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장

    사흘이 지나서야 저스틴은 건강을 차차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르코스는 클레멘트의 집에서 그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본을 관찰하였다. 이윽고 집주인이 돌아왔지만 이 책에 대한 그의 설명조차도 어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아,” 클레멘트가 친절하게 말했다. “이 사본은 몇 년 전 어떤 에베소 사람에게 받은 것입니다. 나도 이제 늙어가는지 그의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군요. 그는 세상을 떠난 그의 형에게서 이 책을 한 통의 편지와 함께 물려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책이 원래 어떤 알렉산드리아인의 것이라면서 그것을 돌려주려고 저에게 보냈지요.”

    “이 사본을 어디서 누가 제작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까?” 마르코스가 물었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클레멘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문체와 번역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 사본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래서 아마 여기서 최근 오십 년 이내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필라델피아나 옥시린쿠스, 또는 나일강 주변의 큰 도시들에 필사실이 있기에 거기서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요. 정확함과 세련됨을 동시에 갖추었기 때문에 이 사본은 가끔 제가 말씀을 묵상할 때 읽습니다.”

    세련됨이라는 단어는 마르코스에게 교양있고 우아한 알렉산드리아인들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는 이밖에 일정이 있음을 기억하고 클레멘트에게 저스틴의 병간호를 맡기며 붐비는 거리로 집을 나섰다.

    사실 그는 옛 로마 친구 헤라클레온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이제 그가 가장 훌륭한 영지주의 지도자가 되었으니 마르코스는 더욱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시장에서 논쟁을 벌였던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저스틴에게도 지나가는 말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을 뿐이었다. 헤라클레온을 찾으려는 이 비밀스러운 탐색은 그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 만남이 오히려 득이 될 거라는 생각에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만약 그와 원만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마르코스는 ‘발렌티누스파’로 넘어간 형제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5년이라는 세월과 엄청난 명성이 이 영지주의 선생을 변하게 하고 로마 교회의 일개 서기와 우정을 지속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고 그는 영지주의자들이 모이는 곳을 기필코 찾아내리라고 결심했다. 클레멘트는 자세하게 그들에 대해 묘사해주었지만 그의 손님의 의도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르코스는 도시 변두리에 있는 작은 시장에 도달해 가죽 상인에게 길을 물었다.

        “헤라클레온이라고?” 늙은 상인이 대답했다. “나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지만 그의 추종자들이 여기로 온다오. 저기 저 여자가 그들 중 하나지.”

그는 사탕무 가게 뒤에 있는 한 여자를 가리키고 마르코스는 의심받지 않게 그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헤라클레온을 찾는군요.” 여자가 마르코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대답했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녀는 수상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입니다.” 마르코스가 대답했다.

    그녀는 잠깐 멈추고 다신 한번 그를 노려보았다. “음, 그는 저쪽 모퉁이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서 세 번째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아... 혹시 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마르코스는 마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그럼 너무 오래 계시지 마십시오. 그는 방문자가 워낙 많고 또 빨리 지치는 사람이니까요.”

    아직도 여자는 그를 노려보았고 마르코스는 그녀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나섰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그의 옛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마르코스!” 헤라클레온이 외쳤다. “나는 자네를 여기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네!”

    “나 또한 그렇다네.”

    “아직 요한복음서를 공부하고 있는가?” 웃음에 가득 찬 헤라클레온이 그의 손을 잡으며 계속했다. 그는 옛 친구의 방문에 매우 놀란 눈치였다.

    “열심히 달달 외우고 있지. 당신도 그러고 있겠지?”

    헤라클레온은 그를 안으로 안내하면서 앉게 하였다. 포도주를 따르며 그는 말했다. “나 또한 그것을 번역하고 연구하고 있다네. 이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내고 있지. 사실 오늘 아침에도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었다네. 예수님께서 살아있는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 기억하는가? 이 여인은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대답을 하였고. 이 말씀에 참된 해석은 이것이네: 삶의 모든 영광은 세속적이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활기가 없다네. 하지만 우리 구세주가 주시는 물은 영과 권세로부터 나온 것이네.”

    마르코스는 여기까지 동의했다. 클레멘트와 판테우스 등 다른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의 이야기와 같아 보였다. 하지만 헤라클레온은 계속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그녀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또다시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니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씀하셨네. 이 구절들은 이렇게 해석해야 하네: 예수께서 뜻하신 여인의 남편은 그녀의 ‘플레로마’(Pleroma, 신의 은총으로 충만한 상태를 말하지만, 종교적 신비주의에서는 물질계의 한계를 초월한 영역을 의미한다. -역자 주)이네. 따라서 구세주와 연합하는 순간 권세를 받아 이 플레로마와 섞이네. 예수께서는 이미 그녀가 남편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 세상의 남편을 부르신 것이 아니네. 그녀의 남편이 바로 에온(aeon, 영원-역자 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세상의 남편이 없었네. 따라서 그녀의 세속적인 남편들은 이 물리적인 악을 뜻하는 것이지. 그녀가 남편들을 유혹하여 타락하면서 그녀의 영혼을 죄악에 빠뜨렸지만 결국 이 남편들은 그녀에게 모욕과 수치심만 가져다주었지.”

    마르코스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헤라클레온을 친구로 존경하였지만 그의 영지주의 사상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온이 그리심산과 예루살렘을 비교하기 시작할 때는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이 산(그리심)은 마귀의 세상을 뜻하네. 마귀는 모든 물질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온갖 괴물들과 악의 ‘산’이라고 볼 수 있지. 이방인들이 숭배하는 것이 바로 이 산이지만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숭배하는 창조주가 만든 창조물을 뜻하네. 하지만 기체의 속성을 가진 영적인 존재들은 창조물이나 마귀 그 무엇도 숭배하지 않고 오로지 진리의 아버지만을 경배하지.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이미 신실한 자로 받아들이시고 진리만을 예배하는 자들과 함께 그녀를 높이신 것이네.”

    헤라클레온은 로마 시절에 가지던 매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그가 가진 요한복음 교리가 사도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가르치고 이 시대에 수많은 교회가 지키는 것과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헤라클레온과의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참된 교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발렌티누스파의 방문자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의 선생님이 땅에 묻힌 보물의 비유에 대해 질문이 있으십니다.” 그가 어설픈 헬라어로 말했다.

    헤라클레온은 친구와의 대화를 멈추고 싶지 않아 빨리 답을 해주고 그를 다시 보냈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이미 이 영지주의자와 필요한 만큼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떠날 눈치를 보였다.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 그는 한 질문을 던졌다.

    “자네야말로 발렌티누스 사원에 가본 적이 있는가?”

    “없네!” 헤라클레온이 소리쳤다. “사실 가고 싶지도 않네. 그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얻으려 사람을 보내지만 매우 폐쇄적인 공동체라고 하네. 언젠가는 가야 하겠지. 그러나 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좋다네. 여기서 나는 자유롭게 묵상하고 가르칠 수 있고 그 어느 공동체와 연결되지 않아서 말이지. 하지만 파이움으로 여행하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거기 붙잡힐 것 같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지.”

    이 말을 마치고 두 친구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마르코스의 머리는 질문들로 가득 찼다. 헤라클레온 같은 영지주의자들과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해석들의 한계점들도 분명 있을텐데... 발렌티누스 사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