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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번제(창세기 22:1-14)
최영모 [beryoza]   2019-08-05 오전 11:35:59 221

아브라함의 번제 Abraham’s Sacrifice(창세기 22:1-14)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우리 교회당에 있는 그림을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렘브란트가 그린 <아브라함의 번제>라는 그림입니다. 저의 집에도 이 그림을 그려서 걸어놓을 정도로 저는 이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저는 도저히 아브라함을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느낍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아,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바쳐라.” 번제란 제물을 죽여서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사람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니 이 무슨 기막힌 말씀입니까? 더구나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이라고까지 확인시키시면서, 그렇게 요구하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거잖아요.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어서 아내 사라도 웃었잖아요.’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면서 주신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신이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이런 논리를 갖고 하나님과 토론을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버틸 수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그 일을 아내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받은 아내입니까. 만일 의논하였더라면 아내는 틀림없이 나를 먼저 죽이고 이삭을 죽이라고 말했을 거예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나는 순종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저 여자가 못하게 하는군요.” 하고 변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은 내일 가라, 혹은 모레 가라고 날짜를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기도하겠다고 하면서 며칠 뒤로 미루어도 될 거예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할 수 없는 이유와 핑계를 모두 무시해버립니다. 순종은 마음에 감동이 올 때 바로 하여야 합니다. 뒤로 미루거나 이유를 따지면 순종할 수 없어요. 많은 사람이 마음에 깨달으면서도 순종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하였고, 불과 나무를 준비하여 모리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다급하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화면에 나오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세요. 이 그림에서 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세 군데 있습니다.

 

1. 첫째로 아브라함의 두 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왼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얼굴을 크게 확대하여 보면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자기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왼손은 아버지로서의 깊은 고뇌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오른손은 칼을 들어서 이삭의 목을 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칼을 든 오른손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왼손은 아버지로서의 고뇌를, 오른손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2. 둘째로 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아브라함이 칼을 놓쳐버리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기 위하여 칼을 내리치는 순간, 천사가 다급하게 아브라함의 손을 세차게 내리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칼을 놓쳐버립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팔을 붙잡을 겨를도 없어 그냥 그 손을 내리쳤겠습니까? 아들을 죽이라고는 하였지만, 정말로 죽이려고 하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당황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3. 셋째로 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환한 빛의 이삭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두 발을 모으는 이삭은 힘으로는 얼마든지 늙은 아버지를 밀쳐낼 수 있지만, 그대로 묶이고 제물이 됩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버지에게 순종합니다. 아버지의 순종이 아들의 순종으로 이어지는 이 가정에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기적은 일어났고 죽기 직전에 이삭은 살아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2천 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삭이 제물이 된 모리아의 산은 골고다 언덕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골고다 언덕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십니다. 죄 하나 없으신 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모두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틀림없이 죽기 전에 어떤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하면서 그들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뒤를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릴 때, 거기에 모인 많은 구경꾼이 조롱하면서 외쳤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제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나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남의 자식 죽는 순간에는 다급하게 막으셨던 그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 죽을 때에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많은 사람의 기대까지 저버리고 끝내 외면하신 것입니다. 작가 필립 얀시가 표현한 대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그 날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 표현된 순간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8:56)라고 하셨습니다. 왜 모세나 다윗이 아니라 아브라함일까요? 그것은 자식을 죽이려고 한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도록 내버려 두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하면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가 복을 받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내 자녀가 복을 받고, 다른 사람이 복을 받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린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22:18) 나를 복의 통로로 삼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면 이렇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러분 모두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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