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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소리(야고보서 4:13-17)
최영모 [beryoza]   2019-10-13 오후 9:44:56 179

건방진 소리(야고보서 4:13-17)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한민국에도, 터키의 침공으로 위기 앞에 있는 쿠르드족에게도, 하기비스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일본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새번역 성경인데, 한국 교회에서 주로 많이 보는 성경은 개역개정판입니다. 개역개정판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들으라하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새번역은 들으라하지 않고, “들으십시오라고 하면서, 문장 뒤에 나옵니다. “들으라하는 말보다는 들으십시오하는 말이 훨씬 예의 바른 것 같지 않습니까?

아무리 자기의 주장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선포할 때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 옳습니다. 최근 광화문에서 설교가 아닌 선동을 하는 목사님들이 있는데, 매우 무례한 것 같아요. 좌파든 우파든 간에 무례한 행위는 전하는 말의 고급스러운 가치를 저급하게 떨어뜨리게 됩니다. 자기 가치만 떨어지면 상관없지만, 교회 전체를 욕먹게 만드니까 심각합니다.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을 일부 목사님들이나 신앙인들이 깊이 새겼으면 좋겠어요.

한국 교회가 상당히 무례하게 행동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저는 개역개정판 성경의 어투에서 영향을 받는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이 모두 반말로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으로 번역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 전파를 위탁받은 이들이 그런 번역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닮아가는 것 같아요. 쉽게 무례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신앙의 성숙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4장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여지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겸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겸손이란 왕 앞에서나 거지 앞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하고요. 무조건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는 말인데, 상당히 수긍이 가는 정의입니다.

야고보서에는 겸손에 대한 세 가지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를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11-12절에서 우리가 본 내용입니다. 3주 전에 한 설교인데, 여러분이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리셨다고 해도 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에게 절망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학교에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심각하게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둘째 방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의 본문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건방진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건방진 소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의 상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도 이미 그들은 대단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상업과 무역업을 활발하게 했으며, 돈을 많이 벌었어요. 야고보는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의 말씀으로 경고하였고, 메시지 성경은 그렇게 하는 말은 건방지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 말은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내 능력, 내 지식, 내 경험, 내 시간으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어떤 전임 대통령은 자주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하면서 충고를 하려고 한 탓에 한때 구설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은 완전하지 않으며, 또한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이 말을 왜 건방진 소리라고 할까요? 우리는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면 안 되는 것입니까? 내일 계획도 세우고, 다음 주간의 계획도 세우고, 장기적인 목표도 세우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무계획적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첫째로 이 말이 건방진 이유는 계획이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계획에 하나님이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한 채 계획하지 말라는 거예요.

100여 년 전, 러시아에서는 하나님 없는 지상의 낙원을 만들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국기에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망치와 농민을 상징하는 낫, 그리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별을 그려 넣고, 사회주의로만 이 땅에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종교는 사라질 것이고, 사회주의가 종교를 대신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뒤에 보니 기독교는 살아남았고, 사회주의는 사라졌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러시아의 작가 솔제니친이 1983년 템플턴 종교상을 받으면서 이런 연설을 했었습니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는 몇 분의 어르신들께서 러시아에 닥친 큰 재난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잖아?’

그 후로부터 나는 50년간을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하는 데 소비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수백 권의 책을 읽었고, 수백 명의 개인적 증언들을 수집했으며, 이미 대격동의 파편들을 정리하려는 노력으로 여덟 권의 책을 써냈습니다. 하지만 만일 오늘 내게, 6천만이 넘는 이 백성들을 집어삼킨 이 파괴적인 혁명의 주요 원인을 정확히 표현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이 말을 반복하는 것 외에 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래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잖아?’”(필립 얀시,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 186)

 

사회주의가 참담하게 실패한 원인은 하나님 없이 계획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20은 말합니다. “주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하고요. 헛것이 무엇입니까? 눈으로 볼 때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헛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경영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없이 내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건방진 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소련의 역사에서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2.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이 말이 건방진 이유는 둘째로 우리는 내일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내일 일을 모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성경 잠언에서도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27:1)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내일 일을 모르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내일 일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매우 교만하여지고, 하나님처럼 행세하게 됩니다. 우리가 내일 일을 알게 되면 모든 일을 자기의 욕심에 따라서 바꾸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와는 반대가 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내일 일을 알게 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일 일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내일이란 없습니다. 내일이란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때라야 내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일 일을 알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잠시 점쟁이들이 내일을 아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릴게요. 먼저 점쟁이들은 우리의 과거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모든 점쟁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점쟁이들은 우리의 과거를 잘 맞춥니다. 그것은 인정할 수 있어요.

