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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삼손에게 (사사기 16:15-17)
김우영 [ready4god]   2019-09-29 오후 9:21:12 162

20190929 

내 안의 삼손에게

 사사기 16:15-17

:16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니까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여는 말

신호는 진리다. 소음은 우리가 진리에 다가서지 못하게끔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네이트 실버의 저서 신호와 소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통계학자이자 정치 예측가인 네이트 실버(Nate Silver)2008년 미국 대선에 50개 주에서 49개의 주의 결과를 예측 성공하고, 이후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 50개 주 모두의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시즌 마지막 성적을 놀라운 적중률로 예측해 냈습니다. 네이트는 빅 데이터 속에 흩어진 수많은 소음속에 가려진 신호를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소음이란 신호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무작위적 패턴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빅 데이터에는 신호보다 많은 소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음들은 신호보다 더 자극적입니다. 따라서 소음에 가린 신호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신호와 소음을 잘 구별하고, 구별된 신호를 잘 분석할 때 최상의 예측이 나옵니다.

 빅 데이터 속의 작은 신호에 민감할 때 개인의 미래도, 사회의 경향도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많은 부와 명예도 얻을 수 있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소비패턴분석, 선거, 마케팅, 상권분석 등)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수많은 신호 중에서 몇 가지를 활용하고 계신가요? 많은 신호들 중에 최고의 신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수많은 소음을 만들어 내어 하나님의 신호를 덮으려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소음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신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삼손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음 주까지 삼손에 대한 묵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2주전 묵상(하가)의 의미가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마음의 거룩한 행동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본문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양한 신호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16장 전체를 봐야하지만 중심 되는 세 구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민감하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길 기대합니다.

 

푸는 말

삼손에 대한 평가는 무척 다양합니다. 그의 굴곡 있는 삶은 다양한 각도에서 신앙생활을 바라보게 합니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다양한 신호가 들어있습니다.

먼저 삼손의 이전 행적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4장에 보면 딤나에서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았던 삼손은 당시 이스라엘에 적대적이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농간으로 결혼생활의 파경을 맞았습니다. 이후 삼손은 자신을 잡으려던 블레셋 사람들을 나귀턱뼈로 쳐 죽인 후 15장에 나오는 엔학고레 즉 부르짖는 자의 샘의 은혜를 경험하며 한동안 사사의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1. 죄의 정욕은 언제든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15:20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16:1 삼손이 가사에 가서, 창녀를 하나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1절을 보면 삼손이 가사에 가서 창녀를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5장의 마지막 절을 보면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16:115:20의 사이는 20년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초반의 그릇된 삶을 반성했는지 20년이란 기간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잘 지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랬던 삼손이 그의 사사의 생애 말년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으로써 삼손도 남성이고, 또 그 삶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 부분을 특별히 기술한 것은 이 부분이 어떤 사건의 단초가 되었음은 알려줍니다. 불행했던 결혼생활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사사로써 잘 살아갔지만, 죄의 싹은 마치 휴화산처럼 어느 순간 활동을 재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죄의 정체입니다.

죄의 정욕은 우리 안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후에도 죄의 정욕은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장로교의 구원론은 세 단계입니다. 칭의-성화-영화인데 성화의 단계에서 우린 이 정욕을 이기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것입니다.

찬송 540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우리 안에 죄의 속성을 매일 누르지 않고선 십자가로 더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죄의 정욕은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 할 때는 마치 죽은 듯 나타나지 않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진 않습니다. 언제든지 튀어나와 무섭게 치솟아 오를 수밖에 없는 휴화산의 용암과 같습니다. ‘하는 성격. 누르고 살뿐, 우리의 성품과 기질은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그늘에 우리의 죄 된 습성이 묻혀야 하고, 날마다 우리의 부끄러움이 가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본문을 통해 삼손의 행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네 안에도 삼손이 있잖아? 물으십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악한 습성은 성령하나님을 거스른다고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움직이는 것은 성령입니까 욕망입니까?

로마서 8: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법과 사망의 법이 함께 공존합니다. 어느 법을 따르시겠습니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성품과 기질을 드러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호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성령의 법을 따르게 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뤄지길 축복합니다.


2. 사람은 모두 약점이 있다.

:4 그 뒤에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들릴라였다.

그 뒤에이 어구는 성경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1-3절에서 삼손의 악한 행실이 들어납니다. 2절에 보면 이 일로 인해 삼손은 목숨을 잃을 뻔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삼손은 블레셋 땅으로 가서 들릴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성경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딤나에서 한 번의 결혼 실패, 그리고 이방 여인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빠졌던 삼손이었지만, 그 뒤에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스포츠 일간지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을 쫓는 기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토록 삼손의 모습을 쫓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삼손의 이성에 대한 욕심과 욕망은 그에게 있어서 아킬레스건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아킬레스건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삼손의 여성 편력을 보면서 그가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미련함이 그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삼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련한 인물만은 아닙니다.

