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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까까머리 (사사기 16:18-22)
김우영 [ready4god]   2019-10-06 오후 9:04:48 120

20191006  

힘내라 까까머리

 사사기 16:18-22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여는 말

저는 남학생만 2,500명 다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평일엔 학년마다 종례시간이 달랐는데 토요일은 전 학년 마치는 시간이 같았습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문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는 건장한 까까머리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왁자지껄 떠들며 당시 대전 도심을 쓸고 다니던 까까머리들.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징그럽습니다. 무언가 한창 배울 때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에 그저 검정 바둑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일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런 까까머리를 요즘에 TV에서 자주보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여러 정치인들이 삭발식을 하는 모습에 어색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무언가 한창 배울 까까머리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 또한 무언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강하게 전하고자 삭발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한편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부진을 떨어내고자 삭발하는 모습과 함께 군 입대를 앞둔 장정들의 삭발식 등은 무언가 새로운 국면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삼손도 어떤 이유인지 머리털이 밀렸습니다. 나실사람 즉 하나님께 구분되어 태어날 때부터 구별되었던 삼손에게 머리털이 잘린 사건은 굉장한 사건이고 성경은 이 점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우리가 마주할 상황들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15장 말미에 나오듯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민족을 잘 이끌던 삼손의 말년에 생긴 엄청난 일들을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푸는 말

1. 죄는 성령을 소멸케 한다.

:18a 들릴라는 삼손이 자기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에게 전하였다.

:19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한 뒤에, 사람을 불러 일곱 가닥으로 땋은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를 괴롭혀 보았으나, 그의 엄청난 힘은 이미 그에게서 사라졌다.

:20 그 때에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내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뛰쳐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세 구절을 통해 사탄의 치밀함과 악에 빠진 인간의 무기력함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들릴라의 모습을 보면, 잔 펀치만을 날리는 것이 아닌 확실히 꺼꾸러트릴 수 있을 때 본색을 드러내는 사탄의 접근방식을 보게 됩니다. 16절에선 그저 끈질기게 조르기만 했던 들릴라였지만, 자기에서 삼손이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머리털을 깎은 후 그를 괴롭히며 이후 힘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에베소서 4: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사탄은 처음엔 듣기 좋은 말, 교묘한 말로 호리지만, 결국 마음에 틈을 주면 걷잡을 수 없이 그 틈을 벌리고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 할 수 없을 만큼 파국을 맞게 합니다.

 20절에 보면 삼손이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서 머리카락을 밀리게 되자 그는 예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과 권능을 주시던 성령님의 은혜를 거두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20b ...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딤나에서 블레셋 여인과 결혼 후 파경을 맞고, 이후 가사에서 창녀의 집으로 가서 죽을 뻔 했을 때도 주님께서 그를 떠나가셨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려줍니다.

주목할 부분이 있는데, 17절의 나는 힘을 잃고 19절의 그의 엄청난 힘은 이미 그에게서 사라졌다.’ 그리고 20절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은 원어로 보면 잃다, 사라지다.’ 라는 뜻의 같은 동사입니다. 즉 삼손이 힘을 잃고, 주님이 떠난 사건을 동일한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단순한 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들릴라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주님께서 이미 자시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중독되었습니다.

 16절에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 지난주 이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들랄라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는 것은 개역개정의 번역-‘번뇌가 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모든 것이 잘린 상태 즉 마음에 하나님이 지워지고 하나님에 대한 어떤 소망의 끈이 다 잘린 상태가 될 때의 삼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하나님이 떠나심도 모른 채 자기 앞의 괴로움에만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생애에 중요한 문제와 위급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도 삼손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순간순간 모면하려하지 마시고 혹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얼마나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기뻐하십시오. /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9절의 말씀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갈 때 항상 기뻐하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감사할 수 있는 생활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동행하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기름이 탈 때 빛과 열을 내지만, 기름이 떨어지면 불씨가 있다하더라도 꺼지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내 안의 기름 즉 매일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한 번의 짜릿한 기억이 평생 이어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소멸하게 되면 귀한 사명을 받았다 할지라도 벌어진 틈을 방치하게 되고 결국 그 벌어진 틈을 통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주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써야 하지만, 벌어진 틈 메우기를 게을리 한다면 우리들의 모습도 삼손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결단이 우리의 매일을 이끌 수 없습니다. 매일 읽는 로고스의 말씀,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 오늘 나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과 은혜가 따라옵니다.