사람이 기억하는 의식의 세계는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빙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요. 물 위로 올라와 있는 부분은 전체 빙산의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물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그와 같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경험한 과거의 사건이나 생각 90%는 모두 무의식의 세계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점쟁이들, 특히 용하다고 하는 점쟁이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투시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탁월해요. 영감이 뛰어나다, 혹은 직감이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점쟁이에게 오면 점쟁이는 그 사람의 무의식 세계를 얼른 파악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말하게 되면, 상대방은 , 이 사람은 매우 용하구나. 신령한 사람이야.” 하면서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되지요. 이것은 귀신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작용입니다. 그래서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그 사람의 과거는 잘 맞추지만, 그러나 미래의 일까지는 몰라요. 미래는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예측은 틀린 것이 맞는 것보다 훨씬 많아요.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미래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창조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3.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건방진 소리라고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의 표현처럼, 햇빛이 조금만 비쳐도 금세 사라지고 마는 한 줌 안개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데, 주제도 모르고 어느 도시에 가서 돈을 벌겠다고, 어떤 결과를 이루어내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산수를 배웠으면 분수를 알아야 하며, 지리를 배웠으면 위치를 알아야 하고, 과학을 배웠으면 이치를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예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 가운데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나는 시험에 들기 쉬운, 매우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비난하고 판단하지만 나 역시 쉽게 시험에 드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 아십니까? 길을 가는데, “도를 아십니까?” 하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그만 홀딱 넘어가서 부모의 영혼을 달래는 천만 원짜리 굿을 하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당신의 은행 계좌가 위험하다는 말 한마디에 평생 모은 돈을 몽땅 찾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느 원로 목사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목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최 목사는 은퇴하거든 한국으로 오지 말고 미국으로 가라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더니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북한처럼 만들고 그러면 우리나라는 옛날 베트남처럼 예수 믿기 힘든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어요.

며칠 전에 한국에 있는 어느 권사님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권사님의 친구가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였다기에 왜 거기에 갔느냐고 권사님이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친구의 대답은 자기가 얼마 전에 25평짜리 아파트를 샀는데, 조국이 법무부 장관을 하면 북한처럼 되고, 그러면 자기 아파트를 국가가 빼앗아 간다고 하기에 그게 두려워서 집회에 참석하였답니다.

여러분도 혹시 원로 목사님이나 권사님의 친구처럼 믿고 있습니까? 온갖 거짓 소문이 퍼져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런 말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믿을 정도로 연약합니다.

폴 투르니에 박사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며 제네바대학의 교수인데,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강자든 약자든 인간은 모두 약한 존재이고, 죄성이 있으며, 깊은 내면에는 실패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자기 내면의 약함이 드러날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하여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이 자신을 억압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 몸에는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약자에게는 신경증이나 우울증, 소화불량, 당뇨 등이고, 강자에게는 소모성 질환인 고혈압, 동맥경화, 관절염, 암 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그토록 연약한 존재인데, 나는 무엇을 이루겠다고 큰소리치니까 건방진 소리를 한다는 것이지요.

 

건방진 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고보는 진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처방까지 내립니다.

그것은 우리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요? 모든 일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내일도 일 년 후도 나는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내 생명이 주님 손에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일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논문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할 수 있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인가를 내가 다 결정해놓고 하나님 이것을 들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에게 통보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이런 자세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고 의논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약성경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보았느냐?”(1:8) 하면서 욥에 대하여 폭풍 칭찬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물음의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너는 너의 마음을 욥에게 넣어 보았느냐?’ 이렇게 됩니다.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 안에는 자신의 마음도 있고, 하나님에게서 온 마음도 있으며, 사탄에게서 온 마음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간은 여러 가지 마음 중에서 어떤 마음은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떤 마음은 거절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시는 이유는 욥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사탄의 마음을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본능에서 나오는 마음은 내려놓고, 사탄이 주는 마음은 거절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나의 내면을 자꾸 채워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주님께서 원하시면하는 고백과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아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성령님께서 계시기에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간절히 찾는 곳으로 가시는 분입니다. 러시아든 한국이든 그분을 갈망하는 곳으로 가십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유식자이든 무식자이든 그분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가시는 분입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께서는 도와달라는 요청이 없는데도 도와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에게 좀 더 굶주려 봅시다. 하나님에게 좀 더 목말라 봅시다. 그럴 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을 지극히 평안하게 하며,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결단의 기도를 다 함께 드립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면이 고백이 내가 잠들 때나 깨어있을 때나 언제나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시면이 고백이 내가 일할 때나 쉴 때나 언제나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나의 마음도 아니고, 사탄이 주는 마음도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나의 내면을 가득 채워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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