그는 사사(Judges)입니다. 즉 판사로써 20년 간 이스라엘을 무탈하게 이끌었습니다. 또 수수께끼로 블레셋 사람들을 골탕 먹인 일이나, 여우를 잡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에 몰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일 등을 미루어 보면 그는 단지 힘만 센 사람이 아니라 지혜도 뛰어난 인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처럼 미련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그의 약점이 그의 강점 모두를 가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연약한 약점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방치하여 자신의 인생 전체를 수렁으로 몰고 가버린 것입니다. 

전쟁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구하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진중권 교수는 그의 책 이미지 인문학에서 이 영화가 기존 전쟁영화와 다른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는데, 그것은 전투장면을 3인칭 관찰자시점이 아닌 1인칭 체험자 시점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역사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뀔 때 그 안의 내용과 메시지는 달라집니다. 본문을 삼손에 대해 듣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삼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메시지의 강도는 크게 바뀝니다.

우린 장점과 강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때로 몇 가지 약점과 단점으로 인해 우리의 삶 자체가 위태해지고 볼품없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삼손의 단점을 보고 혀를 차는 도덕적 우위에 서지 않고 우리도 약점 많은 사람임을 깨닫고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인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눈의 아주 작은 티는 잘 보면서도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고질병이 다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고 실패의 원인이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잘 보지 못하기에 그것을 다스리지 못해 사단의 공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 내 안의 삼손을 향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삼손은 참으로 이성에 대해선 무척 약한 사람이었다고 단순 평가하는 것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내려 어쩌면 삼손보다 더 추하고 부끄러운 우리의 약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삶을 이끌어 가시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소음 속에서 신호를 볼 수 있고, 그 신호를 볼 때 우리는 약할 때 강함 되게 하시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하기까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숨겨도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며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3. 죄의 유혹은 집요하다.

본문 6.10.13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의 사주를 받은 들릴라는 삼손에게 그 힘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털어놓게 하려고 끈질기게 조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삼손이 진실을 알려주려 하지 않자 15절 나오는 것처럼 그녀는 더욱 더 강도를 높여 날마다 재촉하기에 이릅니다.

 :16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니까,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삼손은 16절에 나오듯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됐고, 결국 자기 힘의 비밀을 알려주었다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개역개정에 보면 마음이 괴롭다는 부분을 마음이 번뇌하여 라고 표현합니다. 그냥 마음이 조금 괴로운 것이 아니라 번뇌하기에 이릅니다. 번뇌(카차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자르다의 뜻으로 본문에서는 수동 형태로 잘려진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모든 기대와 소망이 다 잘려나갈 때,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때 우리들은 마음이 괴롭고 번뇌하게 됩니다. 국어사전에 보니 번뇌는 산스크리트어 <클레사(klésa)>고통스럽다, 더럽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더러워진 마음, 괴로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삼손의 괴롭고 번뇌하는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기대와 소망도 다 잘려져 마음이 더렵혀지고 고통스럽게 된 상태입니다. 만약 삼손이 들릴라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그 상황에 하나님에 대한 기억 한 자락이라도 했었다면 결코 번뇌하지 않았을 겁니다.

돈이 없어 불편할 때가 많지만 번뇌하지 않습니다. 감기 들었다고 번뇌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비록 부자가 되고 높은 명예를 쥔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어떤 기대와 소망이 잘려졌다면 그 사람들은 번뇌하게 되고 그 한계를 마주하게 될 때 간혹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삼손은 들릴라에 빠져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상황을 모면할 어떤 가능성도 다 잘린 상태였기 때문에 삼손은 결국 자신의 힘의 비밀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해 세상의 유혹은 이렇게 집요합니다. 사탄은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하고 어떤 도움도 없는 것처럼 그 가능성과 희망의 끈을 다 잘라 버리게 하여 번뇌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세상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와 같이 죄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그 모든 것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입도록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4:15-16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세미한 신호가 있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힘써 나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logos)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의 말씀이 더 있는데 그것을 레마(rhema)라고 합니다. 로고스가 기록된 말씀이라면, 레마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매일 읽는 로고스의 말씀이 있어야 오늘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따라옵니다. 말씀에 힘이 있다는 것은 로고스가 갖는 능력도 되겠지만, 실패한 인생, 어렵고 괴로운 인생이 레마의 말씀을 만나 회복되고 건강하게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지고 다니는 두꺼운 성경책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읽고 묵상하며 우리를 새롭게 하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신호이며 그 안에 힘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삼손은 몇 천 년 전 나와 다른 세계에 살던 나와 상관없던 이름 모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단점과 약점 투성이 우리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다짐과 결심으로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주 앞에 서는 그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어떤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 내밀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이 쥐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호를 잃어버리면 우린 결국 모두를 잃어버린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서늘한 주의 경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설교는 삼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삼손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어야 합니다.

한국이든 러시아이든 우리는 수많은 신호와 소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거룩과 순종의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거대한 소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호를 걸러내어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마음의 거룩한 행동을 이어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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