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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선택하십시오 (요한복음 15:1-10)
김우영 [ready4god]   2019-09-08 오후 8:53:11 200

20190908 

잘 선택하십시오.

 요한복음 15:1-10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러질 것이다.

 

여는 말

예전에는 심장 박동수를 빠르게 하는 사람이 좋았다. 요즘에는 심장 박동수를 느리게 하는 사람이 좋아졌다.’

노수봉 작가의 뜨끈뜨끈 광고 회사인의 메모장에 나오는 글입니다. 여러분은 가슴 뛰게 하는 사람, 가슴 뛰는 일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이십니까? 요즘 한국 뉴스를 듣다보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며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심하게 요동치기도 합니다.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정치권의 위태한 소식들은 우리의 조바심과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우리는 각자의 삶의 영역 속에 넘어야 하는 일들이 많아 때로 평정심을 못 가질 때가 많습니다. 차분히 판단하고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야고보 1:19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집회서(구약외경) 6:33 네가 듣기를 좋아하면 배우는 것이 많겠고 귀를 기울일 줄 알면 현자가 되리라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우리에겐 심장 뛰는 일도 중요하지만, 삶의 여유와 묵상을 위한 시간도 필요합니다. 성경에 묵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어로 하가라는 뜻은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마음의 거룩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욕망에 쫓기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묵상 우리가 바쁨과 속도전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세계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긴 9월입니다. 한국과 달리 러시아의 9월은 시작의 의미가 큽니다. 긴 휴가 후 회사나 삶도 그렇겠지만, 학생들에게 9월은 새로운 첫걸음으로 유난히 부담스럽기도, 또 설레기도 한 때입니다. 이즈음 우린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잇대어 노련하게 살기를 바라기보다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며 헤아려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요한복음 15장의 예수님의 음성을 진지하게 듣고 선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생각해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심장을 요동하게 하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 우리의 심장의 박동을 늦추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푸는 말

1. 선택은 버림이다.

대학시절 친구네 복숭아 농장에서 농활을 했었는데 뙤약볕 아래, 3-4개의 복숭아가 맺힌 가지에서 한 개를 남기고 모두 잘라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냥 두면 더 많이 열릴 텐데.’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후 탐스럽고 상품성 있는 과일을 얻기 위해선 불가피한 작업임을 알았습니다.

애플의 전 CEO인 존 스컬리는 잡스를 대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잡스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애플사의 아이팟은 스티브 잡스의 이런 철학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상품으로 어중간한 기능은 과감히 없애고 정말 필요한 기능만을 넣음으로써 최고의 아름다움, 최고의 편의성을 실현해 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목록이 늘 숙제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묵상해 보면 불필요한 목록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가지치기, 버림 목록이 무엇인가 선택하고 중요한 일을 단순화하고 집중할 때 맺힙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택과 집중은 다른 말로 버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 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개역개정에서 보면 모두 깨끗하게 되다.’로 나오는데 새번역에는 손질하다.’ ‘깨끗하게 되다.’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NIV나 공동번역에 봐도 이 단어는 Cut, Clean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로 보면 그 어원이 같습니다. ‘카타이로라는 단어인데 커터, 카타르시스도 같은 어원입니다. 즉 잘라낼 때 깨끗하게 되고 해결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린 배우고, 입고 많은 것들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선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의 또 다른 기대와 우상을 잘라내는 삶이기도 합니다. 여러 곁가지 돋아있는 삶에서 하나님께 집중하여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런 옛 습성들을 잘라내는 것이야 말로 열매를 얻기 위한 최선의 선택입니다.

 

2. 가지가 아닌 열매를 선택한다.

구약성경에 대한 고대 유태인의 주석인 미드라쉬(Midrash)에 보면 번제를 드릴 때 모든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유독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는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해놨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음료, , 그리고 제단의 기름으로 사용되어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 보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도 영적인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얻기 위해 심은 것이듯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기대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시지 결코 맺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는 백향목처럼 곧고 단단하지 않아서 건물을 받칠 수 없고, 마르고 보잘 것 없어서 가구를 만들 수도 없고, 더욱이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고 기른 나무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열매 때문에 심고 기릅니다. 누구나 다 높은 건물을 받칠 번듯한 백향목이 아니어도 됩니다. 누구나 가구를 만들던 좋은 재질의 오동나무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 열매, 기대의 크기와 모양은 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리면 될 뿐입니다. 그 열매와 기대를 판단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두 같은 크기와 종류의 열매를 요구하지는 않으시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열매 맺는 삶만은 분명 요구하십니다.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지 하나님 안에 없다면 열매는 결코 맺을 수 없습니다. 혹 맺는다 해도 만족스럽지는 못할 것입니다.

