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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레위기 19:9-10)
최영모 [beryoza]   2019-07-21 오후 7:28:16 277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레위기 19:9-1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에는 갈릴리바다와 소금의 바다(사해)가 있습니다. 갈릴리바다에는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지만, 소금의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갈릴리바다는 물을 받아들이고 또 여러 곳으로 흘러 내보내기에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의 바다는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흘러 내보내지 않아서 소금의 바다, 죽음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나누지 못하고, 내보내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윤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윤리는 얼마나 많이 나누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하지 않고, 많이 나누는 사람을 부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내가 수고하여 결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추수하면서 밭 구석구석까지 다 자기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고,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합니다. 축복을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명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옆 건물에서 예배드릴 때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노숙자 몇 사람이 주일 예배에 나왔습니다. 제대로 씻을 수 없었기에 몸에서는 심한 냄새가 났습니다. 예배를 안내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예배드리지 않고 돌아갔으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하게 끝까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주일에 그들은 다시 교회에 왔습니다. 안내위원들은 다시 긴장하였고, 그들은 또다시 당당하게 예배를 드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어떤 교인들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노숙자들이 계속 교회에 나오도록 허락한다면 자기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 하고요. 그 말은 제 마음을 매우 무겁게 하였지만, 그러나 노숙자들을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겨우 한 말은 노숙자들에게 교회에 올 때는 목욕이라도 하고 오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마침 누군가가 교회에 깨끗한 옷을 갖다 준 것이 몇 벌 있어서 그분들에게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그다음 주일부터 그들은 목욕하고, 교회에서 준 옷을 입고 왔습니다.

얼마 후에 제가 헌금을 주제로 설교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설교 말씀대로 나도 헌금을 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헌금을 하였습니다.” 수줍은 듯 그렇게 말씀하신 그분의 환한 표정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변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교회에서 드린 깨끗한 옷이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옷을 가져온 사람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 써도 부족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하더라도 나누게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목격하게 됩니다.

몇 달 전에 우리는 무언가를 살 때 나의 것만 사지 말고 교회 안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조금 더 사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 안에는 그 일을 위하여 오병이어 선교회가 만들어졌으며, 여러 사람이 물건을 가져와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레나 자매께서 잠시 간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레나 간증)


여러분이 가게에 가서 무엇인가를 살 때, 여러분의 것만 사도 됩니다. 여러분이 수고하여 번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더 사서 필요한 사람과 나누는 마음은 복된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일하도록 건강을 주시고, 직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이삭을 다 줍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물질이 성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십일조가 있습니다. 수입의 1/10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비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교회의 사역자들과 직원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두 번째로 성경에는 제2의 십일조가 있는데, 3년에 한 번씩 그해의 소산물 중의 1/10을 드립니다. 쉽게 말하면 3년에 한 번씩 한 달 월급을 십일조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세 번째로 성경에는 추수할 때 밭의 모퉁이에 있는 농작물을 그대로 놓아두라고 하였습니다. 추수하면서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라고 하였습니다.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짐승이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퉁이에 있는 농작물까지 다 거두지 않아도 충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실천하기를 권유합니다. 십일조를 드릴 수 있으면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다면 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십일조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못한다면 추수할 때 밭의 네 귀퉁이를 남겨 두어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이 흘러가도록 해보시기 바랍니다. 음식물을 살 때 조금씩 더 사서 교회의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레프 톨스토이가 쓴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는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 마르틴은 지하실의 작은 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으며, 아내도 죽었고 아이들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를 아는 고향 노인이 마르틴에게 성서를 사서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성서를 읽던 마르틴은 예수님을 꿈에서라도 꼭 만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꿈에 거룩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마르틴, 내일 내가 너에게 가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마르틴은 큰 기대를 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창밖을 보니 청소부 노인이 문 앞에서 추위에 떨면서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노인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몸을 녹이게 한 다음에 돌려보냈습니다.

조금 있으니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인이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르틴은 그 여인을 안으로 불러서 빵과 수프를 먹이고 몸을 녹이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죽은 아내의 오래된 외투를 여인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조금 있다가 창밖을 보니 어떤 아이가 사과 파는 할머니의 바구니에서 사과를 훔쳐 도망을 치다 붙잡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 아이의 사과값을 대신 계산할 터이니 아이를 놓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가 지났지만,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꿈에 거룩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마르틴, 오늘 내가 너에게 갈 때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어 고맙다.” 그러면서 청소부 노인의 얼굴과 아기 엄마의 얼굴과 사과를 훔치던 아이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르틴 그들이 바로 나였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복음서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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