이사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죄는 사사, , 이 땅에 존귀한 자 누구라도 상관없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소멸치 않고 주와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2. 하나님과 영적 교제에 민감해야 한다.

:20 그 때에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내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뛰쳐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이 얼마나 허망한 모습입니까?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주셨던 힘을 잃고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눈이 뽑히고 감옥에서 나귀나 말이 움직이던 맷돌을 돌리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왜 생겼을까요? 바로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에 둔감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사사의 일을 감당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엄청난 일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사사로 있는 동안 점점 세상과의 교제에 집중하다 보니 하나님과의 교제에 둔감해졌고 이윽고 사사의 일을 잊은 채 넘어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3500여 년 전 삼손에게만 있던 일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주에 성경 안에는 무수한 소음도 있지만, 그 안에 선명한 신호도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삼손의 행적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모두가 듣게 되길 원합니다.

로마서 2:17 이하에는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해 기록해 주고 있는데, 그 요지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랑할 줄만 알지 실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중에 오신 메시아 하나님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교만하고 둔감했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부모님이 다녀서 그냥 교회에 출석 / 친구의 권유로 그냥 / 그냥 종교하나를 갖기 위해 / 생활의 유익 /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인된 것은 다만 우리의 모습을 자랑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입니다. (43:21)

고전 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전문가, 베테랑은 없습니다. 누구나 초보처럼, 어미의 젖을 사모하는 어린아기의 심정으로 간절하게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줄도 모른 채 호기를 부리던 삼손의 모습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며 철저하게 쫓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은 실패한 자에게도 새 소망을 주신다.

:22 그러나 깎였던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참 실없어 보이는 구절처럼 보이지만, 이 구절이 저에겐 엄청난 용기와 위로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실수하고 넘어진 우리를 향해 끝까지 구상권을 청구하는 악덕 신이 아닙니다. 머리털이 자라는 건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기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현상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사사로써 생활하다가 한 방에 모든 것을 잃은 삼손에게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것은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누구나 부도를 맞고 풍비박산된 가정이 다시 힘을 모아 비록 임대아파트에라도 들어갈 때의 그 기분을 잘 이해할까요? 누구나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이를 얻게 되는 그 행복을 알까요? 누구나 합격의 짜릿함을 이해할까요? 넘어져본 사람이, 아파본 사람이, 괴로워 울던 사람이 회복의 은혜를 더욱 많이 깨닫게 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삼손의 이야기는 지치고 힘들어하며, 때론 모든 것이 끝장난 듯 괴로워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 라고 했습니다. 나일강이 물자를 수송하고 수력발전에 도움을 주어서가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 시기를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이 발달했고, 범람 후의 경지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발달하여 이집트 문명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고난과 역경, 실패와 좌절은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66:10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을 달구어 정련하듯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삶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인생의 굴곡과 함께 망가진 삶의 밑바닥이 이렇다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또한 22절에 다시 그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시며 그런 너였지만 너도 다시 할 수 있어라고 소망을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은혜의 단절을 경험했던 삼손 같은 우리들이 머리털이 밀리는 좌절과 공포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보게 해주는 소망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손은 비록 눈은 뽑히고 모욕하는 소리로 두려웠겠지만, 다시 손에 만져지는 머리털 때문에 잊혔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시 하나님을 소망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모든 것을 잃어 까까머리가 된 우리일 수 있겠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듣겠다고 약속하시는 주의 음성이 또 다시 자라는 머리털처럼 우리 안에 들려지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세상의 여러 사연의 까까머리를 보며, 무언가 큰 아픔이나, 괴로움, 그리고 절치부심할 사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속에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아픔과 낙담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패의 자리에 그저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밀린 까까머리를 만지며,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사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신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우리 기독교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밑동 잘린 그루터기를 보며 회복하게 될 이스라엘을 보았던 이사야의 소망처럼, 이미 다 잘린 머리카락을 보고 절망을 느꼈지만 이내 투박하게 자라는 머리털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사모하게 된 삼손의 소망처럼, 바로 저와 여러분도 이런 하나님의 위로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 소망을 하나님께서 생명 다해 찾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시편 37:24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왜 슬퍼하느냐? 왜 걱정하느냐? 무얼 두려워하느냐? 아무 염려 말아라....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은 절망의 순간에도 소망을 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죄로 물들어 사망으로 치닫던 우리 인생을 위해 십자가의 보혈을 뿌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산 소망이 되시는 줄 또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 내십시오. 혹 까까머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꽤 괜찮은 사람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 위에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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