 선택은 버림의 다른 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린 이 말을 우리의 상황에서 해석하며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누구라도 율법에 어긋나면 하나님께서 잘라낼 가지를 찾을 것이라 상상하고 벌벌 떨며, 가혹한 하나님을 그려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과 우리를 원수로 만들어 그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버릴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힐 가지를 선택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잘려질 여러분의 허물이 아닌 열매입니다.

 요한계시록 12:10 그 때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이렇게 울려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의 동료들을 헐뜯는 자,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헐뜯는 자가 내쫓겼다.

하나님 앞에 참소하며 그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사탄의 최후입니다. 우리가 설혹 나쁜 죄악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당장 하나님과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돌이킨다면 우린 구원과 영생의 복을 얻게 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개정개역)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결코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벌려 놓으려는 사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우리에게 열매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더욱 집중하시길 축복합니다.

 

3. 선택은 주 안에 서있는 것이다.

:4-5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바로 머무르다입니다. ‘메노의 뜻은 머무르다, 거주하다. 그리고 출발하지 않다, 계속해서 있다.’ 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머무르는 것은 우리가 힘을 잃어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길에 동의하고 신뢰하며 의지적으로 다른 길로 출발하지 않고 서 있는 것입니다. 머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함께 우리의 반응과 의지적 순종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실한 가지, 아무리 열매를 많이 맺어왔던 가지라 할지라도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를 다시 기대할 순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의 의지와 반응이 더해질 때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6a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가지가 처음부터 말랐겠습니까? 세상이 더 좋아서 바울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던 데마를 기억하십시오. 처음부터 말라 버려진 가지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못된 성품, 나쁜 습관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게으르고, 교활한 사람은 없습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고 그것이 메워지기 전, 그것을 회복하기 전 더 벌어진 틈을 좁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린 때로 너무 멀리 왔다고, 이젠 돌이킬 수 없다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과 집중에 달려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팔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16a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많은 신중에 가장 쓸모 있는 신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주 안에 서겠다는 나의 다짐과 의지가 아닙니다. 주 안에 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시고, 때로 관계가 되면 관여하시는 계약직 신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 이전부터 계셨고 신과 인간, 주인과 종으로 불리기 원하시기보다 친구라 부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15) 세상의 어느 종교의 신이 사람과 친구가 되는 종교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단은 다릅니다. 교주는 우리와 다른 초월적 능력과 신비로움으로 무장한 채 나와 다른 우두머리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친구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머물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선택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사야 43: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우리는 주의 소유입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 분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넘어지든 일어서든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읽으며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으신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듭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주 안에 머물기를 선택할 때 하나님은 분명한 약속을 허락하십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보다 든든한 약속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누가 있겠습니까?

 돌프 빈더라는 생화학 박사는 몸무게 70kg 정도 되는 보통 사람을 물질적 가치로 계산하면 새장 하나를 겨우 청소할 수 있는 석회와 못 한 개 정도의 철, 찻잔 하나 정도의 설탕과 세숫비누 다섯 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지방, 조그만 성냥 네 갑을 만들 수 있는 인, 그리고 값 싼 물질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화폐로 따진다면 2달러 98센트 정도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반면 고대인들이 그린 이집트 벽화를 보면 저울에 지구와 사람의 무게를 비교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저울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사람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고대인들은 온 우주보다도 한 사람의 영혼이 더 귀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고대인들도 알았던 이 사실을 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른 채 하고 있을까요? 겨우 3천원 남짓 되는 인생이 아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바꾸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고, 우린 다만 하나님 안에만 머물면 된다는 주의 음성이 여러분의 삶에 늘 묵상되길 축복합니다.

 

닫는 말

지금 여러분은 어떤 말에 가슴 뛰고 설레며 살고 계십니까? 대학입학 합격의 황홀함도 일주일이면 충분했습니다. 취업, 승진, 결혼 과연 어떤 말, 어떤 일에 여러분의 심장은 뛰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충분히 벅차오르게 하는 많은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심장이 계속 급하게 뛰기만 한다면 건강에는 좋지 않습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학기, 다양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삶에 집중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자신에게 적용시켜 나가는 마음의 거룩한 행동을 연습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선택과 집중의 상황에서도 때로 버리고 멈춰서는 여유를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62: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잔잔하게 하며 우리의 삶을 가지런하게 하고,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행복한 러시아의 9월에 좋은 것을 잘 선택하실 바랍니다. 내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가며 가슴 떨리는 복된 일들을 경험해가는 이 계절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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