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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이웃으로 여길까?(누가복음 10:25-37)
최영모 [beryoza]   2019-07-28 오후 9:52:18 219

누가 나를 이웃으로 여길까?(누가복음 10:25-37)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당에는 성경 내용을 배경으로 한 커다란 그림 3개가 걸려 있습니다. 두 개는 2층 예배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고, 한 개는 아래층 식당에 있습니다. 이 그림들은 모두 김소피아 선교사님이 선택하여 만들었으며, 박정희 집사님께서 액자로 만드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항상 좋은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해주셔서 두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과 다음 주일, 그리고 8월 마지막 주일 3번에 걸쳐 이 그림들의 배경을 갖고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오늘은 식당에 걸려 있는 그림인데,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가 그린 <착한 사마리아 사람>으로서,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율법 교사가 주님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입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어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어요.

율법 교사의 두 번째 질문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시골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가면서 그 사람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애써 제사장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그는 지금 예루살렘성전에 가서 제사 일을 보아야 하는데,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다가는 큰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죽기라도 한다면 시체를 만지는 것이 되고, 그러면 7일 동안 부정하게 된다는 율법에 따라(19:11), 자신은 제사를 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잠시 후에 레위인이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레위인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법을 가르치며 제사를 돕는 사람입니다. 그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지만, 얼른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자기도 언제 강도를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얼마 후에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상처를 치료하여 주었으며, 여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병원으로 데리고 갔겠지만, 그 당시에는 병원이 없었기에 여관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어요.

 

고흐의 그림을 보세요.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매우 힘들게 노새에 올려 태우고 있습니다. 환자의 목은 뒤로 젖혀져 있으며, 그 사람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서 사마리아 사람은 상체는 뒤로 휘어져 있습니다.

저 뒤로는 그냥 지나쳐간 제사장과 레위인이 보입니다. 그런데 노새도 앞다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환자를 좀 더 쉽게 태우도록 돕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지나쳐간 두 사람이 노새만도 못하다는 것을 고흐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에 뒹구는 돈 통은 강도들이 빼앗아간 까닭에 텅 비었습니다.

고흐는 사마리아 사람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한때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했던 자신의 신앙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1. 첫째로 주는 의미는 사마리아 사람도 착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멸시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지배를 받아 피가 섞인 민족이었고,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예배를 드렸기에, 유대인들은 그들을 매우 큰 죄인으로 여기면서 경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제사장을 말할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을 것입니다. 레위인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이어서 주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할 때, 듣고 있던 사람들은 매우 나쁜 사람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보는 시선은 지금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동성애자일 수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이단에 속한 사람일 수 있으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얼마든지 착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교사는 도저히 그런 사람이 착한 사람일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비유를 마치면서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느냐고 묻자, 차마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한 거예요.

 

2. 두 번째로 주는 의미는 내 이웃은 누구인가?’ 하고 묻지 말고, ‘누가 나를 이웃으로 여길까?’ 하고 물어야 한다는 거예요.

율법 교사는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이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강도 만난 사람이 이웃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일까 하고 물으면 우리는 자신을 강도 만난 사람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딸 다인이가 잠들기 전에 제 아내는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어느 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다인이에게 들려주었어요.

이야기를 다 마치고 아내가 딸에게 적용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너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니?” 엄마가 기대하는 대답은 나도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줄 거예요.’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다인이의 대답은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누구가 날 괴롭히고, 누구와 누구도 날 괴롭혀.” 하면서 흥분하기 시작하더랍니다. 급기야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누구가 자기를 왕따시킬 때의 몸짓까지 흉내 내면서 열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인이를 괴롭히는 사람의 이름은 제가 밝히지 않겠습니다)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내가 강도 만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강도를 만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을 당했다는 상징적인 표현인 것을 아시지요?

 

3. 세 번째 주는 의미는 율법 교사가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을 때, 주님은 나를 믿으라고 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율법의 내용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사마리아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지식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착한 행동을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으라고 말하는 대신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였다 하여 믿음이 아닌 사랑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에 매우 익숙한 나머지 신앙의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어떤 지식을 확실하게 알고 있거나 분명한 신념을 갖는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믿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행동을 하였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였다고 하여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영생을 얻은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나하나 열거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교만해질까 봐, 그리고 매우 많기에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교회 안에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남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의 돈을 내어주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가장 큰 사랑은 지옥으로 가는 영혼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크게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가족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친구와 친지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때 하나님의 자비가 그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애쓰고 수고할 때, 그는 가장 좋은 이웃으로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을 베푸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알려주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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