문하실 때, 부자는 딱 잡아떼면서 왜 이러세요, 하나님? 난 정당하게 품삯을 지급했다고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부당하게 대우를 받았던 일꾼이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지급하지 않은 품삯이 증언합니다. “부자는 나를 일꾼에게 정당하게 지급하지 않았어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부자는 꼼짝을 못하고 항복합니다.

또 하나, 녹이 슨 금과 은이 고발하고, 부자의 살을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자가 자기의 재물이나 건강이나 재능이나 힘이나 지식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신을 위하여 쌓아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자가 말합니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물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자 시커멓게 녹이 슨 금과 은이 증언합니다. “이 부자는 하나님이 주신 우리를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녹이 슬었습니다.” 심판은 그만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정확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러시아에서 개방 후 세워진 장로교회 가운데 최초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종종 러시아 교회들 가운데는 장로교회의 헌법이나 규칙 등을 알고 싶으면 우리 교회에 문의를 해오기도 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화국에 문의하여 장로교회를 알려달라고 하면 우리 교회를 소개하여 줍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랑이기에 앞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장로교회로서의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입니다. 큰 부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큰 책임이 있는 교회입니다.

언젠가 이곳에 사는 어떤 한국 사람과 함께 우리 교회에 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위치를 말하는데, 그 사람이 잘 모르는 거예요. 좀 더 자세하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 배추 파는 교회요?” 하는 것이었어요. ‘맞습니다라고는 하였지만, 기분이 좀 묘했어요. 교회가 배추 장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는 마음에서 배추 장사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일로 어떤 이익을 보지는 않아요. 도리어 1,800km 떨어진 볼고그라드에서 온 배추 장사에게 먹을 음식과 잠잘 곳을 제공해줍니다. 물론 팔다 남으면 교회에 좀 주고 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별 것 아니고요. 배추 파는 교회라는 말이 불편하긴 하지만, 배추를 팔러 오는 그 사람에게 장소를 허락하는 이유는 다른 교회와는 달리 땅과 건물이 있는 교회로서 책임감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1부 예배(러시아어 예배)에서는 비디오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지난봄, 시골에 있는 한 러시아 교회가 예배당 수리에 대한 어려움을 우리에게 호소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주일 예배에서 나온 헌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그 교회의 건축을 위하여 드렸습니다. 제가 칼럼으로 우리 2부 주보에도 그 사실을 쓴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 우리가 드린 건축비로 수리를 시작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내왔기에 1부 시간에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도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진 빚이 아직 남아있지만, 할 수 있는 대로 더 가진 교회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절대로 교회에는 돈을 모아 두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물품이라도 하나 사려면 교회 재정에 그만한 돈이 있는지 알아보고 결정할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선교와 구제 등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진 것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부에 대한 심판, 힘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심판, 지식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단지 축복으로만 생각하면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신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넓어집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재물을 주셨다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식을 주셨다면 축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예배당 건물을 주셨다면 축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건강을 주셨습니까? 사명입니다. 직위나 힘을 주셨습니까? 사명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선택하신 것을 특권이요 축복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나라에 대한 제사장의 역할을 하라는 사명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심판을 받았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있을 때 참 따뜻한 마음 하나를 경험하였습니다. 여러 해 전에 이곳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간 이준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에게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어요.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여 지금 업무를 배우는 중이라고 하면서 감사헌금을 보내왔습니다. 적은 액수가 아니어서 혹시 동그라미 하나를 잘못 적었나 하여 제가 이렇게 카톡으로 물었어요.

혹시 금액을 실수로 누른 거 아니니? 보낸 금액이 너무 많아서

아닙니다. 목사님. 그 금액이 맞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페테르 생활 중에 집안 힘들 때 교회에서 도움도 많이 받고, 신앙생활에 토대도 마련하고, 또 어려운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해서요

 

제 아내에게 그 돈을 루블로 바꾸어 헌금하라고 하면서 생각하니, 아마도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면서 첫 달 월급을 모두 보낸 것 같아요. 자신이 받았던 것을 복이라고만 생각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내어놓는 그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이름은 제가 밝히지 못하지만, 자신의 십일조는 우리 교회에 보내고, 아내의 십일조는 한국의 교회에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가족 수대로 일만 원씩을 선교비로 보내는 이들도 있고요. 우리 교회에서 누린 기쁨과 만족과 감사를 복이라고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고, 단지 복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복이면서 동시에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때는 일 만원 선교헌금 운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직장에 취직하면 매달 만 원씩을 보내서 또 다른 사람을 돕자는 운동이었는데, 아직도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원이면 큰 부담이 없는 액수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동참하는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선생이 암 때문에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며칠 전에 하신 인터뷰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 주어진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벌어서 산 것까지도 사실은 자신이 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는 말과 함께 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 모든 것이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니 그것이 선물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노 지성인의 고백을 우리는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건강도, 지식도, 자녀도, 직장도, 직위도, 돈도, 명예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살면 행복합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삶이 풍요해집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물으신다는 사실을 또한 잊지 마셔야 합니다. 내가 준 재물과 내가 준 힘과 내가 준 지식과 내가 준 건강을 너는 어떻게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사용하였느냐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베푼다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선심을 쓴다는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에게만 적용해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나누어야 합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동등하기에 나눈다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별처럼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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