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장

    저스틴은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클레멘트의 집으로 돌아온 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누웠다. 밤새 두통과 복통으로 고생한 그는 해가 뜰 무렵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고 종일 일어나지 않았다. 클레멘트는 일을 보러 외출했고, 마르코스에게는 드디어 혼자 남아서 그들이 도착했을 때 보았던 사본을 관찰할 기회가 생겼다. 정오쯤에 그는 새로 부임한 주교 줄리안의 집에 편지를 전달하고 그와 함께 로마와 이집트 교회에 대한 일들을 의논하기로 되어있었다. 저스틴 또한 이 일에 같이 참여하기로 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클레멘트의 사본은 많은 차이점을 보여 주었다. 일단 마르코스는 이미 크노소스에서 피니투스와 토론했던 간음했던 여인에 대한 구절들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또한,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야 했던 곳 바로 전에 쓰여있는 문장에서 그냥 ‘한 예언자’ 대신에 ‘그 예언자’라는 어휘가 사용된 점 또한 발견했다.

    그다음 마르코스는 요한복음서를 찾아 그가 이전에 외웠던 사본과 대조하기 시작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는 나중에 이 사본이 어떻게 될지 의아해하면서 생각해보았다. 고린도의 헬리오도루스 같은 서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예루살렘이나 가이사랴나 안디옥이나 심지어 로마의 ‘이교’ 서점에서? 어쨌거나 그의 머릿속에 기억되어있는 사본이야말로 완전한 원문이었다. 그렇다는 확신을 얻은 후 그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사본을 읽어 내려갔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한복음의 첫 부분은 마르코스가 가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짚는 부분이었다. 이 구절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했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그는 이 말씀을 반복하고 묵상하였다. 어려울 때마다 모든 힘이 되어 주었고 의심과 회의감이 들 때마다 믿음을 가지게 한 것이 바로 말씀이었다. 그는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아들들과 함께 양을 치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양치기 아버지를 떠올렸다. 머나먼 이집트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그는 가능하면 바로 그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다음 구절들과 마주쳤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그가 없이 는 공허함밖에 없느니라.” 클레멘트의 사본에는 ‘공허함’(nothing: ouden)이라는 표현이 쓰였고 이것은 마르코스에게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표현도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어느 것 하나도’(not one thing: oude hen)였다. 이 구절은 그가 헤라클레온과 가졌던 손에 땀을 쥐게 하던 논쟁들을 연상하게 하였다. 헤라클레온은 마르코스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로마에 와서 꽤 오랜 시간 영지주의자들의 지도자인 발렌티누스의 제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한번은 마르코스가 그를 시장에서 보았는데 그들은 만나자마자 요한복음에 대한 열정을 나누기 시작했다. 헤라클레온의 이단적인 사상에도 불구하고 마르코스는 그가 아주 뛰어나고 인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많은 사람을 그에게 끌어들일 수 있는 웅변가였다. 마르코스는 그와 함께 요한복음 해석에 대한 많은 것들을 논의했다. 그들의 만남은 몇 개월 동안 지속되다가 갑자기 헤라클레온이 사라지곤 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제자가 많던 시칠리아나 프테올리로 여행을 갔다. 얼마 후에 그는 또 나타나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르코스와 논쟁을 계속하였다. 소테르가 죽고 엘레우테루스가 주교가 될 무렵 헤라클레온은 로마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장 믿을만한 소문은 그가 이집트로 가서 발렌티누스를 대신하여 많은 신도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르코스는 클레멘트의 사본을 읽으면서 혹시 그가 이집트에 머무르는 동안 헤라클레온을 만날 수 있을지, 또는 그가 지금쯤 이미 영지주의자들의 출중한 지도자가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그와의 만남이 어떨지 궁금했다.

    마르코스는 그들이 로마에 있을 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논쟁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그가 없이는 공허함밖에 없느니라….” 헤라클레온이 낭독을 마치고 권위 있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더했다. “이 공허함이란 모든 우주와 피조물에 있는 것 안에서 무(無)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르코스가 질문했다. “그가 창조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오?”

    “‘모든 것’들이란 이 세계에 속한 것들을 묘사하는 것이네.” 헤라클레온은 계속했다. “하지만 이 밖에도 온 우주에 속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네. 에온과 그 안에 있던 것들은 로고스를 통해 존재를 얻은 것이 아니오, 로고스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들이지.”

    “하지만 여기는 ‘그 어느 것 하나도’라고 봐야 하네!” 마르코스는 확신해 찬 표정으로 말했다.

    “공허함이오!” 헤라클레온은 반짝이는 눈으로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어떤 것들은 이 공허함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은 여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내기로 했으나 친구로 남기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번역본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논쟁에서 유리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지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통교회와 영지주의자들의 논쟁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논쟁에서 불가피한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돌이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났고 줄리안 주교와 함께 회의에 참석할 시간이 왔다. 저스틴의 몸 상태를 점검한 후 마르코스는 좁고 붐비는 길을 거쳐 주교의 집으로 서둘렀다.

    “자네의 친구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네.” 주교가 말했다. “엘레우테루스 주교의 편지를 몇 차례 받았지만, 자네가 뭘 또 갖고 왔으리라고 믿네.”

줄리안은 유쾌하고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마르코스는 로마 교회와 점점 더 커지는 이레니우스의 명성, 그리고 영지주의 이단세력의 확장에 대해서 의논했다.

    “그들은 특히 여기 이집트에서 매우 강력하고 과감하다네.” 주교가 걱정했다. “우리 신학교의 판테우스와 클레멘트의 가르침들이 우리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고 이 도전을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네.”

    “여기 영지주의자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해 더 말해주십시오.” 궁금한 마르코스가 물었다.

    “다양한 지도자들이 있는 만큼 그 신앙도 다양하다네.” 줄리안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새로 생겨난 영지주의 집단들이지. 여기저기서 그들은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동체들을 일으키고 있다네. 아마 가장 강한 교파는 그들의 지도자의 이름을 딴 ‘발렌티누스파’라고 부르는 교파일 것 같네. 황제가 이 지역을 탄압하기 시작한 후 발렌티누스파들은 그들의 근거지 발렌티누스 사원을 중심으로 이곳을 거침없이 삼키고 있다네. 하지만 마르코스, 나를 가장 근심케 하는 것은 젊은 우리 사역자 중 두 명이 그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네.”

    “이 발렌티누스파의 지도자들이 누굽니까?” 마르코스가 물었다.

    “나도 확실하지는 않네.” 주교가 대답했다. “또한, 쉽게 알아볼 방법도 모르네. 하지만 그들이 이 알렉산드리아의 가장 높은 영지주의 지도자 헤라클레온과 접촉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네.”

    헤라클레온. 마르코스의 심장이 뛰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인들이 로마에 대한 의심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쨌든 헤라클레온이 이곳 영지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되었으니 그와의 사적인 관계는 매우 중요해진 셈이었다.

    시편 낭독과 기도를 마친 후 마르코스는 클레멘트의 집으로 돌아왔다. 저스틴은 아직 잠들어있었고 문 앞에는 줄리아나의 편지가 있었다:

    “나의 친구 디오도루스는 버드나무로 만든 튼튼한 배가 있습니다. 그는 하인을 시켜 옥시린쿠스로 여러분을 데려올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 데메트리우스와 저는 여러분을 우리 손님으로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하시길.”

    마르코스는 이제 회복하기 시작한 그의 친구가 이 편지를 보고 기뻐할 것을 짐작했다.